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년의 나팔소리 레25:8-12 오늘 우리는 레위기 25:8-12까지의 본문말씀을 같이 보았습니다. 이 시간 본문말씀에 의지해서 희년의 나팔소리 하라는 제목으로 오늘 말씀을 증거 해 드리겠습니다. 첫째, 희년의 나팔소리는 자유를 선포하는 소리입니다. 둘째, 희년의 나팔소리는 원상회복을 선포하는 소리입니다 첫째, 희년의 나팔소리는 안식을 선포하는 소리입니다 희년(禧年)은 50년에 한번씩 돌아옵니다. 7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난 다음해가 희년입니다. 희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요벨은 수양의 뿔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수영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어 희년의 시작을 알린데서 유래되었습니 다. 이 나팔소리는 유대력으로 7월10일 대속제일에 전국에 울려 퍼졌습니다(9). 이 나팔소리는 기쁨의 나팔소리였습니다. (1) 압제 당하는 자에게 고난이 끝났음을 알리는 기쁨의 나팔소리였습니다. (2) 방황하던 자들은 방황을 끝내고 기업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쁨의 나팔소리였습니다. (3) 죄를 짓고 도피 중에 있거나 불안에 떨고있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죄인취급하지 않겠다는 사면령을 알리는 기쁨의 나팔소리였습니다. (4)일에 짓눌려 사는 사람들에게 휴식과 안식을 알리는 기쁨의 나팔소리였습니다. (5) 희년은 기쁨과 감격과 회복과 체험과 안식의 해입니다. 이러한 희년제도는 이스라엘백성이 광야를 통과해서 가나안에 입성한 후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여기 레위기 25:2절의 그들이 가나안에 입성한 후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하면 우리가 예수 믿고 거듭난 후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지 않는 사람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안식년이나 희년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본문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입니다. 첫째, 희년의 나팔소리는 자유를 선포하는 소리입니다. 본문10절 상반절에 \'제 50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고 하였습니다. 희년이 되면 먼저 죄에서의 해방이 선포되었습니다. 때문에 본문9절에 나와있는 대로 희년의 나팔소리가 7월10일 대속제일에 울려 퍼졌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희년의 나팔소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은 기쁨이 그의 백성들에게 넘치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성경이 줄기차게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 주셨다 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의 보혈의 능력으로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위로와 진정한 평안과 참된 기쁨을 위해서는 반드시 죄가 제거 되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화해표시\'로 대속제일에 \'죄에서의 자유\'가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압제에서의 자유가 선포되었습니다. 빚진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 남의 집에 가서 종노릇을 한다든지 압제를 받을 때 그 압제로부터 자유 할 수 있도록 희년이 선포되었습니다. 희년이 선포되게 되면 백성 중 종 되었던 사람은 종에서 해방되어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갔습니다(35-55). 물론 전에도 머슴이나 종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노예들도 6년 동안 일하고 나면 일년동안 집에 가서 지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년이 지난 다음에는 또 다시 가서 노예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희년이 되면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희년이 되면 그때부터는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 어떤 노예라 하더라도 노예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긴 채 살아가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국가 어떤 체제도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거나 개인의 권리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때문에, 미국 독립운동의 선봉장이었던 페드릭·헨리(1736-1799)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침으로서 자유의 귀중함을 역설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가 좋은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유와 방종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방종은 자기 책임과 의무를 외면한 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한 국가가 국민들에게 자유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무정부상태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자유란 법이 정하는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를 말하기 때문에 방종과 다릇습니다. 자유는 책임과 의무를 수행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40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였습니다. 노예라고 하는것이 얼마나 비참한가 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거기에는 무슨 행복이다 불행이다 가졌다 못 가졌다 하는 그런 얘기가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단지 노예로 태어나서 노예로 살다가 죽을 뿐입니다. 나뿐이 아니라 후손 대대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몸만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도 의식도 노예화 되어버리고 맙니다. 종에게 없는 것이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1) 종은 소유가 없습니다. (2) 종은 자기 의사(意思)가 없습니다. (3) 종은 그저 종일 뿐 지위가 없습니다. 이처럼 비참한 처지에서 자유 한다 해방된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힘든 기적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그 기적 같은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 홍해를 육지같이 건넌 후에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당당한 자유인으로, 그 땅의 주인으로 입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감격은 너무 컸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한 감격은 우리 민족에게도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58년 전인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되던 날이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그때 모두들 목이 터져라고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때 모두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그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부른 찬송은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고 하는 36장 찬송이었습니다. 그때는 동네마다 노래하고 춤추는 가운데 온통 잔치 분위기 일색이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다 놀았습니다. 그때 일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자유인 줄 알았습니다. 서서히 무질서의 노예가 되고 방탕의 노예가 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에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일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얼마 못 가서 광야에서 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모압 사람들과 음행 죄를 지었습니다. 애굽에서 하던 짓을 그대로 되풀이하였습니다. 여러분 자유의 참뜻을 모르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닙니다. 자유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자유를 지킬 수 없습니다. 자유 할 자격이 없습니다. 성경은 갈라디아서 5:1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시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희년의 나팔소리는 원상회복을 선포하는 소리입니다. 본문 10절 중반절에 \'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각기 그 기업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13절)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유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기업입니다. 성경은 토지와 가옥뿐만이 아니라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레위기 25:33, 고린도전서 3:21-23). 그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업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따지고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않은 기업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시편 127:3)에 \'자식도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토지는 더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본문 다음에 나오는 23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여기 레위기25:23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 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토지를 일정기간 관리할 수는 있어도 아주 팔거나 아주 살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토지의 원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혹 토지를 사더라도 50년 동안만 관리하고 희년이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으로 받은 그 사람에게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의 모든 토지 거래는 50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희년을 기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때까지 기간이 많이 남아있으면 값을 적게 책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희년이 되면 그 토지를 하나님으로부터 기업으로 받은 사람에게 돌려줘야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희년이 아직 안 되었다 하더라도 형편이 어려워서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던 사람이 얼마 후에 형편이 다시 좋아져서 그 토지를 다시 되찾고자 할 때에는, 그 땅을 경작하여 추수한 횟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한 나머지 금액만 지불하면 토지를 다시 돌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희년이 되면 가옥도 다시 돌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희년이 되면 채무자의 빚도 탕감이 되었습니다. <신명기 15:3>(레위기 25:23-24 예레미야 32:8-12 룻기 2:20).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것은(1) 경제적인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2)공평하게 누리고 살게 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이미 부자가 된 사람은 더 큰 부자가 되지 못하게 하고 가난한 사람은 차츰 생활이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람들로 평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희년이 되면 토지와 가옥을 본래 기업으로 받은 사람에게 돌려주게 한 이유였습니다. 부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 부(副)를 악용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노력해서 부(副)해지면 그때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살기를 원하셨습니다(39-46). 그리고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더욱더 열심히 노력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셨습니다. 에밀리·디킨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서 절망가운데 있는 그 상황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나의 인생은 참으로 값진 인생이 될 것이다. 내가 아파하는 한 인간을 치료해주고 그의 고통을 가라 앉혀주고 한 마리의 지쳐있는 울새를 도와 다시 둥우리로 날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나의 삶은 보람과 생동감으로 넘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실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자를 돌아보게 되면 나도 기쁘지만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자기기업으로 돌아가 평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수와 우리의 나태함과 우리의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모든 것이 회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진정한 이유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아담 안에서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다시 되찾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제가 이제는 그 회복을 특권을 지켜야합니다! 그것을 향유(享有)해야 합니다! 셋째, 희년의 나팔소리는 안식을 선포하는 소리입니다. 본문11절에 \'그 50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희년이 되면 안식년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물론 땅도 일년을 쉬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주일에 하루인 안식일만 쉬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안식년과 희년에 각각 일년씩 노동을 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도 일년을 쉬게 하였습니다. 땅도 쉬어야 그 지력(地力)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땅의 자양분을 증가시켜 나갈 수가 있습니다. 땅을 쉬게 해야 땅으로 땅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1)땅을 쉬게 하심으로 땅으로 땅되게 하시고 (2)휴경지에 저절로 자라난 곡물을 가난한 사람이 취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3)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을 절제하게 하셨습니다. (4)일생동안 일만 하다가 또는 일생동안 세상에 매어 살다가 제대로 한번 쉬어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을 명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수고의 짐을 그 앞에 내려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고 말씀하십니다. 이 은총이 어떤 은총입니까? (1)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평안을 주는 안식의 은총입니다. (2)세상의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위로를 주는 안식의 은총입니다. (3)수고로운 삶에 쉼을 주기 위한 안식의 은총입니다. 지난 80년대와 90년대가 고 학력과 고 임금과 신분상승에 초점이 맞추어진 여피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돈이나 신분상승보다는 (1)자기 편하게 살고 (2)적당히 즐기며 사는 덤피와 트위너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저당 잡히지 않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안 먹고 안 쓰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5일 근무제의 목소리가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 성경이 처음부터 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엿새동안 부지런히 일하고 하루를 쉬라는 것입니다. 6년 동안 부지런히 일했으면 일년을 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희년에도 쉬라고 하였습니다. 땅도 쉬고 사람도 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이렇게 한 해를 쉬면서 그 해의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게 하셨습니다. 경작을 일년동안 금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속에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는 보장이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모든 것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뢰하는 삶을 살아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그 동안 화학비료를 사용해 온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이제는 농작물에 다량의 살충제와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농작물에서 농약이 검출되고 육고기에서도 농약이 검출되고 땅은 산성화되어서 쓸모 없는 땅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세상일에만 몰두한다든지 사람들이 오늘 편하게 살고 오늘을 즐기기 위해서 노는 날을 자꾸만 많이 요구하게되면, 그 몸과 마음이 농약과 살충제로 오염된 농작물같이 되고 산성화된 땅과 같이 될 수 에 없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참 안식은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의 끝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멀리 보기 위해서는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희년의 규례를 주셨는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더 열심히 복음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희년을 선포해야 합니다. (1)자유를 선포하고 (2)원상회복을 선포하고 (3) 참 안식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 아 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