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의 나팔


희년의 나팔
레25:8-17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사랑하사 민족의 해방을 주신 지 53년이요, 자유 대한민국 건국 50년이 되는 날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자유를 빼앗기고 신사참배의 강요 속에 눈물 로 기도하던 신앙의 자유를 얻게된 축복의 날입니다. 50년의 개념은 매우 중요한 시점임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430년 동안 이나 애굽의 억압과 압제 속에 고통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자 유를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게 된 해로부터, 즉 이스라엘이 가나 안땅에서 정착한 후 매 50년이 되는 해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 서 명한 것이 희년의 나팔을 불라는 것이었습니다. 희년이라는 말은 일곱 번의 안식년이 지나 50년이 되는 해가 희년이었습니다 . 희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요벨\"이라는 단어로서 그 뜻은 \"수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가리키는 단어 입니다. 9절에 보면 그 나팔을 전국에 크게 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나팔이 담고 있는 의미는 무 엇입니까? (1) 시간을 알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상 시간이 되었고, 취침 시간이 되었고, 공격할 시간이 되었고 , 멈출 시간이 되었을 때에 나팔을 통하여 깨닫게 합니다. 건국의 희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정한 시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 은 오랜 시간동안 생활을 하다가 보면, 주기적인 삶의 패턴 속에서 목적과 방향도 없이 자기도 모르게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 하루하루 일주일을 살 고 안식일을 통하여 영육 간의 쉼을 갖고, 또 한해 한해를 살면서 7년이 되는 해에는 안식년을 맞이하고, 이렇게 일곱 번이 지 나고 나면, 50년이 되는 해에는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무엇인가 우리의 삶에 획을 긋는 의미를 갖으라는 말씀입니다. (2) 한두 사람의 귀에 속삭일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선포되어져야 할 도구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전국에 나 팔을 크게 불어서, 희년의 의미를 모두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선포되어지는 희년의 나팔을 통하여 명령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희년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회개와 상처를 감싸주는 것에 있습니다.

엊그제 한국으로부터 낮 모르는 사람에게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내용이 쓰여있 었습니다. 한 중소 기업의 사 장이었는데, 납품하던 대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자연적으로 작은 그 회사도 부도가 나고 말았습 니다. . 그후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지고, 마땅히 먹을 것도 사오지 못하는 삶이 부끄러워 역 대합실로 나갔습니다. 오랜만 에 집엘 들어오니, 중학교 2학 년이었던 딸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고 술집에 나아가 몸을 팔아 집안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 무 너지는 가슴을 안고 그 술집을 찾아가 딸아이를 강제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둘은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열린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조용한 교회에 부녀는 둘이 앉아서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난생 처음 아버지는 하나님께 기도해 보았습니다. \" 하나님, 모든 사람이 자기를 불쌍히 여기게 하시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 당신만이 우리 가족을 불쌍히 여기소 서.....\" 우리의 조국이 건국 50년의 희년을 맞이하며,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현재의 주소입니다. 50년의 시간동 안에 물질적으로 좀 나아졌다고 해서, 성도들에게 얻어진 것은 나태한 신앙뿐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61:1-3에서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한마디로 \"희년의 나팔이며 희년의 선포 \"라고 말씀합니다. \" [사 61 :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 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 게 놓임을 전파하며 [사 61 :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 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 :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 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 61 : 4] 그 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 들을 중수할 것이며 ....

우리 민족에게 선포하시는 희년의 나팔소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시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 처럼,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 재대신 희락을, 무너진 황폐한 성읍을 다시 중수하는 축복을 누 리자.







1. 희년의 나팔은 \"회개\"의 나팔입니다. (13-17절) ( 예수님 사역의 첫 음성은

\"회개의 나팔\"이었습니다 )



희년의 나팔이 담고 있는 명령어가 있습니다. 특별히 14절에 보면, \" 네 이웃에게 팔 든지 네 이웃의 손에서 사거든 너 희는 서로 속이지 말라..... 17절에...너희는 서로 속이지 말고 너희의 하나님을 경외하 라....\" 서로 서로 속이지 말 고 정직 하라...이것이 희년의 나팔을 통하여 우리에게 명하시는 말씀입니다. 50년 동안 사용된 실타래가 꼬일 대로 꼬여있는 데, 그 모든 실타래를 풀어서 다시 시작하도록 명령하시는 시간이 희년의 선포라면, 그 꼬여진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시 작은 \"회개\"에서부터 출발되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정직에 대한 명령은 \"서로 서로\"라는 단어가 강 조되어서 쓰였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상하여지고, 찢기어진 마음이 되었을 때에 누군가와 서 로 손을 마주 잡고 노력하게 된 다면, 그 사람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다 상하고 찢기어지고, 마음에는 절벽과 같은 담을 사방으 로 쌓고, 이 사람도, 저 사람도 싫고 밉고 증오한다면 그 사람은 일의 실패보다 더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게 될 뿐입니다. 그래 서, 희년의 나팔은 서로의 손을 잡고,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에, 해방되는 날까지, 아무도 \"이제 해방될 때 가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사 람이나, 해방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1%도 안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 님께서는 우리 민족에게 자유와 해방의 축복을 주셨고, 50년의 시간동안,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꼬여진 실타래뿐입니다. 정치, 경제, 사회, 법정, 의학계, 학 계,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잔뜩 꼬여진 실타래뿐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을 향하여, 희년의 나팔을 불도 록 명하십니다.

정직함과 진실함으로 향한 회개입니다.

우리 민족의 축복은 갈아치우는데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못해서 우리 나라 경제 꼴이 이 모 양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대통령이 바뀌면 무엇이 낳아집니까? 한국의 축구가 월드컵 경 기 중에 감독을 경질해 버림으로 감독에게는 최고의 수치심을 입혔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아진 것은 무엇입니까? 사실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한국 축구의 현주 소였습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강의 팀 ! 월드컵에 나아가 누구를 1승의 희생물로 삼을까? 우 리는 이 고민에 빠져있었지만, 현재의 주소는 어림없는 착각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의 부정직하고 속이는 마음을 온전히 회개해야 희년의 나팔 소리입니다

. 오늘날의 이 시급한 현실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면 \" 부정직, 속이는 마음\"입니다. 제가 종종 가는 식당 일식집이 있습 니다. 종업원들 모두가 일본 사람들인데, 처음엔 값싸고 참 맛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따금 들릴 때마다 양도 작아지고, 비싼 재료는 점점 사라져가고, 값도 매우 치사하게 올립니다. 일본 사람들의 상술도 이제는 별 수가 없구나...하면서, 우연히 주인이 들어와 보게 되었는데, 한국사람이었습니다. 50년 동안에 우리의 마음에는 욕심들로 가 득할 뿐이었습니다. 이제 돌아 볼 시간입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우리들의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솔직한 모습, 정직 한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정직한 모습은 그 자체가 중요하고 복된 것입니다. 저도 사실은 정직하게되면.... 혹시나 하고 바라는 보상이 있지는 않은가? 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서양사람들은 그 정직 그 자체를 그 무슨 물질과 보상보다도 가장 값어 치 있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한 꼬마아이가 아주머니의 지갑을 주워서, 아주머니를 찾아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지갑의 돈을 세어보았습니다. 맞았는데, 이 상하게 만 원 짜리 가 천 원 짜리 10장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얘야, 돈 액수는 맞는데, 왜 만 원 짜리 가 천 원 짜리 가 되었 는지 모르겠구나.... - 지나 번에도 이와 같이 지갑을 주워서 주인을 찾아주었는데, 잔돈이 없다고 한푼도 안 주잖아요... 정직 을 물질로 계산된 보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직하지 못해서 나라는 썩었고, 그 고통 을 스스로 당하고 있습니다. 희년의 나팔 소리를 통하여 우리의 정직성을 회복하되 우리 모두가 서로 손을 잡고 회복할 수 있 게 되시기를 원합니다.







2. 희년의 나팔은 회복의 나팔입니다. ( 10-11, 13절, 41절에 ) ( 예수님의 공생애는 치유의 사역

이셨습니다 )



희년의 나팔을 명령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명령과 더불어 가장 강조하시는 말씀은 \"회 복\"(healing)입니다. 돌아가라 , 돌이 키라, 돌아가게 하라, 발걸음을 돌이켜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10절에 \" 제 오십 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 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 족에게로 돌아갈 지며 .... \" 41절에 보면, \" 그 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 족에게로 돌 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 54절에 \" 그가 이같이 속하지 못하면 희년에 이르러 그와 그 자녀가 자유 하 리니....\" 희년의 나팔이 담고 있는 의미는 회복과 치유입니다. 희년을 맞이하면 종 된 자와 노예 된 자에게도 회복시켜 주도록 명하셨으며, 모든 부채도 정리하고 탕감해주라고 말씀합니다.

빼앗았던 토지가 있거든 그 때에는 돌려주라고 말씀합니다. 희년의 축복은 회복의 시작에 있습니다. 오늘날 경제적인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가진 사람은 점점 가진 것 때문에 더 많이 가지게 되고,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더 가난해져 가기 때문에 경제 공황과 불경기를 초래합니다. 그래서, 가진 사 람은 행복합니까? 모두의 불행을 자초합니다. 우리에게 희년의 축복을 주신 것은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하시는 축복의 회복인 것입니다. 용서하고 탕감하고 돌이키게 하는 일이 결코 우리들에게 손해보는 일이 아닙니다. 희 년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절 대적 용서와 자비에 근거한 축복의 해이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빚진 모든 것과 용서치 못하는 모든 마음들을 모두 정돈하고 새 롭게 출발하여야 하는 의무도 주어진 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향한 회복의 축복은 이사야 35:1-10에 잘 말씀되어 있습니다. \"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 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사 35 : 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 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사 35 : 4]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 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사 35 : 5]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 가 열릴 것이며 [사 35 : 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 사 35 :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 [사 35 :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죄와 욕심과 물질에 메여 살던 우리의 모든 삶이 낳은 것은 두려움과 어두움뿐이지만, 하 나님은 온전하고도 완전한 회복을 허락하시는 축복의 해가 희년의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생쥐가 항상 발발 떨면서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항상 무서웠기 때문에, 여기서 도, 저기서도 고양이가 나타날 것만 같고, 잠을 자도 고양이 꿈만 꾸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 하나님 난 고양이가 너무 무서워서 못살겠어요 어떻게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하나 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 그런데, 그래도 발발 떨고 사는 겁니다. 왜 이번에는 그렇게 떠느냐? 하니 까, 하나님 개가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어딜 가나 개가 짖으면서 따라 다니는데, 무서워서 못살겠어요.... 그럼, 널 개로 만 들어주마... 개가되어도 발발 떨고 구멍에서 나오질 못합니다. 왜? 호랑이가 무서워서 못살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 시 생쥐로 돌이켜주면서 네 마 음이 생쥐라면 네가 무엇이 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라고 말씀했다고 합니다. 우 리 마음이 아무런 변화가 없이 외 적인 변화가 있다고 해서 아무리 달라진다고 우리의 고난의 모습은 항상 마찬가지일 뿐입니다. 희년의 회복 선포는 외적인 것 이 아닙니다. 온전하고도 중심을 다한 회복을 말씀합니다.

희년의 선포는 우리 중심의 회복과 healing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 모든 자에게 희년의 복된 소식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범사의 회복을 얻 는 축복을 받는 복된 희년의 선 포가 우리들의 중심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우리의 선한 양심의 회복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들 의 가정의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신앙과 교회의 삶, 민족의 온전 한 회복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3. 희년의 나팔은 영적 충만의 나팔입니다. ( 예수님 사역을 통하여 베푸신 축복은 성령 충만함

이었습니다 )

희년은 성경에 중요한 또 하나의 의미가 영적 충만의 의미입니다. (회개와 회복의 축복을 통한 궁극적 축복은 영적 충만인 것입 니다) 애굽으로부터 정녕 자유와 해방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희미해진 우리의 주께로 향한 마음을 다시 한번 돌이킴으로 영적인 충만함으로 재충전하는 기회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희년의 정의는 일곱 번의 7년에 이 은 이듬해를 가리킵니다. 레위기 23장에 보면 오순절의 절기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오순절이라는 말은 다섯 번의 순 (열흘)이라 는 말입니다. 즉 50일째가 되는 날이 오순절이고, 이는 곳 희년의 50과 깊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 가의 다락방에 성령 충만한 역사 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서두 1절을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 매...\"라고 말씀되어져 있습니다. 그 오순절은 50일이 지난 후라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중의 하나로서 유월절을 드리 고 7주간을 지난 후의 다음날이 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부르고 50일째라고 해서 오순절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도행전의 오순 절은 유월절 이후 50이라는 말도 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5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순절의 축복은 말로 형언하기 힘든 성령 충만한 축복 의 날이었습니다. 희년의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의 백성들의 멀어졌던 마음 들, 세상적인 것들에 빼앗겼던 마 음들로부터 돌이켜 영적인 회복, 하나님 되심과 그의 백성됨의 충만함을 위한 나팔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또한 50을 잊지 못할 것이 출애굽기 27:18에 나오는 성막의 길이입니다. [출 27 : 18] 뜰의 장은 백 규빗이 요 광은 오십 규빗이요 세마포장의 고는 오 규빗이요 그 받침은 놋이며 ....

성소의 넓이가 오십 규빗이고 성소의 고가 오 규빗입니다. 구약의 성경이 말씀하는 성막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교회의 모형입니다. 영적 충만이 그리스도안에, 교회 안에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50은 곧 성령님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다 고 말합니다. 희년은 성령의 충만함과 밀접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년에 선포한 것은 \"자유를 공포하라 \"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3:17을 보면, \"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 유함이 있느니라...\" 자유 의 선포는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이루어짐을 말씀합니다.

지난 주중에 , 윤 집사님께서 저에게 늘 신앙 잡지를 주시는 것이 있는데, 헨리 나우엔에 관한 기사를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 습니다. 그분은 예일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시던 1985년이 그의 생애에 중대한 한 해였습니다. 프랑스의 정신지체아 들을 수용하여 기르는 라쉬드라는 곳의 책임자인 존 버니어라는 사람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처 음에는 강사로 청빙된 것으로 알 았습니다. 그런데, 참석해보니까, \" 우리 수양회는 침묵의 수양회입니다. 사흘동안 아무 강의도 말도 필요없습니다. 기 도하고 몸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섬기는 수양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실망도 하지만, 아무말도 없이 정 신 박약아들을 돌보아주고, 발을 씻어주고, 밥을 준비하고, 함께 그들과 식사를 하면서 새로운 강 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후, 하버드 대학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바쁜 일이 많았는데, 그를 초청하는 글이 옵니다. 토론토 에 있는 데이브렛 코뮤니티라는 정신지체아를 위한 새로운 공동체의 리더로 초청을 받은 것입니다. 정신지체아가 모두 6명이었 습니다. 그는 하버드 교수직을 사임하고 6명의 정박아를 돌아보기 위해 떠납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 이상하다. 이것은 희생이고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몽땅 뒤엎는 결정이었는데, 웬일인가... 이토록 마음이 기쁘고, 평안한 것을....아 자유여, 아 자유여....\" 그는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참된 자유를 만끽하게 됩니다. 그는 그들을 섬기 고 목욕을 시켜주고, 밥을 지어주 며 참된 자유와 치료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영혼의 양식, 마음의 길, 제네시의 일기, 탕 자의 귀향, 여기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등의 저서를 남기고 96년 9월 54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에 안기었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형식과 풍요로 움이 우리에게 참 자유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몸으로 사랑하고 영으로 살아갈 때에 세상의 석 박사도 이해할 수 없는 참된 자 유와 기쁨이 허락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정리하고 마칩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건국된 지 50년이 되는 희년의 해입니다.

희년에는 나팔을 불라고 명령하십니다. (1) 그 나팔은 회개의 나팔입니다. (2) 그 나팔은 회복의 나팔입니다. (3) 그 나팔은 성 령 충만한 나팔입니다. 희년의 나팔소리를 통하여 우리의 삶과 가정과 민족의 참된 회복과 축 복이 이루어 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