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의 축복

희년의 축복
사61:1-3





오늘은 우리교회로서는 매우 뜻 깊은 주일입니다. 창립 50주년이 되는 바로 그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으로 희년 바로 그 주일이기 때문입니다.

‘희년’은 히브리어 ‘요벨’(Yobel)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요벨은 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나팔을 가리킵니다. 이 나팔과 관련해서 레위기 25:8-9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찌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크게 불찌며”

하나님께서 희년을 시작하는 그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국적으로 일제히 나팔을 불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희년을 나팔을 불면서 시작된 새로운 해라는 뜻에서 요벨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성경적으로 볼 때 우리가 이 자리에서 힘차게 나팔을 불어야 하는 날입니다. 은혜의 때, 축복의 때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나팔을 불어야 하는 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희년의 나팔을 붑시다. 이 골짜기에 은혜의 때가 도래했음을 알립시다. 이 땅에 축복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립시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희년에 이 땅에 큰 복을 주실 것임을 믿고 이 세상에 선포합시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요벨을 영어문화권과는 다르게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어문화권에서는 요벨을 음역해서 ‘쥬빌리’(Jubilee)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자문화권에서는 성경적 의미를 담아서 희년이라고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희년(禧年)이라는 말에서 禧자는 ‘복 희’자 입니다. 그러니까 이 해는 정말 복된 해라는 뜻입니다. 특별한 복이 임하는 해라는 말입니다.

이 희(禧)자를 설문해자로 풀어보면 신주 또는 제사를 뜻하는 시(示)자와 기쁠 희(喜)가 합해서 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희자는 신 앞에 제사를 드리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희자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기뻐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을 “복 희”라고 한다는 점입니다. 이 희의 의미를 복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 복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희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쁨을 누리는 참된 축복의 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눅 15장 탕자의 비유는 간단히 말하면 아들이 가출했다 돌아오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것보다 아버지 집을 떠나 저 흥미진진한 세상에 나아가 사는 것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졸라서 장차 자기가 받을 유산을 미리 받아서 가출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떠나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아버지 집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것이 참된 행복인 줄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결단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 보니 아버지가 반겨주십니다. 그동안의 걱정 근심이 다 사라집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정말 기뻐하시는 모습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더 큰 기쁨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음이 정말 큰 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 품에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릴 수 있기에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그 뿐 아니라 내가 하나님 품에 있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깨닫게 됩니다. 보잘것없는 나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더 큰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희년의 축복의 핵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정말 큰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맛 볼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이런 희년의 축복이 지금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와 이 민족 역사 위에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진정한 희년에 대한 비전을 말씀하고 있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입니다. 일찌기 레 25:8-12을 비롯하여 율법에 희년의 규정을 말씀했습니다. 법규정을 통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서 꿈꾸시는 희년의 비전을 이루고자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야의 강림 이후 진정한 의미로 희년이 실현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갈릴리 나사렛 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성경 말씀을 봉독하시고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 때 봉독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눅 4:18-9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기도하셨고 이어서 마귀 시험을 물리치신 후에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갈릴리 지방으로 가셔서 나사렛 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시고 말씀하셨는데 그 때 읽은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눅 4:18-19)

본문 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슬퍼하던 자들이 기뻐하게 되며, 재를 뒤집어쓰고 탄식하던 자들이 찬송을 부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임재하신 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희년의 축복인 것입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메시야가 오신 후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게 될 기쁨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희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게 될 기쁨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희년에 우리가 누리게 될 축복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 희망의 기쁨

본문 1절을 보면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당시 가난한 자들은 사회적이 약자입니다. 자기들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살던 사람들입니다. 저들이 메시야를 만나게 됩니다. 그 때 메시야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저들이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되면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무디라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라도 다 알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4살 때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갑작스럽게 돌아가셨기 때문에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17살 되던 해 보스톤으로 가서 외삼촌 구두 가게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외삼촌 성화에 매 주일 교회에 나가게 됐습니다. 이 때 주일학교 선생님 에드워드 킴볼을 만나게 됐습니다. 킴볼 선생님이 성경을 선물로 주었지만 당시 무디는 거의 글을 읽지 못해서 창피하기도 하고 해서 오히려 교회 나가기를 꺼리게 됐습니다.

한 번은 이 킴볼 선생님이 구두방으로 무디를 찾아갔습니다. 조용히 조용한 말투로 주님께서 무디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무디를 향해 얼마나 큰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주님께 헌신하지 않겠니?” 무디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그 순간을 무디는 후일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새로운 세계에 있었다. 새는 더 즐겁게 노래하고 태양은 더 밝게 빛났다. 나는 이전에 이와 같은 평안을 결코 알지 못했다.”




무디는 정말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킴볼 선생님의 도움으로 주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희망을 주셨습니다. 그 희망이 그에게 주체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얻게 했습니다. 정말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놀라운 복음 전도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희년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해입니다. 이 세상에서 절망하던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해 입니다. 그 희망 속에서 놀라운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희년에 우리가 누리게 될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희망 속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회복의 기쁨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세상사는 동안 이렇게 저렇게 상처 받고 찢긴 심령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주님을 만난 뒤에 치유 받고 그 심령이 온전히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살아있는 비너스라 불리는 엘리슨 래퍼라는 분이 얼마 전에 우리나라를 다녀갔습니다. 밀로의 비너스처럼 양팔이 없고 다리만 조금 붙어있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1965년 엄마가 임신상태에서 수면제와 신경 안정제를 너무 많이 먹어 부작용으로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습니다. 생후 6주 만에 거리에 버려져 복지시설에서 자랐습니다. 21세에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9개월 만에 해어졌습니다.

남편과 이혼한 후 어려서부터 꿈꾸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의 해덜리 미술학교와 브라이튼 대학을 졸업하고 예술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구족화가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작년에 세계 여성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와서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정말 이 분은 위대한 인간승리를 이룬 분입니다. 입으로 그림을 그려냈다는 것 부단한 자기 노력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더 위대한 점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상처를 치유했다는 것입니다. 어려서 엄마에게 버림받은 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남편에게 매 맞고 이혼당한 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양손이 없고 다리마저도 온전치 못한 장애인으로 사회의 냉대 속에 그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어떻게 그 엄청난 마음의 상처를 다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어려서는 부끄러움에 의족과 의수를 낀 때도 있었답니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된 후 의족과 의수를 다 던져버렸답니다. 당당하게 예술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말 이 점이 위대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가슴에 묻어둔 채 살아갑니다. 때로는 그 마음의 상처가 되살아나 나를 괴롭힙니다.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며...”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깨끗하게 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크기는 그렇게 중요치 않습니다. 그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작더라도 여전히 남아있으면 늘 나를 괴롭힙니다. 기쁨을 빼앗아가 버립니다.

이제 주님께 마음의 상처를 내어 보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어루만지시면 깨끗하게 낳게 될 것입니다. 더 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의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이 또한 우리가 희년에 누리게 될 축복입니다.




3. 자유의 기쁨

본문 1절에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년에 참된 자유를 맛보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 25장 희년에 관한 말씀을 보면 그 첫 번째 내용이 자유에 대한 선언입니다. 1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찌며” 희년에 노예로 종살이 하던 사람들을 다 자유롭게 돌려보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해 주셨습니다. 포로된 자, 눌린 자를 영적으로 원수 마귀에게 짓눌려있는 사람들에게 참된 영적 자유를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군대 생활 때 이야기입니다. 전방 철책선 초병 근무를 설 때였습니다. 한 병사가 근무를 서다가 한 밤중에 소복입고 나타난 귀신을 보았다고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삽시간에 그 소문이 돌면서 살이 붙여졌습니다. 그 병사가 근무 서던 그 자리에 여러 해 전에 정신이 이상한 젊은 여자가 한 밤중에 월북하려다가 사살당해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년에도 다른 부대가 철책 경비를 할 때 그 자리에서 가위눌려 죽을 뻔 한 병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소대장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무래도 박일병이 그 자리에서 근무를 서야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인즉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분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처음에 정말 겁이 났습니다. 할 수 없이 밤이 새도록 찬송을 불렀습니다.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이 일이 기회가 돼서 매일 저녁 내무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담대하게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병사들이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정말 저는 큰 기쁨을 맛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영적으로 참된 자유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심령을 억압하는 마귀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의 권세가 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억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주님께서 희년에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이 참된 자유는 우리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억누르던 그 모든 세력으로부터 참된 자유를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이 희년 주일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임하시면 우리는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희망을 얻게 됩니다. 회복의 은혜를 얻게 됩니다. 참된 자유를 맛보게 됩니다. 이로써 놀라운 기쁨을 얻게 됩니다. 이런 큰 축복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