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 보낸 편지

고린도에 보내는 편지 2009/06/12 13: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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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는 유대인 앞잡이였다. 그가 한번은 시리아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공회로부터 이들을 잡아도 좋다는 허락서를 받아들고는 다메섹을 향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다메섹에 다 왔을 즈음에 뭔가 섬광이 번쩍 하더니 그의 지각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는 자신이 핍박하던 그사람들이 믿는 예수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가 일생을 바쳐 추구했던 유대전통과 구약관이 그 사건 이후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울이 평소 유대율법을 그렇게 철저하게 지키면서 정말 완전하고 철저하게 유대신앙을 지킨다는 말을 주위로 부터 들었지만 오히려 자신은 뭔가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율법을 통해 완전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었다.

사울이 이전에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하는 것은 자신도 어쩔 수 없었다. 사울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예수라는 이가 있는데 이 사람을 추종하던 사람들이 이상한 도를 전파하고 유대 율법을 통해서는 구원을 얻지 못하고 이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게 된다는 해괴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을 파라독스라고 하던가? 자신의 삶속에 역설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가 그의 일생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흐르는 동안 바울은 지중해 부근을 다니며 그 예수를 전하고 다녔다. 자신이 일생을 바쳐 지켜 온 유대전통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며 전파하고 다닌것이었다. 그중의 한 군데가 고린도라는 항구도시였다.

고린도는 천혜의 요지와 같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서쪽에는 이오니아 해와 이탈리아로 향하는 레카이온 항구가 있었고 동쪽으로는 아테네를 바라보면서 에게바다로 나갈 수 있는 겐그레아 항구가 있었다. 하지만 고린도는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로서 온갖 사회적 타락의 온상이 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복음을 전한 교인들간에 불화와 반목이 겹쳐 교회도 파국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 바울은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붓을 들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이렇게 시작되는 편지는 끝을 맺을 줄 몰랐다.

신자들 중에는 의붓 어머니와 동거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이를 방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고린도전서 5장), 예수를 밎으면 율법에서 자유하지 않느냐며 창녀와 관계를 맺는 고린도 신자도 있었다.(6장) 또 성행위라고 하면 무조건 죄악시 하는 극단적 금욕주의자도 있었다.(7장). 교인들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이교도 법정에 소송하는 고린도 신자들도 있었다.(6장),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8장), 성만찬 문제(11장), 교회 질서파괴문제(14장), 부활 신앙을 부인하는 고린도 사람들(15장)… 참으로 글로 다할 수 없는 일들이 고린도 교회 가운데 발생하고 있었다.

이중에서도 고린도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자들간의 분쟁과 파벌문제였다. 신자들 간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그리스도파 등 실로 마음이 쪼개질대로 쪼개어져 어디서부터 손을 쓰야 할지도 까마득한 상황이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교회공동체는 오직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강하게 역설했다.

바울이 이렇게 찢어지는 아픔을 갖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썼는데도 이 편지를 받아 본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는 이를 역이용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로 유대주의자들의 사주를 받은 일부 교인들이었다. 이들은 아예 바울이 ‘사도’라는 사실을 부인하며 바울이 전한 복음의 기반을 흔들고 있었다. 그들의 주장은 “예수와 함께 직접 다니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사도라 할 수 있느냐”라는 주장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울의 마음은 만갈래로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십수년전에 만났던 그 예수의 모습과 그 이후에 그를 인도했던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면서 즉시 붓을 들었다. 그것은 고린도후서라 불리는 것으로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좀더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이 어떻게 주님의 사도로서 사역할 수 있는지를 강변하는 글이었다.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한 적도 있다. 또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장)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체험과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임하게 되는지, 또 자신이 이러한 편지를 쓰는 진정한 의도와 뜻이 무엇인지를 단호하면서도 부드럽게, 애절하면서도 경고하는 투로 편지를 기록했다.

바울의 편지는 오늘날 천혜의 입지조건을 갖고 있으면서 항구도시로 무역이 번창하는 모든도시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특히 뉴욕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마음을 찢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