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개의 은총 행3:19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신문에 매우 감동적인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공부는 하지 않고 가짜 대학생 행세를 하며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을 안 아버지가 이를 그냥 묵과할 수 없어서 아들을 불러 훈계를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훈계가 사랑의 훈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훈계를 잔소리라고 여긴 아들은 그만 가출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간 방탕한 자식을 찾기 위해 사방으로 수소문을 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녔지만 아들의 행방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뉘우침의 표시로 삭발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러한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는 참으로 그 아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해 주면서 아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들이 뉘우치고 돌아온 것에 감동한 아버지는 자신도 이발소에 가서 삭발을 하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러한 행동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며 아버지의 품에 안겨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계신 모습이 자꾸 생각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거룩하게 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죄로 죽어야할 나지만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야 하지만 영적으로는 이미 십자가에 죽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영적으로는 이미 우리는 십자가에 처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 그런데 은혜 받고 나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것을 알고 삭발하고 돌아온 아들처럼 그리고 삭발한 아들을 보고 자신도 삭발한 아버지를 보고 통회 자백한 아들의 심정으로 나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들이 돌아와 주기만 해도 너무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하고 다행이며 기적으로 생각합니다. 크게 성공하거나 잘되어서 문제가 아니라 돌아와 주어서면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자꾸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은 주님의 품으로 들어오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시어 우리를 품어주기고 안아주시고 우리를 기다려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라는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삽니다. 죄라는 무거움 짐 때문에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합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나갈 수 있고 나 같은 죄인이 무슨 은혜를 받을 수 있나 고민합니다. 죄 때문에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하면서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신지를 알면서도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너를 너를 사랑하시어 복을 주고 번성케 하시고 너 소생에게 자녀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곡식 포도주 기름을 풍성케 하며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리라.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는 분 그래서 번성하고 풍성하게 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신 7:13)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로 번성케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케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케 하시리니』 또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그럴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엄청난 신비하고 비밀한 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사랑은 선물이고 기적입니다. 사랑은 꿈이며 기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엄청 기대가 되고 마음이 설레며 또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번 달 준비하신 선물 엄청난 비밀한 일이 무엇일까? 지난달에도 엄청 놀라운 일을 준비하셨는데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요 5: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최고의 사랑은 하나님이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의 아들을 나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요일 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성도여러분,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자체이십니다.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었습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보내셨음이니라』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토록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사모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과 만나지 못하는 겁니까? 이 이유는 하나님과 나 사이를 내가 지은 죄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사 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고 싶고 다른 사람처럼 찬송 부르면 은혜도 받고 싶고 우리 목사님 장로님처럼 기도하다가 찬송 부르다가 눈물을 흘리고 싶고 감사의 눈물인지 통곡의 눈물인지 억울한 눈물인지 한 번 마음껏 울고 싶은데 내 마음이 하나님께 열려지지 않고 닫혀져 스스로 생각할 때도 답답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너희 죄악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하, 그렇구나. 내가 내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열지 못하는 것은 내 죄때문이구나. 단적인 예로 말입니다. 성당 다니는 분들이 더 자유스럽답니다. 오히려 구원의 기쁨으로 사는 기독교인들인 더 은혜롭고 감사하고 기뻐할 줄 알았는데 기독교인들은 율법화되고 경직되어 있다는 겁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기도하니 주님이 그러십니다. 황목사 고해성사에 있어. 고해성사가 무엇입니까?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정해진 시간에 신부님 앞에 와서 자신의 죄를 낱낱이 고백하면 신부가 듣고 하나님 대신 그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고 씻어준다고 믿고 확신하기 때문에 어떤 죄를 지어도 그들은 신부님만 만나고 나면 그렇게 자유스럽고 얼굴이 밝다는 겁니다. 내가 죄지어서 항상 죄책감에 빠져있었는데 말입니다. 가정에서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지은 죄 때문에 죄책감에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죄책감의 짐을 신부님께 고한 순간 다 용서해주고 짐을 내려준다니 얼마나 가볍고 행복하겠습니까? 저는 농업고등학교 졸업했습니다. 한 번도 농사라고는 지어본적이 없는데 방학숙제가 풀 많이 가져오는 겁니다. 친구들과 함께 산으로 풀을 하로 갔습니다. 친구들은 지게에 지보다 몇 배 높은 풀을 지고 내려오는데 저는 쌀 자로 80k 에 풀을 담아 내려오는데도 그렇게 힘이 듭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저에게 있는 풀 절반을 자기 지게에 옮겨 싫고 가더라고요, 얼마나 가볍고 쉽게 내려가든 지요. 이유가 여자 친구 소개해준다고 약속했거든요. 제가 사전에 작업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우던지요. 그 친구 10년 후에 진짜 아가씨 소개해서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누군가 가에 대신해주면 얼마나 쉬어요. 성당의 고해성사가 그런 심리적인 효과가 있어서 요즘 사람들이 성당을 안다니는 사람도 많이 찾아와서 고해성사를 한다는 겁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로부터 죄책감으로부터 죄의 무거움 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입니다. 죄가 사람을 죽입니다. 사람을 죽게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에 도달하느니라. 죄는 결국 사람을 죽게 합니다. 욕심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바울은 육신의 생각 곧 욕심 탐욕은 사망이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하게 합니다. 죄의 무거운 짐이 사람을 죽게 합니다. 그러나 사람 앞에 고해성사만 해도 기뻐서 돌아가고 행복하고 즐거워하는 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여러분의 죄의 짐을 내려놓지 않겠습니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하여주리라. 너희가 너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우리 모든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 끗게 하실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우리 폐가 둘이듯이 우리 안에도 두 마음이 있습니다. 한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마음이고 한 마음은 죄의 법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양심이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안에 두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있습니다. 그러데 성경은 그 본성이 착한 본성이 아니라 죄의 본성이라는 겁니다. 죄를 짓고자하는 습성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의 본성을 억제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사람은 무조건 죄를 사모하고 죄를 짓도록 되어 있습니다. 롬 8:15-23절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하지 않고, 미워하는 일을 행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6.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을 원하지 않는 것은, 율법이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17. 그런데 이제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존재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살고 있는 죄입니다. 18. 나는 내 안에, 다시 말해서 나의 죄악된 본성 안에 선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압니다. 선을 행하려는 바람은 내게 있지만, 선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19. 나는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합니다. 20.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행하고 있다면, 그 일을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살고 있는 죄입니다. 21. 그러므로 나는 이런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선을 행하려는 마음은 나에게 있지만, 악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22. 사실 나의 속 중심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23. 그러나 나의 몸의 여러 부분들에서는 다른 법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내 몸에서 작용하고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그래서 죄 짓는 것은 아무 주저함없이 죄를 짓습니다. 그 이유는 양심 안에 죄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냥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심에 또 다른 본성이 있는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몰랐는데 예수 믿고 나니 내 마음에 그 본성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신앙을 고백하는 찬송을 부르면 왠지 나도 모르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전혀 이제까지 느끼지 못한 감사와 기쁨과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 양심이 있는 또 다른 본능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는 본성이 그 찬송에 화답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 내 마음에 감동이 오고 눈물이 나고 알 수 없는 기쁨이 용솟음치면 아 그렇구나. 내 양심에 있는 하나님을 좋아하는 본성이 화답하는 구나 이해하시면 됩니다. 반면에 죄를 지으면 이 본능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는 본능이 자꾸 싫어하고 내 양심에 부담을 줍니다. 그게 바로 죄책감입니다. 야, 사랑하는 아무 게야 너 죄지으면 안 되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데, 자꾸 마음에 부담감을 주고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양심의 다른 죄의 본능은 죄를 지으면 너무 좋아합니다. 결국 죄를 지어서 내 자신이 완전히 죽게 만듭니다. 아마도 이 설교를 들으면서도 여러분 안에 있는 죄의 본능은 싫어합니다. 또 다른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는 양심은 이 번 기회에 내 마음에 있는 죄의 본능을 이기고 죄와 싸워서 승리해야지 하면서 그 동안 살면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지 못했던 죄, 남을 의심하고 거짓말하고 하나님의 뜻에 그릇 행했던 죄를 자백하는 시간을 갖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결단하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안에 여러분 양심 안에 있는 두 본능 중에 죄 짓고 사는 죄의 본능이 여러분을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도록 결단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법을 사모하는 법이 죄의 본능의 법을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본능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롬 5-6장에 보면 죄의 본능이 마치 사람처럼 나를 죄를 짓도록 인도합니다. 그래서 마귀의 도구가 되게 하고 불의한 일에 도구에 되게 하고 무너지고 거짓말하고 살인하는 도구가 되게 합니다. 죄의 본능대로 사는 것은 타락하게 합니다. 최고 인간 아담과 이브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주셔서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본능 중에 죄의 본능이 발동하여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결국 죽게 되고 큰 벌을 받았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죄의 본능이 살아나면 우리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죄의 본능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는 또 다른 본능을 억눌러났습니다. 여러분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고 여러분의 가정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결단하시길 축원합니다. 그 동안 내 죄의 본능대로 살았던 삶을 다 주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고 이제는 내안에 있는 하나님의 본능 충실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안 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도움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들이지만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주님은 우리의 양심에 오셔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서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죄의 본성을 억눌르고 이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하나님 안에 살겠다고 다짐하고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너무 기뻐하셔서 한없는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을 죄와 싸워 이기도록 능력과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성령님 이곳에 임하사 우리를 도와주소서 잃어버린 것 회복 시키시고 모자란 것 채워주소서 : 성령님 이곳에 임하시옵소서 우리를 도우사 잃어버린 것 회복되게하시옵소서. 잃어버린 은혜를 잃어버린, 사랑을 잃어버린 믿음을 채워주소서 성령님 이곳에 임하사 우리를 만져주소서 육신의 질병 치료하시고 죄에서 자유케 하소서 : 오 성령이시어 병 중에 있는 나를 만져주시어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죄에서 죄의 본능에서 자유하게 하소서 성령님 일하시옵소서 우리를 다스리소서 만지소서 크신 능력 주소서 성령님 이곳에 임하소서 성령이어 이곡에 임하사 일하시옵소서 그리고 내 상한 심령을 만져주소서 크신 능력주옵소서 부족한 것 넉넉하게 하소서 약한 것 강하게 하소서 미련한 것 지혜롭게 하소서 모난 것 다듬으소서 : 부족한 것 넉넉하게 풍성하게 하시옵소서 약하고 늘 실수 투성이고 늘 불안한 나를 강하게 힘있게 하시옵소서 미련한 나를 지혜롭게 하시고 모나고 질투심많고 시기심많고 투정 잘 부리는 나를 다듬으소서 성령님 일하시 옵소서 우리를 다스리소서 만지소서 크신 능력 주소서 성령님 이곳에 임하소서 : 성령이여 나를 다스리소서 지치고 피곤하고 힘든 우리의 영혼을 만지소서 그리고 크신 능력주시옵소서 성령님 일하시 옵소서 우리를 다스리소서 만지소서 크신 능력 주소서 성령님 이곳에 임하소서 성령님 일하시옵소서 우리를 다스리소서 만지소서 크신 능력 주소서 성령님 이곳에 임하소서 죄룰 고백하는 순간 여러분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죄를 고백하는 순간 그래서 병 고침이 일어나고 죄를 고백하는 순간 방언이 일어나고 죄를 고백하는 순간 예언을 하고 죄를 고백하는 순간 문제가 해결되고 죄를 고백하는 순간 우울증이 해결되고 죄를 고백하는 순간 가정이 해결되고 죄를 고백하는 순간 믿음이 곧 바로 성장합니다. 그 이유는 죄를 고백하는 순간 능력의 성령님이 찾아오셔서 우리의 심령을 치료하시고 우리의 마음에 뜨거운 불을 주셔서 힘을 주십니다. 참 신기한 것은 남에게 상처받고 가족에게 상처받은 분들도 사실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그 순간 치유가 일어납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지적하면 내가 더 상처를 받지만 내 죄를 자백하고 용서하면 오히려 더 치유가 일어나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한 이유가 성령님이 오셔서 우리를 만져주시고 우리를 치유해주시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령은 보혜사,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헬퍼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돕습니다. 우리 감정을 돕습니다. 우리 심령을 돕습니다. 용기를 주고 힘을 주고 능력을 줍니다. 오늘 이 시간에 그런 놀라운 체험을 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내 안에 있는 두 가지 본성이 있습니다. 내 안에 양심에 두 가지 본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내 안에 두 본능 중에 죄의 본능이 나를 이끌어갔습니다. 죄의 본능에 따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였지만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또 다른 본능인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는 본능에 따라 살지 않고 죄의 본능에 따라 살아서 참으로 답답하고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항상 마음이 무겁고 무엇을 해도 기쁨이 없고 죽을 것 같고 사랑하는 사람을 봐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미움이 먼저고 사랑해야할 사람인데 사랑이 없어지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의심하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분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하나님을 만나면 행복합니다. 아이가 엄마 만나면 행복하듯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죄의 본능에 따라 살았기 때문에 집 떠나 남의 집에서 산 것처럼 늘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하고 일을 했어도 안하는 것 같고 좋은 집을 사도 무언가 불안하고 1% 부족한 행복을 누렸습니다. 마음으로는 나에게 상처준 사람 내 가족 내 부모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하지만 말 뿐이었고 또 다른 미움과 저주와 상처만 남은 것은 바로 죄의 본능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놀라운 체험을 시도해보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그 동안 지배하고 있었던 죄의 본능이 더 이상을 여러분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하십시다. 그러면 성경은 약속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성령께서 우리를 친히 찾아오셔서 도와주리라 약속했습니다. 반드시 도아주십니다. 먼저 그 동안 내 본능 안에 있는 또 다른 본능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모하고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을 따르는 본능 대신 내의지 하고는 관계없이 죄의 본능에 따라 살았던 우리의 모든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하고 내려놓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죄의 본능에 따라 살아가다보니 아담처럼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많이 주셨지만 불평하고 원망하고 때로는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마치 베드로처럼 믿음이 있을 때는 예수님처럼 바다 위라도 걸어갈 것처럼 고백했지만 불어오는 거친 풍랑과 바람에 의심하고 불안해서 결국 몇 걸음도 못 걸어 보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린 우리였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처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고 하셨지만 의심 많은 도마처럼 예수님의 옆구리의 상처를 만져보고 머리의 가시 자국을 만져보고 나서 믿는 어리석은 믿음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본성 안에는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은 본성이 자꾸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거룩한 본능을 우리는 우리의 죄성으로 다 억제하고 오히려 죄의 본성대로 살아버렸습니다. 사실 우리 영혼은 예배를 사모하고 말씀 듣기를 좋아하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죄의 본성대로 우리를 죄의 병기, 무기로 사용하였습니다. 가장 큰 죄악은 하나님은 너무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죄를 억제하고 소멸하고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게 만드셨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시는데 나는 나의 모든 죄성은 결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드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병사들처럼 아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가지기 위해 장난삼아 제비 뽑고 놀랐던 로마 병사들처럼 십자가의 진정한 사랑을 외면하고 도망가고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했던 나의 죄의 본능에 따라 살았습니다. 더더욱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큰 도구로 사용하시기 위해 나를 불러 주시고 너는 내 것이라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나를 사용해주시고 오늘도 축복해주시고 동행해주시고 물 가운데로 지날 지라도 물이 나를 침범치 못하고 불 가운데 지날 지라고 불이 나를 사르지 못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받지 않게 하시고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계획까지고 바꾸시는 하나님이신데 나의 죄성이, 나의 죄의 본능이 나로 하여금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축복받은 존재, 하나님의 축복의 자녀임을 잊고 살게 하였고 오히려 하나님의 대적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았던 하나님께 감사치도 않고 하나님 없는 사람처럼 허망하게 살았던 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마땅히 교회에 있어야할 우리가 그렇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 내맘대로 고집하며 온갖죄를 저질렀네 예수여 이죄인도 용서 받으수 있나요 벌레만도 못한 내가 용서 받을 수 있나요 세상에서 방황할 며 내 죄의 본능에 따라 살 때는 전혀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전혀 몰랐습니다. 아니 모른 채하며 살았습니다. 내 맘대로 고집대로 온갖 죄를 다 지으며 자유분방하게 살았습니다. 오 예수여 이 죄인도 용서 받을 수 있나요. 죄로 지치고 방황하는 이 죄인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까? 발레만도 못한 지렁이같은 나도 용서받을 수 있나요. 고백하는 이 시간되시길 축원합니다. 많은 사람 찾아와서 나의 친구가 되어도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 받지 못했다오 예수여 이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소서 의지할곳 없는 이몸 위로 받기 원합니다 이제 주님 앞에 찾아옵니다. 많은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지만 병든 몸과 상한 마음 위로 받을 길이 없습니다. 외롭고 힘든 밤들입니다. 오, 예수여, 이 죄인을 불쌍히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의지할 곳 없는 이 죄인 주님께 예수님께 위로 받기를 간청 하옵나니 나의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 이죄인의 애통함을 예수께서 들으셨네 못자국 난 사랑의 손 나를 어루 만지셨네 내주여 이 죄인이 다시 눈물 흘립니다 오내주여 나 이제는 아무 걱정 없습니다 오, 사랑의 주님 나의 애통함과 분통함을 들으시옵소서. 실패와 좌절 속에 쓰러지고 넘어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의 못자국난 사랑의 손으로 나의 상처를 어루만져주시고 나의 마음을 치료하시고 나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품어주소서 내 주여 다시 다시 눈물 흘립니다. 오, 내주여 나 이제는 아무 걱정 없습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뜻입니다. 내 모든죄 무거운 짐 이젠 모두 다 벗었네 우리 주님 예수께서 나와함께 계신다오 내주여 이 죄인이 무한 감사 드립니다 나의 몸과 영혼까지 주를 위해 바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우리의 모든 죄, 무거운 모든 죄, 알고 지은 죄든지 모르고 지은 죄든지, 죄책감이든지, 미안함이든지, 아쉬움, 생각하기도 싫은 끔직한 일들, 상처 주었던 일들, 상처받았던 일들,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모든 사건들, 다 이젠 모두 십자가 밑에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의 아픔과 나의 인생을 잘 아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습니다. 늘 나와 함께 하시는 우리 주님 예수, 내 사랑 예수님 이 죄인이 무한 감사드립니다. 나의 몸과 영혼까지 이제 주님께 드립니다. 받아주시옵소서 내려놓는 순간 고백하는 순간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순간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치료해주십니다. 죄를 고백하고 내려놓는 순간 하나님은 여러분을 치료해주십니다. 호세아서에서 말씀합니다. (호 6:1-4)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우리를 치셨지만 우리를 낫게 하시고 상처를 지유해주시고 우리를 고쳐주시는 분이십니다. 죄의 본능에 따라 살았던 우리의 모든 것을 고백하고 내려놓고 자백하면 위로의 성령님이 오셔서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해주시고 못자국 난 사람의 손으로 여러분을 어루만져주시고 병든 마음 상한 마음을 치료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내주하십니다. 지금 성령님이 이곳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들어가십니다. 그 성령을 받아드리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안에 찾아오셔서 죄의 본능을 억제하시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본능 안에 능력과 힘을 주셔서 젊은이들에게는 꿈을 꾸게 하시고 늙은이들에게는 환상을 보게 하시고 죽은 심령들에게는 생기를 넣어주십니다. (겔 18:31)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 36:26-27)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죄악을 버리기만 하면 마음과 영이 새롭게 할찌어다. 죄악을 버려서 마음과 영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을 안에 들어오셔서 새로운 영을 불어넣으십니다. 죄의 본성으로 가득 찼던 우리의 삶을 내려놓고 주님께 고백하면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해주십니다. 변화시켜주십니다. 변화됩니다. 새로운 삶 새로운 인생을 계획합니다. 그래서 죄의 고백과 죄의 내려놓음이 중요합니다.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먼저 내모든 죄 무거운 짐을 다 하나님께 내려놓는 그 순간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어제까지의 내가 아닙니다. 예배 전의 내가 아닙니다. 죄를 고백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의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나타나서 나의 모든 죄악을 다 태워버립니다. 나를 변화 시키고 나의 조성을 태어버리고 나의 죄의 습관을 태어버리는 것은 나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죄악을 입술로 진술하고 하나님 앞에 고백하는 그 순간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부정한 입술과 악을 제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그런 체험을 합니다. (사 6:5-8)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6]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죄악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 우리의 죄악을 사하여 주시고 제하여 주시고 그러기에 우리의 다른 본성인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좋아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즐겨하는 나의 다른 본성이 이제는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미하고 영으로 고백합니다. (고전 14: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감사감사 예수 감사 감사예수 내 맘에(*2)~~ 할렐루야! 이제는 여러분의 모든 죄를 주님께 고백하셔서 하나님의 영과 함께 영적인 존재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행 2:17)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 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7:14) 우리가 죄악을 내려놓고 고백하면 예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