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마8:5-13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
마8:5-13





희년을 맞는 우리 교회 표어를 \\\"하나님을 감동시키며 희년을 기리자\\\"(Celebrate Our Jubilee by stirring the Lord)로 정하고 지난 주일에는 어떤 방향으로 하나님을 감동시킬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새해 두 번째 주일로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를 성경을 통해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감동시킨 신앙의 주인공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정점으로 믿음의 혈통을 세우며 이어지는 많은 사람들이 좋은 신앙의 본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하고 이스라엘이 왕국을 건설한 후에는 예언자 또는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며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등 수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장을 갖고 백성들을 신앙으로 이끌려고 노력하였으니 하나님은 그들의 신앙을 통해서 많은 감명을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구약에서는 주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무엇으로 구분했느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느냐(순종하느냐), 따르지 않느냐로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떠났다고 하는 것이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출발점이요, 초석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앞으로 나아갔다는 신앙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축복 받게 하는 결정적 행위였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더니 그 이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는 아내에 대한 번민, 100세가 다 되도록 자식이 없었던 근심, 조카의 배신, 끊임없이 이어지는 다른 부족들과의 전쟁, 등 끊임없이 시련과 환난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심지어는 100세에 얻은 아들이 다 성장했을 때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코 어떤 시험이나, 시련이나, 환난이나, 고통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들고 앞으로 전진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맡겨주신 가족과 친척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위대함이었습니다.

출애굽을 만들어낸 모세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그의 삶을 전진시켰습니다. 여호수아도 그러했으며 사무엘이나, 이사야나 예레미야 등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그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는 삶\\\"을 \\\"믿음\\\"이라는 말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큰 일을 행하실 때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는 말씀을 여러번 거듭하십니다. 구약에서의 \\\'언약\\\'이 신약에서 \\\'믿음\\\'이라는 말로 발전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그 중의 하나가 구약은 대상이 언제나 \\\'아브라함의 후예들\\\'이라고 통칭되는 이스라엘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범위는 이스라엘 백성의 범주를 벗어나서 \\\"온 세상\\\" 또는 \\\"온 백성\\\"으로 펼쳐집니다. 이것을 새 이스라엘(New Israel)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에 의해서 구원의 길이 온 세상으로 펼쳐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 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28:18-1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 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신약성경 안에도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우리가 봉독한 백부장의 믿음을 고찰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사건의 상황을 보면 로마의 장교인 백부장이 하인의 병 상태를 보고 당시 의료술로는 치유가 불가능함을 알자 예수님에게 간청하는 장면입니다. 누가복음에는 백부장이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부탁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에는 백부장이 직접 예수님께 나와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는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간청을 들으시고 그 집에 가서 고쳐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자신의 집까지 가시는 번거로움을 하지 마시고, 말씀으로 하시면 고칠 수 있음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 하인의 병을 고쳐주시면서 그의 믿음에 감탄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예수님이 얼마나 백부장의 믿음에 감동되셨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 지 못하였노라\\\"(마8:10)
(I tell you the truth, I have not found anyone in Israel with such great faith.)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such great faith\\\", \\\"그와 같이 위대한 믿음, 혹은 큰 믿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어떤 믿음이 예수님을 그렇게까지 감동시켰을까요?

첫째로 그의 믿음의 확신입니다. 멀리 자신의 집까지 오시지 않아도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전능하신 주님으로 그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말씀만 하옵소서(just say the word).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마8:8)

백부장의 믿음의 확신은 충분히 예수님의 말씀만으로도 자신의 하인의 병을 고칠 수 있고도 남음이 있었습니다. 여기 예수님의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권능과 힘이 있는 메시야의 말씀임을 가슴속에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읽으신 것입니다. 백부장의 다음의 말에서 예수님은 확인하셨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 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8:9)

지금도 군 조직에서의 상관명령은 절대적이지만 예수님 당시의 로마군대의 조직에서는 상관들이 부하의 생명 여탈권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상관의 명령은 지엄하고 절대적인 복종을 요구했습니다. 불응하면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부하의 생명은 상관의 권한에 달려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단순한 의료행위자로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신 메시야로 이미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 한마디면 천하를 복종케 하시는 이임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절대적인 능력이 있음을 백부장은 믿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백부장의 믿음은 하인의 병이 즉시 나음을 입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믿음은 확신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확신이 없는 믿음은 이미 믿음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4명의 친구들이 중풍병자 하나를 데리고 예수님에게 찾아가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명의 친구는 불치의 병으로 고통 가운데 있는 중풍병자를 바라보면서 그들 마음 속에 믿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갔으나 집 앞에는 이미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4명의 친구들은 거기서 실망하고 되돌아서지 않습니다. 집의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었습니다. 엄청난 모험입니다. 남의 집을 무단파괴하는 행동은 범법자들이기 때문에 체포될 것이 뻔합니다. 그러나 이 4명의 친구들은 이 모험을 감행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가슴속에 믿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소란과 저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집만 파괴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집회 인도를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4명의 친구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를 예수님의 머리 위로 내려보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 4명의 친구들을 보시고 중풍병자의 병을 고쳐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막2:5). 4명의 친구들 가슴속에 있는 믿음은 확신이 있는 믿음이기에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정성스런 믿음을 말합니다. 이 믿음은 확신을 통해서 현실화됨을 알 수 있습니다.

마9:27-30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 맹인을 고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신 후에 그의 집을 떠나 다른 곳(자기가 거처하던 집이거나 마태의 집으로 추정)으로 가고 있을 때 두 맹인이 예수님 앞을 가로막습니다. 맹인들은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9:27). 예수님은 그들의 간청을 들으시고는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로 믿느냐?\\\"(Do you believe that I am able to do this?)라고 되물으십니다. 이 물음은 \\\"너희는 확신을 갖고 있느냐?\\\"는 확인작업이십니다. 두 맹인들이 \\\"주여, 그러하외다\\\"(Yes, Lord)라고 답변할 때 예수님은 \\\"너희 믿음대로 되리라\\\"(According to your faith will it be done to you)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곧 두 맹인의 눈을 뜨게 하였습니다.

이 믿음의 확신은 하나님의 절대능력에 귀의하는 결단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질병을 치유하시고 막혔던 장벽을 헐어주시는 사후처방만이 아니라, 믿는 자에게는 성령을 보내셔서 미리 보호하시고 막아주시는 하나님임을 믿는 것입니다.

엊그제 양광교회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 교회 박춘수권사님이라는 분이 있는데 교회를 위해서 많은 헌신을 하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2년전쯤 일천번제 예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주간에 사랑하는 아내 최월자집사가 뇌동맥파열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일천번제 예물을 마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주변의 사람들이나 본인의 신앙에 의구심이 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박춘수집사님은 일천번제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아내를 이대로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어서 담임목사를 감동시켰다는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은 완벽하게 소생되어 교회를 잘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천번제 예물이 그 가정을 구해낸 것입니다.

큰 믿음은 큰 능력을 받고, 큰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가 일찍이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노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백부장의 겸손과 순종하는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백부장은 로마의 장교로서 철저히 훈련받은 로마황제의 신하입니다. 식민지 땅인 점령지를 다스리는 지역계엄사령관과도 같은 직분을 가진 지휘관입니다. 백부장은 100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지휘관이지만 실제적으로 그가 갖고 있는 권한은 그 지역의 절대자와 같은 특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일제 침략시절 순사만 대도 울던 어린아이가 울음을 그쳤다는데 하물며 로마시대에 100명의 군사를 거느린 장교는 대단한 권력을 그 지역에서는 쥐고 있었습니다. 그가 단독으로 유대인들에게 회당을 지어 주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했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유대인들조차도 멸시하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자세는 너무나 겸손하였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마8:6)



여기 \\\"주여!\\\"(Lord)라는 말은 희랍어 \\\'퀴리에\\\'(k ri )라는 말로 종이 주인에게 붙이는 칭호였습니다. 백부장은 \\\"랍비\\\"(선생이여)라는 흔한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주여(퀴리에)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의 능력과 위엄을 인정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메시야임을 믿고 있기에 붙이는 칭호였습니다. 백부장의 신분으로서 대단한 믿음과 존경심이 없이는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사회적 신분으로 보면 아무 계급도 없는 평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백부장은 그 앞에 허리를 굽혀 \\\"주여\\\"라고 부르고 있으니 그의 겸손함을 볼 수 있습니다. 겸손과 함께 겸비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순종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불순종 자체가 교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만 하옵소서\\\"라는 백부장의 표현 속에는 어떤 것을 명령한다해도 모두 순종하겠다는 자신의 모습을 예수님께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께서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도 \\\"주여, 내 집에 들어오는 것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만류합니다. 주님을 향한 겸손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겸손과 순종은 언제나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웃에 대한 그의 관심입니다. 백부장은 지금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가족을 고쳐달라는 요구도 아닙니다. 자기가 데리고 있는 하인의 중풍병을 고쳐달라는 간청이었습니다. 여기 하인(servant: pai\\\"
눅7:1-10에서는 이 백부장의 신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장로 몇이 백부장의 간청을 들어주는 것이 너무 합당하다며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눅7:5)

가버나움 지역의 로마 장교였던 백부장은 철저하게 로마시민으로 훈련받은 황제의 용병이요, 로마의 간성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유대민족을 사랑하고 유대인들을 위해 회당을 지어주었다는 것은 그의 인품이 얼마나 훌륭했는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결국 사람의 인품에 대한 평가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배려를 얼마나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평가되어지고 있음을 이 기사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히 선민의식에 빠져있어서 이방인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지도 않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할 구성원으로 보지도 않는 유별난 민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 장로들이 이방인이요, 더구나 자기 나라를 강제 점령하여 착취하는 로마장교를 이렇게 칭찬하고 있음은 백부장의 인품이 얼마나 고상하고 훌륭했었는가를 짐작케 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이와 같은 삶을 원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문제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자기 아닌 다른 사람,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과 돌봄을 갖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율법에서도 가르치고 있지만 예수님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 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 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 라\\\"(마22:37-40)

백부장은 유대민족을 위해 성전을 지어 봉헌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자신의 신분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보잘 것 없는 하인을 위해 예수님께 나와 겸손히 간청하고 있으니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본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이런 믿음을 보고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평생 자기 문제만을 갖고 씨름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자기에게 집착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삶의 초점을 자기 중심에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내 문제로 안고 씨름해 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어느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희년을 맞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신앙생활 할 수 있게 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희년정신을 음미하면서 하나님의 심장을 가질 수 있는 훈련을 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을 우리 자신에게서 우리 이웃으로 돌리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희년을 보내면서 실제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삶을 산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모두가 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 다는 것이 자칫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홍보를 위한 구제행위가 되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경기도 고양시 화정에 있는 어느 교회가 성탄절을 맞이하여 교회당 7층에서 1만원권 지폐 3천장(3천만원)을 1층으로 뿌렸습니다. 지나가던 행인 200여명이 몰려들어 뿌려진 그 돈을 줍느라 야단법석이 일어났습니다. 사실을 알고 보니 성탄절 그 교회 목사님과 임원들은 불우이웃 20명을 초청하여 1층에 기다리게 하고는 7층에서 1만원권 3천장을 뿌려 주어가게 한 것입니다. 그때 지나가던 행인들까지 몰려들어 소동을 벌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1층에서 기다리던 불우한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너무 비참하고 참담했을 것입니다. 너무 큰 굴욕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경찰에 불려가서 불우이웃들에게 관심을 갖자는 취지로 그런 일을 했다고 했답니다. 정신나간 사람입니다. 정말 불우이웃을 위했다면 초청한 20명의 불우이웃들을 정중히 대접하고 정성스럽게 봉투에 넣어 골고루 나누어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늘 돌보아드리지 못한 미안한 마음도 표했어야 합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돕는 손길을 숨기라고 했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오래 전 뉴욕의 시장을 역임했던 라과디아(Lagurardia)씨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가 뉴욕시의 즉결재판부 판사로 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법정에서 나이 많은 노인 하나를 재판하게 되었습니다. 그 노인의 죄목은 가게에서 빵을 훔친 절도죄였습니다. \\\"당신의 행위는 10달러의 벌금형에 해당됩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이렇게 판결을 한 후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냈습니다. \\\"그 10달러를 내가 내겠습니다. 이토록 배고픈 사람이 뉴욕거리를 헤매고 있었는데 나는 그동안 너무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죄에 대한 벌금으로 내는 것입니다\\\". 라과디아 판사는 그 유명한 넓은 중절모자를 재판부 서기인 베일리프씨에게 내주면서 말했습니다. \\\"이 재판정에 계신 분들도 나처럼 너무 잘 먹은데 대한 벌금을 내시고 싶으면 이 모자에 넣기를 바랍니다\\\". 그 날 걷힌 돈이 47달러였습니다. 그는 가난한 노인에게 47달러를 손에 쥐어주면서 내보내었습니다. 재판정을 나서는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밴 다이크(Henry Van Dyke)의 소설 \\\'대저택\\\'(The Mansion)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대저택에 살던 부자가 천국에 갔는데 자기를 위해 준비된 천국집이 너무 초라하고 볼품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곁에는 으리으리한 대저택이 건축 중이었는데 그 집은 자기와 같은 동네에 살던 한 초라한 의사의 집이라는 것입니다. 천사가 부자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하늘의 건축자재는 모두가 다 그 집에서 살 사람이 세상에 사는 동안 보내온 것들입니다. 당신이 평생 보낸 자재만으로는 이 오막살이의 지붕도 다 씌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 대저택을 보십시오. 당신이 잘 아는 그 가난한 의사의 집인데 그는 평생동안 나누어주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그가 준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이곳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니 대저택을 짓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은 내 자신에 집착되어 나만을 위하여 살았던 것들은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나 아닌 이웃, 나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관심을 갖고 배려하며 정성을 쏟았던 것들을 계산하셔서 하늘의 상급으로 삼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금년 한해동안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을 가지시는 주역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