회개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
회개하는 것 외에는 살 길이 없다
말4:1-6
구약 성경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회개하는 것 외에는 살길이 없다’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수많은 족장과 지도자들 그리고 왕들과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개인에게 혹은 국가에게 통첩이나 꿈이나 환상으로 그리고 때로는 직접 말씀으로, ‘회개하는 것 외에는 살길이 없다’ 고 하셨습니다.
아담부터 시작해서 노아와 아브라함 그리고 이후의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축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있음은 그가 세운 언약 때문인 것이 구약 성경의 내용 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1절). 그러나 2절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범죄하고 실수했지만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과 교제를 지속하는 백성에게는 언제나 약속 하셨듯이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이 발하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지 못하면 “또 너희가 악인을 밞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3절). 너무나 큰 대조적인 말씀 입니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자유를 만끽하면서 뛰노는 것과 발바닥 밑에 밟혀서 완전히 납작해져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재와 같은 상황은 너무나 큰 대조 입니다.
말라기 4장 1절에서 6절 말씀이 끝난 후 400백 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 합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말라기 4장을 읽었다고 가정하고 내일부터 400백 년 동안 새벽예배도 없고 주일예배도 없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복음 전하는 자도 없고 성경공부도 없습니다. 훈련도 없습니다. 희곡이나 시나리오를 보면 ‘정적’ 혹은 ‘침묵’ 이라는 표시가 있습니다. 가끔 이런 표시는 희곡에서 굉장한 효과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2500년 동안 당신의 백성들에게 누누이 말씀 하셨고 말라기에서는 하나님께서도 지친듯하신 느낌을 주시며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후 잠잠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의 마음은 무겁습니다. 히브리 원어 성경의 마지막 단어는 공교롭게도 ‘저주’ 라는 단어 입니다.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말씀 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4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5절). 이 구절은 귀에 익은 말씀 입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7장의 변화산상 기사를 기억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곱과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상에 가셨는데 변형된 당신의 모습을 보고 압도당한 제자들은 산을 내려오는 중에 질문 합니다,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오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 라”(마 17: 9-13).
하나님께서 말라기 4장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최후의 통첩을 하시면서 저희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크고 두려운 그날이 올 것인데 그 징조로 엘리야를 먼저 보낸다는 말씀 입니다. 마태복음 17장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세례 요한은 말라기 4장에 예언되었던 엘리야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초림이 다름아닌 ‘크고 두려운 날’ 이었습니다. 이것은 본문 1절속에 있는 것처럼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 입니다. 5절 말씀처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 하신 말씀을 기억 합니다,
“내가 이 땅에 화평을 주러 온 줄 아느냐?”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검’ 그리고 ‘불’ 이 주는 의미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판의 검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치는 검이 되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억압과 핍박
중에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는 검이기도 합니다. 불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된 모든 것을 불살라 버리는 심판의 불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고 회복시키고 구원시키는 불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은 후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시는 중에 마귀로부터의 시험을 이겨낸 후 공생 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일 순위로 말씀하신 내용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였습니다. 말라기 마지막 장을 넘기면 곧 바로 마태복음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 한 장에는 400백 년이라는 세월이 흐릅니다. 400백 년이라는 세월을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엘리야 세례 요한을 보내셨고,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이미 심판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토록 극렬한 풀무 불 같은 날이 이르게 하고 완전히 뿌리와 가지까지 타게 불살라버리겠다고 끓어 오르는 분노를 말씀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의 악행 때문에 희생된 사람들의 억울함의 호소가 하늘에 가득 차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 하는 자에게 와 간음하는 자에게 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 와 품 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케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케 하며 나를 경외치 아니 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3:5)
현대 말세지 말의 현상들을 보면서 주님의 오실 때가 가까웠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교회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고 때가 가까웠음을 알아야 합니다. 2000년 전 예수님의 초림 때 일이 이제 마지막 중의 마지막 때로 치닫고 있으며 곧 예수님의 재림이 다가올 것을 느껴야 합니다. 느끼십니까?
우리의 유일한 살 길은 회개하는 일입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술수 하는 사람들, 간음 하는 사람들, 거짓 맹세 하는 사람들, 종업원들에게 주급 이나 월급 때문에 억울하게 하는 사람들, 고와와 과부와 나그네들을 압제하는 사람들 그리고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돌이키라고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말씀 하십니다.
다시 한번 경고 합니다. 오늘 새벽 이후 400백 년 동안 예배도 없고 목사도 없고 성경공부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캄캄한 시대만 남았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후에 엘리야가 오고 메시아가 오셔서 제일 먼저 회개했느냐고 질문할 것 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 까왔습니다, 회개하십시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이 새벽에 하나님과 조용히 대면하는 시간을 갖고 삶의 방향이 바꾸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