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면 회복이 됩니다 삼상7:3-12
사무엘이 드디어 엘리 제사장의 오랜 공백을 대신하는 첫 번째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현재 상황은 최악의 상태입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무참하게 패배를 하였고 특별히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마저 빼앗겼습니다. 더구나 엘리 제사장과 그 가족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백성들은 뿔뿔히 흩어졌고 이스라엘 전지역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습니다. 아마도 실로에 있는 성소역시 무너졌을 것입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모두 숨어버렸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엘리의 며느리요 비느하스의 아내는 산고를 겪다가 숨을 거두면서 아들의 이름을 “ 이가봇“ 이라고 부르면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이 사라졌다고 탄식하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렇게 비참한 상황에서 사무엘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되고 온전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사무엘에게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 것입니다. 어느것 하나 성한것이 없습니다. 그럴때에 선지자로 등떠밀려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신이나서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도다” 좋아라 하였겠습니까? 저같으면 도저히 자신 없습니다. 모든 조건을 챙겨 준다해도 잘 할수 있을지 자신 없습니다. 백성의 앞에서 지도자로 선다는것이 얼마나 무모한지 알아야 합니다. 요즘 대권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모두 자기가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 나라를 새롭게 바꾸겠다고 장담하면서 지지를 호소 합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렇습니까?
모세는 호랩산에서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가서 내 백성을 애굽에서 구하라는 사명을 받아습니다. 모세가 “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저를 사용하시는군요 맡겨 주십시오” 이렇게 좋아했습니까? 제가 읽어본 성경에는 그런부분이 없습니다. 안가겠다고 고집하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설득하시고 협박까지 하시면서 등떼밀어서 보냈습니다. 사무엘역시 좋기만 했을까요? 두려운일입니다. 겁나는 순간입니다.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연약함을 아뢰었을것입니다. 그길외에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사무엘은 이 백성들을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를 도와줄 아무런 도우미가 없었습니다. 사무엘의 삶을 보면 그는 오로지 하나님께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사무엘을 사무엘 되도록 하는 힘이었습니다. 기도 자체가 힘이 아니라 기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할 때 실체가 보입니다. 우리힘으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결코 숨어있는 적을 볼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에게는 보입니다. 보여 주십니다. 볼 수 있도록 주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을 구할 때 이 백성들의 실체가 보였습니다. 지도자는 먼저 스스로를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그의 온 마음이 하나님을 향할 때 그를 인도하시기에 그렇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가 겸손하게 하나님을 구할 때 그의 하는 모든 행사를 주게서 만지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그의 첫 메세지가 무엇입니까?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그렇습니다. 엘리와 사무엘의 다른점이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사무엘은 백성들의 영적인 부패와 혼합된 신앙을 발견한 것입니다. 엘리는 하나님을 구하지도 않았고 영적으로도 나태한 결과 한나의 기도를 술취한 것으로 보았고 아들들의 범죄함을 소홀하게 보았고 백성들의 영적인 무지함도 몰랐으며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도 깨달을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어린 사무엘을 아끼고 종교적으로 잘 가르치기는 했지만 정작 하나님앞에서 스스로를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직분자들이나 일반 성도들이나 사역자들에게 동일하게 요구되는 진지한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는데 혹시 게으르지는 않습니까? 사람을 구하고 인재를 구하고 시스탬을 구하는 일에는 열성이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구하는 일에는 소홀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습니까? 이것은 저 자신에게도 늘 질문해야할 물음입니다. 오믈 이시대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구하는 성도들이 있습니까?
사무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게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한결같은 선포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오로지 여호와께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이 백성들은 그동안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각종 제사와 절기를 성심껏 준비하였고 구별하였고 제사장을 따라서 다했습니다. 종교적으로 이 백성들만큼 하나님을 섬길 백성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넘치게 하였는데 그것이 하나님과 상관없는 오히려 가증하고 악한 죄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백성들의 마음에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이 함께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구별되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거룩하게 부름을 받았습니다. 애굽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홍해를 통과하면서 온갖 죄악을 씻어버리고서 시내산에서 세움을 받은 민족입니다. 가나안을 약속받은 그리고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겨서 듣고 순종하면 받을 복을 약속을 받았습니다. 너희가 들어가서 얻을 땅에서 이방민족의 섬기는 신을 본받지 말고 그들의 가증한 풍속을 따라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받았던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이방신들을 받아드렸고 여호와도 섬겼습니다. 이것이 곧 혼합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에서 살지만 석이면 안되는 존재입니다. 구별되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특히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닮아서는 안되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피값으로 살림을 받은 성도들이 교회입니다. 성도들의 삶이 이방신을 버리고 아스아롯을 버리고 세상 풍조에 물들지 않아야 하며 하나님앞에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연결된 지체로서 그 안에서 성령을 통해 든든하게 지어져 가는 존재들입니다.
사무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첫 선포는 분명 옳은 것입니다. 그동안 꾸준하게 선지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오늘날도 분명 회개의 선포는 주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도자가 바르게 선포를 하여도 그것이 백성들의 영혼을 울려야만 반응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셔야 합니다. 우린 알 수가 없겠지만 사무엘의 선포를 듣고서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반응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이스라엘의 국민적인 회개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사무엘의 힘으로 이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신실한 백성들이 각 처소에서 기도의 골방에서 눈물의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나라와 민족의 거룩한 회복을 위해 작은 믿음의 씨앗들이 몸부림을 쳤을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럴수 있는 마음을 주께서 부어 주셨기에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나를위하여 끈질기게 기도한 사람이 있다는걸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님께서 기도하고 계시는걸 아시는지요. 사단이 밀 까부르듯이 베드로를 청구했을 때 주님께서 ‘내가 너를 위해서 기도했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회개를 시작하자 사무엘이 두 번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미스바로 가자는 것입니다. 기도의 불이 붙었을 때 더욷 힘껏 하자는 것입니다. 미스바는 넓은 광장입니다. 거기는 피할 곳도 없고 숨을 곳도 없습니다. 평평한 곳입니다. 이 곳에서 이스라엘은 통회하며 금식하며 자복하였습니다.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회개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원해서 할수 있는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셔야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한다는것은 전심으로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회개가 곧 시작입니다. 회개가 곧 회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온전하게 낮추고 겸손하게 구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온전하게 하나님앞에 엎드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도할수 없습니다. 아직도 나에게 어떤 기대가 있다면 포기하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을 때는 기도가 안됩니다. 기도할 마음도 없습니다. 그것을 의지하기에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로 모였다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갖은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칼이나 창을 들고 방패를 들고 왔겠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사단은 거세게 공격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하게 순종할 때 사단은 더욱 기승을 부립니다. 우리가 기도한다고 해서 모든 어려움이 즉시 해결되는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스바로 모였다는것을 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공격하려고 몰려왔습니다. 이들은 벌써 이십년전에 법궤 때문에 고생한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엄중하심을 당한것을 잊어버리고서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고 달려온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은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사면초가에 몰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간청을 합니다.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위기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앞에 온전하게 엎드린 이스라엘은 갑자기 공격해오는 블레셋을 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때 지도자 사무엘을 중심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다 죽은것입니다. 망할 순간입니다. 그렇지만 이미 하나님앞에서 이방신과 아스다롯을 재거하고 온전하게 회개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 맞긴 백성들입니다. 사무엘은 간절하게 하나님게 기도하였습니다. 모두가 틀렸다고 할 그 때에 사무엘은 하나님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엿습니다.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온전하게 예배할 때 우리를 공격하는 악들은 크게 당황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막아주십니다. 우리의 온전한 회개가 하나님앞에 행하여 질 때 위경에서 건져주십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들어내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회개할 때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사무엘을 통해서 주시는 가르침입니다. 어려울 때가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는 회개하는것입니다. 우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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