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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서는 BC 960년경 번영을 누리던 솔로몬 왕이 포도밭에서 일하는 술람미 여인을 만나 사랑을 속삭이던 내용이 기록돼 있다.
당연히 신약적인 관점에서는 솔로몬을 하나님으로 술람미 여인을 교회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구약을 지녀왔던 유대인은 아가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 문제는 신학자들이 땨져야 할 부분이라 생각되지만 성경은 누구에게나 공유된다는 점에서 아가서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에 대한 열정’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진실한 사랑을 나눈다는 것, 그것은 바로 인간본성의 가장 자연스럽고 신비스러운 기초적인 감정의 표현이다.
솔로몬은 아가서 6장 8절에 왕후가 60이요, 첩이 80명이고 처녀들은 이보다 더 많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온통 술람미 여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솔로몬은 숱한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없었던 새로운 감정을 술람미 여인에게 느끼게 된 것이었다. 아가서의 저자가 밤늦게 성벽을 배회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찾다가 파수꾼에게 발견돼 두들겨 맞고 옷을 뺏기는 장면이 나온다. 그 주인공이 만약 솔로몬 왕이었다면 이러한 일이 정말 발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에 미치다 보면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아가서는 진하디 진한 사랑의 밀어와 함께 진솔한 남녀의 마음이 적절한 비유를 통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아가서 7장 13절에는 사랑하는 자를 위해 오래된 것과 새것인 합환채(Mandrakes)를 보관해 놓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두사람의 사랑의 정도가 흥분제를 통한 분위기 조성까지도 고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만약 신약에 대입한다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육체를 자극하는 흥분제 사용도 가능하다는 말일까? 물론 상식적으로 그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가서를 너무 신약에 대입시키려는 시도는 오히려 성경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남녀의 사랑은 신비하고 다양한 것이다. 그것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그토록 마음을 쓰리고 아프게 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아가서는 그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도 바로 그러한 사랑이 아닐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그 분의 사랑, 그 분의 신비안에서 우리는 그토록 마음이 쓰리고 그토록 환희에 찬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어떤 조건이나 이유가 있어서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 여인이 온통 내 마음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도 그 분이 온통 내 마음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아가서는 무수한 처자들이 있는데도 이들을 다 팽개쳐 두고 한 여인을 사랑했다는 점에서 왕의 특수한 상황을 생각해 보게 만든다. 결혼식을 앞두고 혼수감 장만하기도 힘든 사람들에게 아가서는 단지 사랑타령을 하는 한 권력자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면에서 성경은 항상 열려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2천년이 지나도록 베스트셀러 자리를 유지하는 비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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