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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시리아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여러 나라와 지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 로마서는 바울의 세번째 전도여행이 끝나갈 무렵인 주후 57년경에 고린도에서 3개월을 머무르는 동안 이탈리아 로마, 당시 제국의 수도에 살고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울은 죄에 빠진 인류에게 어떻게 구원이 임하는지를 전해주기 위해 과감히 붓을 들었던 것이다.
로마서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해되고 있다. 인간 실존의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깊이있고 체계적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로마서를 읽는 사람들이 가진 견해에 따라 일곱색깔 무지개와 같은 다양한 빛을 반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기자도 로마서를 읽으면서 솔직히 헷갈리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NIV1311을 하면서 몇가지 굵은 선들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울 자신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곤고하다는 말은 헬라어 ‘달라이포러스’로 영속적인 시련의 상태를 말한다. 과연 이러한 곤고함으로부터 인간은 벗어날 희망이 있는가? 구원의 여명이 보이는가?
아무리 아무리 거룩하게 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바 악을 행한다면 그 일을 행하는 것은 내가 아닌 내속에 거하는 ‘죄’라고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내 속에 거하는 ‘죄’ 그 실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한 셈이다. 그것은 바로 내 자신 스스로가 그 실체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그 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원주를 기대하고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6장, 7장, 8장은 고전적으로 ‘성화’에 대해 언급하는 성경본문으로 유명하다. 이 본문에서는 인간을 죄의 본성(Sinful Nature)과 하나님의 영(the Spirit)으로 대비시키고 있다. 그 영(Spirit)이 열쇠의 키를 갖고 있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이 영(Spirit)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양자됨과 구속함을 이루고 우리안에서 영화롭게 됨으로 충만함을 이루어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얻을려고 울법을 쫓아갔던 이스라엘은 이것을 오히려 얻지못하고 믿음으로 나아간 이방인들이 이것을 얻게 됐다고 바울은 대비시키고 있다. 로마서 전체를 보면 뚜렷한 대비가 보인다. 처음 1장부터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대비된다. 율법과 믿음이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구도속에서 대비를 이룬다. 죄의 상태와 구원의 상태가 대비를 이룬다.
그것을 중재할 유일한 대안이 인류의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함으로 우리도 육체에 대하여 죽고 성령으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몇 줄 글은 이렇게도 쉬운데 왜 그것이 마음먹은대로 되지를 않는 것일까?
여기에 그리스도에 대한 단순한 파워, 능력이 있다. 십자가의 도가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섞은 자들에게 공평하게 역사하는 것이다. 죽고 산다는 이 진리, 그것은 헬라인이든 이방인이든, 자유인이나 노예인이나 부한자나 가난한자나 동일한 십자가의 진리가 역사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바울은 로마서를 개인의 죄와 구원문제에 국한 시킨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문제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영적인 문제였다. 어느 한사람 영적인 문제에서 완전한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바울은 이러한 영적인 상태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위해 그의 일생을 불사르며 고통과 위험과 죽음의 계곡을 넘나든다. 이 문제는 인류의 문제이자 바울 자신의 문제였던 것이다.
로마서 15장은 바울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의 이방인들로부터 헌금을 받아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가는 길에 스페인을 방문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 바울을 선교의 여정으로 이끌어 갔던 것이다.
누가 선교의 여정을 떠나는가? 누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앞장서는가? 지식을 가진 헬라인도 율법을 가진 유대인도 아니다.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가 당했던 죽음과 부활을 체험한자만이 이 여정을 걸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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