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개하는 마음과 생활문화 잠6:20-23, 빌2:4 인간관계 가운데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가정은 사랑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행복한 가정은 사회의 온상이다. 성서에는 잊을 수 없는 가족 간의 사랑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자녀들은 사랑을 받으며 세상에 태어나서 가족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애정에 감싸여서 자란다. 부모, 자녀, 자매, 형제, 부부가 서로서로 애정 어린 관심을 기울인다. 사랑은 가정최고의 아니 삶의 터전의 최고의 존재이유가 된다. 삶의 터전인 가정은 하나님이 이루어 주신 인간의 가장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공동체이다. 가정이 모여 지역사회를 이루고 지역사회는 국가를, 국가는 대륙을, 그리고 대륙들이 모인 전체가 바로 인류가 사는 지구공동체이다. 사회의 여러 공동체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작은 모임은 바로 하나님이 제정해 주신 가정이다. 이 작은 모임 안에서 각 사람들은 서로를 염려하고 일을 분담하며 인내하고 허물없이 지내며 정을 나눔으로서 각기 삶의 기초를 마련한다. 삶의 공동체로서의 가정에 대해 사회의 기반이 될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가지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들은 예절, 윤리, 도덕, 질서 등의 생활규범이다. 이것들을 가리켜 생활문화라고 한다. 생활문화 수준이 높고 그것이 잘 지켜지는 나라를 문화 선진국이라고 부른다. 한때 동방예의지국으로 부름 받던 우리나라가 문화 후진국의 징후를 보이는 것을 보면서 우려되는 바 크다. 생활문화는 가정 생활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생활 속에 살아 있는 문화이다. 가정생활은 가족에 의해서 향상되고 지역사회의 생활은 그 지역 주민에 의해서 향상된다. 생활의 향상을 이룩하면 생활문화가 건재하면서 발전한다. 행복한 가정이 모여 행복한 사회를 이룬다. 이러한 평범한 진실에 따라 생활문화의 기층을 나(개인)와 가족(가정) 그리고 가족과 주민(사회)으로 생활문화의 정신과 행동이 활발할 때 생활문화의식이 높아진다. 문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 삶을 이룩하려는 뜻에 비롯된다. 사람이 없으면 문화는 없다. 그러므로 문화는 사람의 것이다. 사람은 미래의 삶을 보다 낫게 하는 뜻을 지니고 사는 까닭이다 . 그런데 오늘의 현실 속에서 늘 보는 사실이지만 문화생활을 하면서 문화인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학식이 있고 명성이 있다 한다 할지라도 문화인 그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많아 외제차를 타고 외제 옷을 입고 행세한다 할지라도 문화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권세와 명성, 재산, 인기 등이 문화인을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 문화인의 태도는 배려하는 마음이 강하다. 나보다 먼저 남을 생각해서 행동하는 마음씨를 배려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을 존중하고 나를 살피는 겸손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문화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문화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우리 함께 더불어 산다는 큰 뜻을 실천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문화인은 베푸는 마음이 넉넉한 주인이다. 남아돌아서 베푸는 마음씨 보다 아쉬운 가운데서도 베풀 줄 하는 마음씨가 더 훈훈하고 감동적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새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귀하게 할 줄 안다. 그렇지 않고 삶을 되풀이하면서 습관에 젖어 버린 사람은 자신의 삶을 천하게 만 할 뿐이다. 삶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회개할 줄 안다. 회개는 돌이켜 보고 살펴 깨달아 새삼 알게 되는 것이다 . 이는 내가나를 새로 발견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내가나를 새로 발견하는 마음이요 행동이다. 세상은 나하기에 따라 나름으로 꽃길도 되고 가시밭길도 된다. 이 사회는 학식이 많다는 지성인이 생활문화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덕성을 갖춘 사람들이 생활문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체적으로 지성인은 자기 과신이 강하면서 이기적인 성질이 강하다. 그러나 후덕한 사람은 자기를 낮추고 세상이 두루 편안해 지기를 소망하면서 마음가짐을 갖는다. 이것이 회개의 마음이다. 회개는 삶에서 돌이키는 것이다. 회개하는 마음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죄의 길에서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는 방향전환이며 아울러 서약이다. 이 회개는 보편적인 것으로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진다. 성서에는 \"누구든지\"라는 말로 누구나 회개할 수 있으며 회개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으므로 회개가 꼭 필요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서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비록 죄가 인간에게 들어와 형상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며 삶의 목적과 운명은 여전히 하나님과 관련 맺고 돌아가는데 몇 가지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다 . 첫째는 무관심과 적대감이다. 무관심은 현대인에게 커다란 병이다. 이 무관심의 방향을 관심에로 돌리는데 회개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무관심은 지나치게 자기에게로 폐쇄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불신앙이다. 성서는 믿지 못하고 근심하는 일은 불신앙에서 비롯된다. 우리 사회의 만연된 병폐는 서로 믿을 수 없다는데 있다. 셋째는 자기 소유와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다. 삶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꿔야하는데 자기 자신이 희생당하게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넷째는 자기 자신만이 완전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결점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인간 사이에 인격적으로 소외되어 있음을 깨닫지 못함이다. 다섯째는 교만한 마음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자신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다. 이상의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고려하면서 회개하는 마음과 생활문화수준을 향상시켜 삶의 질을 높이려는데 그 의미를 둔다. 회개하는 마음은 정직하다. 정직한 사람은 성실하다. 성실한 사람은 후덕하다. 후덕한 사람은 신중할 줄 안다. 그리고 신중할 줄 아는 사람은 검소하고 검소한 사람은 헌신적인 사람이 된다. 진정한 회개는 사람을 모두 헌신적인 참여자로 이끌어 내는 위대한 신앙의 힘을 일으킨다. 회개하는 마음은 무엇보다 문화인의 기본정신인 배려의식을 바탕으로 성숙한다. 그러므로 문화인은 모름지기 헌신하는 주인이 되며 헌신하는 마음은 진정으로 봉사할 줄 안다. 헌신하는 마음이 봉사하는 행동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회개의 마음에 따른 것이다. 회개하는 마음은 곧 생활문화를 향상시킨다는 주장을 생활문화와 관계하여 해 볼 것이다. 생활문화의 기초를 위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우리 문화의 기초는 가정과 가족이란 바탕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가족과 가정을 떠나 사회를 생각할 수 없다. 가족이란 핏줄이 끊어짐 없이 서로 어울려 순리에 따라 목숨을 물려받고 물려주면서 삶을 행복하게 누리라고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된다. 화목한 가정은 가화를 만족스럽게 누리는 가족을 뜻한다. 화목한 가정은 무엇보다 인정이 가득한 가정이다. 정은 사랑이 샘솟는 마음이다. 정이 없으면 사랑의 샘물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화목한 가정은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며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기에 화목한 가정은 가족끼리의 보금자리를 말하지만 현명한 가정은 사회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말한다. 생활문화의 기초는 가정에 있고 가정의 바탕은 부부에 있다. 남녀가 만나 한 부부로 가정을 일구어 부모가 되자면 무엇보다 서로 믿고 의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부사이의 신뢰가 두터울수록 가정이 건강한 생활문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우리는 핵가족 시대에 살고 있다. 3대가 함께 한 집에서 사는 가정은 별로 없다. 부모와 자녀가 곧 한 가정을 이루는 가족 전부이다. 가족은 혈연의 운명적인 피붙이이면서 동시에 저마다 인생을 경영해 가야하는 개인이고 또한 사회인이다. 부모와 자녀가 피붙이 이면서 또한 가족 역시 개인들의 구성이며 나아가 사회의 구성이란 점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가 원만한 가정일수록 부모가 자녀의 독립성을 인정하려고 노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녀를 자기의 소유로 대하기보다는 한 인간으로 나아가 사회인으로 대하는 부모의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유지는 곧 사회의 분위기를 진작시킨다. 가정에서 가르치고 훈련되어야 할 몇 가지 것들을 보면서 오늘의 생활문화의 붕괴의 재건을 생각해 본다. 먼저 대화라는 것이 있다. 요즘은 자식 얼굴한번 보기 어렵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이 많다. 품안에 자식이지 크면 다 소용없다고 말하는 부모들이 허다하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빚어진 서운함이란 따지고 보면 부모가 자녀를 마치 전유물처럼 생각하는데 있는 것 같다. \'천지는 만물을 나아주되 기대지 않는다(生而不待)\'는 성현의 말을 새겨두는 부모는 피붙이란 혈연의 정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관계를 지속한다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벽이 얽힐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본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철의 장막을 쌓고 자녀와의 대화를 끊어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부모요 그 부모는 자기 자녀가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양 착각하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는 갑자기 이루어지는 가족의 풍습이 아니다.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 보다 더 소중한 가정 생활은 없다. 대화는 서로의 의견을 개선하는 방법이지 한쪽의 생각을 수용하고 다른 쪽의 생각을 배척하는 경우는 결코 대화로 이어질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 가족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가족 모두 한 인간으로서 각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공동의 문화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두 번째는 자녀를 사랑할 줄 아는 부모여야 한다.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녀가 제 인생을 책임질 수 있도록 정신을 길러주는 일이다. 예컨대 맹목적인 사랑을 베푸는 부모는 자녀가 져야 할 짐을 대신해서 져주어 스스로 어떤 일을 해결하려는 기회를 빼앗아 버린다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현실이다. 이것이 일종의 과보호이다. 참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가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을 돌이켜 보는 습관을 터득하도록 자녀 옆에서 도우려고 노력하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세 번째는 자녀를 돌볼 줄 아는 부모여야 한다. 양육이란 말은 스스로 자라도록 하는 것이 양육이다. 억지로 키우려고 하는 것은 양육이 아니다. 양계장의 닭을 돌보는 것은 양육(養育)이 아니라 사육(飼育)이다. 양육은 스스로 잘 자라도록 길러 주는 것이고 사육은 억지로 자라도록 먹여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자녀를 돌보는 일은 농사짓기와 같다. 자녀 돌보기는 옳고 그름을 자기 스스로 터득해 가도록 조언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나, 강요하는 것이나, 요구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자녀 돌보기는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네 번째는 자녀의 뜻을 살피는 부모이어야 한다. 현명한 부모는 자녀의 뜻을 살피는데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 현명한 부모는 겸허한 사람이 되도록 자녀를 살핀다. 만일 자녀가 어긋나거나 허튼 짓을 범하면 냉정하게 꾸짖되 망신하지 않도록 시간을 두고 참을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녀의 뜻을 살피는 것은 자녀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도록 격려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녀의 뜻을 살피는 부모의 마음은 항상 항해하는 배의 선장처럼 나침반을 살피는 항해의 역할을 해야 한다. 다섯 번째는 부모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오는 정이 고우면 가는 정도 곱다. 이런 정겨움은 사회생활에서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 생활에서도 통한다. 부모에게 속을 드러내지 않는 자녀들이 많다. 이는 부모가 자녀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도록 처신하지 못한 까닭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는 요인은 부모 쪽에 있다고 보아도 된다. 인생의 선배로서 부모는 눈높이를 낮추어 자녀세대의 정서를 이해해 주려는 남모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자녀의 마음 속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항상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인간관계가 필요하다. 여섯 번째는 부모를 존경하는 자녀가 되도록 해야 한다. 어떤 젊은이가 가장 자유롭고 떳떳하며 당당한가? 하는 것은 자신이 존경하는 부모를 둔 자녀이다. 돈이 많다. 권세를 갖는 고관의 자녀가 떳떳하지 못하다. 성실하고 정직하며 순리를 어기지 않는 사람이 결국 존경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녀는 세상에 나아가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신의 미래를 이어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사회인이 되는 자녀를 갖도록 기도해야 한다. 새도 다 자라면 둥지를 떠난다. 자녀도 다 자라면 사회로 나아가 자신의 인생을 펼쳐 나갈 터전을 잡게 마련이다. 명문대를 나오는 것을 지상 목표처럼 생각하는 부모보다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더 현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로 하여금 성실하고 정직하며 근면한 사람이 되도록 조언하면서 자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격랑을 넘을 수 있는 지혜는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지 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하면 내가 선해야지 남더러 선하라 할 수 없는 이치를 터득하면 인생의 격랑을 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당당하고 의젓한 사회인으로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자녀를 보고 흐뭇해하는 부모의 자부심은 사적인 것만은 아니다. 나라와 사회가 바라는 인재를 길러내는 부모가 바로 일등 국민이며 생활문화가 바로서 있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가정과 부모의 생활수준과 문화는 생활문화의 바로 기본이 된다. 가정이 거울이 되고 사회가 반영하는 가정과 사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보면서 가정에서부터 신앙의 회개로 신선한 사회가 되기 위해 성찰해야 한다. 사회는 병들고 있고 삶의 자리는 질이 낮아지고 책임 없는 사회로 이기집단과 이기심은 팽배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돌이켜야 한다. 핵가족 속에 붕괴된 가정들을 구축하고, 생활문화를 향상하며 새로운 공동체 형성을 위해서는 회개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삶의 터전이 흔들리지 않는 길이다.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