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14-19





이 시간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난 한 주간에도 세상일에 바쁘게 쫒기며 살다가 다시금 주님앞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런 바쁜 생활의 연속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령이 강팍해지고 마습?자꾸만 굳어져 감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마음의 문을 여십시오. 그리고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아멘\"으로 받고 \"순종하겠나이다\"고 고백하십시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바로 주님을 진심으로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주님을 마음에 모신자를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주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대로 문 밖에 세워 두고만 있었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학문명이 이루워 놓은 풍요한 세상입니다. 각종 문명의 이기들이 우리를 얼마나 편리하게 해 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바로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하고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착각입니다.

오늘날 과학문명이 풍요한 사회를 이루워 놓았지만 그 문명 뒤에는 엄청난 후유증을 앓고 많은 인류가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물질 문명은 육신을 편리하게 해 주었지만 반면에 현대인들은 영적으로 더욱 무지해져만 가고 있고 하나님을 아는 정신이 점점 더 희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성도들 조차도 풍요한 생활에 젖어 살다 보니까 간절한 모습이 없고, 한 발은 교회에 올려 놓고 또 한 발은 세상에 올려놓고 적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막 쩌낸 찐빵\"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의 저자는 자신의 삶의 체험담을 일기 형식으로 저술하였는데 그 중 한 대목을 보니까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구기터널 옆 계곡에서 또 보신탕에 소주 한 잔 ...... 참 이상한 일이다. 하필 교회가기 전 날인 토요일이면 술 먹을 일이 발생한다. 아무래도 나는 평생 시험받으며 살 팔자인 모양인가 보다, 술도 좋고 찬송도 좋으니 이걸 어쩌나.....\" 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자의 개인 신앙에 대해서 평할 수는 없지만 오늘의 현대인들의 신앙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오늘 봉독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라오디게아 도시는 로마시대의 상업과 경제의 도시로 물질이 부요한 곳이었습니다.

바로 이곳에 골로세 사람인 에바브라디도에 의해서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물질이 풍부한 도시에 세워진 이 교회는 부요한 교회요, 자기만족과 안일에 빠진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 무엇하나 잘하는 것이 없었고 육신이 누리는 부요만을 자랑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영적으로는 가난하고 빈털털이처럼 주님앞에 내어 놀 것이 없는 빈곤한 교회 였습니다. 그 영적 빈곤상태는 역겨울 만큼 미지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교회를 보시고 \"토하여 내치리라\"고 엄히 꾸짖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교회의 책임자로서 매우 두려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주님이 토하여 내버리시면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다만 밖에서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뿐입니다.

주님은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차든지 더웁든지란 무슨 뜻입니까? 이 말씀은 우리의 영적생활이 분명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음료수도 미지근 한 것보다는 차거우려면 차든지 더우려면 더웁든지 분명해야 좋듯이 우리의 신앙의 모습도 마찬가지로 성도인지 불신자인지 분간 할 수 없는 신앙의 모습이라면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안타깝게도 이런 어중간한 신앙인의 모습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름만 성도가 되서는 안 됩니다. 표면적인 성도에서 머물지 말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고 믿음으로 사는 이면적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표면적 성도는 결코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주님은 바리세인들의 외식적인 신앙을 아주 실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 더웁다고 하는 것은 열심있는 성도를 말합니다. 교회에는 활동적이고 뜨거운 열심있는 성도가 많아야 합니다. 예배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주님의 일에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봉사는 성도가 교회에는 많아야 합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분도 있고 자신도 어려우면서도 남을 도와주는 그런 성도를 뜨거운 성도라고 합니다.

반면에 교회 안에는 아주 지성적이고 차가운 분들도 있습니다. 차갑다는 말은 정적인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이런 분들은 교회 안에서 그다지 활동적이지는 않으나 교회에 문제가 생길 때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냉정한 분별력으로 교회의 안정을 도모하는 그런 역할들을 잘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시원하게 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는 뜨겁든지 차겁든지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다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뜻뜻 미지근한 성도들 뿐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미지근한 성도를 원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성도는 주님의 나라 확장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그만 시험에도 넘어지고 또 고난과 시련이 오면 언제라도 주님을 떠나 버리기 때문입니다. 또 믿다가 손해가 오고 유익이 없으면 언제든지 돌아 설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두 번째 문제는 이 교회의 성도들이 영적으로 너무 무지한 것입니다. \"알지 못하도다\" 하신 말씀처럼 영적으로 가난하고 가련하고 곤고하였음에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다만 물질의 풍요함만을 보고 부족함이 없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교회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의 모든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들의 문제점과 그들의 잘못된 부분과 그들의 불신앙의 모습들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나쁜 점만 아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장점과 칭찬할 만 한 것과, 또 어렵고 힘든 중에도 수고한 것을 다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주의 일 하다가 실망하거나 낙심치 마시기를 바랍니다.

다행히 주님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다시금 충성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고 촉구 하셨습니다.

\"잃었던 신앙\" \"나태한 신앙\" \"앉은뱅이의 신앙을 버리고 일어서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다시금 회복하고 일어서는 자에게 축복의 만찬의 자리에 참예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주시는 말씀을 내게 향하신 주님의 음성으로 들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나태한 신앙을 어떻게 회복할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세가지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케하라(18)

불로 연단한 금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든든한 믿음을 나타내 줍니다.

대부분 세상 사람들은 돈많이 벌고 물질이 부요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믿음이 부요한 자를 찾으십니다. 그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만한 믿음을 이스라엘에서 보지 못하였노라\"고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자신들의 물질의 부요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하고 이만하면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모습은 가난하고 곤고하고 벌거벗은 형편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재물만을 의지하고서는 결코 평안이 없습니다. 재물이 어느 정도는 유익을 주어도 재물이 우리를 구원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 때문에 세상을 살면서 주님을 잃어 버린다면 인생 전체를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값없이 거져 주셨지만 오늘 우리에게 있어야 할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거져 생기는 것이 아니라 간절히 사모하고 애쓰고 수고하는 희생의 대가를 지불해야만 합니다. 그저 시간이 되는데로 가면 가고 오면 오고 하는 부담없이 믿는 신앙은 언제나 발전이 없고 제자리에 멈춘 앉은뱅이 신앙의 모습 뿐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왜 우리의 신앙이 이렇게 나약하고 무기력해 졌습니까?

바로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한 심령과 땀흘리는 수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희생과 수고와 봉사가 없는 신앙은 아직 미숙한 신앙입니다.

여기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물질의 부요만을 위하여 하나님을 찾았을 뿐이요 이웃과 타인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가난하고 빈곤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금은 불에 들어갈수록 순금이 됩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도 때로는 시련을 통과하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놓고 몸부림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믿음이 자라고 성숙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보다 더 튼튼하게 자라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함이 있어야 합니다. 말씀에 부요한 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금은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불 가운데서도 타 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금같은 모습이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한결같은 신앙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성도의 모습에서 많이 실망하는 부분은 너무도 쉽게 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 분이심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2. 흰옷을 사서 입으라(18)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옷을 입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허영심이 지나쳐서 옷로비사건처럼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로서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습니까? 오늘 주님은 허영의 옷을 입지 말고 영의 신령한 흰 옷을 사서 입으라 말씀하셨습니다. 흰 옷은 의의 옷이요, 성결의 옷입니다. 하늘의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입고 갈 정결한 예복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육신의 수치는 가릴 줄 알면서도 영적 수치는 가릴 줄 모릅니다.

주님이 값주고 사신 교회를 온통 어지럽히고도 조금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고 태연하게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문둥병을 가장 무서워했습니다. 문둥병자들은 감각이 무디어져서 자기 몸이 썩어져 가고 손가락, 발가락이 다 떨어져 나가도 통증을 모릅니다. 이처럼 영적 감각이 무딘 사람들도 많은 시련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어디에서 잘 못된줄도 모르고 전혀 깨닫지 못하다가 끝내 실패를 당하고 맙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주님께서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지금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노크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흰옷은 바로 의의 옷이니 곧 의로우신 예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모두 예수로만 옷 입어야 합니다. 예수로 옷 입은 자는 구별된 자입니다. 거룩한자요, 성결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결하고 깨끗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만으로는 성결해 질 수 없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죄를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아야 하고 또한 보혜사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구하여야 합니다.

이제 주님으로 말미암아 흰옷을 입은 자들은 그 옷을 더럽히지 않도록 날마다 매순간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죄악을 회개하며 육체의 정욕을 피하며 살도록 해야합니다.

흰옷 입은 자만이 주님과 영원히 동행할 수 있습니다.

3.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

왜 안약을 사서 발라야 합니까? 바로 눈이 어두워 졌기 때문입니다. 세상 물질에, 세상 정욕에, 명예와, 이기심에 눈이 어두워 졌습니다. 어두워진 눈에는 세상의 썩어 없어질 것들 만 보게 되고 그것이 제일인 것 처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이 밝아지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무가치하게 보여지고 무가치하게 여겨졌던 하늘의 모든 신령한 것들이 어찌나 귀하게 보여지는지 모릅니다.

성도 여러분! 영생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기업을 바라보는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사명을 확신하고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깨닫는 눈이 열려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주님의 교회의 승리로운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열려져야 하겠습니다. 고난과 시련중에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끝까지 인내하는 눈이 열려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땅에 있는 모든 것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질 것들 뿐입니다. 영원한 것은 이 땅위에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의 번영과 호화로움에 눈이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가롯유다가 넘어갔고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탐심을 부리다가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높은 권력이나 명예도 세월이 지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제 오늘의 \"풍요한 사회\"속에서 좀 먹어가는 우리들의 가련한 영혼의 실상을 밝히 깨닫고 영혼의 부요함을 다시금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영적 가난은 우리 주님으로부터 토하여 내침을 받고야 말 것입니다. 영적 무지와 가난을 회복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굳건한 믿음의 금을 사고 성결의 흰옷을 사서 입고 영안을 밝히는 신령한 안약을 사서 발라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의 미지근하고 나태한 신앙을 회개하고 다시금 주님을 향해 우리의 닫혔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하겠습니다.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과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시는 축복의 약속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