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를 읽고

\'야고보서\'를 읽고 2010/02/19 13:08:44
stone   Hit : 185 , Vote : 5     



야고보서는 예수의 동생으로 알려진 야고보가 AD 62년경에 기록한 말씀으로 알려져 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에서 이 책을 기록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를 믿기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에 따른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야고보서는 사도바울이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이 나올 때마다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구적인 말씀으로 강조된다. 개신교가 없어지지 않는 한 믿음을 언급할 때마다 행함에 대한 의미규정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가톨릭의 각종 타락으로부터 1517년 독립선언을 하고 나온 마틴루터가 믿음을 강조한 이후 행함과 실천에 대한 문제가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라는 갈림길이 생긴 것일까?

기자가 신앙생활을 했던 소속 교단만 하더라도 1990년 초반까지 교단차원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이 전무했다. 그것은 곧 ‘믿음’만이 최고라는 성경해석에서 나온 결과물인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야고보서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야고보는 2장에서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야고보가 주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졌기 때문인지 구약의 아브라함과 라합의 예를 들면서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쳤으며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숨겨주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은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는 것이다.

야고보는 두가지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만약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면서 이삭을 바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까? 아마 야고보는 그러한 아브라함의 신앙은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신학적인 깊은 지식이 부족함으로 더 깊은 언급은 할 수 없겠지만 ‘믿음’과 ‘행함’은 따로 국밥이 아니라는 정도까지는 누구든지 야고보서를 통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믿음대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다.

믿음은 관념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드라마틱한 상상력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믿음의 평가는 드러난 열매를 통해 대부분 알 수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열매와 그 나무는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