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이 주는 교훈


희년이 주는 교훈
레25:8-12





조달용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에 희년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희년, 말 그대로 기쁨의 해라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것으로서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제도였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시간 사용의 가장 기본 원리는 안식일 제도다. 엿새동안 일하고 하루를 쉬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짐승들에게도 주신 제도로서 모든 시간 사용원리의 기초가 된다. 안식일을 무시하고 살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 7,80년이라는 시간을 다 헛되게 만드는 어리석은 행위가 되는 거지요.

그 다음 안식년이 있다. 안식년은 우선적으로 토지에 대해 주어진 제도였다. 땅을 경작할 때에 6년 간 계속 경작을 하고 7년째가 되는 해는 완전히 그 땅을 1년 간 쉬도록 했다. 성경을 보면 안식년에는 파종기에 곡식을 파종하지 말라고 했고, 수확기에도 포도원을 손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수확기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곡식이나 저절로 열리는 열매가 있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가난한 자들, 과부들, 나그네들, 외국인들, 심지어 가축들이 먹도록 그렇게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을 맞이하기 직전 해, 다시 말해 6년째 되는 해에 수확을 풍성하게 하셔서 안식년에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희년은 이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그 이듬해이다. 그러니까 7×7=49 하고 그 다음 해니까 매 50년마다 희년이 돌아오게 된다.

희년 행사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대로 7월11일 속죄일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양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법궤 뚜껑에 피를 뿌린다.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죄를 대신 속하는 화목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 다음 제사장이 나와서 전국 거민을 모아놓고 크게 나팔을 분다. 이 나팔 소리와 함께 희년 행사가 시작이 되었다. 그래서 이 희년이라고 하는 말의 히브리어도 \'요벨\'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양의 뿔이라는 말이다.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므로 해서 희년이 시작된다고 해서 희년을 요벨이라고 불렀다.

희년에 시행했던 일은 크게 세 가지였다. ①모든 종들에게 자유를 주는 일이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고 했다. 그래서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라 했다. 이것은 희년 행사의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종들에게 다 자유를 주었던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사유로 종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빚을 많이 졌는데 그 빚을 갚을 수 없으면 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종이 되었던 간에 희년만 되면 이스라엘 땅의 모든 종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②땅이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라고 말씀한다. 지금까지 사고 팔고 했던 모든 토지들이 희년만 되면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처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눠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래 나누어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다.

토지뿐만 아니라 부채도 전부 탕감되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의 매매는 희년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샀다고 해도 희년 때까지만 사는 것이고 결국 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희년이 되면 토지와 그 거래와 그 모든 복잡했던 금전관계를 청산하고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

③토지를 안식케 하는 일이었다. 11절을 보면 모든 토지에 대해 파종하지 말고 또 저절로 난 것도 거두지 말라고 했다. 땅을 쉬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땅도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손이 닿기 이전의 그 본래로 희년이 되면 돌아가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에 희년이란 한 마디로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원래로 돌아가는 것이고 그 속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것을 말한다. 잘못해서 종이 되었다. 희년만 되면 자유인이 된다. 빚을 졌다. 땅을 팔았다. 그러나 희년만 되면 다 없던 것으로 한다. 엉클어지고 왜곡된 과거가 다 청산된다.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원래로 돌아가 자유를 누리는 것, 이것이 희년의 원리요 희년의 기쁨이다. 그래서 희년의 또 다른 이름이 \'자유의 해\'였다.

그러니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년을 맞이했을 때 얼마나 기뻤겠는가? 당시 종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 그런데 그 종에서 값없이 자유가 주어진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꿈에 그리던 가족들을 만났다. 그런가 하면 여러 가지 이유로 해서 내 손에서 떠났던 기업들을 다시 찾는다. 하나님께로부터 물려받은 조상 대대로의 그 땅을 다시 찾게 된다. 그리고 빚을 탕감 받는다. 하루아침에 있던 빚이 없어져 버려요. 그러니 말 그대로 기쁨이 넘치는 한해가 되었을 것이다.

이 희년의 원리는 우리 주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이루어졌다. 주님의 원리는 생각해 보면 바로 희년을 완성시키신 것이다. 보십시오. 우리가 본래 자유인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그러나 범죄해서 죄와 마귀의 종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유업을 상실해 버렸다. 그런데 주님이 세상에 오셔서 마귀의 종 되었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또 우리의 모든 죄악 관계를 청산하셨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 앞에서의 지위를 회복해 주셨다. 희년 행사를 통해 과거를 청산하고 자유인으로 돌아가는 이 모든 원리를 주님이 완성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말하면 신약시대는 날마다 희년이다. 지금 매년 희년의 해를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죄에서 자유를 얻은 기쁨과 하나님의 유업을 다시 찾은 기쁨을 누리고 있다. 하나님 앞에 졌던 그 엄청난 빚들을 탕감 받은 기쁨을 누리고 있다. 지금은 시간 시간이 희년이요 하루 하루가 희년이요 희년의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금년은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해방된 지 61년째 되는 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일제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다. 어떤 의미에서 1945년 해방의 해가 바로 우리 민족에게 희년의 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는 진정 자유를 누리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여러분, 자유와 자유인은 같은 것이 아니다. 자유를 얻었다고 자유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정치, 자유로운 경제, 자유로운 환경, 이 모든 것이 자유일 수 있으나 그 속에 사는 사람이 자유인이 되지 못할 때 아무 소용이 없다. 자유인이 되어야 한다. 자유를 누릴 줄 아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때 우리 민족이 비로소 참된 희년을 맞이했다고 할 수 있다.

작년 광복60주년 기념 문화사업 추진위원회가 일제 잔재로 추천한 것들을 보면, 일제가 남긴 관습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액자 속 태극기\"다. 국기를 액자 속에 넣어 걸어놓고 \'경배\'하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일제 때 도입된 뒤 1990년대 일본과 대만에서조차 폐지됐으나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운용되고 있는 인감증명 제도, 고유의 글자체가 아닌 일본식 양식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지폐 안의 \'총재의인\' 표시도 잔재로 꼽혔다.

문화 분야와 상품 이름들의 왜색도 지적됐다. 미국식 발음으로 \'샌드\'라고 해야 되는데, 일본 발음으로 읽은 \'산도\' 과자가 대표적이다. \'진로 소주의\'라는 상표는 일본 우동집 차림표나 스모 경기의 대진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삐침이 큰 글자체(스모체)를 그대로 모방했다는 점에서 \'으뜸 추천\'을 받았다. \'거리는 부른다 환희에 빛나는…\'으로 시작되는 대중가요 \'감격시대\'는 1939년 발표돼 징용과 징병, 승전에 대한 기쁨을 노래하는 보급 권장가요이고, 백년설의 복지만리는 만주 진출이라는 일본 침략정책을 홍보한 노래다.

놀이문화에서의 일제 잔재 1순위는 단연 화투다. 화투의 그림, 용어가 왜색문화다. 이와 함께 묵찌빠나 쎄쎄쎄 등 어린이들의 놀이도 일제 잔재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일제의 잔재들을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외부적으로 없앤다고 우리 의식 속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가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깥으로 일제 잔재를 없애는 것보다 몇 배 더 중요한 것은 내적으로 우리 속에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식민지 근성을 없애는 것이 아니겠는가? 진정 우리 민족이 참된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의식 깊이에 뿌리박고 있는 식민지 잔재들을 뿌리뽑아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도, 그리고 지표, 이런 것들이 다 일본이 만든 것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다. 이게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데도 현대식으로 바꾸지 않고 일본인들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다니면서 만들어 놓은 그걸 그대로 사용하고 있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데, 조선시대 김정호도 대동여지도를 만들었잖아요? 오늘날 더 좋은 장비를 갖고도 바꾸겠다는 근성이 없어요.

지금 충청남도 도내 토지 가운데서만 조선총독부 및 동양척식회사, 일본인 소유의 토지가 190여만 평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국유지 편입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일본인 명의 토지가 광복 이후 61년 가까이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대해 충청남도 관계자는 \"충청남도를 비롯한 전국 지자체들이 특별조치법을 통해 이러한 토지를 조속히 정리해 줄 것을 수 차례 중앙에 건의했으나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거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제 우리나라 자유 대한민국이 아닌가? 그리고 일제가 강제로 점거한 땅들이 아닌가? 또 저거 땅이라고 주장도 아니하고 있고 말이다. 그러면 빨리 정리하고 본 주인에게로 돌려주든지, 국유지로 전환해야지요? 그런데 그냥 내버려두고 있어요.

여러분, 무엇이 문제인가? 이 나라에 자유와 해방이 주어진지 61년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자유인으로서의 근성이 부족해요. 자유가 주어졌으면 자유인답게 살려는 노력이 있어야지요? 모든 식민지 근성, 이거 다 버리고 자유를 얻은 참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지요? 그런데 그게 없어요. 아직도 식민지 통치 하에서의 노예근성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 줄 모른다. 이걸 다 뿌리뽑으려면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걸려야 될지 모른다. 진정한 희년의 자유는 여기에서도 해방되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자유다. 우리는 죄와 마귀의 종 되었던 상태에서 우리 주님을 통해서 자유를 얻었고 자유인이 되었다. 그러나 보십시오. 우리가 영적으로 자유를 얻었지만, 오늘 진정 자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오히려 많은 경우 다시 죄와 옛 사람의 습성에 매여서 끌려가고 있지 않느냐 말이다. 이 습성을 뿌리뽑아야 완전한 희년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다.

여러분, 내가 예수 믿은 날이 영적 해방의 날이다. 오늘로서 여러분은 영적 해방 몇 주년을 맞이했는가? 영적으로 해방을 맞았고 자유를 얻은 지가 어떤 분은 5년, 어떤 분은 10년이 넘었을 텐데, 아직도 죄의 근성, 옛 사람의 근성에 매여 사는 이유는 의지 부족 아닌가? 한 마디로 죄의 근성, 죄에 종노릇하며 살던 예수 믿기 이전의 어리석은 삶을 바꾸겠다는, 그래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강력한 근성이 없는 것 아닌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대표적인 옛 사람의 습성이 무엇인가? ⓐ황금우상이다. 예수 믿기 이전에 돈의 노예로 살았다 하더라도, 이제 예수 믿었으면 더 이상 돈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어야지요? 가면 갈수록 더 돈의 노에가 되어 가고 있다. ⓑ향락의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많다. ⓒ불평과 원망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다. 원망과 불평은 예수 믿기 전에 하던 노예 근성이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나서부터는 감사와 찬양의 인생으로 바뀌어져야 하는데, 아직도 예수 믿기 전에 하던 식으로 원망하고 불평하며 산다면 노예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러분, 깊이 생각하자. 우리는 다 자격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만큼 많이 주셨다. 우리 민족에게 자유를 주셨고, 우리에게 영적 자유를 주셨고, 이만큼 누리며 살게 해주셨다.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죄의 노예로 살기를 거부해야지요? 이제는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아가기로 다짐 또 다짐해야지요?

성도 여러분, 해방 61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자유의 뜻을 깊이 되새기자. 우리를 노예화시키는 모든 죄악과 방종의 사슬을 성령 안에서 과감하게 벗어버리자.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와 희년의 참된 기쁨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