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책 사34:16-17
오늘은 우리 한국교회가 지키는 성서주일입니다. 성경을 성서라고 하는 것은 영어로 성경을 Bible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영어의 바이블이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단순한 \"책\"이라는 그리스어 [비블리온]에서 나왔습니다. 비블리온의 복수는 비블리아(biblia)인데 \'책들\'이라는 말입니다. 주후150년 경 교부 시대부터 교부 중 크리소스톰이라는 분이 기독교적인 의미로서 성경을 바이블이라는 말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서는 구약성서(Old Testament)와 신약성서(New Testament)로 이루어졌습니다. \'구(舊)\'는 새로운 것의 반대인 \'옛\'이라는 말인데, 예수 그리스도 이전을 가리키고, \'신(新)\'은 그리스도 이후의 내용입니다. \'약(約)\'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약 즉 언약, 약속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구약은 히브리어, 신약은 그리스어로 쓰여졌습니다. 구약에서 에스라 4:8-6:18, 7:12-26, 예레미야 10:11, 다니엘 2:4-7:28 은 아람어로 쓰여졌습니다. 이 때 아람어는 바벨론 포로에서 다녀온 이후 팔레스타인에서 공용어로 쓰여지고 있던 언어였습니다. 신약을 기록한 그리스어는 1세기경 로마제국의 통속어인 코이네(Koine)라고 불리는 일반시민들이 사용하는 그리스어입니다. 그리스어는 단순하고 강조적이고 모험적인 표현을 즐겨 쓰는 특성이 있는데, 전 유럽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어원을 이루는 아주 중요한 언어입니다.
금년의 성서주일은 아주 뜻깊은 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는 지난 8월31일자로 개역 성경을 개정하여 발간하였습니다. 그 성경의 이름은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1961년에 개정되었던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으로 한국교회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성경은 성경을 직역한다는 원칙 하에 나온 성경이기에 참으로 소중한 성경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한자어 표현이 어렵고, 예전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따르다보니 이제 새롭게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어색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지금까지도 별 어려움 없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뭘 개정하느냐고 하는 것인지, 무엇을 새롭게 개정한다든지, 새로운 것을 도입하기가 어렵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을 발간했을 때에도 일부 참여하지 않은 교단이나, 다른 사제 성경을 내려던 업자의 농간으로 전국 교회가 사용하지 못하는 비운의 성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소위 보수교단이라고 하던 몇몇 교단의 임원들이 새로 성경공회를 조직하여 어떤 업자와 손을 잡고 새로운 번역성경을 내어 놓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표준새번역 성경이 잘 번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문구가 좀 세상적이고 야한 언어를 아가서에서 사용했다는 구실로 몰아부처 다만 목회자들의 참고용 성경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완벽한 번역과 인쇄로 좋은 성경을 가진다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언어학자들이 있어야 하고, 언어만 아는 것이 아니라 성서신학을 전공하신 학자들이 용어 하나, 낱말 하나 선택하는 것까지 신중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영어를 사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혀지는 성경은 유명한 킹 제임스 역(King James Version)이라는 [흠정역(欽定譯) 성경이 있습니다. \'흠정\'이라는 말은 황제가 손수 제정하였다는 뜻이며 황제의 명령으로 제정되었다는 뜻입니다. 1611년 영국의 제임스 1세에 칙령을 받들어 유능한 학자들이 모여서 번역한 성경입니다. 마콜리(Macauloy)라는 사람은 \"영어가 다 없어지더라도 오직 이 성경만 있으면 영어의 아름다움과 힘의 전모를 전하기에 족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532년 종교개혁자 M.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이 지금까지도 독일의 공식 성경으로 읽혀지고 있고, 가장 아름답고 힘있는 문체로 쓰여졌다고 하는 평을 받는 것입니다. 독일이 지금가지도 자랑하는 것은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성경입니다.
1631년 런던에서 발간된 성경을 사악성서(邪惡聖書)라고 불러지고 있습니다. 사악하다는 말은 도리에 어긋나고 간악하다는 말입니다. 그런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모세의 십계명 중에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라는 계명이 잘못 인쇄되어 \"너는 간음할지니라\"고 미스 프린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 번역을 했어도 인쇄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나온 98년판 개역개정판 성경은 15년 간의 수고 끝에 나온 것으로 개역성경과 달라진 곳이 7만2천7백32 곳으로 구약에 5만9천여 곳, 신약이 1만2천여 곳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따라 수정하였고, 현대인의 이해하기 어려운 구어나 한자어를 바꾸고, 문법상 오류가 있으면 수정하고, 사투리를 표준어로, 준말을 본디말로 환원하고, 특정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용어를 개정하는데 주력하였습니다.
기존의 문맥과 고유명사를 그대로 두고 일부만 개정하였다고 해도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이번 개정에는 우리 시대에 꼭 개정해야하는 부분만 고치고 개역 성경의 문체를 원래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성서공회에서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개역 성경이 원문과 비교할 때 원전에 충실한 좋은 번역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개역의 바탕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힘썼다\" 고 하였습니다. 그 동안 본문의 원 뜻을 살리지 못한 번역으로 지적되었던 마6:34을 보았습니다. 개역성경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이 말씀을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고 개정한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내일 일은 내일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근심과 걱정에 얽매여서 내일 염려해할 것까지 오늘 끌어다 염려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올바른 경전이라는 관점에서 정경이라고 합니다. 정경(正經)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정경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카논(Kanon : 영어로는 canon)은 \'곧은 막대기\'라는 뜻인데, 그것은 칸나(Kanna), 즉 \'갈대\'라는 말에서 파생된 낱말입니다. 갈대는 인류가 제일 처음에 사용한 길이를 재는 도구였습니다. \'칸나\'는 히브리어 \'카네\'(Kaneh)에서 온 말인데, 그것은 \'재는 막대기\'의 뜻을 지니고 있어서 목수들이 사용하는 자(尺)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문학을 하는 작가들은 가장 훌륭하고 규범이 될 만한 문학 작품에다 [카논]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정경\'이라는 말은 다른 것과 비교해서 모범이 되고 표준이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정경이라는 말이 성서에 적용된 것은 \'신앙과 행실의 규범\'이 성서 가운데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약의 문서가 정경으로 집성되기까지에는 아주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율법서는 BC 5세기에 정경으로 인정되었으며, 예언서는 BC 200년경에, 성문서는 AD 1세기에 대개 윤곽을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정경은 AD 100년경에 모였던 유대교 얌니아(Jamnia) 전체회의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신약의 정경화 작업은 몬타니즘과 마르시온의 분파주의자나 이단자들이 기독교회가 가지고 있던 여러 문서들을 성경으로 인정하는 것을 통해서 정통 교회들도 성격을 정경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방교회에서는 4세기에 이르러 요한계시록만이 아직 논의가 되고 있었고, 나머지 26권의 성경은 정경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서방교회에서는 로마 전체회의에서 비로소 정경을 문제삼았는데, 382년 로마 감독 다마수스 주재 하에 감독 히에로니무스의 협력을 얻어 정경의 목록을 작성하였습니다. 서방 로마교회에서의 정경의 확정은 A.D. 397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유명한 성 어거스틴의 지도를 받으면서 목록을 확정하였습니다.
저는 개역 성경을 읽으면서 언제나 불만을 있었던 것은 다른 불신자에게 혐오를 줄 수 있는 표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앉은뱅이, 문둥병자, 절둑발이 같은 말이나, 비속어인 아비, 어미 오라비 같은 말이었습니다. 장애인들이 들으면 얼마나 기독교를 무식한 사람들로 알 것입니까? 그래서 \'앉은뱅이\'는 \'못 걷는 사람\', \'문둥병자\'는 \'나환자\', \'절둑발이\'는 \'다리 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애써 수고하여 개정하였어도 한국교회는 이 성경을 공인 성경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또 참고용 성경이라고 하면 발전될 수 없다고 봅니다.
우리 장로교 헌법의 제1조에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정확 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책이 바로 성경입니다. 말씀이란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요 방편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마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입으로 하는 말이 가장 중요하고 쉬운 방법입니다. 다음은 글입니다. 글을 가지고 우리의 생각하는 바를 쉽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글도 여러 가지 종류가 많을 것입니다. 산문, 시, 소설, 희곡, 비유, 우화,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음악으로 우리의 생각하는 바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림 즉 회화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이나 그림 같은 것은 대략적인 윤곽은 나타낼 수 있지만, 속속들이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춤, 무용이나 무언극이나 제스츄어 같은 것도 있지만, 말과 글만큼 자세한 전달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사회에 구속의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구체적인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 행동하시고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서 알려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우셨습니다. 구약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받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거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가장 큰 하나님의 역사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위에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신약시대에는 사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실 구속의 역사를 알려주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생명을 주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필수불가결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우리가 가진 책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후대에 깨닫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룩한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우리에게 적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건을 일으키시고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고 후에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을 보내어 그것을 해석하게 하시고, 글로 남겨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신앙과 행위에 대한 유일한 법칙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석가의 가르침을 인생의 최고의 법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유교를 믿는 이는 공자의 가르침을 최고의 법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무하마드 즉 마호멧을 신봉하는 이들은 역시 무하마드의 가르침을 그들의 법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그들의 가르침이 매력이 있고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도 사람이었고, 죄인이었고, 좀 다르게 살려고 발버둥치다가 죽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정말 엄청난 은혜입니다.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인 성경을 가지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사람들의 말이나, 사람들의 사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행위에 대한 정확하고도 흠이 없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떻게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나님의 왕국이기 때문에 이 세계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뜻을 이루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3:16-18)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읽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지식을 증대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함입니다.
성경을 기록해놓은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고 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니라\"(요일5:13)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미우라 아야꼬여사에 대하여 많이 아실 것입니다. 일본이 낳은 전후 최대의 작가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사람입니다. 작가를 말할 때 작가는 입에서 실을 뿜어 누에고치를 온 몸에 형성해 가는 누에와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그의 몸 주위에 형성해 가는 누에꼬치는 사랑과 신앙으로 채색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을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려는 의지를 그의 글에 담고 있습니다. 그는 신약의 세계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 나름대로 성경을 보는 진솔한 이야기를 [소설 성서]라는 이름으로 펴내었습니다. 초신자도 그런 책을 읽어보면 성경을 읽어보고 싶은 동기를 부여받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가 처녀 때에 결핵 요양소에 들어갔는데 어릴 때 소꿉친구였던 마에가와라는 의학생이 건네 준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나와 함께 매일, 처음부터 성서를 읽어보시지 않겠습니까?\"라고 할 때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처음부터 성경을 읽어나갔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를 낳고 ...\" 미우라는 책을 좋아하였고, 많은 번역물도 읽었지만, 참으로 무미건조한 책인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말 따분하였지만, 친구와 끝까지 한자도 빼놓지 않고 읽기로 약속하였기 때문에 정성스럽게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로부터 27년이 지난 오늘에는 아주 흥미 깊게 모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힘들게 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성경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소설 성서라는 책으로 쉽게 풀이하면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의 보고}라는 전주대학교 교수이시며 히브리대학에서 성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오신 김경래 박사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은 [맛소라 성경]이라고 합니다. [맛소라]라는 말은 \'전통\'이라는 말입니다.
맛소라 학파의 가장 유명한 학자는 [벤 아셀] 가문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 가문은 대대로 성경을 읽고 쓰고 바른 본문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들입니다. 고대로부터 전수되고 있는 여러 사본 중에 혹 다른 본문을 연구하여 다음 세대에 바르게 넘겨주려는 이들이 맛소라 학파의 랍비들입니다. [모세 벤 아셀]이라는 사람은 주후 890-895년에 하나의 맛소라 사본을 편집한 사람입니다. 이들 맛소라 학파의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 옆에 있는 티베리아에 살면서 오직 성경을 전수하는 일에 힘을 쏟았습니다. 맛소라 성경을 말할 때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론 벤 아셀]이라는 학자입니다. 이 사람은 모세 벤 아셀의 아들인데 자기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맛소라 성경을 남긴 사람입니다. 이 성경을 [알레포 사본]이라고 합니다. 이 [아론 벤 아셀]이 남긴 알레포 사본의 성경을 학자들이 모여 약간 수정한 것을 [레닌그라드 사본]이라고 하는데 이 성경이 기독교 학자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라고 부르는 성경입니다. 유대인이 공인한 성경입니다. 현재 히브리 대학에서 구약 성경을 편찬하고 있는데 가장 근거가 되고 있는 본문이 바로 [아론 벤 아셀]이 남긴 사본을 따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77만3천6백92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또 3만1천173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상 성경을 전부 암송한 사람은 드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대성경을 간행한 켄터베리 대주교 이신 [모리스 클래머]라는 노인은 구약과 신약 성경을 불과 90일만에 다 암기하였는데 틀림없이 암송하였다고 합니다.
고아의 아버지로 알려진 [죠지 뮬러](1805-1895)는 성경을 대단히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영적 생활의 활력은 성경을 통해서 온다고 하면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처음 회개하고 3년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예사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을 열심히 탐구하기 시작한 후로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다. 나는 이미 백번 성경을 통독했지만, 읽을수록 새로운 책처럼 느껴지며 기쁨이 더해짐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지난 날 말씀을 소홀히 생각했던 시절은 잃어버린 날들이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성경을 소홀히 하거나 성경을 대하지 않는 시간은 안되었지만, 여러분에게 잃어버린 시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자세히 읽어가면서 한 분에게 초점이 모아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곡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본문에는 \"자세히 읽어보라\"고 했는데 개정 개역판에는 \"찾아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상고하지 않고 어떻게 성경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까? 이 성경은 인간의 책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놓은 책입니다. 이 성경은 인간을 구원하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빠진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 다시 성경을 쓸 필요도 없고, 다른 유사한 책을 쓰거나 편집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전 봉헌식을 거행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지를 위하여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나는 성경을 이렇게 읽는다 1) 1년에 일독(일회)이상을 목표로 꾸준히 읽고 있다 - 45명에 12% 2)목표는 세우지 않지만 비교적 열심히 읽는 편이다 - 85명에 23% 3)가끔 은혜되는 부분만 찾아 읽는다 - 78명에 21% 4)성경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있다 - 136명에 37%였습니다. 거기에 무응답 24명 7%까지 합치면 44%의 사람이 성경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분들 가운데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금년은 이렇게 지나갔으면 내년에는 결심하고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 어떤 부부가 교회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기독교서점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유리문 안쪽에는 성경을 광고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유리문 바깥에는 서점이 그 날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닫혔음] 영어로 Crosed 라는 표시판을 달어 놓았습니다. 그 [닫혔음]이라는 말이 성경을 광고하는 포스터에 걸려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니 성경을 가리키는 \"The Holy Bible Closed\"라고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거룩한 성경 닫혔음\"이라고 보이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이 자세히 읽어 상고하여 열어가야 하는 보배로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읽지 않는 성경책을 산다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순종하지 않을 성경을 읽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증거는 바로 성경 안에 쓰여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여러분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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