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긴급성과 하나님의 인내

회개의 긴급성과 하나님의 인내/눅13:1-9

회개의 긴급성과 하나님의 인내
눅13:1-9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발생한 사건을 피상적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우를 범해서는 않된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건들을 영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즉 영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2,3)라고 말씀하시면서 시대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고 교훈하신다.

본문은 예수님 당시에 일어난 사건들을 실례로 들어,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권고의 말씀이다.
첫 번째 사건은 갈릴리 사람들을 빌라도가 학살한 일(1-3)이며, 두 번째 사건은 실로암의 망대가 붕괴되어 그 망대 아래에 있던 18명이 뜻하지 않게 망대에 치어죽은 자들에 대한 일이다(4,5), 세번째는,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비유(6-9)이다.

이 사건과 비유를 통하여 주님은 분명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바로 \\\\\\\"회개\\\\\\\"임을 보여준다.

1. 긴박한 회개의 필요성(1-5)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1).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예수께 보고되고 있다. 여러명의 갈릴리인들이 성전에서 빌라도에 의해 살해당하였다는 것이 그 보고 내용인데, 이러한 류의 사건들은 당시에 흔했다. 즉 식민지 통치자인 로마 총독과 피식민지 백성인 유대인들 사이의 반목 때문에 생겨나는 인명 살상극은 당시에 흔했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의하면, 어떤 유월절 제사 때에는 3천명, 혹은 무려 2만명의 유대인들이 제단에 바쳐지는 짐승들처럼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있다.

예수께서는 \\\\\\\'재난과 죽음\\\\\\\'의 관계에 관한 또 하나의 예를 들고 있다.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에 대해 말씀하셨다(4). 여기서 \\\\\\\'실로암\\\\\\\'(Siloam)은 예루살렘 남쪽과 동쪽 성벽에 접해 있었고, 기혼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공급되는 물을 저장하는 저수지였다. 본문에서 말해주는 사건은, 이곳을 지키기 위해 세워놓은 망대가 무너졌다는 것이며, 그 사건으로 열 여덟 명의 생명이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 보고를 들으신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있는 줄 아느냐?\\\\\\\"(2, 참조 4절). 이 말씀은 인간이 당하는 불행한 사건에 대한 유대인들의 종교적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당하는 불행을 범죄의 결과라고 보았던 것이다. 因果應報, 즉 악을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사상은 매우 고전적인 인간의 종교적 사고이다.
예를 들면, 고난받는 욥에 대해서 엘리바스가 하는 말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상을 옅볼 수 있다 ; \\\\\\\"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 4:7).
또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 대하여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했다 ;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요 9:2). 이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다. \\\\\\\"고난 당하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죄를 지어왔으며, 이제 그 댓가를 치르는 것이다. 반대로,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이며, 죄를 덜지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의 의에 근거해서 생각하고 생활할 때, 우리는 영적소경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죄아래 있음(common guilt)을 망각하여 이렇게 판단하게 된다.

과연 그러한가? 이 문제에 대하여 주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No; but unless you repent you will all likewise perish)(3).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우리의 그릇된 고정관념을 시정하신다. 즉 재난이나 불행한 사건들 모두가 반드시 그 재앙을 만난 사람들의 죄의 결과라는 종교적 편견을 부정하는 말씀이다. 동시에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나, 그 죽음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자기들의 죄 없음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이나, 모두 동일한 죄인 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아직 불의의 재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도 안심할 수 없으며, 동일한 불행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긴급히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류는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 멸망한다는 것(최후의 심판)을 교훈하신다. 예수님은 5절에서도 반복하여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두가지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계시됬으며,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로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이 두가지 사건은 이스라엘과 전 인류가 다 죄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심판의 표시이다.

여기서 \\\\\\\'회개\\\\\\\'란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회개란 지난 날을 돌이켜 보아(知),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슬퍼하며 뉘우치며(情), 잘못된 삶의 태도를 완전히 바꾸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意)이다. 즉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와 행동이 근본적으로 변화되는 것이 회개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에게 시급히 요청되는 \\\\\\\'회개\\\\\\\'는 이웃이 당하는 불행을 보고 위로해 주고 함께 아파해 주지는 못할 망정, 도리어 정죄하는 신앙의 태도를 버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임을 깨닫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긴박하게 회개해야 할 이유와 필요성은 인류가 우주적으로 죄악되다는 사실에 있다(롬 3:9-18).

2.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6-9)

앞 부분에서는 회개하지 않을 때 내려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강조되었는데, 여기서부터 이어지는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나무 비유는 하나님께서 인내하시는 동안,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회개할 것을 촉구하려는 것이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6).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며, 무화과나무를 심은 사람은 하나님을 비유하고, 열매는 이스라엘 백성의 참된 회개를 뜻한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며, 포도원에는 여러가지 과실수들이 함께 심겨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무화과나무가 주인의 기대에 어긋나게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인내에도 불구하고 회개의 열매를 맺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7). 여기서 과원지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원지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화과 나무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이에 주인은 그 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한다.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는 두 가지 면에서 부정적으로 보인다. 하나는 과실수(果實樹)가 과실을 맺지 못하므로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상실했으며, 다른 하나는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땅만 버리고 있는 것이다. 이쯤되면 이 쓸모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라는 명령은 당연한 것이었다.
여기서 \\\\\\\'찍어버림\\\\\\\'은 그 시대에 주어지는 하나의 징벌의 수준이 아니라, 영원한 파멸을 뜻하며, 하나님의 인내가 끝날 때 가해지는 심판의 최후성을 말한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8,9). 예수그리스도의 중보자적 모습이 분명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이것은 마치 멸망 받아야 할 소돔성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렸던 아브라함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창 18:22-32), 예수 그리스도가 지니고 있는 신적인 인내와 자기 백성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다.
뿌리 주변의 흙을 부드럽게 해주고 거름을 주는 이 특별한 배려는, 열매를 맺어야 하는 기간이 3년이나 지나도록 전혀 과실을 맺지 못하는 나무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형편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정성을 쏟음으로써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유대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궁극적 관심은 심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있음을 보여준다.

과원지기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열매를 맺는 것은 나무의 상태에 달린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기간을 연장해 주고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줌으로써 조건을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회개를 하느냐 안하느냐의 결정은 개인의 판단에 의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특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들은 민족적인 사명을 이행하는데 실패했으며,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서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의 상징이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이었다.

이 비유는 일차적으로는 유대인들에게 주어지고 있으나, 더 나아가서 은혜의 혜택을 누리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각성시켜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받은 은혜에 상응하게 우리의 생활이 변화되어 삶 속에서 회개에 합당한 결실이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예수께서는 38년된 병자에게 그의 병을 고쳐주신 후,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요 5:14)고 말씀하셨으며, 또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용서하시면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말씀하셨다.

언제까지 우리가 불신앙과 죄악 가운데 거해야만 되는가! \\\\\\\"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않으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전 8:11).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형벌을 연기시키는 것이다.(롬 3:25; 벧후 3:8,9).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수 있도록 유보해둔 심판까지의 기한은 분명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 끝날에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결론

1. 재앙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서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심판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의 삶이 완전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않된다. 이는 우리 모두는 죄아래 있기 때문이다. 회개치 아니하면 우리도 멸망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심판이 당장에 임하지 않는 까닭은 우리의 결실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내는 우리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