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왔으니 회개하며 춤을 추라 요일1:5-7
개신교에서는 12월 25일을 성탄으로 보지만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으로 지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주현절 첫 주일입니다. 주현절은 하나님이 빛이 되어 오신 날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5절까지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얘기가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첫 번째로 하신 일은 빛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천지 창조의 시작은 빛입니다. 빛이 있은 후에 천지가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도 만들어졌습니다. 여기 말씀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두움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하시니 빛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밫이 생긴 것이 천지 창조의 시작입니다. 빛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바로 자기 스스로를 생기게 하셨습니다
. 빛이 생기기 이전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존재라는 것이 없습니다. 사람도 살아있고 물건도 있고 교회도 있고 세상 모든 만물이 다 있고, 살아있든 죽어있든 존재합니다. 창세기 기자는 빛이 생기기 이전의 것들, 하나님의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말하는 존재의 영역이 아닙니다. 있는 것 이전의 존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없는 것입니다. 빛부터 생겨나면서 있는 것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천지 창조를 일러서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부터의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가지고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빛이 생기고 나서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빛이 사도들의 시작입니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빛 자체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빛이 비춘다는 말은 하나님이 오신다는 말입니다. 빛이 어두움을 비춘다는 말은 하나님이 오셔서 어둠의 세력을 밀어낸다는 뜻입니다. 죄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오시면 하나님이 죄를 밀어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오시기 때문에 그 분은 스스로 비추십니다. 요한 1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전해 주신 말씀 중에 가장 큰 말씀은 하나님은 빛이라는 것입니다
. 그 빛이 있음으로 존재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자연도, 인간도, 땅도, 바다도 생겼습니다. 생명이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 빛으로부터입니다. 그래서 요한 1서 기자는 아주 명확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빛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계심으로 인해서 생명이 시작된다, 하나님이 생명이 되어 우리 안에 오셨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이 생명은 아무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요한 1서 기자는 천지 만물을 하나님이 너무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 그래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이름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을 정의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누구라고 하면 될까, 무엇하는 분이라고 하면 될까, 요한 1서에는 간단하게 그 대답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하나님은 생명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하나님 즉 빛이신 분이 육을 입고 예수님으로 이 땅에 오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곧 빛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며 생명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이며 사랑 그 자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지 창조 설화를 읽고 이렇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구나. 우리는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 하루가 끝났구나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릅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우리는 하루가 끝났으니 쉬자고 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시작되니 일하자고 합니다. 저는 천지 창조 이야기를 읽으면서 편안히 쉬는 것도 포기할 일은 아니지만 또 한가지,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명을 위하여 일하십시다.
사랑이라는 일을 합시다. 빛을 비추십시다. 오늘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에서는 오늘을 주현절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오늘부터 빛이 생명이 되어 활동합니다. 오늘부터 빛이 사랑이 되어 사람들 마음 속을 파고 듭니다. 우리의 빛된 생명은 천하보다도 귀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온갖 소유물과 재물보다도 귀합니다. 모든 마시고 먹을 것보다 훨씬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 이상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생명을 지켜 가십시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현절의 축복이 일년 내내 임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님은 빛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빛, 헌신적인 사랑이신 빛, 그 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빛이 임하면 어둠이 물러가듯이, 빛이 사람에게 임하면 반드시 사건이 생깁니다. 그 사건은 회개라 이름하는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 행전에서 스스로의 얘기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그 동안 스데반을 죽이러 다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러 다녔습니다. 돈을 받고 에이전트가 되어서 예수쟁이를 잡아다가 관원에게 넘기는 일을 하고 그 많은 돈을 받았습니다. 예수 핍박하기 위해서 다녔습니다. 그 때 내 이름이 사울이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는 길에 다메섹이라는 언덕에 이르렀습니다. 그 언덕에 이르렀더니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비추었습니다. 그 빛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땅에 엎드려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어찌 하오리까, 빛을 받으니 제가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저에게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사람을 죽이러 가고 생명을 말살하러 가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이제부터는 생명이며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되기 위해 빛을 받고 바울이 되었습니다. 나 바울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오셔서 회개하게 하십니다. 회개하고 나면 새로운 사람으로 바뀝니다. 주현절은 우리 교인들이,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이 민족이, 이 세계가 회개를 요구받는 주일입니다. 새롭게 변신하는 날입니다. 계획하는 날입니다. 사울의 사람에서 바울의 사람으로 바뀌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임하면 우리는 그렇게 회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주현절은 사실은 회개하는 날입니다. 빛이 지배하기 시작하는 날, 그것을 우리가 고백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은 학교를 다니면서 이런 영어 속담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번쩍번쩍 빛이 난다고 다 금이 아니다.\\\" 빛이 난다고 다 금인줄 아십니까? 제가 찾아 보았더니 18세기에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의 마지막 왕인 루이 16세가 있었습니다. 루이 16세의 부인 이름은 마리 앙뜨와네뜨였습니다. 이 여성은 왕비로서 온갖 사치와 호사를 부렸습니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시설을 가지고 왕실에서 살아습니다. 살다보니 번쩍번쩍 주위에 금은 많은데 자신의 마음 속에는 금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 그래서 이 왕비가 풍요 속의 빈곤, 번쩍번쩍 빛이 나는 속의 어둠, 대중 속의 고독을 느끼고 자신의 친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에 보면 \\\'빛이 난다고 다 금은 아닌거야.\\\'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모두 생활하면서 금빛 나는 세상을 찾습니다. 퐁요를 찾습니다. 지식을 찾습니다. 행복을 찾습니다. 집도 찾습니다. 항상 그 속에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빛이 비춘다고 항상 비추는 것은 아닙니다. 그 속에 살아있는 생명이 있어야, 기쁨과 사랑이 있어야 그것이 행복입니다. 남모르는 비애와 공허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의 찬사를 받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의 생명에 대해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드릴 수 있으면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줄겁고 만족스럽고 기쁩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이 빛을 만드시고 참 좋다, 세상에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가득하고 힘찬 생명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빛이 일년 내내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비추기 바랍니다. 어떤 이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걱정되는 일은 빛을 받고 살기는 하지만 청춘은 자꾸 가고 붙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랍니다. 세월이 갑니다. 백발의 늙음이 자꾸 오는데 막을 수가 없습니다. 청춘도 가고 백발은 오고, 오고 가는 세월도 붙잡을 수도 막을 수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에게 하나님의 빛이 오려는데 우리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저항하지 마십시오. 어둠이 우리에게 지나가겠다는데 뭐하러 붙잡습니까? 잡지 마십시오. 빛이 오거든 맞아들이십시오. 백발이든 청춘이든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빛을 받고 하나님을 품고 사십시오.
예수께서 오셔서 빛에 대하여 이런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빛으로 오신 지금 유대땅 베들레헴과 예루살렘과 갈릴리와 사마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몰라볼까. 장사가 안되는 날, 상점 문이 다 닫은 날, 공휴일입니다. 안식일입니다. 장사가 안 되는 날입니다. 애들이 와서 장터에서 판을 벌입니다. 두 패로 나뉘어 한 패의 아이들은 결혼식 노래를, 다른 한 패는 장례식 노래를 합니다. 결혼식 노래를 하면 한쪽에서 춤을 추고 다른 쪽에서는 피리를 붑니다. 장례식 노래를 할 때 한쪽에서 곡을 하면 다른 쪽에서 따라 합니다.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다른 쪽에서 춤을 추지 않습니다
. 장례식 곡을 하여도 다른 쪽에서 받아주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 나가서 메뚜기만 먹고 굶으면서 금식하면서 \\\'회개하라, 빛되신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신다. \\\' 하고 회개를 외쳤건만 춤도 추지도 않고 곡하지도 않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죄인들을 만나고 세리를 만나고 같이 먹고 마시면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였더니 유대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먹지 않고 광야에 있는 세례 요한은 정신 병자고 먹고 마시고 죄인들과 놀고 즐기는 예수는 무엇입니까. 세례 요한이 옳습니까, 예수가 옳습니까. 세레 요한의 복음을 전해도 춤추지 않는 나라,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같이 먹고 마시자고 해도 응하지 않는 나라, 이 나라를 뭐라고 기대할까. 어느 장단에 춤출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장단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관심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 예수는 장단에 춤추는 것이나 많이 먹고 마시는 것이 죄가 아니라 아무 장단에도 춤추지 않는 무관심, 빛이 와도 받지 않는 무관심, 피리도 불지 않고 춤도 추지 않으며 곡도 하지 않는 무관심, 회개하지 않는 무관심이 가장 큰 죄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중립이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차든지 뜨겁든지 해야지 중립이란 없습니다. 믿음이 아니면 불신인 것이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은 없습니다. 예수의 말씀은 여러분은 하나님이 피리를 부시거든 춤을 추고 하나님이 슬퍼서 곡을 하거든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을 인도합니다. 이 빛은 우리가 가는 발자국마다, 우리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각이 미치는 곳마다 함께 할 것입니다. 이 빛이 생명의 빛, 사랑의 빛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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