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년이 오게 하신 예수님 눅4:14-30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은 베들레헴입니다. 그러나 자라나신 곳은 나사렛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자라나신 고향인 나사렛으로 들어가셔서 그 동안 다니셨던 회당에 출석하셨습니다. 나사렛은 성경에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가 나실 것이라고 예언되기 전까지는 단 한번도 나타나지 않던 마을입니다. 그만큼 나사렛은 예수님 당시에 아주 적은 마을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그 마을에서 자라나지 않으셨다면, 전혀 알려질 이유가 없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로 그곳에서 성장하셨다는 이유 때문에 보잘 것 없던 작은 마을, 나사렛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도시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제자가 된 후, 그의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요1:45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전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갈릴리의 가나 사람인 나다나엘이 말한 것을 봐도, 나사렛은 정말 보잘 것 없는 동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말은 당시 정상적인 유대인들이 나사렛에 대해서 품는 생각 그대로였습니다. 그런 나사렛 촌구석에서 예수님이 성장하심으로, 나사렛 출신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려지자, 갑자기 나사렛이 유명한 동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도무지 선한 사람이나, 선한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작은 동리를 들어쓰셔서, 유명한 동리로 만들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므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나사렛에서 자라게 하시므로, 큰 도시 예루살렘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지역, 좋은 가문, 좋은 학교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은 소외된 곳, 가난한 곳,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곳을 사용하셔서 위대한 일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에 나사렛을 떠나 해변도시인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3년간의 공생애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14절의 말씀을 보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로 돌아가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1. 자라나신 고향 갈릴리에 들어가심 14절을 같이 읽습니다. 14절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성령충만을 받으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신 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그의 위에 임재하셨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그 위에 임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곧 메시야이심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공생애를 성령충만을 받고, 능력과 권세를 받은 후에, 사역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린바 되어, 광야에서 40일 금식을 하신 다음, 마귀로부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의 세 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의 시험을 성경 말씀을 가지고 물리치셨습니다. 시험을 통과하시자, 성령의 권능을 크게 받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험을 받으면 ”하나님이 날 사랑하지 않으신가봐, 왜 나만 이런 시험을 받아야 하나?” 하면서 절망하고 낙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시험을 통과하고나서 더욱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을 보면 시험이 힘들고 어렵지만,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시험을 받음으로 더욱 우리의 속 사람이 강해질 수 있고, 주님을 더 닮아갈 수 있고,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시험에 져서, 또 다시 광야를 돌지 말고, 도리어 시험을 통과하여, 더욱 성령의 큰 권능을 힘입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 소문이 났다. 이렇게 예수님은 성령의 권능을 힘입고, 갈릴리로 돌아와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14절에 보니까,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고 했습니다. 소문이 사방에 퍼졌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특수한 사역이었음을 의미합니다. 평범한 일은 절대로 소문이 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평범한 사람이 평범한 일을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그것은 소문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집안에서 아무리 열심히 청소하고 밥을 한대도 그것이 온 사방에 소문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은 온 갈릴리 사방에 소문으로 퍼져나갔습니다.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9:35에도 보면, 예수님은 크게 세 가지 사역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teaching), 둘째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preaching), 셋째는,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healing) 입니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은 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기적과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사역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습니다만,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나타내신 첫 기적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는 기적이었습니다. 그 소문은 금방 퍼져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에 권세가 있다는 소문이 펴졌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이 쫒겨나가고,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도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다는 소문까지 막 퍼져나갔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임하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능력은 반드시 바깥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과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소문이 온 갈릴리에 퍼진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는 사역은 반드시 소문나게 되어있습니다. 나. 칭송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성령의 사역은 칭송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15절에 보면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사역하면, 하나님나라의 능력 때문에 소문이 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면, 그 말씀에 권세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란 능력을 받았다는 말인데, 거기에 말씀이 증거 되면, 그 말씀이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소문과 칭송은 성령의 권능으로 사역하는 곳에 나타나는 필연적인 반응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에게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사역을 하는 것과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지 않고 사역을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것은 칼라 TV를 보는 것과 흑백 TV를 보는 것의 차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고 사역을 하십시오. 성령의 권능으로 사역하십시오. 그러면 소문이 나고, 많은 사람이 할게 되는 것입니다. 2. 고향을 방문하신 예수님 본문 16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이 본문을 그냥 읽으면, 예수님께서 공적인 사역을 자기의 고향에서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예수님은 메시야로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신 지, 1년이 지난 다음에 고향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고향은 우리에게 언제나 남다른 감회를 주는 곳입니다. 아마 예수님에게도 고향 방문이 남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고향을 떠난 지 1년만에 다시 나사렛에 돌아오셨으니까 달라진 게 많이 있을 것입니다. 고향을 방문하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규례를 따라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회당은 예수님이 어린 시절부터 다녔던 곳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말씀을 배우고, 토라를 외우고, 기도하던 곳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보였을 것입니다. 자기를 가르쳤던 율법교사들도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회당에 들어가셔서 단에 서셨더니, 회당장이 마침 이사야서 두루마리를 예수님께 올려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두루마리를 펴시고, 정확하게 이사야61:1-2절을 찾아 읽으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면, 그 성경에는 오늘 같은 장과 절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61장이면 거의 맨 끝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단번에 이 말씀을 찾아 읽으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경실력입니다. 우리도 이런 말씀의 능력을 갖기를 소원합시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읽으셨던 그 말씀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눅4:18-19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다 같이 읽읍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런데 뭐가 좀 다르지 않습니까?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이 구절이 우리의 구약성경 이사야61:1-2절에서는 빠져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성경이 맞습니까? 이사야가 맞습니까, 누가복음이 맞습니까? 주님이 히브리어로 된 두루마리 성경을 가지고, 분명히 사61:1-2절을 읽으셨는데, 그것을 누가가 정확히 암기하고 누가복음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사람들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 학자들로서 그들이 번역한 성경을 ”70인역”이라고 합니다. 그 유대인 학자들은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었으니까, 이사야서를 70인역으로 번역할 때, 메시야만 하실 수 있는 사역인,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이라는 구절을 빼고 번역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어떻게 밝혀졌을까요? 1947년부터 1956년 사이에, 사해 주변에서 발굴된 항아리 속에, 유대인들이 로마에게 망할 때, 감춰둔 성경사본(사해사본)을 발굴함으로 그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예수님 오시기 약 100년 전에 사용되었던 두루마리에는 현재 누가복음 그대로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이라는 구절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 학자들이 이 구절을 의도적으로 빼고 번역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본래 이 구절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700년 전에, 성령의 감동으로 메시야의 사역에 대한 말씀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의 사역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이 구절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오시면, 그가 성령충만을 받으시고,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후, 사역을 시작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구약에 보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기름 부음을 받고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만왕의 왕이시며, 제사장이시며, 선지자이신 예수님께서도 그 사역을 시작하실 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3. 왜 주의 성령이 임했습니까? 그러면 왜 예수님에게 성령이 임하셔야 했습니까? 왜 성령께서 기름부음을 주셔야 합니까? 권능을 부으시기 위해서입니다.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그랬는데, 나를 보내신 것은 파송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시기 위해서 성령이 임했습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기 전까지는 집안에서 목수로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능력을 받고 나서는 목수 일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승천하기 바로 직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이 선교사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파송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신 다음, 다시 우리를 이 세상으로 파송하셨습니다. 요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우리는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4. 보냄을 받은 자가 해야 할 일 그러면 보냄을 받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입니까? 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미국에서 가난한 자가 누구입니까? Homeless나 Wellfare 타는 분들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난한 자는 돈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이 가난하여,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내 힘으로는 이 죄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없어서 발버둥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길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8복을 말씀하시면서, 가장 먼저,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 파송되셨습니다. 오늘도 복음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것입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들에게는 복음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얼마든지 문제도 해결하고, 자기의 힘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자기의 힘으로 죄 문제도 해결하고, 자기의 힘으로 죽음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에게는 복음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으니, 부자는 천국에 절대로 못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돈이 많으면 마음이 교만해지고, 교만한 자는 절대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가 경제적으로 가난하지 않으면서도 예수를 믿고 산다는 것은 기적이요,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인간은 질병의 고통 때문에 마음이 가난해지고, 인간에게 배신을 당해서 마음이 가난해지고, 실직을 하여 마음이 가난해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가난해졌고, 마음이 가난하여서 주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면, 몸의 질병도, 사업의 실패도, 인간의 배신도, 직장에서의 실직도 우리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업이 잘 되고, 건강하고, 형통한 것만이 축복이 아닙니다. 가난도 축복이 될 수 있고, 사업의 실패도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주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낭패와 실망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 주님을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가난한 자를 찾아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나.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일입니다. 한 마디로 이것은 회복을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까? 회복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죄와 죽음의 법 아래 놓여 있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죄의 포로가 되어 불타는 지옥을 향하여 끌려가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악으로 눈이 어두워서, 빛되신 주님을 보지 못하며 사는 자들의 눈을 밝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주님을 아직 만나지 못하고 사는 자들은 사실 눈 먼 자들입니다. 눈이 있지만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물과 공기를 먹고 마시며 살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죄악을 먹고 마시면서도 자기가 죄인임을 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눈먼 자들을 보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죄책감으로 인하여 눌려 있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눌려 있습니까? 죄와 죄책감에 눌리고, 마음의 상처에 눌림을 당하는 것이 우울증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근심과 염려에 눌림을 당하고 있는 자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울증에 눌려 있는 자들의 멍에를 풀어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눈 먼자를 보게 하시려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19절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말하는 은혜의 해는 구약에 나오는 희년을 말합니다. 희년이란 7년마다 지키는 안식년을 7번 지낸 다음 해, 그러니까 50년째가 되는 해를 말합니다. 이 50년째가 되면, 가난 때문에 남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던 자들이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가난으로 남의 손에 들어간 땅도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희년이 되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습니다. 종 되었던 자들이 자유함을 얻습니다. 가난 때문에 종으로 팔려갔던 아들이 돌아오는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가난 때문에 팔아먹었던 땅을 되찾게 되는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래서 이날은 기쁨의 날이요, 축복의 날이었습니다. 이 구약의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은혜의 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왜 이 세상에 보내신지 아십니까? 이 은혜의 해를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돌아오는 자는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돌아오면, 눈먼 자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눌린 자들이 자유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5.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사61:1-2절의 말씀을 읽으신 후에,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셨는데, 20절에 보면,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다 주목하여 보았다는 말은 이제부터 시작될 주님의 설교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는 말입니다. 과연 예수의 입에서 어떤 말씀이 나올까? 모든 사람들이 주목하는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입을 열어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첫마디가 21절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였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 자신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야라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바로 예언한 그 메시야가 바로 나다. 지금 나는 메시야로서 이 말씀을 너희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예수님 자신이 오심으로 은혜의 해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성령의 기름부으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 놀라운 자유와 회복과 축복을 안겨주는 은혜의 해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은혜의 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후서 6:2절에 보면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은혜의 해가 50년마다 한 번씩 오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 지금 우리는 매년 은혜의 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하고 주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자유함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왜? 보내셨습니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여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이 은혜의 해를 전파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존 번연이라는 사람이 천로 역정을 썼는데, 그분이 처음부터 그렇게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선데이 크리스찬이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씨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읽다가 놀라운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거기 길가에 떨어진 씨가 나오는데, 길가에 떨어진 씨를 마귀가 와서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마음에서 빼앗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눅 8:12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내가 지금까지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 것은 말씀을 먹지 못해서 그랬구나 하는 사실을 경험한 것입니다. 마귀가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그 마음에서 이 말씀을 뻬앗아 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마귀가 와서 그 말씀을 빼앗아 갔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부터 가장 먼저 예배시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앞 자리에 앉았습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마귀가 그 말씀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아멘으로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심령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결국 천로역정이라는 대작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성장과 교회의 부흥은 말씀을 듣는 우리의 자세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심령에 진정한 부흥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귀에 응한 이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