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성경교리 강해시리즈 세번째 책인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을 읽었다. 시리즈 3권을 모두 세번씩 읽은 셈이다. 처음 읽을 때는 정신없이 읽었고 두번째는 뭔가 보이는 것 같더니 세번째 읽으니 비로소 기자가 가진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전통적인 기독교와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설교에 치중해 있으면서 바이블을 균형있게 소화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독교 교리(Doctorine)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마다 언제든지 바이블과 읽었던 책들을 다시한번 묵상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와 이 세상의 종말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로이드 존스 목사는 먼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에 성경을 대입해서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못박고 있다. 나폴레옹이 그랬고 히틀러가 그랬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너무도 분명하고 확실하게 성경에서 말하는 그 인물이 나폴레옹이고 히틀러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성경에서 언급한 예언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세상에서 이러 이러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한 일들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든지 종말이 왔다든지 하는 말들은 무턱대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은 무엇을 말하는가?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것은 요한이 상징적인 것들을 통해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위한 메시지를 전달할려고 했다는 것이다. 당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요한계시록을 읽으면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대번에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로마병사들은 요한계시록을 수십번을 읽어도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수세기 동안 계속돼 왔다는 것이다. 일곱교회의 경우도 당시 존재했던 일곱교회도 언급하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로이드 존스 목사는 밝힌다.
요한계시록은 많은 상징들을 사용하고 있다. 144,000명은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을 말하는데 그것을 숫자 그대로 이해해서 문자적 해석을 하면 이상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숫자 이야기가 나왔으니 요한계시록에서 이야기하는 숫자적인 상징에 대해서 살펴보자
먼저 ‘3’은 삼위일체 즉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나타낸다. 네(4) 짐승과 같은 표현에 사용되는 숫자는 온세상, 인류전체를 나타낸다. 그래서 3과 4를 곱하면 12가 되는데 그 수는 온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로이드 존스 목사는 지적한다. 구약에는 12지파가 있고 신약에는 12사도가 있다. 열둘을 열둘로 곱하면 ‘144’가 된다. ‘10’은 성경에서 언제나 완전수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0’이라는 숫자는 항상 완전과 완전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 10을 세제곱하면 1000이 되는데 이 숫자는 절대적인 완전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144,000이란 바로 이렇게 조합된 144와 1000을 곱한 수인 것이다. ‘7’이라는 숫자도 요한계시록에서 54번 사용되는데 상징적인 숫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한 때 두때 반 때, 2년 반, 42개월, 666 등 여러숫자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요한계시록을 일곱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크게는 두 부분으로 나눈다. 1-11장이 전반부이고 12-22장이 후반부이다. 전반부는 1,2,3장 4,5,6,7장 8,9,10,11장으로 나뉘어진다. 후반부는 12,13,14장 15,16장 17,18,19장 20,21,22장으로 나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중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요한계시록이 하나님과 싸우는 자가 사단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 세상의 사람들과 개인들은 세상의 배후에 있는 큰 권세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존스 목사는 우리가 너무나 자주 이 사실을 잊어 버리기 때문에 혼란되고 사물을 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바로 이 중요한 싸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존스 목사는 말하고 있다. 또 요한계시록은 인간은 재난에 의해서 회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전적으로 성령이 감당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전천년설과 후천년설, 영적견해(무천년설)에 대해서는 20, 21장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전천년설에대해서는 왜 받아들이기 힘든지를 장황하게 성경을 대조하며 풀어내고 있다. 전천년설을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를 몇가지 지적해 보자.
첫째, 이 이론이 신약성경의 복음서나 서신서 어느 곳에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가르침은 단지 요한계시록 20장에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둘째, 전천년설이 가르치는 강조점은 물리적으로 여기, 이 세상에서 다스리시는 주님과 그 나라의 지상적인 측면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장에서는 이 세상의 종말 이후에 새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전천년설은 그 최후 통치 이전에 나타나게 될 어떤 지상나라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전천년설은 하나님나라의 개념을 미래로 연기시킨다는 점이다. 요하계시록 1:9이나 골로새서 1:13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고 말하는데 그 나라에 대한 전체적인 개념을 미래로 지연시키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네째, 전천년설은 우리 주님이 육신을 입으시고 1000년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월등한 지위를 주실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차별을 다시 도입하는 것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하고 있다. 왜냐하면 골로새서 3:11, 에베소서 2:14, 에베소서 3:6, 로마서 11장 등에서 분명하게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철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섯째, 전천년설은 주님이 여러번 재림한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이 견해에 따르면 적어도 주님이 두번 재림하며 예비적인 휴거를 믿는다면 세번 재림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4장의 교훈을 묵상해 보면 이에대한 해답을 알 수 있다고 존스 목사는 말한다. 여섯째, 전천년설은 최소 두번의 부활이 있을 것을 주장하는 셈인데(부활에 관해 예비적인 휴거를 믿지않는 전천년설주의자라면) 그것은 신자가 그리스도 천년통치 초에 부활하지만 불신자는 그 통치기간 말과 심지어 그 이후 얼마동안 부활하지 못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요한복음 5:28-29, 6장, 11:24 본문으로 보건대 선인과 악인의 부활 사이에 천년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주님이 가르친 진리와 신약성경 전체에 나타나는 부활과 마지막날, 최후 심판에 대한 교훈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요한계시록에 사용된 숫자가 상징적인 것임을 강조하면서 1000년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기간, 즉 전체기간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그 숫자는 10을 세제곱한 오랜 기간을 암시하며 무엇보다 완전한 기간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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