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한 자 만이 누리는 복


회개한 자 만이 누리는 복
막6:7-13


1.들어가는 말

요즘 몇 몇 신문사에서는 독자확보에 나서서 적극적인 홍보를 하고있습니다. 이 사람들의 홍보방법은 이렇습니다. 먼저 신문 얘기를 꺼내기 전에 좋은 선물을 몇 개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그냥 줍니다. 주면서 \"이거 공짜입니다. 그냥 드리는 것입니다\"하고는 상대방이 받으면 얼른 \"신문 보십니까? **일보로 한번만 바꿔보시죠\", \"3개월은 그냥 넣어드리고 다음 달부터 내면 됩니다\"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선물 받는 것 때문에 신문을 구독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먼저 좋은 것을 주고 나중에 원하는 것을 얘기합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좋은 것부터 쥐어줘야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입니다. 사람을 속이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나쁜 것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것을 말하기 이전에 나쁜 것, 정리해야 할 것을 먼저 말합니다. 이것이 정리되면 좋은 것은 당연히 오게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 죄에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전능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산다는 것 이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資 복입니다. 그러나 이런 복을 받기 이전에 먼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막는 것들을 정리해야 합니다.



2. 본문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12제자를 부르셔서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12절을 보시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이 말씀을 읽다보면 좀 의문이 갑니다. 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복\'부터 말하지 않고 \'회개하라\'는 말부터 했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서 받는 복부터 말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제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전도의 결실도 좋고, 핍박도 받지 않을 것인데 어리석게도 \'회개하라\'는 말부터 외쳤단 말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외치셨고, 세례요한도 이렇게 외쳤고 많은 주님의 제자들도 이렇게 외쳤단 말입니다. \'회개하라\'라는 말 듣고 기분 좋은 사람 많지 않을 것입니다. 왜 그 많고 많은 축복의 말들을 놔두고 듣는 자에게 거부감이나 부담감을 주는 \'회개하라\'는 말부터 외쳤습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비판합니다. \'회개하라\' 부터 외치니까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회개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회개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축복에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회개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복을 복 인줄 모르고, 손에 쥐어 줘도 못 누립니다. 인간이 바뀌지 않았는데 어떻게 복을 복답게 누릴 수 있겠습니까?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하나님의 사람되는 표시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문턱입니다. 이렇게 회개한 자에게만 하나님의 복은 부어지는 것입니다.



본문의 구조를 보십시오. 12절에서 회개하라 외쳤고 13절에서는 많은 귀신을 좇아냈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쳤습니다. 회개가 되니까 귀신이 나가고 병 고침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이 회개할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사람이 회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성경을 통해 볼 때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사람을 괴롭히던 더러운 귀신들이 떠납니다.

--방언이 터집니다. 은사가 부어집니다.

--병이 낫습니다. /영안이 떠집니다./능력을 받습니다./첫사랑을 회복하게 됩니다.

--영적 분별력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회개의 기본은 죄인이 하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분명한 방향전환입니다. 하나님이 죄인 안에 들어와 사시면서 비로소 새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또 회개는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것을 내보내고 하나님의 것, 신령한 것, 깨끗한 영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회개가 되면 하나님의 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은혜는 회개하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듣기 싫은 말이 아니라 복된 말입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란 말은 헬라어로는 \'메타노니아\'라는 말입니다. \'방향을 바꾼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마음을 고치다\'라는 뜻을 가진 \'메타노에오\'란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람이 바꿔질려면 먼저 마음이 바뀌어야 합니다. 마음이 바꿔져야 삶의 방향도 바꾸게 됩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합니까?

--불 경건한 삶에서 경건한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의심과 불순종에서 신뢰하고 순종하는 삶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살전1:9)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도 없이 자기만 믿고 살아온 사람이 이제 하나님을 믿고 그 믿음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응 책에서 회개라는 말보다는 믿음이란 단어를 더 잘 사용했습니다.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가는 것입니다.



왜 회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왜 회개가 필요할까요? 회개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1)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는 회개한 자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냥 죄 있는 모습 그대로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는 멀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천국은 하늘나라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도 있습니다. 회개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평안과 기쁨과 유쾌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죄의 노예가 되고 죄책감과 불편함으로 인해 마음이 지옥 같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천국입니까? 지옥 같습니까? 똑 같은 땅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은 천국같은 삶을 사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국을 원하십니까? 회개하십시오..

3)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막1:4\"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죄 사함은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잘못했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매가 필요 없습니다. 이제 용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 없다고 버티는 사람에게는 매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용서받는 기쁨, 이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이 자유와 기쁨을 누리기 원하십니까? 방법이 있습니다. 회개하십시오.

4)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눅15:7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습니다. 죄인이 회개할 때 하나님은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천사들을 불러서 소리치십니다. \"저기 아무개를 보라 지금 회개하고 있다\". 여러분으로 인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십시오.

5)첫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나님 알고 믿었을 때의 그 기쁨과 감격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 때문에 교회에 나온다면 여러분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첫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은 회개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깊이 회개하다보면 마음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용솟음치고 살아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십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회개는 첫사랑을 회복하는 방법이지만 동시에 다시 하나님께 쓰임 받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회복되지 않은 사람을 쓰신 일이 없습니다. 사랑 없이 일하는 사람은 어려움이

오면 포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6)성령이 일하시는 증거입니다.

고후7:10을 보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성령께서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하시지 후회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물론 일시적이 후회는 있지만 곧 회개하여 새롭게 만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한 후 회개해서 다시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를 쓰시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한 자를 쓰십니다. 자신의 한계, 실패를 두려워 마십시오. 대신 문제가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가룟 유다는 후회는 했지만 회개는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회개의 영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버린 자식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못합니다. 그러나 택하신 자녀는 회개합니다. 여러분이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여러분의 삶에 성령께서 일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의 감동 없이 회개 못합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주셔야 가능합니

다.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1)첫사랑을 잃어버린 것(계2:5)

2)신앙의 열심 내지 못한 것(계3:19)

3)음행, 도적질--십일조, 죄(계16:9)

4)우상 숭배

5)믿음으로 살지 않고 기분대로 살았던 삶

6)고집, 강팍한 마음, 불순종

7)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삶

8)하나님을 위해 포기하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것



회개치 않으면?

만일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본문을 통해 알아봅시다. 11절을 보십시오.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치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랍비들의 규정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 지역을 지나는 여행을 다녀오면 성지에 들어오기 전에 신과 옷에 묻은 먼지까지 떨어내 버려야 합니다. 이방인이 사는 땅은 부정하기 때문에 그 상태로는 성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모든 부정을 다 떨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일지라도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치 않으면 부정한 이방도시 사람들처럼 취급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비록 유대인이지만 복음을 거절했기에 죄인처럼, 불결한 사람으로 간주해 버리는 것입니다. 죄인 중에 가장 큰 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회개할 기회를 거절하는 사람, 하나님을 영접치 않는 사람입니다.



유대인이라는 자부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선택받은 백성이 복음을 거절했다면 이방인 보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심판 받을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동에는 두 가지 상징적 의미가 더 있습니다.

1)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분노가 그들 위에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사람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절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전도자들을 보낸 것은 바로 예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누가 제자들을 보냈습니까?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절한 것이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습니다.



2)그들의 선택에 대해 책임이 그들 자신에게 있습니다.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믿지 못했다면 그것은 먼저 믿은 자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듣고도 믿지 않았다면 이것은 들은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전도자는 책임 없습니다.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이제는 모든 책임이 전도자에게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회개한 자의 책임

그렇다면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의 책임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십시오.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전도자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고,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는 것입니다. 직접 몸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든지 아니면 복음 전하는 자들을 돕든지 어떤 모양으로든 복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지상 최고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복음을 위해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을 혼자만 갖고 나누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를 때는 세상 적인 명예나 화려함, 또는 꿀리지 않기 위해 돈을 모았습니다. 즐기기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받아들인 다음부터는 이렇게 살지 않습니다. 방향이 달라집니다. 왜 돈 벌어야 하는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왜 그 방면에 탁월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목표가 분명해 집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박사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었는데 \'당신은 왜 교수가 되었습니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수가 되어 많은 학생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고상한 마음입니까? 자기를 드러내거나, 학식을 자랑하거나 지위를 자랑하려고 교수가 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가 받은 복을 나누어주고 싶어서 교수가 되었습니다.



진정 회개한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해 삽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자의 삶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위해 살고 싶다면 몇 가지 명심할 것이 있습니다.

1)그 방면에서 최고가 되십시오.

여러분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1등이 되십시오. 하나님은 2등도 기억하시고 꼴찌도 쓰시지만, 사람들은 1등 짜리의 헌신에 감동을 받습니다.

2)섬기는 자의 태도를 가지십시오.

남을 섬기지 못하는 실력은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많은 실력 있는 사람들이 섬김의 태도를 갖지 못해 그 실력으로 여러 사람 눈물 흘리게 만들고 상처 줍니다. 살리는 실력이 아니라 좋戮甄 실력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3)평소에 복음에 헌신하십시오.

헌신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일은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은 마음이 있어도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일, 훈련이 되어있어야 합니다.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 역시 훈련이 필요합니다. 복음전하는 것,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것도, 평소에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막상 상황이 되어도 안됩니다. 좋은 군사는 어려운 훈련을 거치면서 만들어집니다. 신앙은 훈련입니다. 훈련받은 사람들이 결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제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철저히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훈련되지 않은 신앙은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괜찮은데 막상 어려운 상황에 가면 전혀 신앙적인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훈련은 순발력을 길러줍니다. 위기에 처하면 순간적으로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영적으로 훈련된 사람은 위기에 처하면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을 찾습니다. 회개합니다. 그러면 어떤 시험이 와도 이기게 됩니다. 그런데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무릎 꿇어야 할 때 버팁니다. 회개해야 할 때 고집부립니다. 멈추어야 할 때 더 빨리 갑니다. 절제할 때 욕심을 부립니다. 이것은 망할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훈련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적응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제가 새 신자 과정 양육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에이 그 정도쯤이야 내가 예수를 몇 년 믿었는데 새 신자 과정은 지났지\' 하면서 가볍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다보면 자신이 너무나 모른 다는 사실 앞에 겸손해 집니다. 또 기본기를 다지다보니까 신앙의 틀이 다듬어 집니다. 그러면서 신앙에 자신감을 회복해 갑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이미 알았던 것을 다시 점검하면서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갖습니다. 그러면서 더 큰 은혜의 바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들 안에서 영적 민감성과 순발력이 회복되는 것을 봅니다. 마귀의 유혹에 대해 대응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이것이 훈련의 효과입니다.



3. 맺는 말

회개는 듣기 싫은 말이 아니라 사실 복이 되는 말이요 살리는 말입니다. 회개하라는 말이 거북하게 들리는 것은 아직 자라지 못한 신앙입니다.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은 믿는 자의 복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천국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살아 계십니다. 죄 사함의 기쁨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를 쓰십니다. 첫 사랑을 회복합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고 계십니다. 회개하십시오. 천국백성으로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