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년을 선포하신 예수님 눅4:16-30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년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레 25장에 나옵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의 시작일은 속죄일이었습니다. 유대력으로 7월 10일인데 그 속죄일에 양각(양의 뿔, 히브리어로 요벨) 나팔을 전국에서 동시에 불었습니다. 그 나팔소리와 함께 희년(요벨)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희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했던 일 4가지: 1) 노예해방: 종들을 자유케 하여 자기 본족에게로 돌아가게 함 (레 25:39-43); (자유인으로의 회복) 2) 토지반환: 땅의 소유권을 본래 소유주에게로 돌려주어 자기의 기업을 회복하게 함 (레 25:23-28); (일터의 보장) 3) 부채탕감: 빚진 자의 빚을 면제함 (레 25:47-55); 과거의 짐을 벗어버리고 희망찬 내일을 소망함 (가난에서의 해방) 4) 안식: 땅을 쉬게 함 (레 25:11-12); 노동에서의 해방과 휴식 (일년 동안 땅도 쉬고 사람도 쉬면서 삶의 여유를 찾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삶임을 경험함) 그런데 실제로 이 희년이 이스라엘에서 잘 지켜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미래에 온전히 성취될 희년을 예언했습니다. 장차 메시아가 올 것인데 그가 오시면 이스라엘이 그토록 대망했던 희년이 성취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지 700년이 흘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등장하셔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희년이 지금 도래했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4장의 본문입니다. 16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방문하셨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마을로서 예수님께서 자라나셨던 곳입니다. 지형적으로는 삼면이 높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립된 지역으로서 구약시대부터 별 알려지지 않은 촌구석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으로부터 예수님을 소개 받은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처럼 별 볼일 없는 동네였습니다. 이런 곳에서 예수님이 어린시절과 청년의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나사렛이 예수님의 고향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예수님은 30세쯤 되어 고향을 떠나셔서 본격적으로 3년 간의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얼마 안 돼서 나사렛을 잠시 방문하셨습니다. 마침 안식일 아침이 되어 예수님은 회당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이 일일 설교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날에 읽어야 할 두루마리 성경은 이사야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사야서를 건네 받아서 한 부분(사 61:1-2)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18-19절입니다. l ‘나’는 장차 올 메시아(기름부음을 받은 자, 구세주)를 가리킵니다. l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가 하시는 일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l 가난한 자는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들입니다. l 메시아는 이런 자들을 자유케 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하셔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l 그래서 메시아를 통해 새 시대가 열리는데 바로 그 새 시대가 ‘주의 은혜의 해’ 즉 희년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신 후에 강론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 강론의 결론이 21절입니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희년이 지금 여기에서 자신을 통하여 성취되고 있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라는 파격적인 선포였습니다. 나사렛 주민들은 예수께서 그 이사야의 글을 그렇게 적용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이히 여기며 ‘저 친구,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22절). l 아니, 우리와 함께 지냈던 저 청년이 메시아라니! l 아무리 그가 비범한 일을 한다고 해도 어떻게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메시아일 수 있을까? l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아가 우리 마을에서 함께 지냈던 저 예수라니! 그의 아버지는 요셉이고 지금도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우리와 함께 이 동네에서 살고 있지 않느냐? l 비록 오늘 설교에서 우리에게 큰 감명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찌 자기 스스로 메시아라고 감히 주장할 수 있을까? l 저 친구, 하나님을 모독하는 정신 나간 친구임에 틀림 없어!” 이것이 고향 주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이러한 반응에 대하여 예수님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두 가지 사건을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는 구약의 엘리야 시대에 있었던 사렙다 과부의 얘기입니다. 이방 여인 사렙다 과부는 삼 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는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경작하지 않았어도 삼 년을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가루와 기름으로 살았는데 그것은 엘리야 선지자를 영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희년의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람의 나아만 장군 이야기입니다. 그도 역시 이방인이었지만 엘리사 선지자에게 나아감으로써 문둥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이상의 두 가지 이야기의 요지는 자기를 환영하지 않는 나사렛 주민들에게는 희년의 축복이 상실되고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이방인들에게 희년의 축복이 넘어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회당 예배자들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언덕으로 끌고 갔습니다. 거기서 낭떠러지 아래로 밀쳐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당히 군중들 가운데로 통과하여 그곳을 벗어나서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도전하는 질문이 무엇입니까? l 너희들은 예수를 누구라 하느냐? l 정말 예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인가? l 그래서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희년의 축복을 내리시는 분으로 믿고 환영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18-19절의 내용을 좀 자세히 검토해야 합니다. 이 구절들이 갖는 뜻이 무엇입니까? 18절을 보세요. 예수님은 주(하나님)의 성령이 자신에게 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께서 자신에게 기름을 부으셨다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 자신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있었던 사건을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l 눅 3:21-22 l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먼저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다시 4:18로 돌아갑시다. 예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복음 전파입니다. 복음 전파의 대상은 가난한 자입니다. 그 가난한 자란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들입니다. 이들이 소원하는 복음의 소식은 자신들의 가련한 처지가 역전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은총을 받은 존재, 행복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되어 희망찬 새 삶을 시작하는 그 날이 그들에게 희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말한 가난한 자를 예수께서는 어떻게 이해하셨을까요? 우선 구약의 희년법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의 개념은 말 그대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가리킵니다. 가난한 자는 빚진 자입니다. 그리고 그 빚을 갚지 못할 때는 자신의 토지를 팝니다. 그래도 또 빚을 남아 있으면 몸까지 팔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야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가난한 자들이 되면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친족 중에서 부자가 있으면 대신 빚을 갚아주든지 아니면 그저 희년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야 다시 원상태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가 대망했던 희년은 경제적인 자립보다도 좀더 확장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년을 포로에서부터 해방되는 날(18절 ‘포로된 자가 자유케 되는 날’)로 보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미리 보았습니다. 그가 본 미래는 임박한 미래와 좀 먼 미래였습니다. 임박한 미래는 자기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가는 암담한 미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 다시 본토로 귀환하는 희망찬 미래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예언한 희년은 포로 귀환의 날을 말합니다. 그 포로 귀환의 날은 전적으로 주께서 은혜로 허락하신 날입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쟁취한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이스라엘 포로들을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조서를 내리게 하신 것입니다. 포로귀환은 전적으로 주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은혜의 해(희년, 19절)’인 셈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예언은 단순히 포로귀환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포로귀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눈먼 자가 보게 되고 눌린 자가 자유케 됩니다’(18절). 이것은 육신과 심령의 건강한 회복을 의미합니다. 영육 간에 병들어 있는 자들을 전인적으로 치유하여 새 사람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아의 사역은 새 창조의 사역입니다. 바로 새 창조의 사역을 예수께서 하시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새 창조의 사역의 골자가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시는 희년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을 가난 가운데 몰아넣는 세력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세력들을 성경에서는 암흑의 세력이라고 합니다. 그 세력들의 주동자가 사탄(마귀)이며 그의 졸개들인 귀신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공포를 조장합니다. 다른 하나는 헛된 환상에 빠지도록 미혹합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공포를 주는 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죄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집요하게 추궁합니다. 그 추궁을 받은 우리는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삯이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l 롬 6:20-21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때에 무슨 열매를 맺었느냐?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l 죄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l 그래서 일생동안 죽음의 공포에 매여 살게 됩니다. l 히 2:14-15에서 말하는 대로 인생의 가장 근원적인 불행은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에게 매여 한평생 종노릇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 인생들에게 제안하는 또 한 가지는 헛된 환상에 빠지도록 미혹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짓 행복을 추천하고는 그것을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추구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 사도가 말한 대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마귀가 제시하는 행복의 길은 쾌락과 사치와 명예입니다. 그것을 택하면 행복하게 될 것이라고 미혹합니다. 이처럼 마귀가 하는 일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부요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영적으로 귀머거리가 되게 하고 소경이 되게 합니다. 이런 자들이 포로된 자요, 눈먼 자요, 눌린 자입니다. 이런 자들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희년의 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희년의 복을 주시기 위해서 반드시 하셔야 할 우선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귀를 제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하신 일이 광야로 나가셔서 마귀와 싸우신 일입니다. <마귀의 광야 시험> 눅 4:1-13. 40일을 아무 것도 먹지 않고 금식하신 예수님께 마귀가 유혹합니다. 1) 돌을 떡으로 만들어 주린 배를 채워라! 하나님을 의지할 필요가 있느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냐? 기적을 사용하라! 그래서 네 스스로 생존하라! 2)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천사가 너를 안전하게 받아줄 것이 아니냐? 사람들 앞에서 능력을 행사함으로써 인기를 누리는 종교 지도자가 되어라! 3) 나에게 절하라! 그러면 세상 만국을 너에게 주겠다! 나를 섬기면 세상을 호령하는 권력자가 되도록 하겠다. 쉽게 세상의 권력자가 되는 길이 있는데 뭐 그리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느냐? 쉬운 길을 택하라! 마귀의 시험은 날카롭고 집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안에 계시는 성령님을 전적으로 의뢰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만을 경배했습니다. 결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마귀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마귀의 한계가 드러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유혹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에는 마귀가 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귀의 세력이 해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l 히 2:14-15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예수 그리스도)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포로된 인생들을 해방시키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 사역을 통하여 세상은 새롭게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희년의 진정한 시작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선포하는 복음은 진정한 희년이 예수님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환영할 때 희년의 축복이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환영하는 순간 희년의 복이 임합니다. 그 복의 핵심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없어질 세상의 기업이 아닙니다. 영원한 기업입니다. 그 영원한 기업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가장 큰 소원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영원한 하늘 나라를 우리의 것으로 향유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l 골 1:12-14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예수를 환영할 때 우리가 얻게 될 기업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경은 그 하나님 나라를 하늘나라 또는 천국이라고 표현합니다. 금방 인용한 골로새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표현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희년이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1) 예수 안에서 진정한 노예해방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의 신분이 바뀌게 됩니다. 종에서 자유자가 됩니다. 이를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새 사람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 마귀의 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하는 자들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2) 예수 안에서 영원한 기업(토지)을 상속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은 자들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빼앗기지 않는 우리의 영원한 기업입니다. l 벧전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3) 예수 안에서 모든 빚이 탕감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진 자의 빚을 탕감해준 너그러운 부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빚을 다 탕감해준 부자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한 자는 더 이상 빚이 없습니다. l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4) 예수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립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l 히 4:3 “이미 (복음을)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l 히 4:8-10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다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신약의 여호수아이신 예수)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여기서 안식할 다른 날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되는 진정한 희년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오늘이 바로 인식의 날이며 희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희년이 성취되었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 다른 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길을 바꾸어야 합니다. 즉 방향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관심의 전환입니다. 바로 이 전환이 회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사역을 시작하시면서 하신 첫 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회개가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회개한다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l 예수님 영접 =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우리의 거처를 옮김 = 예수님의 나라로 들어감 = 예수님의 통치에 순복함 = 회개함 무엇을 회개해야 합니까?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근본적인 죄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죄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우리에게 진정한 희년의 축복을 주실 분이 없음을 깨닫고 예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데 예수님 외에 다른 무엇을 의지하는 것이 근원적인 죄입니다. 거기서 갖가지 죄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회개할 때 다시 말해서 우리의 방향과 관심을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전환하고 그에로 나아갈 때 우리는 새 사람이 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됩니다. 죄와 죽음과 마귀에게서 자유하게 됩니다. 희년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희년의 복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는 복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가운데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도전하는 것은 ‘너희들도 나사렛 주민들처럼 예수님을 배척하려느냐?’는 것입니다. 나사렛 주민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비범한 청년으로 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희년의 축복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l 나는 정말 예수님을 유일한 메시아로, 희년의 주님으로 믿는가? l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가? l 예수님의 다스리심에 즐겁게 순종하는가? l 나는 죄와 죽음과 마귀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가? l 예수님 안에서 날마다 희년의 복을 향유하고 사는가? l 그 희년을 복을 이웃들에게 나누고 있는가?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년의 법을 온전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희년의 복을 누리고 나누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거해야 할 곳이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고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 4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l 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l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l 10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 안에 거하셔서 희년의 모든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그 희년의 복을 우리의 이웃들에게 풍성하게 나누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 찬송 248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