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생각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생각 /마26:1-5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생각
마26:1-5





잠언 16장 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19장 21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들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장소는 선교현장입니다.

선교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는데 어느 순간에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그저께 금요기도회 시간에 8월중에 있을 낙도선교를 위해 기도하면서 날씨를 위해 특별히 합심하여 간구했습니다. 왜냐하면 낙도선교는 날씨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8월은 태풍이 자주 발생하는 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도 출발하는 당일 날 태풍이 불어온다고 하면 낙도선교를 떠날 수 없게 됩니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운데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 주님 내 안에 계시니까 나는 괜찮아요\\\'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만약 태풍이 불어오는데 어설프게 믿음도 별로 없으면서 \\\'바람 불어도 괜찮아요\\\'하며 배를 타고 나갔다가는 요나처럼 되기 십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어디 이 태풍에서 나를 건지시나 못 건지시나 한번 보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행동입니다. 어설픈 믿음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이번 중국선교여행도 그랬습니다. 출발할 때 저희일행은 일정을 미리 세워두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에 도착하던 날, 그 첫날부터 모든 일정을 조절해야만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미리 세워 두었던 계획들이 뒤죽박죽 되어버리는 것 같아 마음이 몹시 불편했었습니다. 현지에 계시는 분들이 좀더 우리 일행에 대해 사려깊은 배려를 해 주었다면 원래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다 소화해 낼 수 있었을텐데 사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또 다른 좋은 계획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일정을 다시 조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계획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서는 설령 그 계획이 하나님께서 세워두신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 비록 그것을 수정하시더라도 결국은 더욱 선한 길, 더욱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악한 계획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서는 그들이 아무리 치밀한 계획을 세워 일을 추진하려 해도 도저히 그 일을 할 수 없도록 막으시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악한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모의와 하나님의 계획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들은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과 여건을 고려해서 행동하게 될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계산이나 생각을 전혀 의식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그들로부터 영향을 받지도 않습니다. 아니 그들의 치밀한 계획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은 원래 자신이 계획하신 일을 행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계획과 사람의 생각사이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승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오늘 본문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여러 곳에서 이와 동일한 표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태복음 7장 28절과 11장 1절, 13장 53절과 19장 1절에도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 본문의 시작이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보면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마치셨다는 표현 앞에 \\\'다\\\'라는 수식어가 첨가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 마치셨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사역이 모두 종결되었다는 뜻입니까?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다 마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 말씀으로 가르치셨던 모든 사역이 끝이 나고, 이제 남은 것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만 남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참 많이 접했습니다. 산상수훈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비유의 말씀들, 특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와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말씀이 결국은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과 연결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다 마치신 후, 이제 그 마지막 사역을 위해 한 걸음 성큼 더 다가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우리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의 최종적인 권위는 행동하는데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 중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말한 것을 행동하려면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압니다. 특히 저와 같은 목회자나 아니면 교회 내에서는 교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많은 말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정작 그 말씀대로 행동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 나 자신에게 물어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목회자든, 교사든, 가르친 말씀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으려면 그 말씀대로 행하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 예배 때 한국에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 온 조선족 전도사님이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분은 제가 중국 선교여행 중에 탈북자를 만날 수 있도록 이곳에서 도움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 날 저녁, 그 전도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많은 분들이 그분의 설교에 힘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공감을 했습니다. 물론 말씀을 너무 빨리 하시고 북한 억양이 섞여 있어서 때로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탈북자들에 대한 얘기, 그리고 북한 주민들에 대한 얘기는 거침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힘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십일조보다는 구제헌금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씀을 하실 때에 우리의 구제생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까? 굶주린 북한의 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처고모 가족이 굶어죽은 모습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앞에서 화형 당해 죽는 모습을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에 그 설교에 힘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굶주려 있는 현장을 목격했는데 어떻게 북한을 모른 척 할 수 있겠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만약 가르치는 것으로 끝이 났다면 역사에 기억되어질 한 명의 훌륭한 인물정도로만 평가되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자신이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마지막으로 행동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그것이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은 예수님의 수난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예수님께서 자신의 수난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수난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루어지게 될 것인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2절에 보면 \\\"너희의 아는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사역인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실 때, 유월절을 제자들에게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왜 주님은 \\\'이틀 후에\\\'라고만 하셔도 되셨을텐데 굳이 여기서 유월절을 언급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틀 후면 유월절이라는 사실을 제자들이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유월절을 언급한 것일까요?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본문에 \\\'너희도 아는바와 같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 이유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언급하고 있다면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유월절을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시키려 하고 계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이 어떤 날입니까?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종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고, 피를 바르지 않은 집들은 모두 그 장자를 치신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난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날과 자신의 죽음을 연관시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유월절은 어린양이 죽는 대신 백성이 살아난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을 통해 우리가 살아나게 될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날 수 있었듯이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구원받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팔리우리라\\\'고 했는데, 이 말은 \\\'팔리게 될 것이다\\\'라는 어떤 추측이나 짐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일을 위해 팔리실 것이 이미 확정된 일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 일은 결코 변경되거나 바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확신에 찬 이 말씀, 그것도 자신이 십자가에 죽게 될 것임을 너무도 명백하게 선언하시는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줄 아십니까? 만약 \\\'팔리게 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셨다면, \\\'팔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해 불안해하고, 우리의 구속에 대해 의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말씀 자체가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너무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유월절에 팔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실 것을 말입니다.

어디 주님의 확신에 찬 말씀이 이것뿐이겠습니까? 우리의 삶, 전 영역에 걸쳐 주님은 너무도 분명하고 확신에 찬 말씀을 이미 들려주셨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너무도 분명하고 확신에 찬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들이 확신에 찬 주님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있는지를 각자에게 물어보아야 할 줄 압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분명한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들고 계십니까? \\\'길이요 진리\\\'되신 주님과 그 분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며 말씀 속에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하고 계십니까? 이 말씀대로 살면 내 삶이 정말 풍요로와 질 수 있음을 믿고 계십니까? 손해보는 인생이 아니라 언제나 풍성해지는 삶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을 굳게 신뢰하고 계십니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말씀과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 일 점 일획도 거짓 없는 진리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을 더 의지하고,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마치 본문 3절에 나오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확신에 찬 말씀 앞에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습니까? 3절과 4절을 보면 \\\"그 때에 대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아문에 모여 예수를 궤계로 잡아죽이려고 의논하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그 때\\\'란 어떤 때를 말합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다가오는 유월절에 잡혀서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시고 계실 때를 말합니다. 그때 대제사장과 백성들의 장로들은 가야바의 집에 모여 예수를 죽이기 위해 공모하고 있었습니다. 가야바가 누굽니까? 그 당시 최고의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자기의 집을 내주어 예수를 죽이는 일을 공모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그들은 모여서 \\\'궤계\\\'로 예수를 잡아죽이려고 의논하였다고 했습니다.

\\\'궤계\\\'란 \\\'속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교활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이 자리에서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다만 이 자리는 어떤 방법으로 언제 죽일 것인지에 대해 서로 의논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은 \\\'궤계\\\'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악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서 당시 종교지도자들만 탓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형태의 모습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말하면서 불법을 자행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또 궤계를 사용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 일들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라면 수단도 목적만큼이나 정당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곳에 모여서 의논하고 결정을 내린 사항이 무엇입니까? 5절에 보면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명절은 \\\'유월절\\\'을 말합니다. 유월절은 전국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두 모이는 날입니다. 그래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한 곳에 집중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도 하고 또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이 많이 몰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괜히 이 날에 예수를 잡아 죄를 뒤집어 씌워 죽게 한다면 큰 소동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회의 끝에 얻은 결론은 유월절을 피해서 예수를 죽이자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민요가 일어나게 되면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쌓아둔 인기가 무너질 수도 있고, 더 이상 백성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명절을 피해서 예수를 죽이자는 결론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민원\\\' 발생을 우려했다는 말입니다. 사실 요즘은 너나 할 것없이 민원에 대해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민원은 대개 집단이기주의에서 발생한 것들입니다. 물론 자신들은 절대 아니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대개는 자신들의 이기주의적 발상이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며칠 전 신문을 보고 아주 안타까운 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단군상 철거와 관련해서 교계에서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서울역광장에서 단군상 철거를 위한 집회를 교계에서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회를 위해 강사로 서울에서 대형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는 목사님 세 분을 섭외했습니다. 물론 그 날 교인동원까지 함께 부탁을 드리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섭외에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쁘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을 하셨다고 합니다. 정말 바빠서였을까요? 그것도 세분이 똑같이 말입니다. 그분들은 부활절 연합 예배 때에는 강사로 선정되기 위해 수천만원을 기탁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 날 그 집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한결같이 거절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이해를 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종종 사람들을 의식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좋은 뜻에서 사람들을 의식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대부분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해서 사람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마 단군상 철거운동에 강사로 나가면 여러 곳에서 공격의 대상이 될 것임에 분명합니다. 어쩌면 상당한 불이익을 당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꺼렸는지 모릅니다. 반면에 부활절 연합 예배때 강사로 나가면 모두가 우러러 봅니다. 한국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분으로 생각하며 떠받들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강사가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이 아름다운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느냐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제사장과 백성들의 장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민요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를 죽이고자 모의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인지,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민요를 피해 예수를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계산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인지를 먼저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가 먼저입니까? 사실 민원에 대한 얘기라면 우리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장애인 학교를 세우는데 제일 염려되는 부분이 민원발생문제입니다. 여러모로 우리교회가 지난주에 구입한 부지가 법적으로는 아무 하자가 없지만 녹지인 까닭에 환경단체나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학교를 세우는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면 이 문제를 두고 우리가 기도하면서 지혜롭게 해결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면서 무조건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는 것이 상책은 아닙니다. 한 발짝 물러서기도 하고, 한 발짝 바싹 붙이기도 하고, 어쨌든 민원이 발생할 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할 줄 압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혜롭게 처신하되 하나님의 선한 일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지리멸렬(支離滅裂)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날, 가야바의 집에서 대제사장을 비롯해서 많은 백성의 장로들이 머리를 맛대고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명절을 피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심이 동요하는 것도 막고, 예수도 죽이고 일거양득을 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이미 살펴보았지만 그들의 이런 계획과 상관없이 주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유월절 날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대로 뜻밖에 예수의 제자인 가룟 유다에 의해 그들의 계획한 일정이 취소되고 예언되어진 그 날에 그 모든 일들이 그대로 성취되고 맙니다.

그들이 밤을 새워가며 아무리 계획을 세우면 무얼 합니까?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아닙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합니까?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시면 역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예정대로 유월절 어린양으로 우리의 십자가 구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계획과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생각이 필요 없다는 뜻도 아니고, 노력이 필요없다는 뜻도 물론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나의 생각과 열정을 맞추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내가 열정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 열정에 맞추어주실 줄 착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가상히 여겨 나에게 축복하실 줄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한 기업인이 하루에 네시간만 자고 성공한 사례를 들어가면서 누구든지 노력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우리가운데 스며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노력해도 안됩니다. 어느 때 안됩니까?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면 안됩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안됩니다. 어떤 때 안됩니까?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에 내 인생을 맞추어야지 내 생각에 하나님의 계획이 맞추어지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신 어떤 계획들이 여러분의 지식과 이성에서 출발되어진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그 뜻을 묻고, 하나님의 계획아래서 가지게된 생각입니까?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 일을 지금 이루려 하고 계십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가족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믿지 않는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내 생각과 내 지식으로 가족의 구원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을 나의 생각이 방해하는 일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말씀을 깊이 새겨 주의 뜻에 합당한 삶의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