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에 대한 성경적 이해 마4:1-7
오늘 저는 잘못된 기적관과 성경적 기적관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기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도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기적 자체가 아니라 기적에 대한 올바른 성경관과 신앙관을 갖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마귀도 행하고 귀신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때 애굽의 바로가 모세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모세는 바로 앞에서 나무 지팡이를 던져 뱀이 되게 했습니다. 들고 다니던 나무 지팡이를 바닥에 던졌는데 뱀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바로가 애굽의 술객들도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들을 뱀으로 만들었습니다.
기적은 마귀도, 귀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기적관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특별히 우리민족은 지난 오천년 동안 샤머니즘적인 문화에 물들어져 있기 때문에 기적에 대하여 올바른 성경적 지식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우리민족의 토속종교는 샤머니즘이요, 기복 신앙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들은 특별히 기적이나 은사나 복받는 것에 관심이 높습니다. 그래서 신령한 것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성경적으로 올바른 사고를 갖고 사모해야 합니다. 올바른 성경적 사고를 갖고 복을 구하고, 올바른 성경적 사고를 갖고 은사를 구하고, 올바른 성경적 사고를 갖고 기적을 구하자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주위에 이단들에 의하여 사기 당하는 사례들을 보십시오. 거의 대다수가 자기네 지도자는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특별한 기적을 통하여 사람을 미혹케 해서 자기 말을 잘 들어야 축복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있는 재산 다 팔아서 그들에게 주고,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에 혼란을 주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기적과 은사에 대하여 올바른 성경관이 정립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40일 금식기도 후에 마귀가 예수님께 접근하여 시험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돌들을 떡으로 만들 능력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조각으로 수 만 명을 먹이는 능력을 행하실 수 있는 주님께서 돌들을 떡으로 못 만드시겠습니까? 그런데 돌을 떡으로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다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인도하여서 그곳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예수님을 받들어 다치시지 않고 보호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물위를 걸으시는 능력이 있으신 주님께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실 능력이 없으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셔도 몸이 상하지 않도록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뛰어내리시지 않습니다. 40일 금식기도이후 이제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얼마든지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본문에 있는 말씀 속에서 성경적 기적관, 기적에 관한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적이 성경적 기적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돌들을 가지고 떡 덩어리를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돌들을 떡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신 것은 이 일은 하나님께 아무런 영광이 되지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없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몸이 상하지 않는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데도 뛰어내리지 않은 것은 이일이 하나님께 아무런 영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과시성 기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남발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병든자를 고치셨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치셨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하늘을 우러러 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기적은 그 사건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지 않는 기적은 결코 성경적인 참된 기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늘도 기적이 발생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기적의 통로에 불과한 인간에게 영광을 돌려서는 안됩니다. 그 기적의 통로에 불과한 인간을 높여서도 안됩니다. 그 기적의 원천이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기적의 원천은 하나님이시지 인간이 아닙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잘못된 신비운동이 이 문제에 걸려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잠시 사용하신 도구에 불과할 뿐 최종적인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 소위 능력있다는 주의 사자들이 가끔씩 나타나 때로는 사람들을 미혹케 하기도 하는데 그 순간에는 잘 판단이 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그 기적의 열매가 하나님께 영광으로 나타나게 되느냐, 아니냐를 보면 우리가 진짜, 가짜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통하고 짜릿한 것을 마치 신령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성경적 기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있는 것이지 인간 개인이 높아지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적 그 자체에만 놀랍니다. 하나님이 하셨는데 하나님은 없고 누가 기도했느냐? 누가 안수했느냐? 사람을 찾습니다. 사람을 찾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높이지 마세요. 하나님만 높이세요.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적을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기적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기적을 통하여 나의 경제적인 것이 풍부해지는 것이 아니라 풍부해진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하고 기적을 통하여 건강을 회복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건강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적은 그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데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됩니다.
둘째로 참된 성경적 기적관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누가 기적을 행하라고 했습니까? 마귀입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했고, 마귀가 예수님께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었고, 성전에서 뛰어 내리실 수 있었지만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중요합니다. 기적은 행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기적을 행하실 수 있었지만 하나님 뜻에 합당치 않을 때는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중에 3분의2가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룟유다에게 팔려 수난이 시작 되었을 때부터는 아무 기적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잡아가려고 하였을 때 베드로가 검을 가지고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 뜨렸을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26:53)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는지 아세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해도 묵묵히 계셨습니다. 채찍을 맞을 때도 묵묵히 계셨고 가시관이 씌여 졌을 때도 묵묵히 계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골고다 언덕에서 피흘리고 계실 때, 군중들이 기적을 행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런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셔서 인류의 모든 죄를 다 청산 하셔야 하기 때문에 기적을 행해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음에도 기적을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내가 하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또 하나 놀라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기적만 보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기적이 일어날 때 놀라움을 갖습니다. 질병이 치료될 때 박수를 탄성을 지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겁니다. 기적을 보고 감탄하지 말고 질병의 치료를 보고 탄성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가장 위대한 기적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찾아다니지 마세요. 기적에 매료되지 마세요.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에 매료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사고를 가질 때 비성경적 기적관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기적이 우선이 되어선 안됩니다.
마귀는 예수님께서 그 어떤 기적도 행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적을 보여 달라는 마귀에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돌을 떡으로 만드는 기적을 행하여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지표가 되어야지 기적이 우리의 삶의 지표가 되어선 안됩니다. 혹 우리주위에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이 일어날 찌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틀린 새로운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임을 아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아야지 기적 중심으로 살아선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에 모든 기적은 잠시뿐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가 불치의 병에서 기적적으로 치료받았다 해도 영원히 이 땅에 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다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인생들입니다. 그리고 기적 자체가 여러분과 저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성경 그 어느 곳을 살펴보아도 기적이 우리를 구원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고 우리의 삶이 이 땅에서 끝나도 변치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적보다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잘못된 기적관에 유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결론
기적은 지금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왜 기적을 행하시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모든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있고,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기적이 절대로 우선이 되어선 안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적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 자체가 기적의 삶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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