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할 기회

회개할 기회/눅13:1-9

회개할 기회
눅13:1-9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승승장구냐? 아니면 퇴보냐? 하는 갈림길이 될 중요한 순간이다.
이런 선거 때가 되면 반복되는 얘기가 있다.
그것은 안정이냐? 개혁이냐? 하는 것이다.
요즘은 \\\'안정적 개혁\\\'이라는 말이 인기 상한가를 누리고 있다.
이번 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여당에서는 안정적 개혁을 위해서는 여당 국회의원 숫자가 과반수를 넘어서 대통령이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대로 야당에서는 대통령의 독주를 막고 국가 경영의 안정을 위해서는 하나의 야당이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주장을 보면 위기 상황 앞에서 여, 야 모두가 국민들이 좋아하는 안정을 빌미로 삼아 자기 당의 세력을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았다.
공부를 잘 하는 한 학생이 시험을 잘 보지 못해서 몹시 안타까워하였다.
위기 상황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요즘은 내신 성적이 상급학교의 진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전체 학생들의 평균성적이 다 낮은 것이 아닌가?
그때, 시험을 잘 못 치러서 위기에 직면했던 학생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학생들도 좋아하고 국회의원들도 좋아하며, 대통령도 좋아하는 [안정], 이것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좋은 메뉴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안정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다.
안정된 생활을 위하여 주일도 잊어버리고 일하고 있는가 하면, 안정된 건강을 위하여 주일도 잊어버리고 등산이다 또는 운동이다 하면서 산으로 들로 나갔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안정된 가정 생활을 위하여 평소에 가지 못했던 가족 동반 소풍을 나간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안정이 우리 생활에 중요한 요소로서 자리를 잡았다.
위기 상황에서 안정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오히려 위기 상황에서 안정만을 추구하는 것?우리 인생을 망하게 할 위험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자.

1. 형제의 죄를 가지고 나의 우월감을 확인하는데 이용하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앉아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야단하셨다.
사람들이 다가올 천지의 기상은 예견을 하면서 다가올 시대의 흐름은 전혀 분간을 못 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사람들을 야단하고 있을 때, 두어 사람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말했다.
1절을 보자.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했다\\\"고 한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살아 계실 당시에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도록 로마 황제의 명을 받은 총독이었다.
이 총독 빌라도가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갈릴리 사람을 죽여 그 피를 자신들의 제물에 섞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그런 곳이 많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인신제사를 드리는 경우도 허다하였다.
빌라도가 사람을 제물로 드리지는 않았지만 죽여서 그 피를 동물 제물에 섞어 발랐으니 인신제사를 드린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이 사실을 예수님에게 알린 사람들은 누구의 일을 말하려고 이 사실을 예수님에게 알렸나?
빌라도의 일인가? 아니면 빌라도의 손에 죽은 사람들의 일인가?
그들의 보고를 들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보면 그들이 누구에 대하여 말하고자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절을 보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우리는 그 두어 사람이 누구에 대하여 말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은 빌라도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빌라도의 손에 죽은 사람에 대하여 말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슨 의도로 빌라도의 손에 죽임 당하고 또 그 피까지 우상의 제물에 발려진 사람들에 대하여 그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보고를 하였나?
일반적으로 사형언도를 받으면 그 자체로 죄가 많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경우는 그 피까지 우상의 제물에 발라져서 우상을 위하여 드려졌다.
그러므로 그들의 생각에 죽임을 당했다는 것만으로도 죄가 많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우상의 제물에 자기 피까지 바쳐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그들의 죄가 정말 많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 는 생각을 하게 하였을 것이 틀림없다.

여러분, 이들이 예수님에게 왜 이런 말을 고했을까?
그들이 \\\"빌라도의 손에 죽임 당하고 또 그 피까지 우상의 제물에 발려지는 죄가 많은 결과이지요?\\\"라고 질문하는 것은 무슨 의도일까요?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가 퇴근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엄마가 나한테 오빠하고 같이 슈퍼에 갔다가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어요.
그런데 오빠가 나는 놔두고 혼자 갔다왔어요.
그런데 있지, 오빠가 슈퍼에 갔다오다가 넘어져서 피가 났어요.\\\"라고 말했다.
여러분, 이 어린 아이가 오빠에 관한 이야기를 왜 아빠에게 했겠는가?
오빠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고 이 말을 했을까?
물론 그것도 있지만 나쁜 오빠와 달리 자신은 착하다는 것을 확인해 달라는 달라는 의도가 더 강하다고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두어 사람이 예수님에게 빌라도의 손에 죽임 당한 사람 이야기를 한 것은 그렇지 않은 자신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지 않는가?\\\"
형제의 죄악은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위기의 상황이다.
이런 위기 앞에서 그들의 아픔을 위로해 주고 자신을 성찰하지는 못할망정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들의 죄를 인정하게 하므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은 자신들이 상대적으로 마음의 안정과 우월감을 얻고자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위기 속에서 자기 안정만을 찾고자 하고 있다.
여러분, 이들은 자기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형제의 아픔을 이용하는 무자비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마음은 사람이라면 은연중에 가지게 될 수 있는 마음이다.
특히 그 사람의 행실이 누가 보아도 조금 문제가 있었을 때에는 더 그러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형제나 이웃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상대적 우월감이나 또는 자기 안정을 찾는 두어 사람을 보면서 나에게는 그런 습성이 없는지 살펴보기를 바란다.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위기에 빠진 공동체를 더욱 큰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결코 좋지 않은 마음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2. 회개할 기회이다.

그러면 이런 엄청난 사건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두어 사람의 보고를 들은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찔러서 그들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런 사건을 볼 때,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3절을 보자.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 말씀은 두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우리들도 이미 빌라도의 손에 죽은 사람들처럼 그렇게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처럼 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임할 진노를 잠깐 멈추고 계실 뿐이라는 말이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지금 당장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어도 마땅한 죄인들이다.
그렇다고 인정하는가?
그렇다.
우리는 먼저 간 사람들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어서 오늘까지 생명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죄의 경중을 따져서 다른 사람 보다 죄가 조금 가벼워 보이면 그것 때문에 마음에 안정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마취약을 먹는 것과 같아서 우리의 마음을 잠깐 위로해 줄 뿐이다.
결코 병든 우리 영혼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지난해에 나의 고모부께서 간암으로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초기에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고 참고 지냈다.
그러나 그 통증을 견딜 수 없을 즈음에는 병원을 찾았다.
그때는 의사가 줄 수 있는 것이 통증을 덜어주기 위하여 척추에 놓는 마취 주사제 밖에는 없었다.
그것은 치료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마취제를 맞으면 지금은 통증을 조금 덜 수 있지만 그것은 나로 하여금 죽음을 멀리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고통스런 죽음을 대하면서 \\\"나쁜 짓 하더니 드디어 죽었구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라.
우리 모두 \\\"내가 저렇게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는 기회로 삼기를 바란다.

그 두 번째는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긍휼을 생각하며, 회개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도 저렇게 죽어야 할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긍휼 때문에 내가 살아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보고를 들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한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다.(6-9절)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6-7절)
그 때, 과원지기가 말했다.(8-9절)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이 비유의 말씀대로 우리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오늘도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보아서 잔인한 것 같은 각종 사건을 일으키시면서 말이다.
우리로 하여금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결코 그들이 더 미워서가 아니라 그들을 아픔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을 회개시키시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변에 잔인해 보이는 사건들이 일어나는가?
그 사건을 보면서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고 안도의 숨을 쉬지 말라.
오히려 그 사건 앞에서 겸허하게 고개를 숙여라.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찾아 보라.
그래서 회개하는 기회로 삼아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