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 레25:1-17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열방 가운데 참 독특한 민족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민족의 역사 가운데 개입하셔서 그 민족을 다스리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모든 이방신들과는 차원을 달리 하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독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민족입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에서도 독특성이 나타났지만 안식을 지키고 희년을 지키는 것은 정말 독특한 제도입니다. 안식년이 무엇입니까? 6년 동안 농사를 짓고 1년은 땅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안식일을 허락하시고 7일 중 하루를 쉬게 하셨지만, 땅은 7년 중 1년을 쉬도록 했습니다. 6년 동안은 씨를 뿌리고 포도원을 가꾸어서 곡식과 과일 농사를 짓고 한해는 땅을 놀려 서 안식하게 했습니다. 이 때 땅에서 저절로 나는 소출은 땅 주인 소유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먹을 만큼 거둘 수 있으며, 가축이나 들짐승까지 자유롭게 먹도록 하였습니다. 가끔씩 농사짓는 농부가 땅의 힘을 돋우기 위해서 객토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황토 흙을 밭이나 논에 섞어서 토질을 새롭게 하는 작업입니다. 이처럼 땅도 그 힘을 축적하는 기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년을 통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여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영원한 소유는 없다는 교훈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이웃과 말 못하는 짐승까지도 배 려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끝없는 인간의 탐욕과 부에 대한 욕망에 브레이크를 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안식년 제도를 단순히 생각하면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다 쉬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제 논리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7번의 안식 년을 지킨 후에는 2년을 연달아 쉬어야 하는 것이 희년입니다. 단순히 땅만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원 주인에게로 되돌리는 일이며, 종으로 부리는 사람들까지 자기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일입니다. 희년은 말 그대로 ‘기쁘고 복된 해’라는 뜻입니다. 49년 안식년은 평소의 안식년과 다름 없이 땅을 놀리고 소출을 거두지 않는 해로 지키 지만, 다음 해인 희년은 샀던 노예를 풀어주고 땅을 본래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희년에는 소유권을 되돌려 주는 해입니다. 자유를 선포하고 자기 기업으로 돌아가는 해 입니다. 희년에는 안식년과 같이 땅을 놀려야 합니다. 추수를 해서는 안되고 땅에서 난 소출은 누구라도 가질 수 있습니다. 희년이 걸린 안식년에는 내리 2년을 쉬어야 합니다. 희년에는 자기 소유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상으로 돌려주어야 하고 풀어주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부를 축적하거나 인권을 유린하지 못하도록 제동장치를 마련해 놓은 제도입니다. 50년에 한번씩 희년을 정하신 것은 인생에서 단 한번 있는 일입니다. 이것은 열심히 일하여 얻은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서구에서 상속세를 무겁게 징수하는 것은 성경의 희년사상을 도입한 예입니다. 상속을 해도 세금 때문에 실제 상속할 재산이 거의 없으므로 상속을 하기보다는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죽어서도 명예는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 세법입니다. 인구의 1/4인 천만명이 기독교인이라는 나라에서 이러한 세법의 제정이 요원하다는 것은 우리 기독교인의 수치입니다. 희년을 지키는 것은 안식년을 지키는 일보다 훨씬 더 힘든 일입니다. 경제 논리는 최소의 투자를 해서 최대한의 이문을 남기는 것이지 않습니까? 땅을 놀린 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경제논리입니다. 그러나 삶의 가치와 행복은 경제 논리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가치를 어떻게 돈으로만 매길 수 있겠습니까? 돈과 전혀 관계없이 행복감을 느낄 때도 많은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물질적인 유익을 얻었기 때문에 행복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물질적인 손해를 보면서 행복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안식년과 희년을 주신 의도가 무엇일까요? 안식년과 희년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안식년과 희년이 지니는 깊은 뜻을 바로 알게 된다면 지키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 다. 무엇보다 안식년과 희년에 땅을 쉬게 하고 종을 돌려보내고 땅을 돌려주는 제도를 명하 신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키우 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오늘 본문 18절과 19절에서도 이 점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 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 안전히 거할 것이라. 땅은 그 산물을 내리니 너희가 배불리 먹고 거기 안전히 거하리라\". 진정한 안정감과 안전감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믿습니까? 사람은 다 안전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은 보험에 들기도 하고, 재물을 모으기도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을 동원합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안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순종의 삶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서는 자기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게 하는 것이 1차적인 과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를 수만 있다면 문제 해결은 다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의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안식년 제도 와 희년 제도를 주신 것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을 주신 두 번째 이유는 가난한 자들과 빚진 자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여호수아 당시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필요를 따라 땅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다가 땅을 팔기도 하고, 빚쟁이에게 넘기기도 하고, 또 자 녀들까지 노예로 넘겨주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탐욕과 연약으로 인 하여 그런 사태가 발생될 경우를 미리 내다보시고 이런 제도를 명하고 계십니다. 가난한 자들이나 빚진 자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되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배려하셔서 땅을 되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자비와 긍휼을 보여주는 제도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을 주신 세 번째 이유는 사람들의 계층화와 착취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회 계층간의 이동을 시도합니다. 서민 계층에서 중산층 계층으로 이동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중산층은 더 높은 상류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합니다. 심지어 고대 사회 에서는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할지라도 이미 계층이 확정되어 있어서 계층간 이동을 할 수 도 없었습니다. 사회 계층을 이미 만들어 놓은 제도나 계층간의 격차가 발생하는 이런 일은 하나님께서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이 빚어낸 결과들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모든 사람에게 안식과 자유를 주시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 거운 짐진 자들이 한 가지로 쉼을 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일을 저질러서 스스로 가난하게도 되기도 하고, 스스로 부 하게 되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부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는 것은 저주에 가깝습니다. 또 정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 부자의 부는 가난한 자를 배려하는 부여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서 부자나 권력자가 자신의 부나 권력을 가지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착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완고함 과 연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 안에 발생할 수도 있는 계층화의 착취를 방지하기 위해서 안식년 제도와 희년 제도를 명하시고 있습니다. 안식년과 희년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확 보하고,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고, 계층화와 착취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이 안식년과 희년은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적용점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 이 안식년과 희년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안식일의 정신은 주일을 지키는 것으로 그런 대로 살리고 있다고 보는데 안식년과 희년은 그 정신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기껏해야 목사가 사역을 내려놓고 일년 정도를 쉬는 해가 안식년이라고 생각하는 정도입니다. 안식년은 목사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한국 사람처럼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일 중독에 걸린 것처럼 일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성공하 고 싶어서 생각할 여유나 쉴 여유조차 주지 않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40대 이후 돌 연사가 제일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세상 나라에서 안식년의 정신이 살아나기를 기대하기 전에 교회 안에서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 교회 당회에서 확정하지는 않았지만 구두상으로 약속해 놓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6년 사역한 후에는 시무투표를 해서 사역 여부를 하나님께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장로님은 장로 직분의 단임제를 말씀하기도 했지만 많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저의 개인적 생각은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시무 투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들이 많기 때문에 시무투표를 하려면 교회가 상당히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6년 동안 사역을 하고 시무투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장로인 경우에는 시무투표에서 신임을 받지 못하면 그 교회에 머물 수 있지만 목사인 경우에는 그 교회를 떠나야 합니다. 또 장로인 경우에는 일반 직장이 있기 때문에 생계 에 어려움이 없지만 목사인 경우에는 생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을 사역했기 때문에 교회가 안식년을 취할 수 있도록 1년 동안을 대책을 세워준다면 목사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음을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제도를 도입하면 목사나 장로가 더 신실하게 사역에 임할 것이기 때문에 교 회를 떠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시무투표보다 더 성경적인 방법은 6년 동안 사역을 하고 한 해 동안은 직분을 온전히 내려놓고 쉬는 것입니다. 저도 길게는 아니더라도 한 달 동안 두 번에 걸쳐 사역을 쉬어보았지만 참으로 유익이 많았습니다. 저 자신이 영적으로 충전할 수 있는 기회도 되었고, 무엇보다 교회와 교인 들의 소중성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2기 안식년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2004년인데 그 때는 정말 제대로 안식년을지 켜볼 수 있는 여건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진주에서는 아직 전례가 없는 일이거니 와 그 일을 제대로 해 낼려면 우리 서로가 신뢰를 더 쌓아가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교회나 목사가 안식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배후에는 서로를 향한 신뢰의 부족 때문 이요,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부족 때문입니다. 담임목사의 마음 속에 내가 사역을 내려 놓고 6개월이나 1년 동안을 쉬게 되면 교회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도 담임목사가 교회를 비우면 교회가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을 내려놓지 못합 니다. 그런 불안 때문에 담임목사가 교회를 장기간 비우지를 못 합니다. 우리가 안식년을 제대로 해 보려면 이러한 불안을 제거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실제로 진주 시내 안에서도 그런 사례가 지금 있기 때문에 신뢰보다 불안이 숨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교회가 이런 일에 도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기도하고 있습니다. 6년 사역 후에 6개월이나 1년을 제대로 안식하면서 영적 충전과 쉼을 취할 수 있기를 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주시내 교회들 가운데 있는 불신과 불안과 염려를 끊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왕에 우리 교회가 주목받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제대로 한다면 확실히 주목받는 교회 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힘쓰고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나의 안식이 개인적인 안식으로만 끝나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안식년의 정신은 특정인만 안식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전체에게 안식이 흘러가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가 개인적인 안식만 취해서는 곤란합니다. 개인의 안식은 공동체 전체의 안식에 기여할 수 있는 안식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안식 개념을 한 마디로 말해 보라 그러면 \"총체적인 안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안식 개념을 총체적인 안식입니다. 반면에 우리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식은 상당치 편견적인 안식이고 부분적인 안식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이 왜 총체적인 안식입니까? 사람은 기껏해야 자기 자신의 안식을 챙기기에 급급한데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뿐만 아니 라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식을 염두에 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남종과 여종과 나그네와 품군의 안식을 챙기고 계시며, 땅과 포도 원과 포도나무의 안식도 챙기시고, 나아가서 육축과 땅에 있는 들짐승의 안식까지 챙기 고 계십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안식의 개념과 하나님이 생각하는 안식의 개념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안식이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피조물에게 안식이 없으면 결코 만족하지를 않으십니다. 자기 백성들에게 안식이 없으면 하나님 자신의 안식은 아무런 의미다 없다고 생각하십 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왜 안식일에 일하느냐고 항의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는 사람들이 안식을 확보하지 못한 채 피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되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안식만을 안식으로 생각하는 선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이 안 식을 얻을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은 피곤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안식을 자기 자신의 안식으로 여기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아 버지의 마음이요 어머니의 마음이다. 자식에게 안식이 있기까지는 조금도 쉴 마음이 없 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오늘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나의 안식만을 안식으로 여기는 수준 에서 다른 사람들의 안식까지 나의 안식으로 여길 수 있는 영적인 성숙함의 자리로 나아 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믿음이 연약해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지체들에게 충분한 안식을 주기 위하 여 나 자신의 안식을 포기하면서까지 형제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 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편견적인 나의 안식 개념을 던져버리고 하나님의 안식 개념을 받아들여야 합니 다. 우리는 나 자신의 안식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일에 다른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데 나는 왜 이렇게 많은 일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최목사를 볼 때 어때요? 제가 그런 생각으로 주일을 섬기는 것 같습니까? 만약에 그런 마음이라면 전혀 여러분 에게 은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안식을 주기 위하여 모든 일을 즐거움으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여 러분에게 안식이 없으면 나 자신의 안식이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주일 밤예배까지 할 것이 약간은 걱정이 되지만 주께서 은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나 자신의 안식만을 위하여 일을 하거나 나 자신의 안식만을 위하여 쉬는 것은 바람직하 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하는 것이 안식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쉬는 것이 안식일 수 있습니다. 일함으로 안식하든지 쉼으로 안식하든지 간에 자기 자신의 안식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의 안식 개념과는 거리가 먼 안식입니다. 우리의 안식은 본문 4절에 있는 것처럼 마땅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어야 합니다.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는 의미는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안식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 로 생각하는 안식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일을 해도 여호와께 대하여 일해야 하고, 쉬어도 여호와께 대하여 쉬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일을 해도 하나님 안에서 일해야 하고, 쉬어도 하나님 안에서 쉬어야 한 다는 얘기입니다. 나의 안식은 나 홀로 생각해서 취하는 안식이 아니라 여호와께 대한 안식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안식일에 쉰 적이 있었습니까? 도무지 쉬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 안에 안식이 없었습니까? 예수님 안에는 일을 하면서도 안식이 있었습니다. 대단한 영성입니다. 한번도 쉰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을 늘 확보하고 계셨으니 말입니다. \"안식일인데 왜 이렇게 일이 많을까?\" 하면서 짜증은 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 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습니까? 그 비밀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총체적 안식의 개념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총체적 안식의 개념은 피조물 가운데 어느 것 하나라도 안식이 없으면 하나님의 안 식은 진정한 안식이 아니라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식을 위하여 지금도 일하고 계십 니다.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볼 때에 안식에는 두 종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을 얻음으로 오는 안식이 있고, 포기함으로 오는 안식이 있습니다. 또 일을 열심히 함으로 얻는 안식이 있고, 일을 쉼으로 얻는 안식이 있습니다. 경제논리에 의하면 일을 해야만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논리에 의하여 일을 쉬고 물질을 포기함으로써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 다. 내가 물질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경우에는 비록 물질적으로는 손해가 발생 했지만 나의 섬김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쉼을 얻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큰 안식이 임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안식년이나 희년의 정신이 바로 이것입니다. 나 개인만의 안식을 안식으로 여기지 않고, 내 동족 전체의 안 식을 안식으로 여기는 정신이 하나님이 정하신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입니다. 그러면 안식년을 지키고 희년을 지킬 수 있는 비밀이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면 안식년 을 지킬 수 있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의 안식 개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총 체적 안식 개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나만의 안식을 안식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적이고 부분적인 안식 개념에서 벗어나서 나 자 신과 다른 사람들과 온 인류와 심지어 땅과 거기 거하는 들짐승까지 안식할 수 있어야 진정한 안식이 성취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냥 피곤하니까 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하는 것도 내 체질에 맞으니까 일하거나 일을 해야 내 마음이 편하니까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년을 지킬려면 안식일을 지키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희년을 지킬려면 안식 년을 지키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연습과 훈련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합니 다. 요즈음 2002 아시안 게임이 진행 중입니다. 수많은 선수들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기록을 조금 더 갱신하기 위해서 그야말로 피눈 물 나는 연습과 훈련을 하지 않습니까? 아시아에서 1위가 되는 일입니다. 정말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놀라운 기록들이 피눈물나는 연습과 훈련의 결과로 빚어집니다. 연습과 훈련이 없이는 절대로 그런 결과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연습과 훈련의 중요성을 역설한 바가 있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8). 육체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영적인 영역에서도 연습과 훈련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연습과 훈련이 없이는 결단코 안식년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또 한 안식년을 지키는 연습과 훈련이 없이는 희년을 지키는 일을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에게는 6년을 일하고 1년을 쉰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안팎에서 그런 유례를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에서 그런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의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6년 교사 생활을 하고 7년째는 1년을 휴직한다고 합니다. 과연 성경적인 정신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해 보고자 하는 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 다. 이 안식년의 제도는 사회 어느 영역에서든지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 직분에 대해서도 항존 직분인 경우에 목사와 장로와 안수 집사와 권사 직분을 6년간 수행하고 나서는 1년을 안식하는 것입니다. 정말 해 볼만한 제도입니다. 그것을 실천할 경우에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복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1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 법도를 행하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 땅에서 안전히 거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 다. 희년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께서 이 땅에 인간이 되어 오셨고,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고,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이끄셨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탕감하시고 포로 된 상황에서 해방을 선포하셨습니다. 조건 없이 값없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이사야 61장을 인 용하면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 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여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 즉 희년을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본문은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다른 우상과 다르다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시의 모든 잡신과 비교할래야 비교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우리 주 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땅의 개발만이 아니라 그 땅의 회복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위대하신 분입니까? 이 세상에서 안식이 필요하지 않은 피조물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육적으로 영적으로 충분한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또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 은 얼마나 안식을 누리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안식일과 안식년 과 희년의 정신을 이어받아 땅을 비롯한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십시다. 물질이나 땅이나 재산이나 건강이나 시간에 대해서 내가 주인인냥 군림하지 않는 것이 안식년과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12절에 보면 이것이 거룩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나 혼자서만 안식하고 다른 사람은 고통당하는 것은 진정한 거룩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의 성격은 자유와 안식을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누리는 것입니다. 거룩은 거룩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거룩은 온전치 못한 거룩입니다. 거룩이 아니라 오히려 더러 운 것입니다. 온 세상이 더러운 것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만의 안식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년이야말로 온전한 거룩의 정신을 담고 있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희년의 정신 과 안식년의 정신으로 신앙생활에 임하게 된다면 참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종노릇하는 우리를 해방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림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 안식이 흘러갈 수 있도록 희년의 정신을 되새기며 어떻게든지 삶의 현장에서 실천해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도 록 하십시다. 결단과 촉구/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틀 속에 갇혀 나 자신만을 생각하거나 내 가족만 생각하거나 내가 속한 공동체만 돌아보는 편협성에 갇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자연 만물까지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희년은 경제 정의와 평등한 분배의 원리도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경제정의는 자본의 지배를 받으며 약하고 힘없는 자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고려하더라도 그저 약간의 시혜 차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제정의는 그 차원을 넘어섭니다.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경제 논리를 원천적으로 바로잡습니다. 특히 당시의 경제의 근본을 이루는 땅의 회복을 이루게 하심으로 연약한 자들, 힘없는 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배려하심이 얼마나 깊은 데까지 미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은 안식년과 희년의 문제를 단순한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문제로 보고 계십니다. 안식에 대한 개념이 너무 애매하고 편협하고 부분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잡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자유와 안식은 편협한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이웃과 그 소속된 사회와 나아가서는 전 우주적인 영역을 포함합니다. 지혜와 깨달음과 순종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기도 드립시다. 나의 안식과 나의 자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의 자유와 안식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기 도 드립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