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회개하라
마3:1-12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신성 로마 제국을 가장 오래 다스린 왕조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입니다.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가 신성 로마 제국을 오래 다스렸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가면 제국 박물관이라는 아주 큰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박물관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전시가 되어 있는데, 특별히 유명한 그림이 한 장 있습니다. 저는 그 박물관에 여러 번 갔지만, 많은 그림 가운데 있었던 그림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는데, 거기 유명한 로마의 데오도시우스 황제와 밀라노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 사이의 논쟁을 벌이는 장면의 그림이 한 장 있다고 합니다. 이 로마의 유명한 황제였던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하루는 밀라노에 있는 밀라노 교회에 방문을 하게 되고, 교회를 들어가려는데 이 밀라노 교회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가 교회 문 앞을 막고 서서 당신은 죄인이니까 이 교회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며 그 황제를 교회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저지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의 배경은 로마의 유명한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AD 390년에 그리스 데살로니가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무고한 양민들을 1500명 학살을 한 사건입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한 이후였기 때문에 교회의 위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는 이 로마 황제를 죄인으로 정죄를 했습니다. 정죄받은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밀라노에 있는 교회를 들어오려고 했을 때, 그 교회의 주교였던 암브로시우스가 당신이 회개하지 않고는, 죄인이기 때문에 이 교회당 안을 들어올 수 없습니다 하고 막아 서는 그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어디 나만 죄인이냐, 성경에 보면 다윗도 죄인이었는데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느냐 나도 들어가겠다 하면서 버텼습니다. 그러니까 이 암브로시우스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당신은 다윗의 죄를 모방하려고 합니까? 당신이 다윗의 죄를 모방하겠다고 한다면, 다윗이 한 회개도 당신이 모방하고 다윗처럼 회개를 하십시오. 그러지 않은 이상 당신은 이 교회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고 막아섰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 데오도시우스 황제도 그 많은 신하들이 보는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데오도시우스 황제를 교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섰던 암브로시우스라는 사람은 훗날 기독교의 성자로 추대되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 암브로시우스라고 하면 잘 모르실 거예요.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 또는 어거스틴이라는 중세의 유명한 철학자가 있죠? 타락한 삶을 살았던 어거스틴을 회개시키고 회심시켰던 사람이 이 암브로시우스라는 사람입니다. 이 암브로시우스는 대단한, 불같은 성격을 가진 그런 성직자였습니다. 그래서 로마 황제의 위세도 결국은 이 암브로시우스의 회개를 촉구하는 외침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회개를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암브로시우스가 남긴 말 가운데 교회도 천국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 교회도 천국도 반드시 회개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 기독교 교리적인 입장에서 봤을 땐,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만, 여러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 올 수 없느냐?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여러분 회개하지 못한 죄인들이 교회와서 말씀듣고 또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고 회개하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백성이 되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은 오늘 2절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면서 세례 요한이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이렇게 세례 요한의 외침을 통해서 여러분 6절을 보시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세례 요한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이 설교 말을 듣고 많은 그 당대의 사람들이 요단 강변에 나와서 자기 죄를 다 자복하고 세례를 받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한 장 넘어가서 4장 17절을 보시면,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예수님이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면서 처음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이 말씀은 2000년 기독교 역사에 가장 핵심적인 화두였습니다. 기독교가 기독교다운 것은 바로 이 시대를 향해서 이 죄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외침이었습니다. 기독교가 만약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천국 복음을 외치지 않으면 그 기독교는 이미 죽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설교단에서 설교자가 교인들을 향해서 이 세상을 향해서 회개하라는 회개의 촉구가 점점 줄어듭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하고 회개하라는 말은 설교의 핵심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회개하라는 촉구는 한국 교회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하면서 오늘 이 본문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세우기를 바랍니다. 목사의 외침이 회개하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례 요한이 그렇게 외쳤고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그 시대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를 향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외치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회개란 무엇이고, 왜 회개를 해야하고, 우리가 무엇을 회개하고, 또 우리가 어떻게 회개해야 하는가 하는 점들을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회개라는 말은 구약에서는 회개라는 용어를 나캄, 또는 슈버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나캄이라는 단어는 후회한다 라는 의미가 강하게 있고, 슈버 라는 단어는 돌이킨다, 돌아온다, 전환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신약에서의 회개라는 단어는 메타노에오 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 그러니까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구원이라는 중요한 핵심 개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원받는 가장 기본적인 가장 전제가 되는 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언제인가부터 모르게 우리 한국 교회 안에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생활을 통해서 신앙 생활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회개하고 내 심령을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나 한 해 지나고, 두 해 그렇게 지나고, 세 해 그렇게 지나고, 십 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그러면서 교회 직분을 받고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교회 직분을 가졌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근본적인 회개를 하지 않고 신앙 생활이라는 이름으로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국 교회가 하나님 앞에 강퍅한 심령을 그대로 가지고 가증스러운 종교적인 의식만 반복하고 있는 그런 경우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내 심령에 나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하고 철저하게 회개하지 않은 분이 있다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이 시간 이 말씀을 통해서 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죄로부터 내 자신을 돌이키는 그런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극동방송을 청취하는 많은 청취자들께서 회개라는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그리고 변화된 나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회개했다, 나는 예수 믿는다 그러면서 교회를 가지 않습니다. 주일날 교회가서 예배드리지 않고 방송만 틀어놓고 설교만 듣고 내가 신앙 생활 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엉터리 기독교인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에 따르는 나의 삶이 뒷받침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회개는 지적인 요소, 감정적인 요소, 그리고 의지적인 요소가 종합되어져서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적인 요소는 나를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았을 때, 나는 죄인이다 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단계가 지적인 회개의 단계입니다. 두 번째 감정적인 회개의 단계는 내가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내가 지은 모든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고 감정적으로 내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그런 절차입니다. 그 다음 의지적인 회개의 요소는 내가 내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통회하고 자복할 뿐만 아니라 그리고 내가 죄된 삶으로부터 내 자신을 완전히 단절시키고 그 죄로부터 돌이켜서 새생명으로, 새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늘 죄만 회개하고 자복하면서 그 사람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가 아니라는 겁니다. 회개를 흉내내고 있을 뿐이지 진정한 의미에서 그 사람은 회개한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바람을 피웠습니다. 자기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여보 내가 정말 잘못했소. 다시는 내가 이런 못된, 잘못을 안지을 게\'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을 끊고 그 죄된 삶으로부터 돌아서야 합니다. 그런데 또 얼마 지나면 또 그 짓을 하고, 또 얼마 지나면 또 그 짓을 하고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흉내만 내고있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여러분 이 설교를 통해서 회개와 후회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면서 회개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 후회는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야 그리고 나의 변화된 삶이 뒷받침되어져야 만이 진정한 회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적으로 내 잘못을 시인하고 내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이것이 내적인 회개입니다. 내적인 회개에 따라서 내적인 회개도 우리 생활의 변화, 우리 태도의 변화, 내 말과 행동의 변화가 뒷받침되어 져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했다 나 회개한다. 그러면서 말도 행동도 함부로 한다면 진정한 내적인 회개가 외적인 회개가 뒷받침되지 않은 것이라고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회개한다고 울고, 통회하고 자복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날 그 시점으로부터 그 삶이 바뀌어져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바뀌어져 나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왜 회개해야 합니까?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내가 구원받을 백성이기 때문에, 내가 새 생명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여러분, 우리가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우리의 원죄와 우리의 자범죄로부터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고 모르게 지은 크고 작은 모든 죄들을 우리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죄를 회개했으면 우리는 그 죄로부터 돌이켜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회개하느냐? 죄로부터 단절, 죄로부터 청산, 죄로부터 온전히 돌이키는 것, 여러분 어떤 길을 우리가 가다가 내가 이 길을 잘못 들었구나, 판단했을 때, 주춤주춤 하면서 계속 간다면 안될 줄 믿습니다. 내가 잘못된 길을 들었다고 생각하고 이 길로 가면 멸망의 길이라고 판단했을 때, 거기에서 돌이키는 것, 여러분 우리가 교통법규를 봤을 때, 유턴하는 것. 인생에 유턴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회개인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서 줄기차게 나아가던 인생이 하나님을 향해서 내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우리가 짓는 죄들 있죠? 이 죄와 구원과 관련된 회개와는 좀 차이가 물론 있다는 것을 우리 자신들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회개하는 자의 모습은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그래서 생활의 변화, 양심의 변화, 그리고 내 삶이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한 사람은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회개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해야 하고, 하나님 뜻에 합당해야 하고, 다시는 범죄하지 않도록 애쓰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에 합당한 믿음의 열매를 맺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시에 이루어져 나갈 때 진정한 회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마디 사과는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 온전한 회개는 그 죄의 청산 절차가 한 마디로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 앞에, 또 우리 주변에, 대인관계 속에서 죄를 지었을 때 여러분이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냥 마음속으로 적당하게 얼버무리고 내가 회개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그 죄를 또다시 자꾸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어느 신부님이 구속되었습니다. 이 신부님은 전직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신부가 신부 노릇이나 할 것이지 국회의원까지 해서 무슨 그룹으로부터 10억까지 받았습니다. 본인은 그냥 받아서 전달만했다, 배달만 했다 그러고 또 검찰은 다르게 보고, 사전에 그룹 회장을 불러다가 몇 차례 돈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하기도 하고 본인은 주는 것 그냥 전달을 했다는 둥, 어떻든 간에 검찰에서 10억 이상 받은 사람들을 구속하는 원칙을 정했기 때문에 그래서 구속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이 사죄, 속죄 이런 표현을 썼으나 저는 한편으로 그 신문 기사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그 분은 신부직을 사표 내고 대학 교수직도 아마 사표 낸 것으로 알려졌는데 상대적으로 작은 허물이었지만, \'나는 사람들 앞에, 국민들 앞에 부끄럽다\' 라고 말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고 하며 철저하게 회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냥 얼버무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회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어디 나만 죄인인가, 다 죄인이다 나는 그래도 허물이 작다 저 사람은 이렇게 큰 죄를 지었고 나는 요만한 죄를 지었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똑같은 죄인인 것입니다. 도토리 키재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런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회개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가르치고 난 뒤에 아이들에게 여러분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지은 죄에 대해서 어떤 죄들을 회개할 수 있습니까? 하니까 한 아이가 손을 듭니다. \'저는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지은 죄는 발견하지 못하겠구요, 누구 누구가 회개해야 하는 것은 내가 확실히 알겠어요.\' 오늘 이 시대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바로 이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지 않을까. 나의 죄는 잘 안보이고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만 눈에 그냥 크게,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설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입으로만 회개했다. 나 모든 것 다 청산했다. 그러면서도 청산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 않습니까? 회개는 자꾸만 미루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잘못을 깨달았을 때, 내 허물이 발견되었을 때, 그 때,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회개할 것이 무엇인가? 사람들 앞에 나를 세우면 회개할 것이 별로 없어요. 나보다 나쁜 사람들이 세상에 우글우글 합니다. 그러니까 아, 나는 괜찮겠구나 그러나 거룩하시고 신령하신 하나님 말씀 앞에 내 자신을 세우면 나의 모든 허물이 다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허물을 깨닫고 그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습니다.

오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하는 이 말씀은 종말의 때, 심판의 때가 가까웠다는 그런 의미인 것입니다. 여러분 20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우주적인 종말론과 개인적인 종말론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 우주에, 이 지구에 전 인류가 다 멸망하는 종말, 주님의 재림의 날 그 날은 가까운 어느 시점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신앙적으로 알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적인 심판, 개인적인 죽음. 개인적인 종말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아침에 건장한 사람이 기분 좋게 나갔다가 저녁에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오는 사람도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우리로 하여금 개인적인 종말로 나아가게 하는 그런 일이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회개의 긴박성을 깨닫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불에 찍혀 던지우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닿았다. 그만큼 긴박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지리라\"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 죄에 대해서 회개를 촉구했을 때, 나타내는 반응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솔직히 시인하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입니다. 너무너무 작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합리화에 익숙합니다. 이렇게 변명하고 저렇게 변명하고 핑계대고 심지어는 자기의 죄를 은폐시키기 위해서 모의하고 작당하는 그런 무리들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수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지은 죄쯤이야 죄가 되지도 않고 너무나 큰 죄들이 세상에 활개치니까 좀도둑들은 윤리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 공의가 실현되지 않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사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힘있는 자는 이 허술한 법망을 다 뚫고 나갑니다. 여러분 거미줄이 있을 때, 거미줄에 참새나 독수리나 큰 새들은 거미줄에 하나도 안 걸리고 다 통과해 뚫고 나가지만, 하루살이, 날파리 같은 힘없는 곤충들은 거미줄에 걸려서 거미의 밥이 됩니다. 이것이 불의한 사회, 부정의한 사회의 법체계입니다. 오늘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기본적인 양심, 윤리의식을 상실하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바로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말씀 앞에, 하나님의 법 앞에 우리 자신들을 세우면서,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며 회개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회개의 기회를 놓쳐버리는 그런 불행한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후회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도 후회를 할 수 있고, 못난 사람일수록 후회를 더 잘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용기있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용기 없으면 회개도 못합니다. 여러분 회개할 수 있는 용기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은 심판이라고 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판단하는 것은 비판이라고 하고, 내가 나를 하나님 앞에 판단하는 것은 회개라고 한다는 유명한 작가의 글이 있었습니다. 회개하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회개하려고 생각하다 보니까 \'하나님 죄송합니다\' 이렇게만 회개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관계성 속에서 지었던 죄들, 그 죄들을 청산하고 정리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창피스럽기도 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회개를 못하고 미룹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사건이 터집니다. 여러분,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내 인생을 통회하고 자복하고, 다른 사람의 관계성 속에서 지은 죄까지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 까지도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퍅한 심령은 회개할 것을 자꾸만 미루고 버팁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용기를 가진 사람은 후회 단계에 그치지 않고 회개의 단계로 넘어 갑니다. 내가 잘못했어, 이러면 안되지, 다시는 안 해야지, 이 정도까지는 후회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그 모든 것을 뉘우치고 깨닫고, 거기에서 완전히 자기의 죄와 단절하고 청산하고 정리하고, 그리고 새롭고 거룩한 삶을 사는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이 진정한 회개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극동방송을 청취하는 청취자께서는 지금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그냥 방송만 듣고 내가 신앙 생활을 한다고 착각하는 그런 분들이 많을 줄 믿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집에 앉아서 예수 믿는 자가 아니라 성일날 주님 앞에 나아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거기까지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들은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진정하게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는지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런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새롭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아가는 용기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