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해석학의 원리

\'성경해석의 원리\' 2009/04/15 21: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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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용 박사가 쓴 ‘성경해석의 원리’(도서출판 엠마오)를 읽었다. 성경해석은 일단 구약과 신약이 정경(Canon)이라는 전제에서 필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도 없는데 이를 굳이 해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25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천천히 읽어가면 보약을 먹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영혼을 살찌우는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성경해석을 위한 역사적인 교훈은 지금도 우리가 깊이 되새겨야 할 내용들이다.

2000년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 고대 유대주의 해석
성경해석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에스라(BC 457) 때로부터 시작한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대단히 철저하게 성경해석을 했기 때문에 후일에 바리새주의적인 성경해석 방법의 길을 터놓았다. AD 1세기의 랍비 아퀴바는 모든 반복, 비유, 은유, 직우, 병행법, 동의어, 단어, 문자, 심지어 문자의 모양 등에도 감추어진 뜻이 있다고 주장했다. 고대 유대주의는 이런 무절제한 성경 해석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2. 1세기 유대주의 해석
1세기 유대주의 해석의 기초역할을 한 것은 문자적 방법이었음에 틀림없다. 신명기 6장 7절의 말씀을 문자로 해석한 힐렐의 가르침은 유명하다. 하지만 힐렐의 과격한 문자적 해석방법은 맹점을 지니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미드라쉬 해석방법은 랍비 힐렐이 발전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미드라쉬 해석의 기본 법칙은 좋았지만 건전한 면으로 흐르기보다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페쉐 해석방법은 쿰란(Qumran) 공동체의 해석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페쉐 해석방법은 미드라쉬 해석방법에서 대부분을 빌어 온 것이지만 종말론적 강조가 내포돼 있다. 이 페쉐방법은 사도바울이 구약을 인용할 때 활용하는 방법이다. 바울은 구약의 내용을 신약에 인용할 때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정점으로 이룩된 구속성취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풍유적 해석방법은 성경이 문자적 의미 이상의 참뜻을 지니고 있다는 사상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필로(Philo, BC20~AD50)가 풍유적 해석방법의 대가였다. 이 풍유적인 방법은 중세시대를 풍미하게 된다.

3. 예수님과 사도들의 구약 이용법
여기에서 예수님과 사도들은 구약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역사를 실제의 역사로 인정하고 구약을 사용했다. 또 예수님은 구약의 역사적 기록에 대한 풍유적 뜻이나 신비적 뜻을 찾아 진리를 설명하기 보다 보통 뜻을 사용해 진리를 설명했다.(창4:8 심판설명)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성경을 해석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전통을 대신할 때 이들의 방법을 힐책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성경을 곡해할 때는 이를 교정하고 성경의 바른 뜻을 제시했다.
사도들도 구약을 직접 인용했으며 구약의 어순을 수정해 인용하곤 했다. 또 사도들은 그 당시 인정된 방법에 따라 문자적으로 구약을 해석했다. 역사는 역사로, 시는 시로, 상징은 상징으로 해석한 것이다.

4. 말시온(AD100-165)의 해석
말시온은 구약을 송두리째 배격한 이단이었다. 말시온은 예수가 단순한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 가운데 갑자기 나타난 초자연적인 존재로 믿기 때문에 그의 복음은 누가복음 3장 1절, 4장 31절을 근거로 진술한다. ‘가이샤 디베료 15년 본디오 빌라도 통치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의 한 도시 가버나움에 내려오셔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 말시온은 예수님의 인간 혈통을 부인한다. 따라서 모든 구약에 관한 언급들도 삭제해 버린다. 말시온은 바울을 유일한 예수님의 제자로 생각할 만큼 극단적인 바울주의자였으며 바울에 대해서 큰 존경을 표시했다.
말시온이 바울서신을 해석할 때는 문자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말시온은 비록 이단이었지만 해석에 있어서는 문자적 해석의 우월성을 인정한 것이다. 만약 말시온이 풍유적 해석방법을 즐겼다면 구약을 배격하지 않고 구약을 풍유적으로 해석해 바울서신의 가르침과 같은 교훈을 구약에서 인출해 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5. 교부들의 해석
예수님과 사도들의 해석방법의 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부시대에 풍유적 해석방법이 점점 성행하게 되었다. 교부들이 풍유적 해석방법을 즐겨 사용하게 된 동기는 구약을 기독교적인 자료로 이해하기위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저자의 뜻을 전혀 무시한 풍유적 해석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어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먼저 살펴보자. 이 학파의 모토는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사 7:9) 였다. 이 성구는 잘못 번역되어졌고 잘못 적용되어져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하는데 영향을 끼쳤다. 이사야 7장 9절의 한글개역성경은 ‘너희가 믿지 아니하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이다. 한글개역이 더 바로 번역되었다. 교부 주석가인 클레멘트, 그 탁월한 후계자인 오리겐 등이 대표적인 알렉산드리아 학파이다.
오리겐은 성경이 풍유로 가득차 있는 것으로 믿었다. 오리겐은 언어나 본문연구에 있어 그 당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깊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리겐의 전제가 플라토의 전제였기때문에 성경 저자들의 원뜻을 찾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감추어버리는 잘못을 법했다.
안디옥 학파도 있었다. 시리아 안디옥에서 성행했던 이 학파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비하면
훨씬 더 건전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안디옥 학파는 풍유적 해석을 견제하고 문법적 역사적 해석을 추구했다. 안디옥학파는 중세와 개혁시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계시의 발전을 인정한 점, 성경의 통일성이 기독론적임을 인정한 점 등은 안디옥학파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성경해석 방법을 활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디옥학파는 그 영향력을 잃고 만다. 그 이유는 데오도르의 제자 네스토리우스(Nestorius)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관계를 기계적으로 이용하여 양성의 교통을 부인함으로 안디옥학파는 정통에서 떠났다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제롬(AD 347-419)은 풍유적 해석의 약점을 발견하고 그 해석방법을 공격했지만 이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어거스틴(AD 354-430)은 387년 기독교인이 되기 이전에 마니교도였다. 마니교는 심한 문자주의를 믿었다. 따라서 구약이해에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어거스틴이 마니교의 극심한 문자주의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암브로스는 풍유적 해석으로 구약의 많은 부분을 어거스틴에게 이해시켰다. 말시온은 이 점을 극복하지 못했었다. 어거스틴의 풍유적 해석의 근거는 고린도후서 3장 6절이었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죽이는 것이요, 풍유적이나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살리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거스틴은 사상가요 신학자로서 성경해석을 위해 건전한 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은 풍유적으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다.

6. 중세기의 해석
중세에는 풍유적 해석이 성행했다. 매성경 본문이 4개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문자적(letter), 풍유적(allegory), 도덕적(moral), 신비적(anagogy)인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물을 예로 들어보자. 문자적 의미는 보통의 물이다. 풍유적 의미는 세례의 교리이다. 도덕적 의미는 정결한 생활, 신비적 의미는 하늘 예루살렘의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중세에는 이런 무질서한 성경해석이 성행했으며 특히 신비적인 뜻을 찾기위해 노력했다. 성경해석이 전통과 교회의 교리에 맞추어지는 경향으로 흐른 것이다.

7. 종교개혁시대
루터와 칼빈이 성경해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루터(1483-1546)는 가톨릭교회와 교회회의, 교황의 권위에서부터 ‘오직 성경’의 권위로 방향을 전환시켰다. 루터는 중세의 4중해석을 따르지 않고 성경에는 하나의 근본적인 의미만 있다고 강조했다. 루터는 개인신자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고 믿었다. 루터는 개인신자가 성경을 해석할 수 있도록 독일어로 번역했다. 루터는 성경해석에 있어 성령의 조명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을 했다.
칼빈(1509-1564)은 신학자이기 이전에 성경해석자였다. 그는 요한계시록, 요한 2,3서를 제외하고 성경전체를 주석했다. 칼빈의 신학을 공격했던 알미니우스 조차도 칼빈의 주석을 읽도록 권장했다는 사실에서 그의 주석의 가치를 엿볼 수 있다. 칼빈은 ‘성경저자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느냐’를 밝히는 것이 성경해석자의 임무라고 굳게 믿었으며 성경 자체는 본래적으로 간단 명료하게 기록되었다고 생각했다. 칼빈은 풍유적 해석이 성경의 뜻을 모호하게 만들려는 사단의 궤계라고 생각했으며 성경은 성경이 해석한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칼빈은 문맥, 문법, 단어, 병행구절을 연구하여 저자의 뜻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칼빈은 루터보다 그의 해석원리와 실제해석에 있어서 더 일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8. 종교개혁 후기시대(1550-1800)
종교개혁 후기시대는 고백주의, 경건주의, 합리주의로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
고백주의는 칼빈의 사망이후 16세기말까지 신조와 교리의 체계를 강조하는 시기였다. 경건주의는 교리구성의 경향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교리만을 내세우는 죽은 정통을 탈피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내적조명을 강조하면서 주관적 해석으로 치우치기도 했다. 인간 이성을 강조한 합리주의는 신학과 성경해석에 심오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홉스와 스피노자는 합리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자연신론(Deism), 인문주의, 경험주의와 연관돼 있다.

9. 현대(1800-현재)
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새로운 해석학파가 있다.
합리주의는 신학에 있어 자유주의(Liberalism)의 기초를 놓아 주었다. 이 시대에는 성경이 인간의 저술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졌다. 또 다윈의 진화론적인 영향과 헤겔의 변증법적 역사이해의 영향으로 성경이 이스라엘 종교의식의 진화론적 발전을 기록해 놓은 것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의 허점이 드러나고 1,2차 세계대전의 참상으로 인해 19세기 낙관주의가 그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게 됨으로 나타났다. 신정통주의는 성경관에 있어 자유주의와 정통주의 중간쯤 위치한다고 보면 된다. 신정통주의는 인간실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객관적 계시에 대해서는 특별한 강조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경해석의 기초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신정통주의의 창시자이자 지도자였던 칼 바르트의 말에서 우리는 그의 성경관을 엿보게 된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의 유일한 자료라고 말하므로 성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성경의 내용이 자기에게 말할 때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말하므로 성경이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p 75)
새로운 해석학파는 불트만에 의해 시작됐으며 신약전체를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새로운 해석학파는 성경본문을 기초로 성경해석원리를 찾아내는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약 전체를 어떻게 실존적으로 해석하느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새로운 해석학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몽주의가 성경연구에 미친 영향을 이해해야 한다.  결국 이들은 본문의 객관적 의미는 제거시키고 해석자의 주관성만 강조하고 마는 것이다.

지금까지 성경해석에 대한 역사적인 과정을 잠시 살펴보았다. 박형용 박사는 성경해석에 있어 본문의 중요성과 해석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 성령과 본문과 해석자의 상호관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설명하고 있다. 성경해석에 대한 원리로는 문법적, 역사적, 정경적 해석방법이어야 할 것과 특수한 해석방법으로 은유, 비유, 풍유, 우화 등을 설명하고 있다.
풍유의 해석원리로서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와 갈라디아서 4장 21절부터 나와 있는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 사이의 투쟁은 율법주의적인 유대주의와 은혜로 인한 구원을 강조하는 기독교와의 투쟁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사라와 이삭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은 유대주의와 기독교의 분리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형용 박사는 풍유가 아닌 본문을 풍유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난폭한 일인지도 지적하고 있다. 마태복음 2장에 헤롯왕이 두살 미만의 사내아이를 살해한 사건을 교부시대 때 해석하면서 ‘삼위일체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두 위만을 믿거나 유일신론자들은 멸망되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라는 해석을 했다는 것이다.
또 출애굽기 17장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과 르비딤에서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지게 된 상황에서 아론과 훌이 모세를 바위위에 앉히고 모세의 양손을 들게 되는 것을 해석하면서 모세가 손을 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요, 아론과 훌이 모세의 양손을 든 것은 합심기도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국의 어느 개형교회 목사가 설교하기도 한다며  이는 본문에 없는 사상을 억지로 끄집어 내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신약 난해구절, 상충구절을 해석하는 부분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태가 왜 스가랴 선지자가 말한 내용을 예레미야의 예언으로 인용했는가?
-다윗이 성전에서 진설병을 먹을 때 대제사장은 누구였는가? 아비아달이었는가? 아히멜렉이었는가?
-사도행전 세곳에 기록된 바울의 회개사건들은 왜 서로 일치하지 않는가?
-가룟유다는 어떻게 죽었는가? 마태의 기록과 사도행전의 기록의 차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예수님의 광야 시험의 순서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왜 다르게 나타나는가?
-마태복음 11장 12절 ‘천국이 침노를 당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등등

이 중 ‘천국이 침노를 당한다’는 해석을 소개함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이 말씀은 두 견해로 좁혀진다고 박 목사는 말한다. 첫째 천국에 대해 긍정적인 것을 말하는가? 둘째 천국에 대해 부정적인 것을 말하는가? 문제의 핵심은 하늘나라가 침노를 당한다는 것을 중간태로 볼 것이냐, 수동태로 볼 것이냐의 문제다.
한글번역은 대부분 수동태로 번역돼 있다. 개역판, 새번역, 공동동번역이 모두 천국이 침노를 당하고, 하늘나라가 공격을 받고, 하늘나라가 폭행을 당해왔다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박 목사는 천국이 폭행을 당한다는 개념은 본 문맥과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즉 침노하는 자가 천국을 강탈한다는 개념은 너무 강한 언어라는 것이다. 오히려 더 납득이 갈 수 있는 해석은 중간태로 취급하는 것이다. 중간태로 번역하면 ‘세례요한의 때로부터 하늘나라는 힘있게 전진한다, 능력있는 사람만이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 혹은 ‘하늘나라는 힘있게 표명되나니 위대한 결단의 사람이 하늘나라를 붙들 수 있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