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하는 교회여 회개하라

타협하는 교회여! 회개하라/계2:12-17

타협하는 교회여! 회개하라
계2:12-17





들어가는 말

조직신학에서 교회의 특징을 말할 때 네 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교회의 사도성, 교회의 거룩성, 교회의 보편성, 교회의 통일성 등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교회의 거룩성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신부로 섬기는 성결하고 거룩한 신부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면에서 거짓된 가르침과 사상으로부터 거룩하고 성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도덕적이고 육신적인 면에서도 온갖 죄악과 유혹으로부터 자유해야 하며 참된 성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 주님의 말씀의 빛에 거하며 하나님을 반영하는 성결하고 향기나는 신부의 삶을 교회는 살아야 합니다. 이럴 때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능력있는 교회로 설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내적으로도 성도들과 교회들이 성령의 능력안에서 충만하고 능력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교회가 거룩을 잃는 순간에 세상을 향해서 또 내적으로 힘을 잃게 되고 무기력한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은 온통 우상과 거짓과 죄악으로 충만한 세상입니다. 사단은 교회를 타락시키고 힘을 제거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회와 성도들을 유혹하는 시대입니다. 합리화와 문화와 지혜라는 명분으로 교회를 쉴새 없이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단마귀는 배고파 우는 사자처럼 교회를 삼키기 위해서 찾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할 소아시아 일곱교회 중에 버가모 교회가 바로 교회의 거룩을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여 거룩을 상실한 교회가 바로 버가모 교회였습니다. 이처럼 타협하는 버가모 교회를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버가모 교회의 상황과 칭찬

버가모 도시는 아시아의 수도로 명성을 날리는 곳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편지를 쓰고 있는 당시에 이미 300년동안 수도로 있었던 곳입니다. 무역과 상업적인 면에서는 에베소나 서머나를 따를 수는 없었지만,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이 버가모 도시는 특히 종교적으로 유명합니다.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서 가장 우상숭배가 성행한 곳이었습니다. 수많은 이교의 신전들이 있었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아테네 신전과 제우스 신전이 바로 이 버가모 도시에 있었습니다. 또 아스클레피오스라는 뱀을 치유의 신으로 숭배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리이스의 문화와 교육과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도시는 이교와 이교사상의 온상지와 같은 도시였습니다.

특별히 로마 황제를 신으로 추대하여 섬기는 황제의 위가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황제숭배를 위한 위를 사단의 위라고 부릅니다. 13절입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나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러지 아니하였도다\\\". 버가모 도시에는 황제숭배를 위한 제단을 세워놓고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도시였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에서도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강요당했고 그 때문에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의 제물로 드려졌듯이, 지금 버가모 교회의 형편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우상의 소굴과 사단의 소굴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심지어 믿음을 지키다가 황제숭배를 위해 세운 사단의 위에서 안디바라는 사람이 순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버가모 도시는 사단마귀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도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교의 사상과 종교의 한복판에서 버가모 교회는 믿음의 정절을 굳게 지켰습니다. 순교의 상황와 위협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책망-타협하는 교회

그런데 믿음의 정절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책망하는 내용을 통해서 우리는 버가모 교회가 믿음으로 승리하지 못하고 얼마 가지 않아서 세상과 타협하고 타락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버가모교회에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으며,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버가모교회는 이런 유혹에 넘어갔으며 작당히 타협하고 양보하는 방법으로 세상으로부터 오는 핍박과 환난을 피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 적당하게 그리고 교묘하게 거짓된 가르침이나 주장에 동조하고 타협을 통해서 평화를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런 타협의 결과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거룩을 유지하지 못하고 주님으로부터 큰 책망을 받고 있습니다. 14-15절입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버가모 교회가 타협했던 발람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또 니골라당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발람의 교훈이나 니골라당의 교훈은 그 성격과 내용이 비슷합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대적했던 모압 왕 발락에게 고용되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큰 해를 입게 했던 거짓 선지자입니다. 발람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데서 타락해서 우상을 섬기게 하고 우상숭배의 결과인 성적인 타락을 조장할 수 있는 비결을 알려준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와 성적인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큰 징계를 받게 했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나라에서 이스라엘을 넘어지게 해서 이스라엘로 큰 상처와 손해를 입게 했던 발람처럼, 그 정신을 따라서 버가모 교회를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교회를 향해서 우상제물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우상제물을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교회와 성도는 구원을 확보했기 때문에 육체를 통해서 어떤 성적인 범죄를 해도 구원에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육체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하며 우상에 대해서 자유로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미혹했습니다. 이런 교훈이 바로 발람의 교훈이며 니골라당의 교훈입니다. 그 결과 교회가 미혹되었고 이들의 주장에 타협하고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교훈들은 황제숭배사상 즉 사단의 위에 경배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황제숭배사상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발람의 교훈이나 니골라당의 교훈은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교회에 오는 압박과 부담을 줄여주는데 아주 그럴듯한 주장이며 매력이 있었습니다.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좋은 대안처럼 여겨졌습니다. 우상숭배와 우상숭배의 절정인 성적인 유희를 즐기는 자리에 참여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교회에 이들의 주장은 상당한 매력으로 작용했습니다

.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우상숭배의 장소에 참여하고 그들과 친교를 누리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이런 것이 생명과 구원에 하등의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은 교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히려 이런 우상숭배와 육체적인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우면 자유로울수록 믿음이 장성한 증거하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결과 교회는 지혜롭게 한다는 명분아래서 세상과 타협하였고 타락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정절을 버리고 세상과 타협하고 타락한 버가모 교회를 주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심판하심

그리고 주님께서는 교회를 향해서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16절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주님을 주로 시인하는 일 때문에 고통과 환난을 당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교회를 향해서 주님께서는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일에서 벗어나서 복음의 바른 원리안으로 되돌아오라는 촉구입니다. 니골라당의 거짓된 교훈을 더 이상 따르지 말고 주님의 복음을 순종하는 길로 돌아오라는 간곡한 주님의 권면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신부로서 더 이상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거룩한 정결을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이런 간곡한 부탁과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거짓 유혹을 따르는 자들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십니까? 주님의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의를 행하며 거짓된 유혹을 따르는 자들과 싸우시고 그들을 치시겠다고 하십니다.

안으로는 거짓을 따르며 거짓을 조장하는 불의한 자들을 지실 것이며, 밖으로는 교회를 미혹하는 발람의 당과 니골라당과 싸우실 것입니다. 주님이 싸우실 도구인 입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 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히브리서 4장 12절에서는 말씀합니다.

타락하여 거룩을 상실하여 어두움 가운데 있는 버가모교회를 밝힐 수 있고 승리를 줄 수 있는 힘은 올바른 진리의 말씀 뿐입니다. 불의와 사단과 거짓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붙잡는 길만이 교회가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교회가 비진리를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뿐입니다. 이 진리의 말씀이 날카로운 검이 되어 거짓을 만 천하에 드러내며 거짓을 일삼은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죽일 것입니다. 만약 계속해서 버가모 교회가 주님의 회개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람의 교훈을 따르며,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른다면, 주님의 심판의 칼날 앞에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회개하고 이기면, 만나와 새 이름을 주심

그러므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라는 의미는 처음에 버가모 교회가 주님을 위해서 행했던 그 충성을 회복하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버가모 교회가 어떻게 충성했습니까? 사단의 위가 있는 도시에 거하면서 세상으로부터 온갖 고난과 환난을 당하는 교회였지만,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았습니다. 버가모 교회 성도 중에서 안디바라는 사람은 믿음 때문에 순교의 제물로 드려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처럼 처음에 주님을 위해 순교까지 당하면서 행했던 그 충성된 삶으로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교회가 회개하고 돌아오면 주님의 어떤 약속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거짓된 가르침으로 유혹하는 자들과 세상을 향해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에게 주어질 약속이 무엇입니까? 17절입니다.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회개하고 이기는 자에게 주님께서는 두 가지를 약속합니다. 하나는 감추었던 만나이며 또 하나는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입니다. 감추었던 만나는 주의 성찬을 의미합니다.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은 그들의 회개를 받아주시고 구속된 새 이름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더 이상 귀신의 상과 하나님의 상에 겸하여 참여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회개하여 돌이키면 참된 성찬을 회복시키며 그들의 구원된 새 이름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모습-날선 검을 가진 분

그래서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세상과 타협하여 교회의 거룩성을 잃고 타락한 교회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분으로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16절에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시리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거짓과 타협해서 진리를 버리고 혼란한 교회에 오셔서 진리와 거짓을 분명하게 구분하시고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시키실 분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자를 심판하시고 진리 편에 있는 자들에게 하늘의 만나와 새 이름으로 축복하실 심판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진리를 벗어나서 거짓을 추구하는 교회와 성도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함께하시는 주님께서 분명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초대교회 당시에 버가모 교회를 여러 가지 거짓된 철학과 교훈으로 미혹해서 어두움에 빠뜨렸던 사단은 지금도 주의 교회를 미혹하기 위해서 온갖 꾀를 짜내고 있습니다. 배고파서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다니고 있는 시대입니다. 할 수만 있으면 주의 교회를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하는 시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혹시 우리 새백성교회와 성도들이 세상과 타협한 부분이 없나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진리와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길은 주의 복음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사상과 싸워서 진리를 수호하고 믿음으로 충성하는 거룩한 주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거짓과 싸우고 이길 수 있는 길은 주님의 말씀의 검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버가모교회를 위해서 좌우에 날선 검으로 함께하셨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 새백성교회를 위해서 입의 말씀의 검으로 지키시며 악한 자들과 싸우십니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주의 말씀의 예리한 칼날을 가지고 거짓을 구분해내며 진리를 수호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문화라는 이름과 명분으로 온갖 거짓된 가르침과 철학이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특히 성적인 문란함과 타락상이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무디고 흐리게 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오늘날을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 말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만을 진리하고 말하며, 복음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복음의 진리를 수고하고 충성하는 자들을 극단주의자들로 모는 실정입니다. 온갖 실용주의 철학이 전 세상을 지배하고 있어서 진리와 거짓의 구분보다는 어떤 것이 더 효과가 있으며 실용적이냐에 따라서 진리와 거짓이 판단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은 더더욱 바른 판단과 진리 편에 서는 것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그들의 논리에 미혹되고 진리를 떠나서 타협하고 타락하기가 쉬운 시대입니다. 이런 모든 사상과 시대상과 거짓을 구분해내고 분별해낼 수 있는 비결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그 빛을 따라서 역사와 삶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어떻게 그 장구한 구원의 역사를 섭리하시고 경영해보였으며, 드디어 아들안에서 완성하셨는가 하는 구원역사적인 시각을 통해서만 분별이 가능합니다. 늘 믿음으로 깨어서 사단마귀의 꾀를 물리치고 진리 편에서 주님께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새백성교회와 성도들에게 감추었던 하늘의 만나를 주실 것이며,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생명의 기업으로 주실 것입니다. 계시의존적인 신앙, 말씀의 지배를 받는 신앙, 구속사적인 바른 성경해석에 바탕을 둔 믿음의 삶을 사는 거룩한 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머리만 있고 뜨거운 가슴과 행동하는 발이 없는 기형적인 신앙이 아니라 지정의가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이루는 건강한 교회와 성도 말입니다. 믿고 고백하는 말씀대로 사는 정결한 신부의 삶을 사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