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나팔을 불었는가


용서의 나팔을 불었는가?
마18:21-35





우리는 금년 희년을 맞으면서 12번의 나팔을 불어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출발했습니다. 1월은 찬양의 나팔을 불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들을 했습니다. 2월은 회계의 나팔을 불면서 회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3월은, 용서의 나팔을 불면서 오늘 마지막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어떻습니까?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게 용서의 나팔을 불면서 용서해야 할 사람들을 다 용서 했습니까? 다시 한번 부탁을 드리는데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해야 이자리가 복된 자리가 됩니다. 용서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주님 내가 다용서합니다. 내게 상처를 준 모든 사람을 다용서합니다. 소리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용서할 때 자유가 옵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구속하는 것뿐 아니라 나 또한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편안하지를 못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밤에 편한 잠을 자지 못합니다. 이것이 창살 없는 감옥입니다. 그러나 용서 하면 하나님께서 그 감옥에서 당신을 꺼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합니다. 평안해 ,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용서하고 이 은혜를 입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광부촌에 사는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합니다. 학교 가는 길이면 한 놈이 와서 가슴을 팍 쥐어박습니다. 교실에 앉으면 또 다른 놈이 와서 머리를 쥐어박습니다. 복도를 지나려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립니다. 아이가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하루는 너 죽고 나 죽자. 그래서 온몸에 다이나마이트를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옷을 벗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누구든지 나를 건드리면 이 다이나마이트가 터져서 다 죽는 줄 알아라, 했습니다.

그 후로 아무도 겁이 나서 그 아이 곁에 가질 못했습니다. 문제는 그때부터 이 아이 주변에는 아무도 오지를 않습니다. 상처를 주는 아이도 오지 않았지만 친구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생각 해 보세요. 누가 다이나마이트를 몸에 품고 있는 아이 곁에 가까이 가겠어요. 아이는 더욱 외로워지고 불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미움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이나마이트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은혜가 떨어집니다. 성령께서도 역사하지 않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요. 하나님과 나 사이에 길이 막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미움은 너 죽고 나 죽자 의 철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너도 살고 나도 살자 는 것입니다. 사는 길이, 용서의 길입니다.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것입니다.

수년전 LA에서 흑인 폭동사건 있을 때 제일 피해를 많이 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거부감이 컸다고 보는 사건이지요. 그런데 이 거부감을 완전히 해소하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윤원준이라는 학생이 예배를 드리고 나오다 백인 우월주의자 벤자민 스미스가 무차별 난사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이 학생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언을 진학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는 26살의 청년이었습니다. 그 부모와 그 교회가 어떻겠습니까?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일주일후 오후 7시 미국 전역에 추모예배 광경이 방영되었습니다. 미법무장관과 한국에서 온 윤원준 학생의 부모와 그의 친척들 그리고 한인교인들 1,500여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자리에서 윤원준 학생의 이종사촌 형인 박승호 목사라는 분이 가족을 대표하여 인사를 했습니다. \"나는 오늘 가족을 대표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사촌을 죽인 벤자민 스미스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가족의 꿈을 빼앗아 가고 아우의 피를 흘리게 한 이 미국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용서를 위해 오셨기 때문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 우리의 구세주로 믿는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언론들은 박승호 목사의 인사에 온몸이 감전되는 것 같은 전율을 느꼈다 고 했습니다. 이 사건이후 한인상가를 떠났던 미국인들의 발걸음들이 잦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용서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애서의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용서를 배웁니다. 야곱이 형에서를 속이고 장자 권을 빼앗고 축복까지도 빼앗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달아났다가 21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형을 볼 면목이 없고 형의 화를 어떻게 풀까 두려움 속에 있는 야곱에게 에서가 400인을 거느리고나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제는 죽었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만난에서는 분노에 찬 에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끌어안고 입 맞추고 우는 형 에서였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용서하는 장면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자신을 괴롭히다 못해 외국에 팔아넘긴 형들입니다. 그 많은 고통 속에 세상말로 이를 갈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 가슴에 한을 품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할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공했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군대를 풀어 모조리 잡아드려 주리를 틀고 불속에라도 집어넣고 싶은 생각이 날수 있습니다. 그런데 형들이 만난 요셉은 용서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이 요셉인줄 알고 벌벌 떨고 있는 그곳에 요셉이 와서 오히려 위로합니다. 평화가 왔습니다.

용서의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이야기는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 용서의 기도는 원문에 보면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되어있습니다. 누군가 왼손에 못을 박을 때에 으악 할 만큼 처철 한 고통이 몰려 와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아버지여 이 자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가시관을 씌워놓고 조롱하고 침 뱉을 때에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발을 묶어놓고 못질할 때에 발이 으깨지며 뼈속 깊이 저며 오는 아픔을 참으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날카로운 창이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올 때에 \"아버지여 이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용서는 권면이 아닙니다. 준엄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감정을 따라 용서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용서할 마음이 있을 때만 용서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용서할 기분과 느낌이 있을 때 용서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내 의지를 따라서 용서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내 노력으로 용서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용서하라고 말씀 합니다. 용서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그리고 용서는 다음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선해지면 네가 잘하면 네가 예수 믿으면 그것이 아닙니다. 오늘 지금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병든 몸을 치료하는 능력이 있고 흐트러졌던 인격을 가다듬어 주는 위대한 힘이 있으며 또한 우리의 영혼을 풍성케 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은 자신이 가장 손해입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가슴이 썩고, 병이 들고, 상처를 입습니다.

저는 어려서 저희 할머님이 갑자기 웃옷을 벗어던지면서 한숨을 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유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것입니다. 저희 할머님은 화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화병이 무엇인가요. 용서하지 못하는 병입니다. 그렇게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예수를 믿고 다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화병도 떠나갔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베드로가 질문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 형제가 내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입니다. 일곱 번이라는 수자도 대단한 숫자입니다. 한번도 용서를 못하는데 일곱 번 용서한다. 그러면 성자 소리 듣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아마 베드로는 그 정도면 주님이 칭찬할 것이다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할말을 잊었습니다. 그 이유를 주님은 비유로 가르쳐 주십니다.

일만 달란트 빚 진자가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주인에게 사정 했더니 주인이 긍휼히 여겨 탕감해 주었다 그런데 그가 길을 가다가 그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자 그의 목을 잡고 빚을 갚아라. 그의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조금만 참아 달라 하는데도 그는 거절하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금이 그를 잡아다가 내가 너를 불쌍히 여겨 네 빚을 다 탕감해 주었으니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하고 그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넘겼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받은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용서 받은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하물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갚을 길 없는 용서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용서해야 용서를 받습니다. 용서해야 은혜도 받습니다. 용서해야 축복도 받습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여러분을 향한 저주가 다 풀리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용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병은 없는데 소화가 안 됩니까?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머리가 아프고 피곤합니까?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용서하면 질병에서 놓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복중의 복은 용서받는 것입니다. 용서 받으려면 용서하면 됩니다. 나는 너를 용서했다 선언 하세요 나팔을 부세요. 하나님의 은총이 강물처럼 임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