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인과 성경

그리스도인과 성경/마5:17-20/성서주일

그리스도인과 성경
마5:17-20





1. 최고의 경영자 예수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영향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약 20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가고 왔으나 오늘날도 예수님은 인류의 중심 기둥이며 진보대열의 지도자이다. 지금까지 진군하였던 모든 육군과, 조직화되었던 해군과, 개회되었던 모든 의회와, 통치하였던 모든 왕들을 합해 보아도 이 지구상의 인류에게 나사렛 예수 한 사람의 고독한 일생보다 더 강력하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교육학자들은 가장 위대한 스승의 모델을 예수님이라고 지목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요즘 일반 기업체의 경영의 관점에서 예수님을 최고 경영자의 모델로 연구를 했습니다.

최고 경영자로서의 예수를 연구했던 로리 베스 존스라는 여성이 『Jesus CEO 최고 경영자 예수』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녀는 광고, 마케팅, 비즈니스 개발회사인 존스그룹의 창업자이자 현 사장으로서 국제 인명 사전에도 올라있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입니다.

로리 베스 존스는 지금까지 두 경영스타일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남성적이며 권위적인 힘에 기초한 알파경영과 또한 여성적이며 상호협조적인 힘의 사용에 기초한 베타 경영으로 나룰수 있는데, 이둘을 결합한 것을 오메가 경영이라고 정의하고 이 오메가 경영의 모델인 최고의 경영자를 예수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리더쉽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수 많은 경영자들의 가치와 기술을 완전히 새롭게 뒤바꾸어 놓을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비 그리스도인 경영인들 까지도 읽혀지고 있는 필독서입니다.

예수님은 무식하고 형편없는 배경을 가졌고 성깔도 있고, 때로는 비겁했던 사람들과 함께 일했지만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이 세상에 주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산상수훈은 팔복으로 시작됩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팔복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갖추어야 할 내면적인 모습으로 예수님의 성품이라고 했습니다. 이 팔복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 보다 무엇이 되느냐에 더 중요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란 예수님의 성품을 그대로 본받는 자입니다.

산상수훈의 두 번째 관심은 제자들이 가지는 이 세상에서의 영향력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세상에 영향력을 주어야하는 존재들입니다. 가정과 직장과 세상에서 그가 어디에 있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게 되어있습니다. 바로 그 영향력은 썩어가는 세상속에서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 그리고 무미건조한 이 세상의 삶에 살 맛이 나게 만드는 맛을 내는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또하나 는 빛으로서 어둠을 몰아내어 세상을 밝히고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빛의 역할입니다.

2. 예수님과 성경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런 소금과 빛으로 세상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한 절대적인 가치기준 즉 이세상에서 살아야 할 지침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삶과 사역을 통해 완성하는 일이었습니다.

마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여기서 율법이나 선지자는 구약의 여러 가지 가르침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을 완전케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한 권 같지만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약은 또 39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수님에 대해 예언해 놓은 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반면에 신약은 27권으로 구약의 예언이 예수를 통해 어떻게 성취되었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님을 중심 주제로 쓰여진 책이라고할수 있습니다. 요20:31절 말씀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예언을 그의 삶을 통해 하나둘 완성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에 관 최소한 334개의 예언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수백년전에 예언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성경을 완성시킨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동정녀에게 탄생될 것이 예언되었습니다.(이사야 7:14→마1:23).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다윗의 후손으로 그 혈통을 타고 태어날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태어난 장소도 베들레헴이라고 정확히 예언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태어나서 애굽으로 피신해야 할것도 예언되었습니다. 예루살렘성에 입성할 때 어린 나귀새끼를 타고 올것이라는 것도 예언되었습니다. 그리고 은삼십에 팔릴 것도 예언되었습니다(슥11:12-13→마27:6-7).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처형될것도 예어되었습니다. 그리고 처형된 그 아래에서 그의 옷이 제비뽑혀 나누워질것도 예언되었습니다(시편22:18→요19:24).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기도를 드릴것이 예언되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 조차 버림받을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통속에서 목이 말라 초를 받으시게 될 것이 예언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 마지막 예언이 성취된후에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할것도 정확히 예언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출생부터 축음까지 그 수 많은 예언이 빈틈없이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그 분의 삶은 말씀을 완성시킨 삶이었습니다. 그는 그의 생애를 살면서 끊임없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그리고 그의 생의 마지막에 다이루었다고 감격적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삶으로 완성하는 것이 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요 최고의 권위입니다.
3. 바리새인과 말씀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할 때 우리는 성경말씀을 최고의 권위로 절대적 가치기준으로 받아드리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바리새인하면 우리는 대단히 나쁜 부류의 사람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당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들은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신앙적으로 대단히 존경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 바리새인들은 그당시 성경 말씀을 따르는 일에 열심을 내었던 사람들이 었습니다. 그리고 서기관들은 이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최고의 열망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르기 위해 율법을 248개의 명령과 365개의 금지령으로 분류하고 그것을 지킬려고 애를 썼습니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수 없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이러한 열심히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이들의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키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려고 하다보니까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기준을 자기기준에 맞도록 내려뜨리게 된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기가 어려우니까 자기 머리에 이해되는 부분만큼만 받아드립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적당히 떼어버리고, 어떤 부분은 재해석하고, 어떤 부분은 합리화 해 버립니다. 또한 요즘 세상풍조가 다 그러니 뭐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믿을 것이 있느냐 대강 적당하게 살된되지 않겠느냐며 하나님의 기준을 자기수준을 끌어 내립니다.

1)바리새인들고 그랬습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외형적인 것은 중요하고 내면적인 것과 세미한 부분은 무시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에는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부분이었고 두 번째는 사람에게 대한 계명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첫째는 중요하지만 두 번째것은 무시해 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병을 고치거나 어떤 사람을 위기에서 건져주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일로 취급하고 정죄했습니다. 하나님 일에는 열심인데 사람의 일에는 무관하고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2)또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약화시킨 것은 가르치되 행하지 않는 점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가르치면서도 자기들은 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판단하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정체를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실랄하게 비판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저희의 가르치는 것은 본받되 행하는 것은 본받지 말하고 합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말만하고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는 사람은 행하면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하신 말씀이 1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여러분 교회 오신 것을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시면 않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순종하면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들으면서 순종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반석위에 세운 집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영향력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소금과 빛처럼 세상속에서 부패를 방지하고 삶을 아름답게 맛을 내고 어두움을 몰아내고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기준으로 끓어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런 순종의 사람이 영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쓰십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많이 모이는 교회가 진짜로 힘있는 교회입니다. 기독교의 힘은 다수에 있는것입니다. 다수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될 때 그 교회는 이미 힘잃은 삼손에 불과합니다. 교회의 힘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뜻 앞에서 전적으로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초대교회 시대에 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서 기도했던 120명의 성도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들은 고난과 핍박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도망가면서도 예수를 전했습니다. 순종한 것입니다. 이들이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강력한 로마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힘이 어디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4. 바리새인의 의
오늘 예수님은 매우중요한 부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의 의보다 낫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대단히 무서운 말입니다. 이 당시 제자들이 서기관과 바리세인의 의라고하면 금방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대살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가 무엇인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의 의가 옳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말씀하고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세인들의 의는 무엇입니까/

1) 바리새인의 의는 본질을 버리고 형식을 중시하는 의입니다. 바리세인들은 하나님이 어떻게 보시느냐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면을 중요시합니다.
마23:27-28말씀에 보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여러분 외형적인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면의것 본질적인 것을 버린채 외형적인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잘못립니다. 더럽습니다.

예배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배의 본질을 잃어버린채 주일 예배에 참석한 것으로 내가 하나님앞에 해야할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배의 본질은 예배를 통해 내가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알아 하나님을 위해 살겠노라는 새로운 결단과 결심이 있는 예배입니다.

교회일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유지하고 건물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와그의 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생명살리는 전도와 사람을 키우는 교육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건물이 필요한것입니다. 재정이 남아서 여유있을 때 전도하고 교육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이일을 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일을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본질보다 다른 일이 이 일보다 더중요하게 생각되어서는 않됩니다.

사람들이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의식하며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사람을 의식하게 되고 외형적인 겉치레로 변질될 수밖에 없습니다.

2)바리새인의 의는 이기심에 근거한 의입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고르반\\\"입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입니다. 막 7 : 11에 보면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사람이 부모에게 해야할 당연한 의무를 행치않고 내가 하나님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부모님께 드릴려고 했는데 마침 그 돈을 모두 하나님께 드렸는데요\\\"하고 들러데는 일입니다. 가장은 가장으로 의무를 가정행해야 합니다. 주부는 주부로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자녀는 자녀로서 부모에게 공경해야 합니다.

3)바리새인의의는 자기자랑을 위한 의입니다. 바리새인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눅18:11-12,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기를 높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리새인들의 의는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중심적인 의는 절대로 천국에 들어갈수 없습니다. 천국은 노력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다. 열심히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로 들어갑니다. 하나님의열심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요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의입니다.

내가 이 시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을 깍아 내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모습을 내속에서 봅니다.

하나님의의를 힘입어 살려고 하기 보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살려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고 본질을 왜면한채 외적이고 형식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봅니다. 나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취해 말슴을 이용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 나를 드러내려는 모습을 봅니다.

이제 철저하게 말씀앞에 순종하고 내 삶을 말씀을 완성시키기 위해 살앗던 예수님을 닮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는 고백과 결심이 있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