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계3:14-22
“라오디케아인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이 일들을 말씀하시느니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이며, 부요하고,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네가 비참하고, 가련하며, 가난하고, 눈멀고, 헐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에게 권고하노니 내게서 불로 단련된 금을 사서 부요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음으로 너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며, 또 안약을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아멘.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말세 지상 모든 교회들의 형편과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여기서 대개 3가지 형태로 말씀드릴 수 있는데 ⑴ 주님의 책망이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최상급 교회)가 있는데 서머나교회와 필라델피아교회이다. ⑵ 칭찬도 있고, 책망도 있는 교회는 보편적 교회인데 “에베소교회와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가 있다.” ⑶ 칭찬은 없고 책망뿐인 교회가 있는데 이는 본문에 나오는 ‘라오디게아’교회이다. 최하급 교회이며, 열심도 회개도 없는 교회이다.
1. 열심이 부족한 교회의 형편을 살펴봅니다.
계3:16“네가 그처럼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노라.”고 했다.
1) 여기서 우리는 미온적 상태, 중립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차다는 말은 복음과 접촉이 없는 불신앙의 상태를 가리킨다. 신앙은 모험이요, 요구하기 때문에 이러한 미온적인 상태를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습 1:12절 “그 때에는 내가 촛불들을 가지고 예루살렘을 샅샅이 뒤져 은밀한 곳들에 자리잡은 사람들을 벌하리니, 그들이 속으로 말하기를 \"주께서는 선도 행하지 아니하시고 악도 행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는도다.”고 하였다. 엘리야는 왕상 18:21절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너희가 얼마나 더 두 의견 사이에서 지체하려느냐? 주가 하나님이시면 그를 따르라. 그러나 만일 바알이면 그를 따르라.\" 하니 백성이 그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더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내가 차든지 어웁든지 하기를 원하셨다(계 3:15절). 미온적인 중립상태를 단테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이 가엾은 꼴을 이어가는 것은 평생 남부끄러울 것도 자랑할 것도 없이, 지내온 자들의 애처로운 영혼들이란다. 하나님께 항거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충성하지도 못한 채 다만 저 스스로를 위하는 천사들의 저 나쁜 무리에 저들이 섞여 있느니라. 하늘은 더렵혀지지 않고자 저들을 내어 쫓고 깊숙한 지옥마저 저들을 아니 받아 들이기는 이 죄인들이 저들로 인해 어느 영광을 가질까 함이라}고 했다.
2) 겉으로 보기에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지만, 내적으로 보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음을 모르는 상태이다.
① 곤고한 것은 이중적 심령상태를 뜻한다(롬 7:24).
② 가련한 것은 영적인 빈사상태에 빠져있음을 뜻한다(사 41:17).
③ 가난한 것은 내적 생명력이 풍부하지 못함을 뜻하는 것이며,
④ 눈 먼 것은 영안이 어두운 상태를 의미하겠으며,
⑤ 벌거벗은 것은 의의 세마포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상태를 모르면서 영적 자만심에서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는 줄 알고 있다.
3) 예수께서 미온적인 자를 토해버리겠다는 것은 그의 속에서 역겨운 까닭이다.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아는 태도는 예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두가지 죄악을 합한 것이며, 곧 외식과 교만이다. 이 두 죄악은 주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죄악이다. 토하실 수 밖에 없고,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은 상태는 모든 부패를 발생시킨다. 100도로 끓는 물이나, 100도로 얼은 물에는 어떠한 병균도 발생하지 못한다. 그러나 30-40도 되는 미지근한 물에는 모든 부패물이 가득하여 온갖 병균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므로 미지근한 상태는 자기 부패성을 감싸고 있고, 그 부패를 자기가 조성하고 있기 때문에 죄를 티끌만큼도 좋아하시지 않는 주님의 구미에 맞을 리가 없다. 주님은 이러한 교회에 대해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라고 권면하십니다. 여기서 불로 연단한 금은 믿음을 가리킨다. 흰옷은 거룩함을 의미하고, 안약은 성령을 의미한다. 영적 빈곤한 상태에서 부요하게 되는 길은 금보다 귀한 믿음이요(벧전 1:7).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는 길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세마포요(계 19:8). 자기의 신상을 바로 보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4) 미지근하다는 원뜻은 열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무성의한 상태를 의미한다. 성의가 없기 때문에 미지근한 상태가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 있고, 귀중한 것은 정성과 열의로써 이루어지는데, 종교는 더욱 그리해야 된다. DL 무디는 말하기를 “이 시간에도 세상에는 많은 악한 정신들이 있는 중에 제일 위험한 것은 성실하지 못한 자라고 했다” 또한 포스틱은 “성심이 없는 자는 신자가 될 수 없고,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제일 싫어하신다”라고 말했다. 성심이 없는 신자, 무성의한 상태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향상도 진보도 없는 것이다.
2.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는 것이다.
◆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계 3:19).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목적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하심이니라,(딛 2:14)고 하였다. 베드로는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면 해할 자가 없다(벧전 3:13)고 하였다. 사도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다(롬 12:11). 이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은 주님의 사랑이 그들을 강권하고 있다는 것이다(고후 5:14). 또한 주님의 간절한 소원임을 말씀하고 있다.(계 3:15). 현대어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어느 한쪽이면 좋겠다. 라고 했고, 킹-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킹) 계 3:20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노라.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그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으며 그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고 했다.
2) 내가 열심을 내고 회개해야 할 이유는 신앙의 향상을 위해서이다.
에머슨은 말하기를 “역사 역대에 있는 온갖 크나 큰 운동은 열심이 가져다준 승리이다”라고 했다. 열심을 다해 훈련하지 않는 군인이나 선수는 좋은 군사, 좋은 선수는 될 수 없다. 열심히 연구하지 아니한 학자나 발명가는 위대한 일들을 성취할 수 없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 열심히 노력하고 연구하는 사람만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생명보험의 외무원 중에 가장 유명한 프랑크 베드거씨는 “나는 어떻게 판매 외교에 성공했는가?” 라는 글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있다. 프랑크 베드거는 한때 야구선수였다. 그는 당시 175달러의 월급을 받았는데 한 경기에서 패전한 후 파면당하여 겨우 25달러의 급료를 받았다. 그러나 그 후 그는 다시 열심히 노력한 결과 25달러의 7배가 넘는 185달러를 다시 받게 되고, 2년 후에는 30배나 더 증가되었다는 것이다. 프랑크 베이거는 자신의 3 가지 경험을 이렇게 말합니다.
① 열심은 마음속에 공포심을 제거한다.
② 능률적인 선수로서 상승한다.
③ 다른 사람에게 영향과 감화를 미치게 한다. 라고 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이지만, 요한 계시록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이 예언의 말씀은 말세에 승리자의 복음입니다. 이기는 자들에게 하나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한다고 계 2:7절에서 말씀하고 있다. 이기는 자들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계 2:11), 이기는 자들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준다고 했다(계 2:17), 이기는 자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철장 권세를 준다고 했다(계 2:26), 이기는 자들에게 흰 옷을 주어 그 이름을 생명록에 기록하고,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한다고 (계 3:12) 했다. 이기는 자들에게 주님과 함께 하나님 보좌에 앉게 하여 주신다는 것이다(계 3:21).
오늘날 성도들의 유형을 보면 물론 교회는 출석하고 있다지만, 그러나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자들이 너무도 많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많다. 회개의 체험이 없는 자들이 많다. 또한 성령의 체험을 전혀 가져보지 못한 자들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마치 병든 자가 병을 고치기 위하여 병원엔 열심히 들락거리고 있는데 그러나 완전히 치료받지 못한 상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라면 열심을 내야 한다. 그래야 신앙이 향상되는 것입니다. 열심을 가진 성도가 될 때 신앙의 불이 붙어서 죄악과 정욕을 이기고 세상 마귀 권세를 이기게 되고, 마침내 천국 보좌에 주님과 함께 앉게 되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약 2:26)고 했다. 열심이 없는 곳에 신앙의 향상도 승리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알아야 한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귀는 육신의 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아는 영이 열린 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복이 있다고 계 1:3절에서 말씀합니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도 좋고 안들어도 좋은 아닙니다.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들어야 할 순종해야 할 의무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거역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들어야 내가 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3. 열심이 생기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본문 계 3:20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리라고 말씀합니다. 1) 회개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제 일보요, 열심이 생기는 제 1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회개란 히브리 원문에 ‘나캄’ 혹은 ‘슙’인데 ‘나캄’은 슬퍼함을 의미하고, 슙은 돌아옴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 말은 회개의 양면을 의미한다. 회개는 죄를 원통히 여기며 슬퍼하는 동시에 그 범죄의 길에서 돌이키는 행위를 말한다. 범죄한 것을 슬퍼하기만 하고 옳은 길과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참된 회개라고 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고후 7장에서 두 가지 근심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이는 얼마나 간절한지,,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라고 했기에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서신을 받고 처음에는 근심하였으나 나중에는 7가지 좋은 결과를 이루게 되었다. 회개할 때 열심이 생기는 법이다. 막스 셀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힘과 보람있는 생의 결단은 회개의 관문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2) 주님의 구속의 은총을 감사할 때 열심이 생긴다.
왠 말인가 날 위하여 주 돌아 가셨나, 이 벌레같은 날 위하여 큰 해 받으셨네, 내 지은 죄로 인하여 못박히셨으니 왠 일인가, 왠 은혠가, 인정스럽구나,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이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예수께서 날 위하여 대신 죽으신 십자가의 대속의 사랑을 깨닫게 될 때 우리의 마음에 뜨거운 열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 독일의 진젤돌푸 백작은 어느 박물관에 가서 구경하다가 우연히 예수님의 못박히신 초상화를 대하게 되었다. 운명하신 예수님의 머리에는 굵은 가시로 만든 관이 씌워져 있고, 그 찔리신 상처에서는 붉은 피가 얼굴로 방울 방울 흘러내렸다. 그 밑에는 “나는 너를 위해 몸을 주었건만 너는 나에게 무엇을 주느냐”라고 쓰여져 있었다.
진젠돌프는 무심코 주님의 그 얼굴을 얼마쯤 쳐다보다가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에 그는 그 놀라운 주님의 구속의 사랑에 감격하여 교회를 위해서 불붙는 열심을 내어 교회를 세우는 중 몰리비안 교단을 창설하게 되었고, 그 후에 이 교단은 계속 기도하는 중 100명의 선교사를 세계에 파송하기에 으리렀다. 이와같이 누구든지 우리 예수님의 구속의 은총에 감격하게 되면 열심이 생기는 것이다. 할렐루야!
3) 성령의 불을 받았을 때 열심이 생긴다.
열심이란 히-원어에 ‘카-나’인데 이는 그 뜻이 ‘질투하다’ ‘시기심이 불타다’ ‘열심을 내다’ 이다. 헬-원어에는 ‘제오’인데 이 말의 뜻은 ‘열로 끓인다’ ‘삶다’ ‘끓어 오르는 열심을 가지다’ 라는 뜻이 된다.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는 성령님이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약 4:5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라고 했다. 성령은 성경에 불이라고 했다(행 2:2). 성령은 신앙의 정열을 일으키는 원동력이요, 활력소이다. 불이 붙는 곳에 뜨거운 열이 발생합니다. 성령은 지금 이 시간도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 개개인을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롬 8:26)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사람은 주의 일을 함에 있어서 얼마나 열심을 내는지 뜨겁고 열성적이다. 스펄죤은 “믿는 자는 복음에 삶은 자”라고 했다. 불이 있어야 물이 끓어야 생것이 삶아집니다. 생것으로 먹을 수 없다. 주님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자기를 삼켰다고 했다. (요 2:17), ‘나를 삼키는 열심’의 불이 오늘 내게도, 여러분들의 그 가슴에도 붙어야 합니다. 아멘. 이 강열한 불이 모세에게 임했을 때, 파라오 왕 학정아래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60만을 이끌어 내었다. 또한 뜨거운 이 불이 엘리야에게 임할 때 바알선지 450명을 멸하였다. 이 강열한 불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을 때 골수에 사무치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이 민족을 위해서 애도하게 하였다(렘 20:9, 9:1). 이 강열한 불이 바울에게 임하자 그칠 줄 모르는 구령에의 고통이 있게 하고, 예수님께 미친 자가 되게 하셨다(롬 9:2). 할렐루야! 이 강열한 불이 초대교회가 창설된 것이다. 120문도들을 새 술에 취하게 만들었다(행 2:13). 그러므로 성령의 불은 성도들을 뜨겁게 열심에 불타올라야 합니다. 아멘.
4) 열심을 품었을 때 열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열광적인 사람을 ‘마치 신에 불들린 사람 같다’라는 말이 있다. 성경에는 사람이 불을 품고서야 어찌 뜨겁지 않으랴! (잠 6:27)라고 했다. 무기력하던 엠마오의 두 제자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말씀을 들을 때 그 가슴이 뜨겁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 가슴에 열심을 품었을 때 열심이 생기는 것이다. 제임스 교수는 “당신이 감정을 갖고 싶을 때 그 감정을 가진 체 하시오, 그리하면 그렇게 된다”라고 했다. 즉 행복하려면 행복한 체 하면 행복하게 되고, 불행해지려면 불행한 체 하면 불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에 열중하려면 열중한 체 하면 열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멘.
4. 카네기의 열중 의식을 높이는 6가지 방법이다
오늘 본문 계 3:21절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로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아멘. 현대어-“이기는 사람은 마치 내가 이긴 후에 내 아버지께서 당신의 보좌에 나를 함께 앉히신 것처럼 나도 내 보좌 곁에 그를 앉게 하겠다.”라고 했다. 킹-“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을 자격을 주리니, 이는 내가 이겨서 내 아버지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은 것과 같으리라.”고 했다.
카네기의 열중 의식을 높이는 방법 6가지를 말씀드리면
(1) 당신이 담당한 일과 그 회사 전체에 관계한 많은 것을 배우라.
(2)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라.
(3) 날마다 자신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라.
(4) 남을 돌보려는 생각과 습관을 기르라.
(5) 일에 열심인 사람과 사귀고, 열심 없는 사람과 사귀지 말라.
(6) 열심 내는 것처럼 하라. 정말 열심하는 자가 된다.
월터 키는 말하기를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 만물과 접촉하는데 있어 마음도 반만, 정신도 반만, 사용하기 때문에 에매하게 불행에 빠지게 된다”라고 하였다.
말세 교회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고, 믿는다고 하나 믿는다는 이름뿐이다. 참으로 뜨겁지 않고 차지도 않은 미온적 상태이다. 주 예수님에 대한 사랑도 정열도 모두 잃어버린 상태이다. 이제 우리는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오직 우리 주님의 구미에 맞기 위해서, 토해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기 위해서 열심을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그 열심히 연남교회가 가득채워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 각자를 통해서 부흥되는 일에 열심을 품고 주님을 위하여 일하십시다. 그러므로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열광적인 믿음 불같은 믿음을 가지고 이 교회를 부흥시켜 나가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