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에 걸린 축복 정보
성전에 걸린 축복정보(2)/돌 위에 돌이 첩 놓여지는 날부터
학2:15-19
여전히 전 시간에 이어서 성전에 걸려 있는 축복에 대한 정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두 번째 시간으로「돌 위에 돌이 첩 놓여지는 날부터」라는 주제의 말씀을 오늘은 드리게 되겠습니다.
우선 복습하는 뜻에서 학개서 2장 19절 하반절에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시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서 그 오늘이라는 날 이전에는 매우 가난하였던 것으로 이해가 되어집니다. 그 오늘 이전이 가난하였던 이유 그 첫째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유리하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하게 해 주셨을 뿐 아니라 그리고 판벽한 집에,
이 판벽하다는 것은 판으로 집을 지었다 그런 것이지요. 그 당시 집이 그저 대략 대략 쌓아 올려서 비오면 무너지고 이렇게 하는데 다 널판지를 붙여서 완벽한 건물, 요즘에는 그보다 더 좋은집입니다마는 판으로 집을 지었다 완벽한 건축을 하였다 그런 것이지요. 너희가 판벽한 집에 거하는 날이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호와의 전이 황무하였으되 전을 다시 수습하자거나 또 새로 건축하자거나 하지 아니하고 건축하기 아직 이르다 라고 말하였다는 겁니다.
그러므로써 백성이 살기 힘들어서 그렇게 말할 때에는 하나님이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으셨지만 또 백성이 살기 힘들 때에는 이제 겨우 살게 되었을 때에는 성전을 지어 드리자고 해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자기들이 복을 받아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오래 자연스럽게 되면서도 하나님의 전 허물어져 가는 데 대해서는 관심도 없어지고 오히려 고치자 새로 짓자 라고 하니까 이르다 라고 할 때부터는 배신감을 느끼시고 그들에게 내리던 복을 멈추어버리시니 전대에 구멍이 나고 삯을 받아 들어와도 모이지 아니하고 또 수고를 하여도 다 헛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아주 그 오늘이라고 하는 그 이전에는 가난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가난의 이유가 하나님의 성전 건축이 아직 이르다 라는 마음을 가졌고 그렇게 말했으므로 그리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2장을 중심으로 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좀더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2장 3절의 말씀을 한 번 참고해 보시겠습니다.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 이게 무슨 말씀인고 하면 이제 학개서 1장에서 하나님이 학개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을 듣고 청종하고 마음에 흥분이 되어서 성전 역사를 모두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제 1장에서 성전을 짓게 되었는데 그 성전이 그다지 우람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대성전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마친 그 백성들을 보시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너희 중에 오래 살아서 전에 있던 성전을 보았던 사람이 있느냐?\"
전에 있던 성전이라면, 참 왕년에 굉장한 성전을 지었었지요 저들이. 솔로몬 때에 굉장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이미 재료를 많이 주셨기 때문에 성전을 그냥 다 짓고도 남은 재료를 가지고 왕궁을 칠년이나 지을 만큼 되었으니, 굉장히 풍부한 가운데서 근 50년 46년 이렇게 성전 공사만 계속 했던 그런 거대한 성전이지요.
그 성전이 또 훼파되기도 하고 했지만 다시 수리하고 이렇게 해서 그전에 있던 성전은 굉장한 대성전이었는데 그때 그 성전의 크기와 영광을 본 자가 있느냐. 그렇다면 그때 대성전에 비하여 지금 너희가 이 다리오왕 시절에 너희가 지금 지어서 말하자면 입당하게 된 이 성전 규모를 비교해 볼 때 어떠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학개서 1장을 통해서 그때 다리오왕 시절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마음합해 가지고 흥분되어서 지어드리기는 드렸지만, 전의 성전에 비하면 아주 보잘 것 없는 말하자면 대궐에 비하여 오두막 정도밖에 아니 된 것 같습니다.
그래 가지고도 복을 받겠는가? 그런 작은 성전을 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였겠는가를 한 번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라고 봅니다. 4절을 보시겠습니다. 2장 4절입니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기 4절에 왜 \'그러나\'라고 했는고 하면 이전에 대단한 성전을 지어바쳤던 그때 당시에 백성들의 그 성전에 비하면 오늘날 이 학개서 1장을 통해서 성전 지어드린 이 다리오왕 시절에 백성들이 지은 성전은 아주 보잘 것 없는 소규모의 성전이었다 그겁니다.
그것과 이것을 비교하니 그냥 뭐 기가 꺾이고 머리가 숙여져 있는데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면서 위로를 하고 나옵니다.
\'그러나\' 왜 그러나 입니까? 지은 성전이 작다 그겁니다. 보잘 것 없는 성전을 지어 바쳤지만 그러나, 제사장이여 너도 굳세어라. 백성의 지도자들인 장로들이여 여러분도 굳세어라. 모든 성도들아 굳세어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작은 성전을 지은 너희들과 함께 할것이니라. 그리고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큰 성전을 지어드리지 못하고 작은 성전을 지어 바쳤다라고 해서 위축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작지만 굳세어라. 그리고 굳세게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느니라. 이런 말씀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의 기분에 맞도록 당신의 체질에 맞도록 큰 성전을 원하신다거나, 또 하나님께서 휘장 가운데 거하시기가 싫으신데 그저 백성들이 빨리 지어드리지 아니하니 화가 나셔서 말씀하신다거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을 지어드리는 시기와 그 성전의 크기에 대하여 하나님의 체질을 개입시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분을 따라서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형편을 보았다 그겁니다.
이전에 내가 많은 것을 주었을 그때에, 또 저들이 쫓겨나고 나라가 없던 때에 나라가 이루어지고 내가 많은 능력으로 저들을 보호해주었을 그때에 은혜와 감사가 넘쳐서 내가 준 복을 따라서 엄청난 성전을 지을 그때는 엄청나게 지었어야 그들이 내게 정확하게 충성하는 충성이었고,
그때 만약 지금과 같은 교회를 지었었더라면 많은 것을 주었으되 많은 것을 받았으되 내게 대하여 헌신하는 모양이 너무 초라하니 내가 서운했을 것인데 그때에는 그때대로 내가 기뻐하였거니와 이번에 너희가 지은 그때 그 성전에 비교하면 아주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성전이지만 너희가 열과 성을 다하였도다.
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리고 학개를 통하여 내가 말하는 말을 따라서 너희는 성전역사에 전부 동원이 되었으니 기쁜 마음으로 흥분이 되어 모두 지었으니 그 건물의 작품 자체야 작지만 너희 마음은 그때 큰 성전을 지을 때에 그때 정서나 지금 정서나 마찬가지로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축되지 말지어다.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굳세게 할지어다. 그리고 굳세어 열심히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느니라.
하나님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하나님은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 체질을 성전을 맞추시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들의 형편과 우리들의 때를 따라서 하나님은 지시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때가 아주 정확하다는 것입니다.
성전이 대형이든지 소형이든지, 대형을 바쳐서 우리의 충성을 표현해야 될 형편이면 대형을 바쳐야 되고 소형을 바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대형 바친 시대의 사람보다 더 크게 여기실 수도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관심은 건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품을 이루어 가는 과정 속에 있는 백성의 심령을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이전 성전같은 규모로는 건축하지 못했어도 이스라엘이 다리오왕 시절에 성전건축에 호의적이었고 또 하나님께서 흥분시키시매 모두가 흥분되어서 비교적으로는 보잘 것 없는 교회였지만 적은 규모의 교회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고 그 일로 인하여 비교하여 약해지지 말지어다, 굳세어라 하시면서 8절과 9절을 또한 보실까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참 귀한 말씀입니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이 작은 규모의 성전에 내가 쏟아내리는 영광이 이전에 큰 성전에 쏟아내리던 영광 못지 않게 더 크게 하리라.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크게 하리라. 은이 누구의 것이냐. 내 것이 아니더냐. 금이 누구의 것이냐. 내 것이 아니더냐.\"
은도 금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시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나 우리 많은 사람들은 금이 다 세상에 있는 줄 알고 파러 나갑니다. 세상에 나가서 돈을 벌어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면 되는 줄 알고 머리 좋은 사람이면 당연히 머리 나쁜 사람보다 더 많이 벌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면 덜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많이 버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열심히 하는 자는 많이 얻을 것이라고 말씀한 그 선에서는 그러하지만 꼭 머리 좋다고 머리 나쁜 사람보다 부자 사는 것 봤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한다고 잘 삽디까? 그렇지 않습니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이제 우리가 학생들이 공부할 때에는 \"열심히 공부하라. 그러면 큰 사람된다. 돈 많이 번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라. 기술적으로 열심히 하라. 그러면 다 잘산다.\" 세상 사람 마음대로 자기들 연구 많이 하고 많이 갖추면 잘 살 것처럼 생각합니다마는 어른이 다 된 다음에는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복이 있어야 돼.\" 그럽니다.
그렇습니다. 아이큐(IQ)대로 재물 갖지 않습니다. 새벽부터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한다고 꼭 잘사는 것 아닙니다. 참 어떤 사람들은 팔고 나면 그것 값 내리고 사고 나면 값 오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막 사고 나면 값 떨어지고 팔고 나면 값이 쑥 올라가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게 참 머리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세계에서 증권투자 제일 잘하는 세계적인 유명한 박사에게 \"당신은 어찌해서 증권투자를 그렇게 해 가지고 돈을 벌었습니까? 어떻게 합니까? 무슨 실력으로 합니까?\"라고 하니까 그렇게 대답했다지요. \"부엌에서 일하는 내 마누라가 오늘 주식 많이 사십시오 하면 사고 오늘 사면 재미 없겠습니다 하면 안 샀지 내가 실력가지고 해 봐도 된 게 없더라.\" 그럽니다.
그 말이 무슨 말입니까? 세상사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복을 연결시키시면 안 될 것 같은데도 되고, 하나님께서 복 줄을 끓어버리면 전대에 구멍이 나게 만들어 버리면 아무리 한다고 해도 되는 게 아니더라 그겁니다.
그러니까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요\'라고 한 이 말씀을 인정하신다고 했는데 다시 한 번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그러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인 하나님께서 \"이제 너희가 적은 규모의 성전을 지었지만 이전의 큰 규모로 성전을 지었을 때와 못지 않게 내가 이 성전에 영광으로 가득 채우겠고 이 성전을 지었고 이 성전에 예배드리러 오는 너희에게 내가 복을 베풀 것이니 염려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약하지 말라 굳세어라. 굳세어서 일할지어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이제 이 학개서를 통하여 우리는 이 학개서는 성전건축장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어요. 성전건축 하려면 학개서 들고 나가서 막 치면 된다 라고 하는데 아니요. 이 학개서는 성전건축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의 장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것이며 받은 복을 어떻게 하면 잃지 않고 유지하겠는가를 가르치는 참으로 진실한 축복의 장인 것을 이 학개서를 통하여 알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2장 16절 이하를 계속해서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는 이십 석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석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뿐이었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자, 폭풍과 우박과 곰팡으로 하나님께서 치시니 곡식 더미에 가서 아마 다 이렇게 탈곡해서 담으면 이십 석쯤 되지 않았겠는가 하고 갔더니 푹 불어보니까 가라지가 되어서 빈 껍데기가 되어서 다 날아가 버리고 알곡이 기대했던 것의 반밖에 되지 않은 십 석밖에 되지 않고,
또 오십 그릇쯤 나오지 않겠느냐 해서 포도를 이제 즙틀에다 넣고서 포도를 짰다 그겁니다. 그래서 이십 그릇정도 우리 말로 말하면 오십 항아리정도 나올 것이다 라고 짰는데 부피는 많았는데 짜보니까 액이 나오지 않아서 이십 그릇밖에 안 되었다 그겁니다. 포도즙 틀에 가서 짜보니까.
어떻게 해서 이같이 되었느냐? 그 곡식이 폭풍을 맞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 열매에 곰팡이 피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그 곡식 이파리가 우박을 맞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어젠가 잠깐 우박 쏟아진 뉴스를 들었습니다. 어느 동네인가 우박이 순식간에 쏟아졌는데 포도나무 이파리가 우박이 떨어져 뻥뻥 구멍이 났어요. 그런데 포도는 한 나무에 열 송이가 열렸다면 그 농부가 말하기를 여덟 송이를 아직 다 익지도 않았는데 짤라내어야 된다는 겁니다. 두 송이를 남겨도 구멍난 이파리를 가지고서는 제대로 결실 못하겠다하면서 막 안타까워하는 것을 보았어요.
그러니까 뭡니까? 우박이 순식간에 내려가지고서 이파리에 구멍을 내어버리니까 그 이파리에서 영양을 갖다 보태야 되는데 열매가 맺어있지만 소용이 없고 그것도 짤라야 제대로 상품이 되는 것을 열 중에 두 송이도 될까말까하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을 들어봤는데,
이 폭풍과 우박과 곰팡을 하나님께서 내리시므로 저들에게 쳤으므로 이십 석 기대했던 곡식이 십 석 되고 오십 석 기대했던 포도즙이 이십 그릇밖에 되지 않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들이 돌아서지 아니했느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고 해서 벌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벌을 내리신 목적이 어디 있는가? 빨리 돌아서라는 겁니다. 너 그 길로 나가면 계속 망하고 만다. 크게 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서라고 한 번 쳐 봤더니 돌아서기는커녕 더 악해졌다 그겁니다.
돌아서기 위해서 곰팡과 우박을 내리셨다는 것이지요. 조금 전에 읽었지요. 17절 다시 볼까요.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곰팡과 우박과 폭풍으로 첬으나 돌이키지 않았다는 것을 볼 때 이 목적이 뭡니까? 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잘못했기 때문에 벌을 주신 겁니까, 빨리 손해보지 않고 돌아서게 하려는 것이었습니까? 빨리 돌아서게 하려고 했는데 \"왜 날 때리느냐?\" 빨리 회개하고 돌아서면 될텐데 \"왜 날 때리느냐? 왜 내게는 복을 안 주느냐?\" 이러면서 더 악하게 계속 나가게 되니까 방법이 없더라 그겁니다.
그래서 \"그러나 오늘부터는 너희에게 복을\" 한 그 오늘 이전에는 못살게 되었더라 그겁니다. 그 두 번째 내용이 이유가 첫째는 무엇입니까? 성전이 아직 이르다. 자기들은 어떻게 살면서 아직 이르다 라고 했다고요? 판벽한 집에 거하면서 황무한 성전을 보고서 성전 건축이 아직 이르다. 그래서 배신감을 당했다 그겁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이냐? 왜 이렇게 많은 것을 거두어 들일 줄 알았는데 적어져버렸느냐? 그 두 번째 이유는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11절부터 이제 나타나 있습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중요하니까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2장 11절 봅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다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의 손에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이게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이제 오늘 이전에 가난하게 살았던 그 두 번째 이유인데 그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 순수한 것과 순수하지 못한 것이 접촉을 하고 있더라 그겁니다.
여기에 거룩한 고기라고 하면 제물로 바칠 것입니다. 이 제물로 바칠 고기를 이렇게 옷자락에 쌌습니다. 이 옷자락에 싸서 고스란히 갖다 드려야 되는데 갖다 드리기 전에 구별하여 갖다 바치기 전에 어떤 사람의 그 고기 싼 옷자락에 보니까,
포도주가 막 떨어져 가지고서 얼룩덜룩한 사람이 있고 또 떡하고 같이 섞어놓아 가지고서 떡고물이 묻은 옷자락도 있고 또 기타 여러가지 내용이 묻어 가지고서 국에나 떡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그것이 다았으면 11절 12절에 그것이 다았으면 그 속에 있는 하나님 앞에 드리겠다 하는 거룩한 고기가 거룩한 고기이겠느냐 아니겠느냐 제자장에게 물어보라 했다 그겁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제사장이 하는 말이 \"그러면 아니지요. 아무리 거룩한 고기라도 그 옷자락에 싸서 거룩되이 그대로 올라가야 되는데 이것이 국물 튀어가고 포도주 튀어가고 떡고물 묻고 기름방울 튀어가고 이렇게 섞이면 그것은 이미 성물이 아니지요.\" 대답했다 그겁니다. 옳습니다.
또 학개가 이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또 묻습니다. \"그러면 시체를 만진 사람이 주검을 만진 사람이 와 가지고서 하나님의 성물을 만졌다 라고 하면 주검 만진 사람이 죽음의 관한 소식을 가진 사람이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성물을 수습했다 라고 하면 그 성물은 어찌되겠습니까?\" \"그것도 이미 성물이 아니지. 부정하지. 부정스러운 것을 만지고 거룩한 것에 손을 대었으니 그 거룩한 것은 이미 거룩을 잃어버렸지.\"
이 백성아 들으라. 너희 개인이 하나님 앞에 하는 것이 그러하였고 이 나라가 하는 것이 그러하고 너희가 교회를 통하여 성전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가 그리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지금까지 너희는 옷 자락에 너희의 성물을 하나님 앞에 늘 갖다바쳐서 하나님에게 거룩히 드렸다 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기름방울 튀어가고 거기에 포도즙 물 튀어가고 거기에 떡고물 묻고 거기에 또 오염된 것 이렇게 뒤섞여가지고 왔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미 섞일 때에 성물로 치지 않았으므로 너희는 드린 줄 알지만 하나님은 받으신 것이 없느니라 그랬어요.
너희가 시체를 만지고 죽음을 만지고 생명이 넘치는 하나님의 전에 와서 생명에 관한 모든 일들에 충성하였어도 너희는 이것과 저것이 묻었고 붙었고 접촉하여 섞였으니 너희가 볼 때에는 생명만 드렸다 라고 하지만 너희의 드리는 그 손길이 이미 시체에 다았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되는 그 생명의 성물은 성물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수년동안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 앞에 성물을 드렸다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성물이 아닌 이상은 받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예배는 모두 실패한 것이니라.
예배에 실패를 하고 어떻게 너희가 복을 받기를 기대했느냐. 너희가 이 성전을 짓기 오늘 이전에는 그렇게 하여서 예배에 성공을 하지 못하니 예배를 제대로 하나님 앞에 상달시키지 못하니 너희는 세상 사람 망하듯이 망하고 어쩌면 그보다 더 망할 수밖에 더 있겠느냐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15절 말씀을 봅니다.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疊) 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여호와의 전에 그 전 옛날 여호와의 전에, 그러니까 전에 큰 성전 이후에 지금 다리오 왕 때에 새로 지은 적은 성전 이 직전에 어떻게 되어 있었느냐 돌이 돌 위에 첩 놓이지 않았었더라 그겁니다.
그 때를 추억해보라는 겁니다. 기억해보라는 겁니다. \"그 때에는 이십 석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석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 뿐이었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그러니까 지금 다시금 지은 이 성전은 돌 위에 돌이 첩 놓였지만 너희가 이 성전을 짓기 전에는 이 성전이 황무하여져가니 어찌 하였느냐? 돌 위에 돌을 놓아야 할텐데 돌 위에 돌을 놓은 것이 아니라 무너져가니까 이것을 갖다 붙이기도 하고 저것을 갖다 붙이기도 하고, 그저 위에 기와가 깨어져가지고 비가 새니까 비닐도 갖다 끼어보고 요즘 식으로 말하면. 옆에 벽이 허물어져서 자꾸 흘러내리니까 거기에다 양철 판대기도 갖다 붙여보고 하나님의 성전이 짜집기가 되었더라 그겁니다. 그러면서도 새로 튼튼하게 판벽한 성전을 짓자고 하지 않았다 그겁니다.
너희가 지금 추억하여보라. 하나님의 성전에 돌이 돌 위에 첩 놓이지 아니했던 때를 추억해 보라. 그 때에 어떤 결과가 왔더냐. 이십 석 거두어들일 것이라고 곡물 더미에 가서 거두어보니 다 쭉정이로 날라가버리고 알곡은 십 석밖에 되지 아니하고, 오십 그릇 즙틀에서 포도즙 나올 줄 알았는데 이십 그릇밖에 되지 아니하였지 않느냐.
그 때에 너희가 성전을 한 번 추억하여 보라. 성전이 어떻더냐. 돌 위에 돌이 첩놓였더냐. 아니야. 오만가지로 첩 놓였느니라. 성물 위에 기름이 떨어졌느니라. 성물을 싼 보자기에 포도주를 덮었느니라. 성물을 싼 포대기에 떡고물이 묻었느니라. 성물을 싼 그 옷자락에 기름으로 덮었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전을 이렇게 짜깁기를 했다 그겁니다. 이래 갖다 붙이고 저래 갖다 붙이고. 비가 오는 날 급해서 우선 뭐 우비를 갖다 덮을 수도 있지요. 비닐 갖다 끼울 수도 있지요. 그러나 날이 새면 \"하나님의 전에 이런 것이 붙어있어서 되겠느냐. 포도즙 물이 떨어져 되겠는가. 기름이 묻어 있어서 되겠느냐. 이 비닐이 웬 말이냐.\" 빨리 벗기고 그것을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기도하고 이러한 마음이 있어야 할텐데 이것 더덕더덕 붙입니다. 편리하니까요.
너희가 그렇게 성전을 간수하던 때를 추억하여 보라. 너희의 소득이 얼마만큼 들어왔더냐. 폭풍을 맞지 않았더냐. 곰팡이 쓸지 않았더냐. 돌 위에 돌이 있은즉 곰팡쓸 리가 없지요. 돌 위에 돌을 올려놓으면 폭풍이 온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돌 위에 돌이 올려져 있으면 우박이 온들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박이 톡톡톡 튀어 다 나가지요.
너희가 성전을 견고히 하면 너희 집이 견고하고 너희가 성전에 이처럼 아무렇게나 하면 하나님이 거하시기조차 아니하시느니라. 그래서 너희의 예전을 한 번 추억하여 보라. 너희의 삶이 어떻더냐.
돌 위에 돌이 첩 놓여져 있어야 할 터인데 너희는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전이 황무하여 벽도 헐고 지붕도 헐고 하였는데 그리고 대지도 파였는데 일하기 싫어서 대강 대강 하고 말았느니라. 이것 저것으로써 짜깁기하였느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 너희는 하였느니라 바로 이것이지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이 말씀에서 도망을 가고 싶은 생각이 좀 있었습니다. 이 말씀에 있는 내용을 설명해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을 잠시간 가졌으나 이번에 여러분께 드리는 이 말씀들은 앞으로 한 편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마는 이 세 편 성전에 걸린 축복정보에 대한 시리즈는 영감으로 하나님께서 저의 눈에 저의 마음에 저의 입에 있게 하였으니 여러분도 영감으로 받으시면 유익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주신 특별한 말씀인줄 저는 믿기에 그대로 말씀을 드리는데, 우리 교회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돌 위에 돌이 놓였느냐? 돌 위에 돌은커녕 예전 건물에다 이것 붙이고 저것 붙이고 참 우리 교회처럼 짜깁기를 많이 한 교회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대성전 참 속은 뻔지르르 합니다마는 사실은 이 벽 전부가 불탄 벽입니다. 그것도 옛날에 튼튼한 새 벽이 아니고 큰 불 나서 불 맞은 벽이다 그겁니다. 거기다가 페이트칠만 하고 안에다 이렇게 이쁘게 해놓으니까 지금 나중에 오신 분들은 참 교회 겉으로 보면 이상한데 안에 들어와 보면 좋다 이러는 분이 있는데, 참 돌에 돌이 첩 놓인 것이 아니라 오만가지가 들어 붙었다 그겁니다.
교육관도 마찬가집니다. 안디옥 성전 에베소 성전 보면 천막에다가 안에는 들어가 보면 거창해서 날씬한 결혼식장같이 잘 꾸며놓았는데 겉으로 보면 참 엉망이지요. 그래서 돌 위에 돌이 첩 놓였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성전이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는 것은 틀림없다 그겁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서운함을 입으신 분이 개인적으로 있어서 오십 석 이십 석 구하러 갔더니 십 석밖에 안 되고 오십 그릇 구하러 갔더니 이십 그릇밖에 안 되는 개인은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돌 위에 돌이 첩 놓이지 아니했다는 이유 때문에 지금 우리의 받을 복을 깎지 않았다 그겁니다.
하나님은 지금 어떠한 형편에 계시느냐? 마치 다윗을 향하여 보시는 눈과 같이 우리를 보고 계신다 그겁니다. 네가 이제 겨우 겨우 고생을 다 마치고 백향목 궁에 이제 겨우 들게 되었으니 들어가 살아라. 평생을 살아라. 장수하게 해 주겠노라. 네가 사는 동안에 성전 공사를 하지 말지어다. 네가 다시금 성전 공사를 한다면 네 평생에 누릴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
성전공사는 네 아들 대에 가서 내가 지어 받겠느니라. 그것도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어서 내가 준 것으로 지어 받겠느니라. 네가 성전을 내게 지어 바치겠다고 그 마음이 내게 합하였도다. 네 정성이 그러하면 되었도다. 나는 휘장가운데 더 있겠노라. 네 평생 백향목 궁에 있는 동안에 나는 네 평생동안 휘장 가운데 그냥 있겠느니라.
하나님이 거룩한 성전에 계시면 휘장 가운데 있는 것보다 훨씬 낫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배려이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지 않으셨다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교회의 형편이 어떠냐? 돌 위에 돌이 첩 놓이지 않았어요. 어느 건물도 하나 제대로 된 것 없어요. 여기 허가받아 가지고 제대로 기초해 가지고 제대로 올린 건물 있습니까? 없으면 없는 줄은 이제 알 때가 되었다고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돌 위에 돌이 아니라 엉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판벽한 집에 거하도록 만인에게 집을 주고 계신다 그겁니다. 만인에게 차를 주고 계신다 그겁니다. 전에는 달셋방 전셋방 하던 것이 자기 집으로 많은 분들이 확보해간다 그겁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 지금 복을 주시는지. 큰복을 주고 계신다 그겁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지금 돌 위에 돌이 놓이지 아니하여서 참 답답하시지만 답답한 것을 내가 먼저 해야지 너희의 답답한 것을 내가 볼 수 없느니라. 너희가 판벽한 집에 거하기를 원하노라. 다만 너희가 판벽한 집에 거할 수 있도록 내가 큰 복을 줄 때에 너희가 복주는 하나님은 알아야 할 것이니라. 복주는 나를 잃어버리기까지 한다면 나는 정말 서운할 것이야.
너희에게 여유가 생기면 너희가 판벽한 집에 들거든 그리고 얼마만큼 살게 되었거든 그 다음에 영원히 나를 잊지 말고 허물어져가는 내 집을 보면 내가 어떻게 어렵게 이 성전 안에서 지내고 있는지를 알지 않겠는가. 그것을 보면서도 아무 관심이 없다면 너희가 나를 버리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나를 버린다면 나도 너를 버릴 수밖에.
유행가에도 그런 말이 있대요.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어찌 아냐…\". 하나님은 우리와 사이가 그렇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겁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랑입니다. 이 하나된 체로 가자 그것이지요. 참 귀하신 사랑이지요.
이제 우리가 이 말씀을 지금 듣는 것은 아주 다행이다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늦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당장은 돌 위에 돌을 첩 놓으라 말씀하지 않습니다. 나는 휘장 가운데 있겠으니 너희에게 큰 복을 여전하게 주겠으니 굳세어라. 열심히 일하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줄 것이요 너희가 판벽한 집에 거하고 부를 갖게 되거든 그때 나를 잊지 말고 \"허물어져가는 성전이 허물어져 가구나. 돌 위에 돌이 첩놓이지 않았구나. 이제 우리가 돌 위에 돌을 첩 놓읍시다.\" 하거든 이르다 라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때 서운한 관계가 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인정하시면 아멘 합시다.
앞으로 우리는 이렇게 짜깁기한 성전들 속에서 은혜 받고 참 어느 교회 어느 잘된 교회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함께 하셔서 이 예배마다 성공이 되는데 이 성공이 된다 하여 하나님은 이런 짜깁기 집에 영원히 거하시는 것 좋아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런 가운데 계시면서 성물인 고기를 옷자락에 쌌을 적에 무엇인가만 묻어도 하나님은 받기 힘드셨으면서도 우리에게 복을 주고 계시니 참으로 감사하다. 하나님 주시는 복으로 열심히 일하여서 더 확보하리라. 더 부요를 쌓으리라. 쌓은 복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금은 지을 수 있는 때가 아니냐 라고 할 때 돌을 땅에 깊이 박으리라. 그 돌 위에 돌을 첩 놓으리라. 그 돌 위에 또 돌을 첩 놓으리라.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거하시기 편하시리라. 주여 그런 때를 빨리 주시옵소서.
이렇게 되는 이 외침에 아멘 하신 여러분의 아멘을 하나님이 들으신 줄로 믿으십니다. 하나님이 오늘부터 기뻐하실 줄 믿습니다. 굳세어라. 굳세게 일하여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 이 말씀이 오늘 아마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된 줄로 믿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참 성경대로 살고 주의 뜻을 어기지 아니하고 충성스러운 성도님이 제게 가끔 의아해 하면서 상담해 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인고 하면 \"목사님 아무개 집사 있지 않습니까? 뭐 따지고 보면 집사라고 할 수나 있습니까? 십일조를 제대로 합니까, 주일을 제대로 지킵니까, 끊을 것을 제대로 끊습니까. 마 우리교회 사랑이 많으니까 집사라 하지만 집사라 할 수도 없는데 그런데 그 집에는 뭔가 빌기만 하면 응답 받고 자식 일도 기도만 하면 바로 응답받고 하루가 안 넘어갑니다.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께서 착착 착착 해결해주는데 거기에 비하면 저는 그래도 한다고 하는데 어찌 이래 무슨 일이 자주 터지고 그리고 기도를 해도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 위에 돌이 첩 놓이지 아니하고 돌 위에 기름묻은 보자기가 덮인다든지 떡이 묻었다든지 포도주가 흘러서 흠집을 내었다면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아주 곤란합니다마는, 그러나 그렇게 연약할 때에 더욱 불쌍히 여기고 혹 떠나갈까바 구하는 것을 안 해주면 자기 원대로 안 해주면 하나님은 뒷전이고 그나마 주여 하고 교회 나오기 시작했는데 안 해주면 떠나갈까바 그에게 복을 주고 복을 주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복을 주고 복을 주어 저의 신앙이 자라고 신앙의 년수가 크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셨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에게 충성해야 옳다\'라는 것을 알면서도 옛날처럼 계속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왜 알면서도 하지 않는가. 전에는 모르기 때문에 돌 위에 돌을 첩 놓지 아니하고 저렇게 사는데.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런 겁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요 교회와 예배도 잘 드리지만 제삿날 되면 집에 가서 제사도 잘 드리는 분이 있다고 그럽니다. 교회 와서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목사를 통해서 뜻을 깨닫고서 아멘하기도 합니다마는 또 끼리끼리 모여 가지고서 복채 들고 점쟁이한테 가가지고서 묻기도 하고 하여튼 섞어서 하는 사람 더러 있다 그겁니다.
세상에 즐거움은 세상에 즐거움대로 다하고 어찌 보면 이 사람이 안 믿는 사람이고 어찌 보면 완전히 믿는 사람이고 하여간 희안하게 섞어서 사는 사람이 있어요.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에 이것저것 섞어가지고 막 뒤섞여서 이게 이건지 저게 저건지 모를 정도로 사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도 하나님께서 그런 분들에게 더 빠르게 응답을 해 주셨다 그겁니다. 왜 입니까? 이것은 신앙이라 할 수 없지요. 그의 하는 충성을 받을 수는 없지요. 받을 수는 없지만 내게로 돌아올까바 내가 복을 주면 내게로 기울까바 그래서 차츰 차츰 어느 날 시기가 되면 버리지 않을까? 악은 버리고 선만 택하지 않을까? 이런 기대 속에서 주신 복이니 그런 복을 부러워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은 지가 오래 되고 아는 것이 많고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며 내가 지금 이쯤까지 되었으니 이같은 직분까지 얻었으니 이같은 복을 받았으니 이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면서도 태연스럽게 성물을 싼 고기의 보자기 위에다가 옷자락 위에다가 아무 것이나 뒤집어씌운다면 하나님은 신경 쓰시는 것이지요.
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데 다 알면서도 저렇게 한다면 나와 이혼하자는 것이 아니냐. 완전히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되므로써 그를 쳐보았다는 것입니다. 폭풍으로 쳐보고 우박으로 쳐보고 곰팡을 주어서 뭔가 손해가 되게 해 보았다는 겁니다. 노력한 만큼 거두어들이지 못하게 해 보았다는 겁니다. 몇 년동안. 빨리 돌아오기를 바랐는데 점점 점 더 멀리 갔더라 그겁니다. 하나님 기가 막힐 일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정말 배반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우리는 여기에 이렇게 좋은 성전을 갖고 있습니다마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앞으로 삼 년이 걸릴지 오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때라고 여기실 그때에는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돌 위에 돌을 첩 놓을 수 있는 많은 재물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재물을 받은 다음에 저가 판벽한 집에 거하면서도 성전은 돌 위에 돌이 첩 놓이지 않아도 괜찮다 이렇게 하지 마시고 오늘 말씀을 기억하셨다가, 하나님이 노하셔서 섭하셔서 이 말씀을 그의 종을 통하여 크게 목이 터지라고 외치기 전에 돌위에 돌을 놓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붙어졌던 것은 걷어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복을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복을 쌓을 때에 \"주의 성전을 짓도록 주여 허락하시옵소서. 명령을 내리시옵소서. 이제 우리가 지어드릴만큼 되었나이다.\" 이런 자세를 가진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끝까지 지키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2장 18절을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오늘부터 이 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했습니다.
그러면 이 18절에 나타난 \"너희는 오늘부터 그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 그러니까 성전을 짓기 위해서 지대를 확보하던 날 그 이전을 추억하여보라는 겁니다. 오늘부터 그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는 겁니다.
그 이전에 너희의 곡식 창고에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더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오히려 있더냐. 제대로 되지 못했지 않더냐. 그러나 너희는 오늘 마음이 흥분이 되어 이제 건축을 하였느니라. 지대를 쌓았느니라. 그러므로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 성전 주위에 있는 성전 대지를 왜 샀습니까?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산줄 믿습니다. 또 이번에 큰 대지를 구입한 것에 대하여 여러분은 모두 흥분하고 감동했습니다. 성도님들이 한 주간동안 저를 만나면서 하는 말씀들이 무엇인고 하면 \"목사님 이십년 전에는 무릎도 안 아프고 관절도 튼튼했던 것 같은데 돌려면 좀 더 빙 크게 안 돌고 왜 그리만 돌았습니까?\"
참 빈말인지 참말인지 모르지만 복 받을 말을 합디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정말 내가 그때 다리가 안 아팠으니 빙 돌아서 저 양덕동을 다 돌았으면 여러분이 결국은 돈을 내어서 그것을 구입할텐데 못 사면 부담될텐데 그 돈을 어떻게 다 내려고 그러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힘 알아서 그 지경을 정하셨고 우리가 그 지대를 확보하게 되니 여러분 마음처럼 더 많이 돌았으면 더 많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될텐데 라고 하게 되면, 그날로부터 전 지대를 쌓던 그날로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했어요.
추억하여 보라. 성전 지대를 쌓던 그 옛날에 어떻게 했더냐. 창고에 열매가 남았더냐. 없었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가 성전을 짓기 위하여 지대를 수축하는 그날로부터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느냐. 내가 그날부터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했으니,
이 성전에 터를 위하여 수고해 오시는 여러분, 지금도 터를 확보하고 계신 여러분, 이 터 위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터에 참여하는 여러분, 오늘부터는 내가 너에게 복을 주리라 하였으니 그 오늘은 지대를 쌓는 날부터 되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이 주부터 지난주부터 이미 복을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학개서 2장 19절 하반 절에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신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이 될 줄을 믿습니다.
진실로 이 지대 구입에 흥분하여 동참하신 여러분, 지대를 구하는 나날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여러분께 주신 복을 따라 충분히 구하게 하시며 또 하나님께서 때가 이르시면 이제는 돌 위에 돌을 첩 놓으라 할 때가 올 줄로 믿는데,
그날이 오면 돌 위에 돌을 첩 놓아서 앞으로의 우리 이곳의 성전이 그야말로 이렇게 저렇게 짜깁기한 성전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의 땅에 완전한 하나님의 건물로 지어드릴 때 참다운 헌당이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그 이후에 자손들이 큰 복을 받아 누릴 줄로 믿습니다.
이제 이 말씀에 입각해서 금번 우리 산해원 교회 부지로서 구 금천기계 1320여평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마는 이같은 좋은 땅을 아주 좋은 조건으로 우리가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만한 돈이냐? 여러분 장로님들에게 여쭈어보시면 얼마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목사님들에게 물어봐도 될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온 세계에 이 말이 다 가기 때문에 뭐 얼마짜리라고 굳이 세계에 선전할 것은 없구요.
왜 더욱이 오늘 말씀을 안 드리느냐 하면 공교롭게도 이번에 구입한 땅의 총액이 우리 교회 일년 여러분이 바친 총액과 똑같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일년 예산과 똑같다 그겁니다. 여러분이 헌금한 일년 총금액과 같습니다. 이것을 온 세계에 굳이 공포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제가 액수를 말씀 안 드립니다마는 여러분 장로님들에게 여쭈어 보시면 얼마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저 넓은 좋은 터를 우리가 확보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얼마만큼 부담을 해야 하나님의 전 지대가 확보되느냐 하면 여러분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일년 동안 바치는 헌금만큼 부담이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교회 헌금은 돈 많이 있다고 하는 것 아닙니다. 믿음을 따라 합니다. 믿음을 따라 하면 믿음을 따라 받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돈이 많아도 십일조도 안 하는 분도 있고 돈 많은데도 주일헌금도 적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믿음을 따라 지금 드리고 있는 헌금의 배가를 일년동안 헌금하면 이 성전 구입은 완료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액수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서 부담을 좀 가지신다면 이 터 구입에 나의 부담은 얼마인가 일년동안 배가 헌금하면 되는구나 이렇게 여겨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배가하면 되겠는고 하면 십일조와 절기헌금은 전 직분자 가정이 배가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주 대상은 전 직분자 가정이 배가 헌금을 몇 차례 하느냐? 열 두 차례 하는 것이지요. 십만원 십일조 하시는 분은 십만원 십일조에다가 또 십일조, 이십만원을 내어주시는것이지요. 열 두번. 그렇게 내어주시면 됩니다. 그것은 가정별로 그러하고요.
그 다음에 또 전 교인 개개인, 우리 학생들도 다 마찬가집니다마는 전 교인은 직분자가 아닌 전 교인은 주일헌금과 감사헌금, 여러분께서 주일헌금 천원하십니까? 그러면 이천원을 하시면 되겠지요. 또 감사헌금 만원하십니까? 만원 할 것을 이만원 하시면 되겠지요. 그렇게 해서 전 교인이 배가헌금을 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기한은 2000년 6월 이 달부터 시작해서 2001년 5월 12개월입니다마는 이 기한 관계없이 여러분의 형편을 따라 이 12개월 치를 한꺼번에나 두번 세번에 단축해 내실 수도 있고 또 형편이 어려우시면 이년 갈 수도 있고 삼년 갈 수도 있는데, 여러분에게 이번에 부담된 것을 정확하게 부담액을 알려드린다면 내게 맡겨진 부담금은 일년 헌금의 배가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전체 구입가액입니다.
이해가 되시면 아멘 합시다. 아멘 해 주신 여러분께서는 이렇게 배가 헌금을 내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조금 전 아멘보다 뒤에가 아멘이 좀 적어졌습니다. 뒤에 아멘 안 하신 분 아멘해 보실랍니까? 그러면 지금 아멘 하신 분들은 배가헌금 못하겠다는 말이지요?
배가헌금을 하실 수 없는 분이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형편이 안 되어서도 못할 수 있고 아직까지 하나님의 전에 대해서 \'내가 무슨 부담을 더하랴. 내게는 부담이 없다\' 여기시는 분도 있어서 못할 분들이 아마 있을 겁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메꾸어야 되는데 누구로서 메꾸게 되느냐? 역시 특별헌금과 헌물을 받게 되겠습니다.
특별헌금과 특별헌물의 주 대상은 중직자, 안수집사, 장로, 중직자 여러분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장로님들은 장로님들대로 안수집사님은 안수집사님들대로 모여서 우리 연약한 성도들, 이 배가헌금에 부담이 되시는 분들, 또 생활비가 겨우 겨우인데 배가헌금을 할 수 없는 약한 분들을 위해서 \"중직자가 할 일이 무엇이냐? 우리가 그 부분만큼을 메꾸자.\" 해서 특별헌금은 중직자 분들께서 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마태복음 23장 2절로 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저희의 말하는 바는 배우고 저희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랬습니다.
아마 저를 비롯한 우리 중직자 중에 혹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같은 형편에 들어서는 안 되겠지요. 말은 많이 하면서 자기는 행동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어깨에 무거운 짐은 지어주면서 자기는 손가락도 대지도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 저는 목사로서 부담을 가지고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처럼 살아온 지난 날도 많으나 오늘 이 말씀을 주님의 책망으로 여겨서, 금번 우리 성도님들이 부담하는 일에 저도 개인적으로 어떤 모습으로든지 여러분의 짐을 들어드리기 위해서 배가헌금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메꾸어드리기 위해서 제 나름으로 몇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저도 여러분의 짐을 덜어드리는 데 참여할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이번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성전 지대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감사하다. 내가 부담하리라\'고 마음먹는 그날부터 하나님께서 복을 명하실 줄로 믿습니다. 복을 받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