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다 혹 죽을까 하노니

회개하다 혹 죽을까 하노니
민14:39-45





혹 오늘 제목을 보시고서 조금 의아해 하시거나 실망스러워 하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죽을 자라도 회개하면 당연히 사는 줄로 아는데 왜 오늘 제목이 회개하다가 혹 죽을까 하노니 라는 제목일까 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동안 새해 첫 주부터 여러분께서 받으실 복을 위하여 주의 말씀으로 축복을 계속해 왔습니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전하여 드렸습니다마는 오늘 하루쯤은 또 앞으로 몇 주간쯤은 이제는 우리 자신들의 유익보다는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의 유익을 위한 면도 생각해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우리의 하나님을 진정 바로 아는 것이 당장은 들을 때 좀 섭하고 내가 조금 아쉬운 것 같아도 결국은 승리하는 길이 되리라 생각해서 오늘「회개하다 혹 죽을까 하노니」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게 됩니다.





본문 39절에 모세가 이 말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매 백성이 크게 슬퍼하여 일찍이 산으로 올라가면서 \"보소서. 우리가 하나님의 허락하신 곳으로 가리니 우리가 참으로 범죄하였나이다.\" 하고서 40절까지 회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의 말을 듣자마자 이스라엘 백성의 일부이기는 합니다마는 크게 자기들의 행한 일들에 대하여 슬퍼하면서 전에는 가지 않겠다고 하던 그 산으로 또한 이제 올라갑니다. 올라가면서 하는 말이 \"보소서. 이제 하나님이 허락하신 곳, 하나님이 가라 명하신 그 곳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나안입니다) 이 가나안을 향하여 우리가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또 지금 이전에 했던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범죄 한 것이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쯤 하면 우리가 말하는 거의 완벽한 회개가 아니겠는가, 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들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서 41절 이하에서 어떻게 말했는가 하면 \"너희의 이렇게 회개하는 행동 때문에 너희가 이렇게 하므로써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럼으로써 너희는 형통치 못하리라. 오히려 너희 가는 그 길에서 패망하고 말 것이라.\"

너희들의 이런 행동은, 즉 지금 자기들의 했던 일에 대하여 슬퍼하고 \"우리가 죄를 지었습니다. 범죄했습니다. 이제 가지 않던 곳으로 돌이켜 이제 갑니다. 보시옵소서.\" 하면서 올라가고 있는 이 회개의 행위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의문스러운 말이 아닙니까?

또 이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다 라고 말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을 여기고 하나님을 배반했으므로 하나님은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러므로 너희는 가는 이 길에서 패망하고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라고 모세가 말하였더니 과연 하나님께서 그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신당하신 것처럼 여기시고 또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백성으로 여기사 그들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가는 길에서 미리 진치고 있던 사람들에 의해서 패망했다는 사실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혹 여러분께서 갖고 계신 이 회개에 대한 상식으로서, 회개하면 반드시 용서받는다는 논리에 입각해서 생각해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처럼 슬퍼하면서 \"우리가 범죄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가 딴 길로 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 길로 갑니다.\"라고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돌이켜서 가고 있는 이러한 행위 중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지 않았겠는가?

회개에 하자가 있지 않겠는가? 순서가 틀렸다든지 아니면 진실하지 못했다든지 방법이 틀렸다든지 뭔가 이랬기 때문에 이들이 이렇게 함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지 못하고 죽었지, 회개를 하였는데 제대로 하였으면 왜 이 사람들이 패망했겠느냐? 왜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았겠느냐? 이런 생각을 한 번 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이 본문을 통해서, 그건 그렇지 않다 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렇게 하는 일에 대하여 회개의 방법이 틀렸다 라고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세는 너희가 모처럼 아주 진실하고 아주 진지하고 아주 진심으로 돌이켜 가나안 길을 향하여 가는구나. 너희가 비로소 처음으로 진실하게 죄인임을 고백하는구나. 그리고 너희가 진정으로 가식이 아닌 진정으로 너희가 슬퍼하고 있구나. 그러나 너희의 그렇게 하는 그 행위가(순서가 틀렸다든지 부정지하다든지 그런 지적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그렇게 진실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철저하게 더욱 배신하는 것이고 그리고 너희는 진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41절과 43절에.

모세가 지적한 것은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혹은 진지하지 못한다거나 회개의 순서가 틀렸다거나 그런 것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돌이켜 가나안을 향하여 올라가고 있으므로, 그리고 너희가 슬피 울고 있으므로, 그리고 너희가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으므로 (그러하니 우리가 볼 때 그런 행위는 회개지요. 그리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지요) 너희의 그런 행동 때문에 너희는 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행동은 순서에 틀렸다 진실하지 못하다 그런 지적이 아닙니다. 너희의 그런 행동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적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의 상황을 잘 들어보십시오.



그러면 백성은 모세가 고한 어떤 말에 이처럼한 행동을 했던가 그것입니다. 39절 본문에 시작되기를 \"모세의 이 말을 듣고\"라고 했으니 이 말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 앞에 내용을 보면 이 사람들이 정직했는가 아니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앞에 내용이 14장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마는 제가 읽은 대로 요약하여 말씀을 드린다면 이런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가라 명하신 가나안을 향하여 가다가 가나안 땅이 어떤가 열두 두령이 정탐을 했습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요. 열 둘 중에 열 사람이 정탐한 땅에 대하여 사실과는 다르게 악평을 했고 이 악평을 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고 가라 명하신 그곳으로 가지 않겠다고 법석을 떨었습니다.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끌어내어 죽인다 라고 하면서 \"돌아가자. 우리는 애굽으로!\" 그랬습니다. 나왔던 곳으로 다시 가겠다 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저들에게 일러준 말은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너희에게 악평하게 만들었던 그 열 정탐꾼은 너희가 보지 못했지만 저 악평하던 그곳에서 하나님이 재앙을 내려 바로 다 죽였느니라. 그들은 이미 죽었다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곳으로 가자 했기 때문에 생존하고 있느니라. 악평에 동참한 너희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다 했느냐 내가 너희 너희에게 이르노라. 하나님이 너희에 대하여, 악평에 동조한 너희에 대하여 어떤 처분을 내리셨는지를 내가 너희에게 고하노라.

그 내용이 바로 그것입니다. \"너희는 가나안으로도 이제 가지 못할 것이요, 너희가 돌아가겠다 하나 애굽 땅으로도 가지 못할 것이요, 내가 너희에게 명하노니 너희는 지금부터 길을 돌이켜 홍해로 올라가서 홍해에서 다시금 광야에로 들어가라. (이 광야라면 사막입니다. 씨를 뿌려도 싹이 나지 아니하고 물도 없고 집을 지을 수도 없고 그런 사막입니다) 그리로 들어가서 살아서는 나오지 못할지니라라고 하였느니라.\" 그랬습니다. 참 기가 막힌 명령입니다.

\"너희가 가나안 가기를 거부하였으니 가나안은 물론 가지 못할 것이고, 너희가 애굽으로 도로 돌아가겠다 라고 말했지만 나는 너희를 애굽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하지 않겠노라. 너희에게 명하노니 너희는 사막 곧 광야에로 들어갈 것이요 너희가 죽기까지 거기에서 머물 것이니라.\"라는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여 주었던 것입니다.



이 기가 막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이 이스라엘 자손 중에 일부가 이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니 아주 복잡해집니다. 악평하던 열 정탐꾼이 금방 저 앞에 하나님 앞에 나갔다가 재앙으로 다 죽었다지요. 바로 앞에 있는 내용입니다.

또 악평에 동참한 자기들도 저 사막에 들어가서 죽어서 거기서 묻혀야지 살아서 나오지 못한다 라고 했으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사막에 가서 평생 살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사막에 물이 있는가 농사를 할 수 있는가. 우리가 애굽에서 갖고 나온 이 양식이 떨어지면 우리는 사막에 들어가서 며칠 버티다가 다 죽는단 말이냐. 기가 막힙니다.

거기다 또 더욱 충격스러운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은 생존했느니라 그랬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생존했느니라 라고 하니까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고 바로 그 죽음과 생명을 저희들 앞에서 바로 경험하게 되면서 자기들이 갈 곳에 대하여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들으니 기가 막혀서 슬퍼합니다.

이렇게 슬퍼하는 것이 가식이겠습니까? 이건 보통 상황이 아닙니다, 실제 상황입니다 그들의 실제상황. 그래서 그들이 진심으로 슬퍼하면서 \"범죄했습니다. 우리가 가나안으로 가지 아니하고 악평에 대하여 동조했고 그리고 우리가 떠나 나온, 하나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이끌어 내어주신 그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겠다 라고 했으니 크게 범죄 하였나이다.\" 하면서 고백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그 고백만 하고 눈물만 흘리고 회개만 했다고 자기들은 다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자마자 \"갑시다 갑시다. 우리는 가나안을 향하여 갑시다. 우리 안 가겠다고 한 그곳을 향하여 갑시다.\" 하고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이미 가나안 방향의 한 산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겁니다. \"보소서. 우리가 하나님이 허락한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고서 하나님 앞에 보였다 그겁니다



이 상황 속에서 이 사람들의 이런 행동이나 이 말과 이 마음이 어떻게 거짓이 있겠습니까? 가식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아주 절박한 이런 상황이지요. 그야말로 이들의 이 행동이야말로 마음이든지 그들의 입의 말이든지 행동 그것이, 회개에 무엇이 부족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정확한 회개라고 볼 수 있겠지요.

이쯤 들으신 여러분께서 \"아니 목사의 말대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기들의 지은 죄에 대하여 죄인임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슬퍼하면서 하나님 가라는 곳, 전에는 아니가고 되돌아가려고 했으나 이제는 다시 하나님 뜻대로 가겠소이다 하고서 이미 발길 옮겼으니 이쯤까지 진심으로 회개를 하였다면 과연, 목사가 주장하는 대로 진심한 회개라면 왜 그들이 가다가 다 죽었단 말인가? 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행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런 의문을 가질 만큼 오늘날 우리는 회개의 위력이 대단한 줄 생각합니다. 우리가 회개만 진심으로 제대로 규격대로 했다면 이길 장사도 없고 이길 하나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회개보다 크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는 이들의 이 행동에 대하여 더군다나 정직하고 더 절박하게 부르짖는 이 이들의 회개하는 행동에 대하여 \"어떻게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느냐. 가지 말라.\" 했어요. 가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아니요 우리는 갑니다.\" 하고서 올라가 버렸어요. 가지 말라 하나 저들은 이미 올라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너희는 하나님을 철저히 배반하고 있도다.



왜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다 라고 했습니까? 조금 전에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가나안으로 가지 말라 였습니다. 애굽으로도 가지 말라 였습니다. 어디로 가라고 명령했느냐? 광야에로 들어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본장 민수기 14장 12절에 나타나 있습니다마는 정탐꾼들의 악평을 듣고서 온 백성이 그저 훤화하면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강림하시사 저들의 하는 행동을 보고 모세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동안 애굽 안에서 여러 이적들로 저희를 이곳까지 인도했고 그 큰 홍해까지 갈라서 옷 하나 젖지 아니하고 나오도록 했거늘 불과 며칠이 지났다고 나를 이처럼 원망하고 이처럼 불신하느냐. 그러므로 내가 하늘로서 전염병을 내려서 이들을 이 현장에서 다 몰살하리라. 그 바란 광야에서 장탐 하였던 곳에서 다 몰살시키리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저들을 한꺼번에 다 죽이시겠다고 본장 12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 뒤에 모세가 간구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오나 하나님께서 그리하시면 하나님을 모르는 저 이방족속들과 나라들이 하나님을 뭐라고 하겠나이까. 하나님이 힘이 한참 넘치는 듯하여 바로를 누르고 바로를 이기고 자기 백성을 이끌어 나가더니 가다가 이제 힘이 쇠진하여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을 먹일 능력도 없고 이끌어갈 능력도 없고 앞에 부닥치는 산이며 계곡이며 그런 여러 가지 어려운 지경을 통과시킬 수 있는 그런 능력이 다 소멸되어버려서 이 현장에서 다 죽였다 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내막도 모르고 저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우니 하나님 그리 마시옵시고 다 하나님의 뜻대로 벌하실지라도 광야에로 들어가서 저들 수명까지 살다가 그 벌을 받아 죽게 하시면 어떻겠나이까.\" 하고 모세가 구하였던 것이지요.

그때 모세의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참으로 네가 내 영광을 위하여 그리하니 네 말대로 하리라. 그러나 저들을 살려놓지는 않겠노라. 지금 당장 죽이지는 않겠지만 저 광야 사막으로 몰아넣어서 저들이 죽는 날까지 내가 지켜보면서 저 사막에서 아무도 나오지 못하게 하리라.\" 하고서 당장 죽어 마땅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약간의 벌을 감하여서 이제 사막에 들어가서 그나마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도록 명령하신 것이 바로 직전 명령이었습니다.



맨 처음 저들 조상에게 허락하였던 곳은 어디입니까?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범죄한 후에 당장 죽이려다가 이제 다시금 내린 명령은 무엇입니까? 당장 죽이는 것을 조금 감하여 모세의 기도를 듣고 사막으로 들어가서 명대로 살아라 라는 것이 바로 직전명령이었습니다.

이 명령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싫었던 것입니다. 사막에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산다는 것은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만도 못하고, 더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못가니 이것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이같은 모세의 말을 듣자마자 너무도 갈등이 심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었으면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사는 것인데 악평을 하던 자는 이미 죽었다네. 우리는 지금 살았지만 사막으로 쫓겨 들어가니 명대로 살게 해 주시겠다 말씀은 하지만 우리의 명이 며칠 가겠는가? 먹을 것이 있겠는가 마실것이 있겠는가 입을 것이 있겠는가?

이래서 이들은 자기들의 형편을 생각하니 너무나 처절해서 슬피 울면서 \"주여 회개합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눈물을 보시옵소서. 그리고 이제 우리는 가나안을 향하여 갑니다. 벌써 한 산꼭대기에 올라왔나이다.\" 이렇게 했던 것이지요.

이들의 이러한 행동은, 가나안으로 가겠다 라고 가나안 방향의 산꼭대기 이미 올라온 행동은 모세가 볼 때에는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명령하신 하나님의 기분이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그분의 마음이야 풀리든지 말든지 상관할 것 없고 내가 나쁜 것이면 포기하고 좋은 곳이면 간다.

전에는 내가 가나안 땅 가는 것이 나에게는 손해인 줄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내가 애굽으로 돌아가리라 했지만 이제 보니 애굽으로 가기는 틀렸구나. 가다가 죽겠구나. 그 다음에 갈 수 있는 곳은 광야, 그러면 광야에 가서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죽겠구나. 그러면 이제 알고 보니까 참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로다. 그리로 가겠소이다 하고서 갔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명령하신 분의 체면이야 살든지 죽든지 상관할 것 없고, 내가 싫으면 내게 손해 되면 말고 내게 좋으면 그냥 가는 겁니다.



오늘날 회개하는 사람이 이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회개를 혹 하지 않습니까? 내게 좋은 일이면 할렐루야 감사하면서 찬양하면서 가다가 내게 싫으면 막 돌아서버리는 이런 식의 회개를 혹 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회개야말로 하나님의 권위 같은 것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들의 유익만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회개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진심으로 회개하면, 그리고 돌이켜 하나님 본래 가라던 대로 가게 되면 회개를 이길 장사 있겠는가? 하나님인들 우리의 회개를 이기겠는가? 이 백성들이 한 행동을 보면 아주 놀랍습니다. 슬퍼합니다. 회개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자 회개했으니 되었다. 가자. 올라가자. 회개했는데 무슨 탈이 있으랴. 회개를 누가 이긴단 말인가. 회개했는데 용서 안 해줄 장사가 있단 말인가. 회개했으니 올라가자 해서 이미 가나안 행의 가나안 방향의 산에 올라가고 있었더라 그겁니다. 이 사람들은 이처럼 회개하면 하나님이 꼼짝하지 못할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신앙태도라면 여러분, 이렇게 회개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면 그들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입니까, 아니면 자기 중심입니까? 자기 중심이라 판단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도, 죄 지은 하나님 앞에 나가면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해결해보려고 하지 않고 내 중심으로 모두 풀고 있는 겁니다.

회개야말로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으면 마음이 풀려도 하나님이 풀려야 하는 것이지, 회개는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이다 해서 내 마음으로 뉘우치고 후회하고 눈물 흘리고 그리고 돌이켜 내가 행동하면 \"할렐루야 내가 회개했는데 누가 나의 길을 막아. 누가 나의 용서됨을 저지하랴. 누가 나의 죄 없이함 받을 것을 인정하지 않으랴. 내가 죄 없이 함 받았으니 이처럼 회개하고 천국 말고 다른 것이 있겠는가?\"

회개하는 사람이 자기의 회개를 하나님 앞에서 죄 지은 사람이 자기의 회개를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겼다 그겁니다. 하나님은 회개만 나타나면 꼼짝하지 못하고 \"어 회개로구나. 어 회개님. 예 예. 예 예.\" 하나님을 그렇게 하도록 만들려는 이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그겁니다. 이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그야말로 자기 중심이었던 것이지요.



참 회개는 내가 주님 앞에 죄를 지었으면 주님의 상한 마음과 노한 그 분노를 풀어드려서 주님의 마음이 풀리도록 내가 회개를 해야지 \"내가 죄를 짓고 보니 실패의 현장으로 가겠구나. 죄를 짓고 보니 저주를 받겠구나. 어 저주는 싫어. 실패는 싫어. 사막은 싫어. 그러면 내가 이렇게 이렇게 행동하고 용서받고 죄 없이함 받았으니 가나안으로 가리라.\" 하고 바로 갈 것처럼 이 회개를 대단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오나가나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면 된다 회개하면 된다. 회개하면 된다 라고 하지만 회개해도 안 될 수 있어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위에 회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저는 증거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회개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풀리도록 관심을 두어야지, 회개하고서 내가 자유를 얻고 내가 용서받아서 내가 어떻게 좋은 데로 가보겠다는 나의 유익을 위하여 회개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참 회개가 될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 지었으면 죄는 내가 짓고 분노는 누가 하신 것입니까? 손해는 누가 보십니까? 당한 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당하신 분의 마음이 풀려야지, 용서받기 받기 위하여 회개를 시작한다면 그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내 중심이지요.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져서 하나님께서 평안을 유지하도록 내가 무엇인가를 하나님 앞에 해 드려서 하나님이 마음 평안히 되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해버리셨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하여 이제는 속상해 하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대한 감정이 다 풀리셨다면 하나님의 감정 풀린 것으로 회개가 완료되었다고 생각해야 할텐데,

오늘날 회개하는 분들의 회개하는 기도를 가만히 들어보면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이럽니다. \"용서하소서. 마음을 푸소서.\" 그리해야 될텐데 \"용서를 주십시오!\" 이건, 회개하러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 기도는 용서하실 이로 하여금 더 화가 나게 만든다 그겁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의 아버지가 자식놈 하는 것을 보고 너무 속이 상해서 이놈아 하면서 혼을 냅니다. \"너 앞으로 용돈주지 않아. 이제 내가 너희 결혼하게 되면 집이라도 한 칸 해주려고 했는데 안 줘. 이제 너희 멋대로 살아봐.\" 가만 듣고 보니까 아이고 아버지 말씀대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을 상속도 없어지고 용돈도 떨어져버렸네.

그래서 이 사람이 생각하기를 당장 살려고 하니 애굽만도 못하고 가나안만도 못하고 사막일세. 에라 그저 회개하자. 또 어머니는 옆에 가 가지고서 \"이놈아 빨리 빌어. 빨리 빌어.\" 이 비는 것은 남편 마음 편하게 해주려고 비는 것이 아니라 자식놈 용돈 못 얻을까바 \'빌어. 빌어.\" \"알았어. 알았어.\"

\"기분 나쁜데 기분 나쁜 척 하지 말고 가서 빌어. 그래야 이놈아 네가 용돈 나오고 집이라도 한 칸 얻어야지.\" \"그렇기는 그렇습니다.\" 해서 \"아버지 용서해주이소. 용서해주세요.\" 하니까 아버지가 가만 듣다보니까 용서 안 해주면 팰 것 같단 말이야.

그것은 자기를 위하여 그렇지 않아도 마음상한 아버지를 아버지의 권위 같은 것, 아버지의 명령 같은 것, 아버지의 명령이 금방, 참 군대 명령에 죽어라 하면 죽는 흉내라고 내어야 된다는데 아버지가 명령했는데 그 명령하신 아버지의 권위 같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고 당장 내게 용서를 달라는 겁니다.

진정한 회개는 용서하여 주어서 그 용서를 내가 갖는데 목적을 둔 것이 아니라 \"나를 용서하소서. 아버지 마음을 푸시옵소서.\" \"나 너 용서할 수 없어. 나가 이놈아.\" 하면 또 나갔다가 다음날 또 가서 착한 일을 하면서 아버지 시킨 대로 용돈도 안 갖고 가고 이제 이렇게 알뜰살뜰 살면서 아버지에게 뭔가 명한 대로 순종하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풀어드리려고 해야 될텐데, 하루 이틀 들어가다 보니까 잘 안되니까 \"내 아비 아니야. 내가 그만큼 했으면 용서해줘야지.\" 이렇게 떠들고 들어간다면 이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모든 행동이지 아버지를 풀어드리려는 행동이 아니다 그겁니다.



이쯤에서 하나님의 종 요나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이 요나는 하나님에게 불복했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 했는데 가기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을 가는데 하나님은 죄짓고 도망가는 요나와 동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람도 부는 것 같지 않는데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는데 중간쯤 가니까 그냥 생파도가 일어나서 배를 그냥 곧 삼키려고 한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배에 탄 사람들이 살아보겠다고 물건을 다 던지고, 아무래도 이 바다는 특별히 오늘 일기예보도 없었고 태풍이 미리부터 불어온 것도 아니고 생파도가 일어 이 배를 이렇게 삼키려고 하니 이건 하늘에 계신 신이 노하신 것이다. 아마 저 아브라함 자손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노한 것이다.

여기 하나님 앞에 죄지은 사람 있는가 해서 제비뽑자 해서 제비 한 사람 딱 엑스 표 해 가지고서 돌렸는데 아무도 안 갈렸는데 마지막에 저 밑창에 자고 있는 요나가 걸렸다 틀림없다. 이건 이렇게 하려고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겁니다.

그 사람을 불러내어 가지고서 \"요나, 당신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게 당신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 사실입니까?\" 요나가 말하기를 \"그렇소이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따라오셨는데 내 죄를 도무지 봐 넘길 수 없던 모양일세.\"



이때 이방인들은 말합니다. 이방인들의 구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러면 요나씨. 지금 하나님 앞에 회개하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해서 이 바다의 던지움을 면하시오.\" 그랬어요.

이 이방인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을 그동안에 마음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에게 도움을 줄 때 필요한 것이지 도움과 상관없다면 하나님과 관심이 없었다 그겁니다. 잘살게 해 주고 병 낫게 해 주고 부자 되게 해 준다면 어디든지 그이가 내 하나님이지 하나님 뭐 별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진노하신 하나님의 진노같은 것은 생각 안 했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의 권위와 하나님의 지금 성품, 하나님의 마음 같은 것을 헤아리지 않았습니다. 빨리 회개하고 용서를 빌어서 이 물에 던지움을 면하시오. 이방인의 간구는 오늘 이스라엘의 본문에 나타난 이들의 행동과 똑같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잘 압니다. 아니요. 하나님이 노하셨으니 나를 배 위에서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이것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날 잡아 먹으시려는 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아니하고 이리 도망가는 것이 이처럼 싫었던 모양입니다.

여기까지 따라와 가지고서 날 이처럼 까불고 있으니, 하나님의 생각은 날 용서해주려는 그런 뜻 아닙니다. 많이 큰 잘못을 했으니 그만큼 받으라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 나는 여기니까 회개니 용서니 그런 짓 하면 하나님 더 열받으시니 날 들어 바다에 던지라 했습니다.

그래도 회개해보시오. 이 사람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감정 같은 것은 관심이 없어. 나만 좋으면 그만이었다 그겁니다. 그런데 요나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날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래서 바다에 던졌습니다. 바다에 던져진 이 요나가 물 속에 들어가서 그냥 물먹고 죽을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해서 그 던져지는 배 밑에 똑같이 잠수함 가듯이 따라오게 해 가지고 그냥 삼켰다 그겁니다.

뭔가 죽어야 할텐데 살아 있는데 보니까 뜨뜻하고 어딘가 했더니 물고기 배속인데 여러분, 물고기 배속이니까 오죽하겠습니까. 물고기 배속에 분비물이 눈구멍 귓구멍 콧구멍 다 북적북적 다 들어오는데 아직도 살아있어. 그 안에 산소가 있어 가지고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살아서 정신을 가다듬어 가지고 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요나서 1장에서 그렇게 빠지고, 2장에 가 보면 이 요나가 2장 큰 물고기 배속에서 하나님 앞에 아뢴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에서 제사를 드렸고 거기서 감사를 드렸고 찬송을 불렀지만 회개는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원이라는 말이 한 단어 나오는데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거지. 하나님이 해 주면 되는 거지 누가 해 달라고 해서 되겠습니까. 그래서 철저히 자기 자신이 산 뿌리에 내려왔고 바다 뿌리에 내려와서 물고기 배속에 들어가서 물고기 분비물 속에서 그 음부와 같은 곳에서 내가 이처럼 꿀쩍거리고 있나이다 라고 하면서 자기의 그 처절한 것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아뢰었습니다.

이 사람의 아뢰는 이 아룀은 있었어도 이러니 도와주소서 말 없습니다. 회개합니다 지금이라도 구원해 주소서 말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구원 여부는 지금 내가 달라 말라 할 것이 아니고 주께 달렸을 뿐입니다. 내가 이처럼까지 험한 꼴을 당하고 있는데 이만 하면 회초리 맞을 만큼 맞은겁니까 이런 사상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는 요나를 보신 하나님께서 3장에 가자마자 그 물고기의 머리를 육지를 향하여 틀게 합니다. 그리고 배 아프게 해 가지고 토해내게 만듭니다. 육지에 툭 튀어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요나의 이런 행동이야말로 하나님이 보고자 하는, 하나님이 보시기 원하는 참 회개였다 그것입니다. 이해가 되시면 아멘 합시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으면 하나님 마음을 풀어드릴 생각을 해야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드려서 그래서 하나님의 노가 풀리도록 생각을 하고서 회개하려고 들어가야 할텐데, 죄 지었으니 애굽도 못가겠구나 가나안 땅도 못가겠구나 저 굶어죽는 사막으로 가겠구나 그래서 나는 회개하자.

여러분, 회개라는 이름의 회개를 하기 위해서 들어가려면 나보다도 누가 중요합니까? 나의 죄로 말미암아 나에게 당하신 하나님, 나 때문에 억울함을 당하신 하나님, 나 때문에 슬퍼하시는 하나님 마음 풀기 위하여 회개에 들어가야지, 그분의 명령이야 어떠하든지 말았든지 그분의 감정이야 고쳐지든지 말았든지 속이 더 상하든지 말았든지 이 죄 때문에 망하겠네 오 나 좋은 곳으로. 용서받고 복만 누리기 위해서 회개라는 제목으로 슬퍼하고 눈물 흘리고 외친다면 하나님을 더욱 배반하는 것이라고 말한 모세의 말이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요나를 죄값으로 던지시면서 그러나 던지기에 앞서서 큰 물고기를 미리 준비했습니다. 위에 배가 가고 있으면 그 밑에 잠수함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서 빠지다가 숨떨어지기 전까지 거리만큼 두고서 계속 빠질 때까지 고기를 따라가도록 미리 준비를 시켰습니다.

그래서 바다에 들어 던져지는 이 요나를 덥석 삼키게 만들었는데, 만약에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다시스로 가던 이방인들의 간구처럼 \"요나씨 회개하시오.\" \"아이고 내가 물에 빠지면 죽지. 죽어서는 안 되지. 주여 잘못했습니다. 슬퍼합니다. 내 눈물을 보시옵소서. 가짜도 아니고 참말입니다. 내가 그리고 이제는 다른 길로 가겠습니다. 여러분 선장 선장, 배를 다시스로 가지 말고 돌려주시오. 당신도 살고 니느웨로 돌려주시오. 갑니다.\" 배를 돌려 가지고 \"보소서 갑니다.\"

그렇게 해서 그 뱃전에서 이렇게 두들기면서 통곡하고 뱃머리를 돌려 가지고 니느웨쪽으로 향하여 갔다면, 하나님이 준비하셨던 물고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참 그게 궁금합니다. 물고기를 준비하신 하나님께서는 벌을 주시고 계시지만 벌주기 위하여 벌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이켜 보려고 그래서 준비하였던 겁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를 당장 죽이려고 하다가는 살려는 놓는다마는, 그러나 애굽으로도 들여보내지 아니하고 가나안으로도 가게 하지 못하고 저 사막으로 너희를 보내리라. 거기서 죽고 살아서 나오지 못할지니라.\" 하고 명령을 했지만, 명령은 그렇게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 홍해 건널 때에 네 지팡이에 주었던 그 능력으로 저들이 수명대로 사는 동안 함께 하리니 네가 그 지팡이를 들고 가라. 먹을 것이 없으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릴 것이요 물이 없으면 반석을 쳐서라도 물을 내게 할 것이니 악한 것들이 너희를 해하지 못하도록 내가 지킬 것이라.

모세에게 능력으로 저들 수명대로 살 수 있도록 약속을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 자기 택한 백성에게 벌은 내리고 있지만 미리 그들을 살려주실 것을 다 약속을 하고 지금 엄한 명령을 내렸던 겁니다.

그랬더니 명령만 내렸던 백성들은 \"이제 우리 끝났다. 하나님이 열 받으셨으니 이제 우리 들어가면 끝났다. 주여!\" 하면서 회개를 내어놓고서 \"회개하면 누가 이기랴? 내가 회개하였으니 용서받았다. 회개하였으니 가나안 땅 가도 된다.\" 이렇게 설쳐대었던 것이지요.



이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막으로 가라 명하실 때에도 명하기 전에 미리 준비한 것이 무엇이냐? 사십년동안 저들을 헐벗지 않게 하리라. 저들의 신발이 헤어지지 아니하리라. 저들이 단 한 끼도 굶주리도 아니하리라. 그리고 저들이 목말라서 목 타 죽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모든 애굽에 내린 질병은 저들에게는 내리지 아니할 것이라.

모세에게 약속을 다 해 주었습니다. 그리하고서 들어가라고 했는데, 그리고 거기에 더한 약속이 무엇입니까? 저들은 거기 들어가서 나와 함께 지내다가 죽겠지만 내 능력과 함께 일생을 살게 될 것이요, 그리고 저들의 자손은 내가 기어이 넣어주고 싶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넣어 줄 것이라.

이 엄청난 하나님의 채찍 그 밑에는 더 큰 사랑이 담겨있는데 \"용서해주소서. 내가 가나안으로 갑니다.\" 하고 도망을 가니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이지요. 모세가 볼 때에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이 백성이 이렇게 간악해졌단 말인가? 이 백성에게 하나님이 있다 라고 볼 수 있겠는가?\"

주께서 이미 버린 자라면 징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만 두어도 그는 망하기 때문입니다. 가만 두어도 제 끝날이 되면 깨끗이 망해서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질 터인데, 미리 하나님의 백성도 아닌 것에게 그 잘한다 못한다 때리러 갈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성경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히브리서 12장 6절에 보면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그랬어요. 자기 자식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책망하며 자기 자식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벌을 주겠느냐 그겁니다. 자식이 아닌 것이야 가만 두어도 스스로 망할텐데 망하는 꼴을 볼 수 없는 자니까 징계를 하고 망하는 것을 볼 수 없으니까 벌을 내린다 그겁니다.

그러면 그 명령 따라서 순종해 가면 하나님께서 예비한 복으로 주실 때 참으로 회개를 받아드릴텐데, 오늘 본문에 나타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중심이었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그 이방인들은 하나님 관심 없습니다. 요나와 자기들이 살면 그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요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 지었고, 하나님이 이 벌을 내게 주시려고 작정하셨으니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 이루어져야지, 하늘에서의 뜻은 내가 물에 던져지는 것인데 내가 여기서 회개하고 돌아서려고 한다면 뜻 세우신 하나님을 뭐로 본단 말인가. 너희는 그렇게 할 수 있어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저 광야에로 들어가라 거기서 죽어라 라고 명령했으면 하늘에서 세워지신 뜻이니 땅에서 그대로 이루어져야 할텐데, 뜻 세우신 하나님이야 이렇든 저렇든 판결하신 하나님이야 이렇든 저렇든 나는 상관할 것 없습니다. 그 판결은 내게 힘이 드니 난 돌아서서 갑니다. 회개합니다. 회개했으니 하나님 꼼짝없이 내 회개 때문에 그냥 가도록 내버려두십시오. 이게 가능하다면 되겠습니까?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그는 성경이 소개하는 대로 처음부터 마귀가 그와 함께 한 자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향하여 평가하신 내용을 보면 \"저 사람은 차라리 이 세상에 나지 아니하면 좋을 뻔했다. 나와 상관없는 자다.\" 했습니다.

이 상관없는 가룟 유다였기 때문에 그가 범죄를 하겠는데도 주님을 파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는데도 다른 제자들에게처럼 하지 않습니다. 하지 말라 하지 말라 뜯어말리지 않습니다. \"네가 그같은 행위를 하면 네가 어떻게 되느냐? 이처럼 망한다.\"라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떡을 넣어주는 네가 나를 팔 자라. 나와 함께 대야에 손을 씻는 네가 나를 팔 자라.\"

그쯤 되었으면 예수님께서 그놈의 가롯유다 그냥 떡을 받아먹는 자 뺨을 때리면서 \"이놈의 자식, 내가 이렇게 말하는데도 넙죽 넙죽 받아먹어?\" 그냥 이빨 몇 개 부러지더라도 찰싹 때리고 \"이놈 나가면 큰 일 저지른다. 베드로야 요한아 안드레 밧줄 갖다가 이놈을 꽁꽁 묶어라.\" 죄짓지 못하게 해야 할텐데 망하지 못하게 해야 할텐데 이 사람은 주님과 상관이 없었습니다. 네 일을 속히 하라 그랬어요. 네 하고자 하는 일을 속히 하라.



여러분, 주께서 우리에게 책망하지 아니하시고 징계하지 않으시며 잘못했어도 벌 내리지 아니하면 참 좋을 것 같습니까? 가룟 유다처럼 죄에 대하여 자유하도록 주님께서 간섭하지 아니하시면 그 자가 바로 망한 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징계를 받는 것은 내가 그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채찍을 맞는 것은 그의 받으신 아들이기 때문에 절 채찍 하는 것이지 관심 없는 자라면 하고 싶은 일 속히 하라. 차라리 나지 아니함만 못하다는 말도 본인이 직접 들으면 뭔가 충격을 받을까 하여 저가 나간 후에 다른 제자들과 더불어 한 말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주님을 부인할 그런 형편이 될 때 그러나 닭이 울 때 내가 한 말이 생각나리라 하면서 모두 얘기를 해 주었어요. 그러나 가룟 유다는 자유했습니다. 그가 큰 죄를 저지른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스스로 그 죄에 대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대단했습니다.

받았던 은을 그 주었던 제사장들에게 갖다 주려고 하니 \"그 돈은 피 값이라. 우리가 안 받겠다.\"하니 \"나는 기어이 주어야 합니다.\" \"기어이 못 받는다.\" 하니까 받았던 은전을 성소에 던져놓고 도망을 나옵니다. 그리고 저 재판장 빌라도가 재판하는 판정에 가서 예수님이 정죄되니까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소. 예수님은 죄가 없소.\" 제자들은 오히려 겁이 나서 못 가는데 이 사람은 당당하게 나가서 목숨걸고 외쳤습니다. 대단한 일 아닙니까?

그뿐입니까?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도 않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후회했습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뒹굴었습니다. 밭에 가서 뒹굴고 뒹굴다가 벅구를 넘다가 배가 터져서 창자가 흘러나와서 죽었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죽은 밭이 피밭입니다. 누가 피를 흘리게 해서 피가 된 게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얼마나 가슴을 치고 회개했던지, 철저한 후회를 하고 철저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우리는 멸망한 자의 대표자로 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러 어떤 분들은 말하기를 가룟 유다가 자살만 안 했으면 될텐데, 가룟 유다가 성경을 보니까 후회했다 라고 하는데 후회를 하지 말고 회개를 하지.

여러분, 따져서 후회와 회개가 뭐가 다릅니까? 뉘우쳐 후회하여 돌이키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까? 그렇게 지적하는 지적은 어디다 근거를 둔 것입니까? 회개를 규격대로 했으면, 용서 못받을 수가 없다 그겁니다. 회개를 규격대로 했으면 하나님도 용서 안 하고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저는 가룟 유다가 회개를 규격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그건 모르지만 이렇게 철저히 하나님 나라를 망가뜨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내어 팔은 이 큰 범죄를 한 사람이 회개를 바로 해 가지고서 용서된다면, 규격에 맞았기 때문에 용서되어 천당에 가 올라가 있다면 참 저도 천당 가는데 다시 생각해 보아야 안 되겠습니까?

여러분, 그의 회개가 규격에 맞든지 안 맞든지 하나님께서는 그를 돌보지 아니했으니 그를 돌아보지 아니한 하나님의 위대를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은 가룟 유다보다 큽니다. 가룟 유다의 회개보다 큽니다.

회개가 규격대로 된다면 하나님은 꼼짝없이 아무리 미운 하나님 나라를 망친 가룟 유다라도 천국에 보내야 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회개하는 회개에 대하여 천국이나 올려 보내주는 천국문을 따주어야만 되는 그런 회개보의 회개의 종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올바로 회개를 했는지 규격대로 회개를 못했기 때문에 죽었느니 이런 말씀들을 합니다마는 제가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큰 죄를 지은 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나라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멸망당하게 했다면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권위가 절대적이기에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할렐루야!



진실로 주일마다 교회에 나아오니 목사가 강단에 서서 주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책망하고 있습니까? 집에 들어가니 매일 매일마다 여러분 가족 중에서 잘 믿는 사람이 \"여보 그것 하지 말아. 여보 그런 사업을 하지 말아 그건 죄야, 여보 오늘 놀러가는 것 안 돼. 골프치러 가는 것 안 돼. 오늘 주일이야.\"

날마다 간섭하는 것, 이제는 간섭하다 듣다 듣다보니 그저 가족도 뿌리치고 목사의 말도 뿌리치고 주일날 안 할 것 하기 위해서 예배를 안 드리고 나가서 한 잔하고 또 주일날 엉뚱한 짓 하고 있는데, 아니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내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나를 책망해.

\"이 사람아 이 사람아. 네가 세례 받은 지 언제냐. 네가 그 교회 집사이냐. 지금 시간이 몇 시냐. 하나님 앞에 성전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네가 여기서 지금 옆에 누굴 끼고 앉았느냐?\" 양심이 쿵덕쿵덕 이렇게 책망을 한다 그겁니다.

여러분, 양심의 공격을 받고 목사의 설교에 공격을 받고 잘 믿는 가족의 공격을 받으면 그 공격은 주께서 그들을 천사로 사용하여 여러분을 징계하고 따지고 여러분에게 벌받는다 망한다 라고 자꾸만 말하고 있으니 여러분은 하나님에게 사생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자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택한, 받아들인 아들이 아니면 무엇 때문에 징계를 하며 무엇 때문에 채찍 하겠느뇨 그랬습니다. 미리 가룟 유다처럼 되어버린 관계라면, 미리 하나님이 택하지 아니한 저 애굽나라같이 되어 버렸다면 무엇 때문에 말씀을 주며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벌을 받아 망한다는 말을 하겠습니까? 애굽에 대하여 책망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애굽에 대하여 이렇게 하면 망한다 돌아서라 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미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책망을 받거든, 혹 죄를 짓고 벌을 받거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사 내 죽을 때까지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질 때까지 그냥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로처럼 애굽처럼 가룟 유다처럼 그냥 버려놓지 아니하시고 나더러 깨닫게 하라고 이 벌을 내리시니, 죄 지은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요나가 생각했던 것처럼 내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짓고 다시스로 가고 있는데 하나님은 죄 안 지은 동네에 있지 아니하시고 죄 지어 도망하는 나와 같은 배를 타고 계시도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누가 이기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들어 던지라. 던져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던져지는 것은 내가 죽는 것이니 내가 어찌 즐겨할까마는 나의 살고 죽는 것이 중요하냐 하나님이 중요하냐? 나의 살고 죽는 것보다 하나님의 명령이 중요하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체면이 중요하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를 바다로 던지라.

험한 곳에 빠져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 영광의 하나님 찬송합니다. 당신은 한 번 마음 잡수시면 다 이루시고 뜻을 세우시면 그대로 되는 줄을 믿습니다. 보소서 세우신 뜻대로 나는 물에 빠져 죽으면 다인줄 알았더니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고 더 깊숙한 곳에 집어넣는 것이 주의 뜻이었나이다. 몇 시간이나 버티다가 죽을지 몰라도 소원 성취하셨지요?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그랬어요.

이렇게 하는 요나를 보신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죽고 사는 것을 오히려 뒤로 하고 지금 나의 권위를 하나님으로 아는도다. 나의 명령을 네 죽고 사는 것보다 더 중하게 여기는도다. 너는 참으로 회개하는 자로다. 나의 마음이 풀렸도다. 고기의 머리를 돌리리라. 육지에로 내어 뱉으리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려움이 오자마자 회개라는 도구 갖고 나가서 하나님을 회개 앞에 굴복시키려 하지 마시고, 내가 회개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풀어드리려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참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의 영광을 위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 하실지라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미 징계하고 채찍질하기 시작했다면 남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버릴 수 없는 자식이기 때문에 한다 하셨으니, 광야에로 들어가도 복이 그 밑에 깔려 있고 물에 던져져도 물고기가 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의 유익보다 더 위에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회개를 하셔야 되겠지만 회개보다 크신 이가 하나님이시니 내가 회개를 규격대로 하여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인 것처럼 죽일 수가 있고 내가 혹은 배 위에서 통곡하며 회개를 하였어도 들어주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사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시면, 그래서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하나님 중심 신앙인 줄 믿습니다. 내 중심으로 살아온 것을 회개하고 이제 이후로 하나님 중심으로 믿겠사오니, 주여 그동안 내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용서해주소서!\" 용서하는 하나님이 배나 더 배신감을 느끼고 하나님의 벌주시는 그 명령을 어기고 벌 안 받겠다 기도하는 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그래도 그때마다 내 기도에 응답해 주셨으니 하나님은 배나 세 배나 나의 회개하는 기도 인하여 슬프셨나이다. 섭하셨나이다.

주여, 오늘 주의 말씀 앞에 진심으로 회개하오니 나 같은 것 지금까지 산 것만 해도 감사하니 나의 뒷일까지 더 따지지 마옵시고 나로 말미암아 상하셨던 주의 마음을, 나로 말미암아 느끼셨던 배신감을, 나로 말미암아 내가 명령을 어길 때마다 어겼으니 당장 죽여야 할텐데 그래도 죽일 수가 없어서 또 참고 참으시다 보니 하나님 옆에 있는 천사들에게 하나님 체면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제 좀 알겠사오니 주여 용서하소서.



기도합시다.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가 살아온 것이 하나님 위주로 살았는지 내 위주로 살았는지, 하나님은 나에게 복이나 역사하는 그런 능력자로서 내가 잘살기 위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붙잡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죽든지 살든지 따라가고 있는지, 오늘 어렴풋이 발견하였사오니 용서하시옵시고 마음을 편하게 하시옵소서.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367장 찬송 하시겠습니다.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를 따라 가도다 이제부터 예수로만 나의 보배 삼겠네\"



어떤 이가 이렇게 제게 말했습니다. \"저는 예수믿어 만족합니다.\" \"예수를 왜 믿으십니까?\"라고 물었더니 \"천당 가려고요.\" 그랬어요.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답니까?\" \"아 예 천당 가려고 예수 믿었지요.\" \"그 예수님이 지금은 천당 데리고 간다는데 예수님이 주민등록증을 지옥으로 옮기셔서 예수님이 지옥에 계시다 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갸우뚱 갸우뚱 합니다. \"당신은 천당 가려고 예수를 믿었으니까 예수 때문에 천당 못가면 예수 버리겠네요. 어느 악신이라도 천당 데리고 간다면 그걸 믿겠네요?\" \"목사님은 어떤데요?\"

\"저도 처음에는 천당 가려고 믿었지만 예수님과 거룩한 정이 들고 보니 피를 나누고 보니 이제 내가 주님이 어딜 간다고 해서 떨어질 수가 있겠습니까? 지옥 가지 아니하고 천당의 주인이시니 그가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시고 천국을 창설하시고 주님을 이길 다른 신이 없기 때문에 다행이지만, 혹시 우리 주님이 그럴 형편이 아니되신다하더라도 지옥으로 우리 주님이 쫓겨가신다 하더라도 이게 내 팔자네 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게 되었고 주님을 믿어버렸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습니다.\"

그가 고개를 이래저래 흔들더니 \"목사님 내가 헛 믿었습니다. 내가 천당 가려고 주님을 이용한 것뿐이었습니다. 이제는 내 천당을 목적으로 주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니 그냥 주를 믿습니다. 주님이 내게 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좋은 것을 주신다고 되어 있으니 더욱 감사는 하지만, 이제 남이 아니시니 주님이 비록 내게 그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난 주님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주님과 같이 하면 오른편에 앉고 높은 벼슬 할 줄 알고 전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따르다가, 어느 날 인간적으로 계산해 보니 주님 따르다가는 왼편 오른편은 커녕 붙잡혀 미리 죽겠구나 싶어 모두 부인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이킨 후에 주여 이제 내가 죽든지 살든지 나의 유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떠날 수 없나이다. 이것이 진실한 신앙인 것이지요.

미련한 다섯 처녀 그들은 신랑을 기다렸습니다. 그 어찌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그 어찌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기름이 떨어졌다가 잠깐 왔습니다. 철커덕 막 문이 닫혔는데 문 두들기니 문 옆에서 주님이 듣고 있습니다. \"기름 준비하여 불을 다시 피웠습니다. 우리가 기다린 자입니다.\"

문 다시 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내가 너를 모른다 하리라.\" 그랬어요. 모르지 않습니다. 모른다 하리라 그랬습니다. 모르지 않고 알지만 주님이 모른다 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나는 우리 주님께서 믿음보다 크시고, 회개보다 크시고, 말씀하신 분이시니 말씀보다 크시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민족 간사했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이방인들 간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 요나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버렸습니다. 예수님 자기를 버렸습니다. 기도하면 응답 받는다. 무조건 응답 받는다.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는 기계쯤으로 혹 생각한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그 쓴 잔을 감당하기 어려워 민망하여 죽기 전에 미리 죽게된 심정으로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할 만하시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기도를 들으셨으나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에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에 대한 응답이 오지 아니하면 기도가 틀렸느니, 축복받는 비결이 틀렸느니. 예수 이름으로 못했느냐? 성령이 역사를 하지 아니 않았느냐? 마치 기도는 하나님을 지배하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기도보다 기도를 들으시고 듣기도 하고 말기도 하실 하나님이 더 크신 줄로 믿습니다.

아들의 기도도 응답하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로 가게 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시기에 저와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믿으십시다. 그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기뻐하십시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임하여 감화하시고 감동하시며 교통하시며 인도하심이, 진실로 하나님의 유익을 내 유익보다 위에 놓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권위를 믿음과 나의 기분보다 위에 두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자 하는 모든 성도께 함께 있을지어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