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년의 노래 레25:10-17, 눅4:18-19 희년의 노래 저는 인천 앞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항구 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어려서부터 동네 친구들과 함께 망둥이 낚시를 하기도 하고 어른들과 고깃배를 타고 낚시를 하곤 했습니다. 바닷가에 가면 갈매기를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놓치지 않고 낚아채는 갈매기의 모습을 보면서 신비로움을 느끼보곤 했습니다. 갈매기가 주인공인 책 가운데 리처드 바크가 지은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주인공 조나단 갈매기는 다른 갈매기들과 살아가는 모습이 다릅니다. 다른 갈매기들은 고깃배 주위를 맴돌면서 죽은 고기나 사람들이 던져 주는 빵 쪼가리나 과자 부스러기를 먹으며 살아갑니다. 반면에 조나단은 굶어가면서까지 혼자 나는 연습을 계속합니다. 엄마 아빠 갈매기가 조나단의 행동을 나무라며 다른 갈매기처럼 행동할 것을 요구하지만 그래도 조나단은 열심히 나는 연습을 합니다. 결국은 혼자서 누구보다 높고 빠르게 나는 법을 습득했습니다. 갈매기로서의 한계 속도를 초과해 보다 빠른 속도로 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생각에 잠깁니다. “이제 산다는 것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생긴 것인가! 어선에서 먹이를 얻기 위해 단조롭게 오고 가는 대신 살아야 할 더 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우리는 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자유를 억압하고 지배하며 갖혀 사는 인간 사회를 풍자한 내용입니다. 자유에 대한 추구는 인간의 소중한 권리입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 이것은 인간의 본능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세상의 부와 권력이 자유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자유는 다른 무엇과도 대체될 수가 없습니다. 참 자유를 얻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이 소망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 가운데 인간이 땅을 지배하고 정복하는 것은 소유하고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누고 베풀며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나의 욕구를 채우고 나의 소유를 늘리며 사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으로 되돌려 주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눔으로 나타납니다. 진정한 자유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려드림으로서 자유한 것입니다. 오늘날 자연과 인간의 삶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경제개발, 기술발전, 첨단산업, 자원개발의 명목으로 땅이 황폐해지고 아름다운 자연은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심성이 황폐해지고 피폐되고 있습니다. 기술문명과 과학의 이기성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망가트리면서까지 개발의 고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소유하기 위해서 창조 질서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복음송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이 땅에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 하소서, 이 땅 고쳐주소서.” 이 땅의 황무함, 무너짐, 병들고 망가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회복과 치유를 염원하며 희년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 가운데 자연과 인간의 삶의 문제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희년법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희년을 Jubilee 라고 합니다. ‘희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요벨’입니다. ‘요벨’은 ‘지휘하다’, ‘인도하다’ ‘포기하다’라는 뜻의 동사인 ‘야발’에서 유래한 것으로 ‘수양’ ‘수양의 뿔’, ‘금판 악기’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희년은 아람어로 ‘말을 타고 격렬하게 달리다’ ‘끈질기게 추적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양떼를 몰 때나 혹은 군대의 파발병이 어떤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리거나 신호를 보내는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또는 군대의 지휘자가 나팔수와 함께 군대 앞에서 지휘하며 앞으로 전진할 때에 나팔을 부는 경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요벨’이 희년을 뜻하는 용어로 쓰인 이유는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제 50년째 되는 해 7월 10일 속죄일을 기하여 나팔을 불며 희년을 선포하기 때문입니다(레 25: 8-10). 그리고 이 희년은 자유의 날로 상징되기도 하는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나올 때 일곱 나팔을 불며 기뻐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과 관련되기도 합니다. 출애굽의 힘겨운 과정을 겪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희년을 지킬 것을 선포하고 명령합니다. 레위기 25장 11-12절입니다.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 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 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그런데 레위기 본문의 구조를 보면, 희년이 안식년 규례에 대한 연장선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1-7절을 보면 안식년에 대한 규례가 나옵니다. 6년 파종하고 7년째에는 쉬는 것이 안식년 규례입니다. 7년씩 일곱 번 49년째 되는 해 가 안식년입니다. 49년째, 곧 일곱 번째 안식년을 마친 후가 50년이 되는데 이 50년이 바로 희년이 되는 것입니다. 희년을 이해하려면 먼저 안식년을 이해해야 합니다. 레위기 25장 4절과 5절에서는 제 7년에 땅을 쉬게 하고 그 해의 소출은 남종과 여종, 객과 품꾼들을 위한 소산으로 삼을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땅의 안식을 취할 것과 더불어 약한자와 이웃의 삶을 돌아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을 쉬게 하고 땅의 소산을 약한자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민족은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을까요? 불신앙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안식년을 포기합니다. 희년도 포기합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일만 하는 개미로 전락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지키지 않은 안식년 연수대로 바벨론 포로로 잡혀갑니다. 꼭 70년간 포로생활을 합니다. 70년간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이유는 490년 동안 70번의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70년의 안식년을 땅에 허락하시기 위해 70년간 포로생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내용이 역대하 36장 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하는 바벨론 포로 후에 기록된 책입니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능하였더라.” 레위기 25장 6절에서는 안식년 규례 가운데 보호받아야 할 구체적인 대상으로 남종과 여종, 객과 더불어 품꾼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문화권에서와 마찬가지로 히브리인들 사이에서도 경제적 약자가 있었고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어 품값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인 것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종이란 주인의 지배 하에서 예속당하고 자신의 권리와 주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품꾼의 경우는 자유인으로서 특별한 일에 고용 되었을 뿐 종과는 신분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지금말로 한다면 노동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일당을 받거나 연수에 따라 품삯을 받기로 한 사람들이고, 농업이나 목축업에 종사한 근로자입니다. 그리고 상업 등에 종사한 사람들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기한과 삯을 정하고 일했으나 학대를 받거나 억울함을 당하기 쉬웠습니다. 즉, 일자리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당한 처우에 항거하기 어려웠고 그 결과 곤궁하고 궁핍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는 근로자들이며 가장 약한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가 커다란 사회문제로 되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해결되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안식년 제도는 토지와 종, 품꾼과 나그네 즉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하나님의 창조행위입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사랑의 행위로서 나타나는 창조의 회복과 질서를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땅에게도 안식을 주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땅이 쉬지를 못하면 죽습니다. 산성으로 토양이 변해서 거기서 나는 생물은 인간의 몸을 병들게 하고 해롭게 합니다.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 달이 되면 창립70주년을 맞게 됩니다. 안식년으로 말하면 10번째를 맞는 안식년이기에 의미적으로 희년의 정신을 회복하자, 희년의 신앙과 삶을 살자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희년’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출애굽을 통한 영적 회복을 선언합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노예제도, 인신매매, 바알숭배, 토지몰수, 고리대금 등 온갖 사회적인 죄악과 부조리가 만연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인간의 도성에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회복하는 법을 제정한 것이 바로 희년법입니다. 레위기 25장을 보면 희년이 되면 나팔을 크게 불게 되어 있습니다. 나팔 소리 와 함께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공포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유인이 됩니다. 자유가 공포됨과 더불어 땅들은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고 자유를 찾습니다. 갇힌 자는 놓임을 받으며, 종들은 자유인이 됩니다. 땅은 인간의 혹독한 시달림 속에서 안식할 수 있는 평안을 얻게 됩니다. 모든 만물의 질서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의 모든 만물이 함께 사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함께 공존하고 함께 존속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과 논리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계산적인 잣대와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대로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순종하면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사회와 나라, 민족이 삽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자연이 사는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신약본문인 누가복음 4 : 18-19에는 희년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영원한 희년을 선포하셨고, 희년의 나라를 이룩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이룩한 이 자유를 이웃에 선포할 때 비로소 우리도 주님의 자유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는 참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자유인이 된 우리들에게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자유인이 되어 이웃에게 자유를 선포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만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웃에게 민족에게 열방에게 자유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누가복음 4:18-19). 이 말씀은 이사야 61장 1절로 2절에서 이미 메시야의 도래를 통해서 이루질 희년의 완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희년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희년은 이사야에서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라고 했고 누가복음에서는 주의 은혜의 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열납하시는 것으로 은혜의 해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열랍되는 헌신, 봉사, 예배, 삶으로 향기로운 산 예배의 모습을 펼쳐나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희년을 통해 땅을 돌려주고 빗을 탕감해 주며 종에게 자유를, 하나님의 정의가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향해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평화가 이 땅에 도래하는 역사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70년의 역사를 맞이하면서 하나님께 희년의 역사를 이루어 드리는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