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물을 제거하라

장애물을 제거하라 !
수6:1-7





살다가 보면 사람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지난주일 교통사고로 인해서 세상을 떠나신 양양이 모친과 아직
병원에서 치료 중에 있는 전집사님과 장언연 모친과 방매실 모친의 사
고를 두고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장애물들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을 볼 때, 낙심하고 좌
절하기가 쉽습니다.
지난 주 태풍 프라피룬으로 인해서 4명이 사망하고 26명이 실종됐으며
수천억의 재산 피해가 발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풍년을 기대하던 농민들은 시름에 빠지고,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면서 다가오는 장애물들
은 삶을 어렵고 힘들게 만듭니다.
남의 일처럼 생각되어졌던 일들이 바로 내게 닥칠 때, 놀람과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오게 됩니다.
삶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긴 장애물들은 많습니다.
신체의 장애, 재산의 손실, 학벌이 없음, 실직, 살찌는 것, 자녀, 부모,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 등이 장애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부러움의 대상이 장애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를들면 목사의 자녀들은 목사의 자녀라는 것이 장애물이 될 수가 있습
니다.

이런 장애물들이 삶의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목표를 잃어버리게 만들고, 상실감에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장애물을 제거하고, 삶을 찾고,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창 조할 수 있을까요 ?

스티브 호킹 박사는 중증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천체물
리 학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
그는 남들이 넘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어떤 육상 선수는 맹인이면서 올림픽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다
고 합니다.

과연 우리 앞에 놓여지는 장애물들은 제거할 수 있는 것일까요 ?

배경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
호 수아를 지도자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
니 다. 그러나 기대에 찾던 가나안 땅에 들어서자 마자 그들 앞으로 가
로 막고 서 있는 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이 성은 철옹성이라고 할 정도로 튼튼하고 강한 성이었다고 합니다.
전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한 성벽으로 된 성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령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
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백성들은 대 부분은 경험이 없는 젊은 사람들뿐이었
습 니다. 지혜 있고 경험 많은 사람들은 이미 불 신앙으로 인해 광야에
서 다 죽고 말았습니다. 모세마저도 죽고 없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난공불락의 요세인 여리
고 성을 어떻게 점령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
장애물 중에 장애물이었습니다.

특히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는 입구를 막고 서 있는 여리고 성은 가
나 안 정복에 있어서 필수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애물 중에 장애물인 여리고 성을 점령
할 수 있었을까요 ?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여리고 성을 네 손에 붙였다\"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칠 일째 되는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나팔을 불며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이 무너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하나
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 무너졌던 것입니
다. 저는 이 여리고 성 정복 사건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장애물들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은 장애물 보다 크시다는 것입니다. (1-2)
사람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것은 문제가 크게 보일 때입니다. 너무 문제가
커서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문제가 생겨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는 문제를 문제로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걱정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가 작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감당하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나서 방황하는 경우
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장애물이 자기 보다 커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만났을 때, 어떻게 성을 무너뜨릴 수가 있
었을까요 ?
인격이 좋아서 일까요 ?
능력이 많아서 일까요 ?
무너뜨리는 특별한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
지금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매우 유치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것이 아이들 장난입니까 ?
하나님의 언약퀘를 앞에 두고 제사장들이 일곱 나팔을 불며 하나님 앞에
서 앞서 행하고, 그 앞에는 무장한 자들이 호위를 하며, 뒤에는 백성들이 지
파별로 나누어 따랐습니다. 그리고는 나팔 부는 소리 외에는 침묵
을 하였습니다. 마치 침묵 시위하는 시위대 같은 광경입니다 우습지 않
습 니까 ?
그야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

바로 장애물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으셨기 때
문 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
여리고 성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던 라합이 한 말을 들어보세요.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 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
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
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수2:10-11)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기 전과 후에 백성들에게 한 말을 들으시
기 바랍니다.
\"...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너희 앞에
서 정녕이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3:10)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 너게 하신 것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
고 우리로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으로 여로와의
손 이 능하심을 알게 하며 너희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영원토록 경외
하 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4:23-24)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
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 께 하느니라\" (수1:9)

장애물보다 크신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
께 하시고 계셨기 때문에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똑똑하고 용감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서입니다.

장애물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요 ?
- 하나님이 크게 보일 때입니다.
그러면 장애물이 두렵지가 않습니다.
왜 두려움에 빠집니까 ? 장애물이 하나님 보다 더 크게 보이기 때문입
니다.

-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은 사람의 다른 점이 어디에 있습니까 ?
장애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데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장애물이 앞을 막아도 하나님을 통해서
보기 때문에 장애물 앞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은 현실을 통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
과 자기 상황에 비례해서 보게 됩니다.
능력과 실력에 비례해서 상대적으로 작으면 문제가 없고, 크게 되면 문
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큰 장애물이 와도 끄덕하지 않습니다.
그 장애물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난공불락의 요세인 여리고 성을 만나고도 당황하지 않고, 두려
하지 않았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
여호수아의 통뼈는 특별해서 일까요 ?
여리고 성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의 눈에는 하나님께서 더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왜 실망합니까 ? 왜 넘어질까요 ? 왜 식어집니까 ?
하나님을 크게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크게 보이고, 세상이 크게 보이고, 욕심이 크게 보이고, 장애물이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시기 바랍니다.
왜 그들은 풀무풀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 지혜가 부족해서 일까
요 ? 융통성이 부족해서 일까요 ? 맹목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이 었을까요 ? 풀무불보다 아니 느브갓네살 신상보다 함께 하시는 하나
님 께서 더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장애물이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겁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앞에 있는 장애물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신앙의 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
사 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이 약속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살아있습니다.
장애물을 보지 마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 장애물을 우리 손에 붙이
신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백성들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였습니다.(3-5, 12-15절)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많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서 여호수아에 지시한 일을 단순하게 행하였습니다.
그것은 제사장 일곱이, 일곱 나팔을 불며 언약궤 앞에서 행하고, 무
장 한 자들은 제사장 앞에서 행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뒤를
따 라서 성 주위를 하루에 한 바퀴씩 말없이 도는 일이었습니다. 그리
고 일곱째 날만 일곱 바퀴를 돌고는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단순하고 간단한 일입니까 ?
그런데 이 단순하고 간단한 일을 통해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복잡하게 생각을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논리를 따지고, 충분한 설명과 함께 이해가 되야 하며, 과학적인 근
거 를 두어야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은 논리와 설명과 이해 그리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다고 뜻대
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알 수가 없고, 복잡해집니다.
논리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설명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
다.
특히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인생을 복
잡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백성들의 문제는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인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과는 다르게 나팔을 불며 하나님의 궤를 앞세워
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보면 돌아 버릴 일입니다.
말도 대지 않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어떻습니까 ?
모두가 하나같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에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렵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상식을 초월하고, 논리를 초월하며, 과학적인 사고를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대한 소문을 이들은 듣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장애물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말하고 싶은 욕망, 이해되지 않는 일들, 반복되는 하루, 여리고 성을 무너
뜨리기 위해서 성벽 하나 건들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오직 나팔 소리만 고요를 깨며 울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여리고 성은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신앙의 원리가 있습니다.
말씀이 현실과 다르더라도 말씀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미련하고, 단순하게 보이고, 맹신하는 것처럼 보여도 오히려
장 애물을 제거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문제가 무엇입니까 ?
현실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현실은 복잡하고, 말씀은 단순합니다.
단순한 말씀을 가지고 사는 것은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이 장애물을 제거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말씀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의 전문직은 말씀에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단순하고, 이해가 되지 않고, 논리에 맞지 않아도, 집중하여 따르는
것 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위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장애물이 있기 때문에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이 없었다면 어떻게 일곱바퀴 돌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
었 겟습니까 ? 그리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신앙의 감격을 어떻게 누
릴 수가 있겠습니까 ?

짧은 선교의 역사 속에서 성서침례교회는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순
수 한 신앙을 유지하며 복음을 전해오고 있습니다. 내적, 외적인 사유로
인 해서 성장이 더디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진리를 사수해야 한다는 위축된 마음은 성장보다는 보존을 외
쳐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고의 전환을 가져와야 할 때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서침례교회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성교회들의 왜곡된 횡포도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가장 큰 교단 중에 하나로 이미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음
과 는 달리 매우 적은 수를 유지하며 한국적 기독교 변질되어 가는 교회
들 의 작은 경종을 울려 주고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장하지 못하는데 있어서는 우리 각자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
다.
그것은 장애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장애물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장애물을 생각하여 마음에 열정을 빼앗기기 이전에 말씀에 집중
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미련하고, 단순하고, 유치해 보여도 말씀을 따라 사는 집요함이 우리에게
있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이제 21세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건물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마음을 모아 주의 일을 이룰 하나님의 사람들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깃발을 들고일어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고, 하나님
의 나팔을 들로 외쳐야 합니다.
장애물들은 말씀에 집중하여 사는 사람들 앞에서 무너져 내리게 될 것이
며, 하나님은 승리의 깃발을 들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일부터 특별 새벽기도집회를 가집니다.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 중에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들도 예수님께서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장애물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무장하고, 복음의 나
팔을 울려 영혼을 주님께 인도합시다.
우리 앞에 있는 장애물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새벽기도집회를 위해 차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서로 섬겨 주시기를 바
람니다.
기도를 통해 복음 앞에 서 있는 장애물들이 무너지고, 영혼들이 구원
받는 역사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하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에 집중하여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믿음의 현장에서 무너진 여리고 성
신앙에는 현장이 있습니다. 현장이 없는 신앙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도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현장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기 때문
입 니다.
하나님은 현장에서 역사합니다.
여리고 성이라고 하는 현장에서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여리고 성이라고 하는 현장에서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말씀에 집중하
였 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현장이 없는 사업은 망합니다.
현장이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실업자라고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편지를 썼습니다.
감옥에서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감옥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베드로는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매를 맞고, 갇히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푸시기도 하셨습니다.
신앙이 있는 곳에는 항상 현장이 있었습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현장에서 승리를 하였습니다.
죠지 뮬러는 고아들과 함께 하는 현장에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
을 만났습니다.

장애물은 현장에 있습니다.
현장에서 장애물을 무너뜨려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큰 장애물은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 앞에 서 있을 장애물은 없습니다.

기도 무장하고, 승리의 나팔을 불며, 내 자신과 세상에 대해서는 침묵을 하
고, 말씀에 집중하여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장애물을 무너뜨리
고 그 안에 있는 영혼들을 우리에게 붙이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장으로 나가야 합니다.
직장은 여러분의 현장입니다.
사업장은 여러분의 현장입니다.
가정은 여러분의 현장입니다.
학교는 여러분은 현장입니다.

그 곳에서 장애물을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외치게 될 때, 서 있을 장애물은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 앞에서 무너지는 여리고 성을 보시기 바립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우리 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은 불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제외시키지 않으십니다.
인생의 장애물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현장에서 역사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현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무너질 현장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도록 마음을 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
장애물 보다 크신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
장애물과 싸우기 전에 말씀과 싸우시기 바랍니다.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
믿음 앞에서 모든 장애물을 무너져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