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기쁨

회개의 기쁨/눅15:7-10

회개의 기쁨
눅15:7-10





어떤 목사님이 두 자매가 사는 가정을 심방하였습니다. 이들은 과거에 나병을 앓았던 적이 있는 사람들로 지금은 완쾌되었지만 그 병을 가졌을 때의 마음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목사님은 심방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에 이 댁의 심방을 마치면 곧 바로 다른 댁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자매는 가난한데도 불구하고 말없이 목사님을 대접하려고 이미 식사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몸도 성한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음식을 준비를 해놓았으니, 그냥 가면 자매들이 상처를 입게 될까봐 목사님도 어쩔 수 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도중에 언니되는 분이 ꡒ목사님 안심하고 드세요. 이 음식은 저 아이가 하지 않고 제가 준비했습니다.ꡓ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언니되는 분이 그렇게 말한 것은 이 둘의 상태가 비슷했지만 그래도 과거에 언니의 상태가 동생보다는 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보시기에 두 사람 모두 별 차이가 없어 보였으나 본인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를 범하면 죄가 많든지 적든지 모두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똑같은 죄인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더 많은 죄를 범했느냐, 적게 범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누가 더 많은 죄를 범했느냐 하는 것에 신경을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각자 자신의 죄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회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편 7:11-13절을 보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지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자비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인간들이 연약하여 타락하고 죄를 범하게 될 때마다 불쌍히 여기시고 오래 참아주는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3:8-9,15절에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거듭 말씀하셨지만 아직도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더딘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 시간에 오신다면 더 이상 회개할 기회도 없고 구원받을 기회도 없습니다. 이 시간부터 예수 믿는 사람은 구원받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심판을 받게 되는데 예수님이 빨리 오시면 어쩝니까? 우리 주님이 빨리 오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무도 멸망 받지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참고 참으시면서 그 시기를 늦추고 계실 뿐입니다.

만일 우리 주님이 50년 전에 오셨다면 오늘 이 자리에 계신 분 중에도 지옥에 갈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늦게 오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렇게 참아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하나님이 참지 아니하시고 우리가 죄를 범하는 즉시 멸하신다면 아마 이 세상에 살아남을 자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징벌이 즉시 임하지 않으므로 죄를 지어도 괜찮은 줄 알고 죄를 범하는 일에 얼마나 담대한지 모릅니다(전 8:11).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오래 참아주시는 분이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멸망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회개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마지막 심판의 날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고 준비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매를 맞은 후에야 회개한다면 참으로 손해가 많습니다. 물질을 잃고, 건강도 잃고 죽을 고생하다가 그제서야 정신차리고 ꡒ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ꡓ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다면 얼마나 손해가 많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매 맞기 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전에 속히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 큰 축복이 됩니다.



회개하는 자가 복이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1. 죄사함을 받는 복입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범했고 죄가 크다고 해도 ꡒ하나님, 제가 이런 못된 죄를 범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옵소서.ꡓ라고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자백하기만 하면 모든 죄에서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 1:9). 에스겔서 18:20-23절을 보면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 행한 의로 인하여 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사람은 자기가 범한 자신의 죄 때문에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각자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습니다. 그러나 죽을 죄인이라도 그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고 하면 과거에 범한 모든 죄는 하나도 기억되지 않으며, 회개하고 돌아왔기 때문에 반드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회개하면 옛날에 범한 죄를 기억할 필요도 없고 죄를 되풀이하여 회개할 필요도 없습니다. 회개하면 삽니다. 회개하면 살길이 열립니다.

회개하면 소망의 문이 열리고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축복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오늘 본문 7절에서, 멸망 받을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리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요엘 2:12절 이하를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찢고 애통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면 우리 하나님은 너무 자비하시기 때문에 노를 내리려고 하시다가도 돌이키시고 오히려 복을 주셔서 하나님 앞에 감사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회개할 때 하나님의 마음 중심이 뜨거워지셔서 그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응답하셔서 물질의 부요함을 주시고 그들을 괴롭혔던 원수들을 다 물러가게 해주시며, 회개하기 전에 받은 진노를 손해 본 햇수대로 다 갚아주시고 회복시켜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지 인간을 미워하지 아니하십니다.



다윗과 사울은 둘다 왕이었고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았으나 사울은 버림을 받았고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철저히 회개했으나 사울은 철저한 회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사울이 회개한 장면이 한번도 나오지 않으나,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그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했을 때 왕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엎드려 회개했으며, 밧세바와의 사이에 난 아이가 병들어 죽음의 고비에 서있을 때에도 자신의 죄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을 회개하며 성전에서 금식하는 가운데 그 아이가 숨을 거두기까지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

성경에서 죄를 범한 후 다윗만큼 철저히 회개한 인물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범한 큰 죄인이라도 회개하면 회개하지 아니한 작은 죄인보다 의롭고 더 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먼저 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탕자의 비유를 보면,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가 허랑방탕하며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이 아들을 보며,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들이라며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기뻐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던 큰아들은 몹시 화가 났습니다. 사실 아버지의 재산을 다 말아먹은 작은아들의 죄가 더 많은지 모르지만,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회개함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안하면 죄인지 압니다. 그러나 하라고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역시 죄입니다. 우리가 비록 직접 간음죄나 살인죄를 범하지 않았고 남의 것을 도적질을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ꡒ부모를 공경하라. 이웃을 사랑하라ꡓ고 하셨는데 하지 않으면 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별로 죄의식이 없어서 그런지 이런 문제를 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큰 아들은 형으로서 아우를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우가 돌아왔을 때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탕자의 형은 불효자식입니다. 우리 자신도 큰 아들과 같지는 않습니까?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은 겸손하며 남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더 큰 죄인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가장 죄인의 취급을 받은 사람은 창기와 세리였습니다. 마태복음 21:3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창기들이 바리새인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손가락질하고 천대하던 세리와 창기들이 비록 큰 죄인이지만, 회개하고 예수님 앞에 돌아왔기 때문에 아무리 죄가 많아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이나 장로들은 스스로 잘났고 의롭다고 여기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죄가 많아서 지옥에 갈 것 같은 사람도 회개하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열매는 겸손입니다. 진심으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면 겸손한 자가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함부로 남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의 죄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ꡒ나 같은 죄인이 감히 누구를 판단하고 비판하겠는가?ꡓ 그러나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비판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7:1-2절에서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죽어 마땅한 죄인인지 알기 때문에 잘 참고 잘 견딥니다. 사무엘하 16장을 보면,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피신을 할 때,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더구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울 집안의 시므이라고 하는 자가 다윗을 보고 돌을 던지며 저주하고 악담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다윗의 신하가 분개하여 저를 죽이게 해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내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갚아주시리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맡깁니다. 다윗의 이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회개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은 남을 비판하지 않고 어떠한 고난이 와도 달게 받습니다. 자기 죄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고난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온갖 못된 짓을 하던 사람이 지난 날을 뉘우치며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예전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이 사람을 안 죽을 만큼 구타했습니다. 그러나 맞는 동안 그는 절대로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한참 때리던 친구들이 이상해서 왜 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ꡒ나 같이 못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매를 맞으시고 고난을 당한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고, 나도 예전에는 이와같이 무죄한 자를 공연히 때린 것이 생각나 부끄러워 눈물이 나오고, 자네들이 아직 죄를 깨닫지 못하고 이런 악한 일을 계속하다가 장차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것을 생각하니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네ꡓ 이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아 그의 옛 친구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마귀의 자녀로 어두움에 속해 있었으나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