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자녀 양육(8) 공부와 주일 성수 마12:9-21
인간의 생체 싸이클은 일주일에 하루 쉬는 리듬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 리듬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생체 리듬이라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정말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진전이 이루어지길 원하면 주일성수를 꼭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왜 주일성수가 좋을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주일 하루 동안, 영혼의 피로를 완전히 풀고 우리 영혼이 소생하는 힘을 얻는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솔로몬이 고백했습니다. 해 아래 수고하는 일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는 고백입니다. 일요일이란 말은 해의 날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해를 중심으로 살면 정말 헛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반대로 주일이란 말은 주님의 날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살면 정말 영혼이 아름답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는 것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에게 정말 주일의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쯤 된 자녀를 지도할 때에는 한가지 고민이 생깁니다. 과연 주일에 공부를 시켜야 할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에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고 다급한 마음으로 주일에 아이들 공부를 시키면 아이들의 신앙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주일날 공부하는 것은 주일성수를 깨뜨리는 것일까요? 공부를 세상적인 일로 생각한다면 주일날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주일날 공부하지 않으면 떨어질 것 같다 하는 생각과 실패할 것 같다 라는 강박관념에서 공부하면 그것은 세상적인 일이 되기 때문에 주일날 공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한 공부를 먹고 사는 밥벌이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면 주일날 일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는 그러한 밥벌이의 수단은 아닙니다.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은 크게 보아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이웃을 잘 돕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영적인 일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공부하는 일은 세속적인 일이고 예배하고 교제하고 봉사하는 일은 영적인 일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이원론적인 생각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각이 아닙니다.
공부도 크게 보고, 미래적인 측면에서 볼 때 영적이고 생명을 사랑하는 일인데 그 일을 하면 주일을 범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안식일에 병을 고친 예수님의 행위를 비판한 바리새인들의 오류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판할 거리를 찾기 위해서 묻습니다. \\\"주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그리고 주님은 손 마른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더 이상 논란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여기에서 확실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주일날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선이란 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주고,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외출했는데 아이가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좋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부모가 이렇게 한다고 합시다. 주일인데 어떻게 먹을 것을 사주나 하고 사 주지 않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정신에 제대로 박힌 부모이겠습니까? 당연히 사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일날 먹을 것을 사는 것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일날 회사에서 순번으로 당직을 섭니다. 당직을 서기 싫다고 회사를 그만두어야 합니까? 아니면 당직을 서야 합니까? 당연히 당직을 서야 합니다.
대신에 하나님 앞에 겸허한 마음으로 주일 새벽에 예배를 드리고, 회사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심정으로 당직을 서고, 회사 갔다 와서 주일 저녁에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 월요일 새벽에 나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 됩니다. 왜냐하면 회사의 안녕과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는 일은 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왜곡시켜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신앙을 자랑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의 추앙하는 몇 사람 외에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을 하찮은 신앙적 자랑을 위해서 주님까지 잘못된 분으로 모는 오류는 없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하는 것은 세속적인 일이 아니고 영적인 일입니다. 공부하기 싫어하고 일하는 것을 밥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공부하는 일을 세속적인 일로 몰고 싶을지 모르지만 공부의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 공부하는 일은 지극히 선한 일이고 영적인 일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효율적으로 돕기 위한 일이고 장기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은 영적인 일입니다. 그러므로 정해진 예배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집에 와서 공부하는 것은 주일성수를 깨뜨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일에 공부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더라도 이 점만은 분명히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주일에 공부하는 목적을 더 상기하며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공부를 밥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정말로 장래에 사람을 살리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는 인식!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출세욕, 혹은 생계의 문제를 염려하여 공부하거나 주일에 공부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급한 마음을 가지고 주일에 공부하는 자세만큼은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가 먼저 다급한 마음으로 선수를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학에 가면 열심히 믿을 수 있으니 대학에 간 후 열심히 봉사하라.\\\" 그래서 학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간혹 이런 말을 합니다. \\\"주일성수하고 싶어도 부모님이 반대한다.\\\"
그런 부모들이 정말 믿는 분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런 현실주의적인 훈계는 정말 역효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일성수에 대해서 자녀를 교육할 때 주일날 이것 하지 말라 저것 하라 등을 통해서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하든지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도록 교육하는 것입니다.
한가지 추가로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간혹 주일날 밥벌이의 수단으로 주일성수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신앙으로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난도질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조심스럽게 주일성수의 장으로 이끌어야지 \\\"그러다가 더 망해! 신앙도 없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런 모습은 정말 신앙심이 부족한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난도질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에서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20절). 이런 주님의 모습은 얼마나 우리에게 본보기가 됩니까?
믿는 사람으로서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분의 마음은 심히 고민스럽고 이미 상한 상태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난도질해가며 그 심령을 아예 꺾어버리는 모습은 자신의 신앙과 경건을 자랑하는 것은 될 수 있어도 그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고, 믿음을 위해, 바른 신앙을 위해 사려 깊게 진실을 전달하고, 그리고 난 다음에 기회를 살려 조심스럽게 권면의 말씀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그는 분명히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것입니다.
자녀를 최선을 다해 주일성수하게 하십시오. 주일성수란 주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개념도 잊지 말고 가르치십시오. 그렇게 주일을 힘써 지키는 자녀를 하나님은 힘써 지켜주셔서 축복된 자녀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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