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장애물을 만났을때
삶의 장애물을 만났을 때
민13:25-14:10
옛날 스페인 영에 속해 있다가 지금은 포루투칼의 수도가 된 항구도시 리스본에 가면, 그 해안의 마지막 끝나는 곳에 크지 않은 암석 바위가 하나있고, 그 곳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There is nothing behind.\" \"이┫?끝입니다.\" \"이 너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1492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은, 이 항구에서 바다 멀리까지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돌 조각에 쓰여진 이 눈에 보이는 한 마디의 말 때문에, 바다 멀리 나간다는 것은 감히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항구에서 조금만 더 멀리 나아간다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이요 공포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구는 평평하기 때문에 조금만 멀리 나갔다가는 평평한 바다 끝, 그 끝에 도달하여 낭떠러지에서 떨어짐으로 영원히 죽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돼는 우스개 소리이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변할 수 없는 사실이요 진리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크지도 않은 암석덩어리는 당시 모든 유럽 사람들을 바다 멀리,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묵어놓는 장애물이었습니다. 크지 않은, 보통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바위였지만, 이 바위는 수 백년 동안 유럽 사람들의 바다를 향한 이상을 묶어 놓았고, 바다 너머 새로운 세계를 향한 꿈을 말살시켜 놓았습니다. 크지 않은 바위에 쓰여있는 이 말도 안돼는 소리가 수 백년이 넘게 오랜 세월 동안 유럽의 모든 사람들을 완전한 멍청이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난 후, 사람들은 그 바위를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에 얼마나 허탈해 하고 말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1492년 한 사나이가 이 항구에서 자그마한 배에 오르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바위에 새겨진 글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는 끝이 아닙니다. 이 너머에는 위대한 희망의 새 세계가 있습니다\"
이 사나이가 바로 크리스토퍼스 콜롭부스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굳은 확신과 믿음에 따라 감히 남들은 나갈 수 없는 바다 너머 끝으로 끝으로 나아갔고, 결국은 신대륙을 발견함으로 유럽 사람들이 \"이 곳이 끝이다\"라고 굳게 믿었던 그 바위에 새겨진 글씨에 대한 오랜 허상을 깨트려, 온 유럽이 새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유럽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을 가지고 바다를 가로질러 그 너머의 세계로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갈 수 없게 했던 장애물은 리스본 항구 끝에 글씨가 새겨져 있는 그 크지 않은 바위, 그 바위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 바위는 장애물이 아닙니다. 그저 글이 새겨져 있는 돌덩어리에 불과합니다. 참된 진짜 장애물은, 누가 새겨놓았는지 모르지만, 글씨가 새겨져 있는 그 바위를 보고, 그 바다 너머로 전지하지 못하게 하는 두려움과 공포, 유럽사람들의 그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과 공포가 진짜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실지로는 아무 것도 아닌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속아 장애물이 아닌 것을 장애물로 여김으로 바다 멀리 나간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하는 두려움과 공포에 젖어 있었던 그 마음이 실은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지금으로부터 3400여 년 전 이스라엘 민족에게서도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모세의 인솔하에 애굽을 빠져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땅인 드넓은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 보이는 남쪽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약 1년 3개월이나 되는 힘들고 어려운 광야 생활의 갖가지 고생을 다 견뎌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곳에서 40년간의 광야 생활과 20세 이상 되는 이스라엘 남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두가 다 그 광야에서 죽음을 당하리라는 무서운 형벌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로 인해 자유와 풍요가 있고,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향해 출발했던 이스라엘 사람들 중 20세 이상 되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그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척박한 땅, 광야에서 죽음을 당해 묻혀야 했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까요?
약속의 땅, 가나안 땅 남쪽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한 그들은 그곳에서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가장 판단력있고, 지혜롭고, 용맹이 있으며, 소위 믿음이 있다는 사람, 각 지파를 대표하는 족장 12 명을 선택해서 가나안 땅의 정탐꾼으로 보냈습니다. 그들은 40일 동안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가나안 땅을 탐지하고 와서, 다음과 같이 27절과 28절에 보고합니다.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그리고는 가나안 땅에서 가지고 온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의 풍성한 실과들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 았으며\"라고 합니다.
땅은 기름지고 좋아 그곳에서 열리는 열매가 실하고 탐스러우나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거인들로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보고가 끝난 후에 일어났습니다.
12 명의 정탐꾼중 2 명은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는 것이었고, 다른 10 명은 갑자기 돌변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말하기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13:32)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민들은 신장이 장대한 대장부들이지만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13:33)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한다\"(13:31)는 것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2 명의 정탐꾼이 아닌 10 명의 정탐꾼이 하는 말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큰 절망과 낙심에 빠져 밤새도록 소리 높여 울며 곡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지도자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말하기를,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바로 여기까지 인도하셨는데. 그리고 하나님이 그 가나안 땅까지 인도할 계획이셨는데. 더구나 길을 가로막는 홍해 앞에서 절망했을 때 하나님은 그 홍해를 갈라 육지처럼 건너게 하셨는데, 물이 없는 광야에서 목이 말라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반석을 터트려 마음껏 마시게 하셨는데,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으로 괴로워할 때 하나님은 매일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셔서 배부르게 먹게 하셨는데, 아말렉 군대와 같은 강한 이방 군대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하나님은 크신 권능으로 그들을 물리쳐 주셨는데, 50도에 육박하는 대낮의 뙤약볕으로 지치고 탈진해 힘들어 할 때 하나님은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시원하게 해주셨는데,
그리고 광야의 밤에 엄습하는 영하의 추위로 온 몸이 추위에 떨 때 하나님은 불기둥으로 그들은 따뜻하게 해 주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와 보호하심, 그리고 인도하심을 다 망각하고 말았다는 것인가? 인류 역사상 바다를 가르고 육지처럼 건넌 백성이 어디 있으며, 광야의 곳곳 가는 곳마다 반석을 터쳐 그 한 가운데서 솟아오르는 물을 마시고 산 백성이 어디 있으며,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매일 같이 내려 그것을 양식으로 삼아 산 백성이 어디 있으며, 칼·창 한번 잡아보진 못한 오합지졸들이 잘 훈련된 정예부대를 단 칼에 무찌른 일이 어디 있으며, 덥다고 매일 낮 구름기둥이 나타나 그 더위를 막아주고, 춥다고 매일 밤 불기둥이 나타나 그 추위를 막아주는 그런 기이한 보호를 받으며 산 백성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므로 광야에서 수없이 많은 장애물들이 그들에게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받는 축복의 기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민수기 13장 가데스 바네아에서 또 다시 만난 장애물 앞에서 그들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는 망각한체 불신앙으로 꽉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수많은 증거와 기적이 그들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신앙으로 꽉 차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주신 증거가 수없이 많음에도 하나님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 크고도 놀라우신 권능을 보여주신 기적이 수없이 많음에도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심으로 그들의 불순종을 얼마나 참으셨는지 수없이 많은 경험을 했음 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장애물이 아닌 장애물들을 장애물로 여 기는 것입니다.
수많은 증거와 기적, 그리고 경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시기에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못한체, 보이는 장대한 가나안 사람들을 더 무서워하고, 견고하고 심히 큰 성읍을 더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신앙은, 그들의 그 불신앙에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앞에까지 다 와놓고서도, 다시 광야로 돌아가 죽음을 당해야 하는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장애물 앞에서 무릎을 꿇는 불신앙의 무리들을 향해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적 완성과 믿음 안에서 성공한 승리의 삶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하는 우리이지만, 삶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장애물들 앞에서, 때로 주저하고 망설이며 뒤로 물러서려고도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오늘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첫째, 아무리 큰 장애물이 있다하더라도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입니다.
14:9에서 불신앙에 가득찬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아무리 다양한 삶의 방식과 각기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 하더라도 어느 시대나 어느 지역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시며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가난하던 부하던, 건강하던 병들었던, 평탄한 삶이던 질곡의 삶이던 인생의 주인은, 그리고 인생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잠언 16:9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그랬고, 예레미야10:23에도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인생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불행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생명의 주인이시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 가장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생명의 주인이시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 나라의 왕을 거스려도 그 인생이 고통스럽고 고난이 중한데, 하물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거스린다면 그 인생이 행복할 수 있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삶의 지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힘들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바람을 거슬러 걸어가는 것도 힘이 드는데, 하물며 물과 바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이야 얼마나 불쌍한 인생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거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장애물보다도 더 크신 분이십니다.
더구나 인생의 장애물이란 실상, 보이는 저 장애물들이 장애물이 아닙니다. 인생의 장애물이란 보이는 저 장애물들을 보고 두려워함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내 안에 있는 나의 거역하는 마음이, 오히려 내 인생을 망치는 장애물인 것입니다.
둘째로, \"장애물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입니다.
14:9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불신앙에 가득찬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그랬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는 인생의 위기가 오히려 그에게 축복을 주는 기회가 됩니다. 장애물이 오히려 그에게 힘과 에너지를 제공해 주는 그를 위한 밥이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그처럼 위기나, 장애물을 밥으로 먹고 더 큰 사람이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또한 위기와 장애물을 우리 앞에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은 위기와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무서워하던 골리앗은 분명 이스라엘에게 있어 큰 위기요 장애물이었습니다. 골리앗이란 한 사람으로 인해 온 이스라엘은 마음이 물처럼 녹아버렸고 이제 블레셋의 노예가 된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그 위기와 장애물을 밥으로 먹은 사람이 바로 소년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위기와 장애물이었던 골리앗을 자신의 밥으로 삼아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희망이 되었고 결국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 됩니다.
바벨론 왕국의 수상 아각 사람 하만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생활하는 온 이스라엘에게 있어 크나큰 장애물이었습니다. 바벨론 왕국에서 큰 권세를 가지고 있던 하만은 온 이스라엘을 멸족시키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의 크나큰 장애물인 하만을 믿음의 여인 에스더의 밥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멸망시키려 하던 대적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고, 오히려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여인 에스도가 하만을 밥으로 삼자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날로 제비를 뽑았던 12월 13일은 오히려 하만과 그 악한 대적들이 멸망을 당한 날이 되었고, 바벨론 왕국의 온 족속들과 본토인들까지도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 위기와 장애물은 오히려 \'밥\'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장애물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렇습니다. 인생을 사는 가운데 만나는 위기와 장애물들이 우리의 \'밥\'이 되기 위해서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오히려 위기와 장애물들의 밥이 되고 맙니다.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누구일까요? 보이는 위기와 장애물이 아닙니다.
주님은 누가복음12:5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또한 잠언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우리가 두려워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보이는 세상의 것들이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십니다. 아무리 크다해도 보이는 세상의 것이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주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편127:1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집을 세워도 진실로 그 집이 세워지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수고는 헛됩니다. 아무리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밤을 지새우며 성을 지켜도 하나님께서 그 수고의 댓가를 허락지 않으시면 우리의 밤을 새우며 지키는 경성함이 헛되고 맙니다. 사실 인생에 그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무엇을 하시나이까 누가 물을 수 있으랴?\" 욥기9:12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빼앗으시는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을 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하나님께 누가 물을 수 있겠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였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 것을 돌이키랴\" 이사야14:27의 말씀입니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요. 하나님이 경영하시는데 누가 그것을 폐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손을 펴시는데 누가 그 손을 돌이키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참으로 두려워 할 분을 두려워하십시오.
그것이 인생의 장애물을 우리의 밥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며,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1930년대 미국에 불어닥친 대 경제공황은 미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폐업과 실직뿐만 아니라 삶의 절망과 좌절을 안겨 주었습니다. 당시 미국 사람들은 벌벌 떨면서 그들의 모든 미래를 포기하고 비탄에 젖어있었습니다. 그때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그의 취임사는 절망에 빠져있던 모든 미국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 연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입니다. 이 두려 움을 빼고서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것을 보고 두려워하는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두려움\", 그것이 인생을 실패케 하는 진짜 장애물입니다.
셋째, 아무리 큰 장애물이 있다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14:9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려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무엇이 우리의 장애물이 되겠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서8:31의 말씀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계시기에 나는 또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떠나는 어느 기차에 작업복을 입은 한 청년이 어린아이를 안고 들어와서 의자에 앉혀 놓고는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기차의 출발 시간이 되어 기차가 출발을 하는데 그 청년은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여행객들은 이상히 여기며 걱정되는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신기하게 보호자가 나가 들어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울지 않으며 근심하는 빛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정거장을 지나 출발한 곳으로부터 점점 멀어짐에도 불구하고 어린아이는 보호자를 찾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행객들은 그 어린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너! 무섭지 않니? 혼자서 먼 곳에 가면서 너 무섭지 않니?\"하고.
그러자 그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이 기관차의 기관사가 제 아버지인데요\". 그 어린아이에게는 아버지가 보이지 않지만 자기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혼자 앉아 있지만 먼길을 달려 왔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무섭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 갈 길을 다 가면, 보이지 않지만 함께 가는 아버지를 기쁘게 만날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 인생의 길이 그렇지 않습니까? 숨어 계시는 하나님처럼 하나님이 보이시지는 않지만,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 길이 끝나는 날, 나타나셔서 \"잘했다\" 칭찬하시며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 죤 웨슬리 목사님이 임종하시면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가장 좋은 것,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하신 약속도 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절의 주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실상은 밥에 불과한 가나안 땅의 거민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뒤로 물러섰던 10명의 정탐꾼과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모든 남자들은 광야에서 다 소멸되었지만, 장대한 그 거민이라 하더라고 밥으로 여기고 전진해 나아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80세 노년의 나이임에도 40대의 젊은 청춘을 가지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을 우리는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굳게 믿으십시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포루트칼의 수도, 항구도시 리스본의 해안에 있는 크지 않은 바위에 기록된 그 \'거짓\'에 속아 수백년 이상 바다를 향해 전진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유럽 사람들처럼, 장애물이 아닌 장애물에 속아 인생의 길에서 멈추어 서 탄식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속은 삶을 살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다음에 하늘 나라에 가면, 아마도 우리가 속은 수없이 많은 것들로 인해 우리는 부끄러워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밥으로 주신 많은 위기와 장애물들을 오히려 두려워하며 뒤로 물러서고 낙심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미안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인생의 장애물 앞에서 장애물만을 바라보고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시겠습니까? 장담하건데 실패한 인생입니다. 아니면 인생의 장애물 앞에서 장애물은 크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호수아와 갈렙이 부르짖은 외침처럼 장애물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굳게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시겠습니까? 장담하건데, 하나님이 기쁨으로 여러분을 도우시며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승리와 영광을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실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사랑하는 여러분의 삶이 이와 같은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