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전 건축의 축복 학2:10-19 학개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는 독려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BC 537년) 하면서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으나 그들의 영적인 무관심과 나태함으로 성전건축이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유대백성은 바벨론에서 귀환한 목적은 성전을 건설하기 위함이었으나,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내적으로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대한 부담과 비용 때문이었고, 다음으로는 사마리아인들이 이 일을 맹렬하게 반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는 험난한 난관과 시련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 건축을 중단한지 14년 동안 실망과 좌절의 시간을 보내면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학개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전 재건을 이루라는 설득을 하게 된 것입니다. 1. 선지자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 (학 2:10)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구약에 나타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그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명령과 가르침이 없이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그 백성들의 삶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절대자이십니다. 여기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과 인도하심이 어떻게 그 백성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학개서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위로부터 아래로 선지자에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는 백성들에게 그 때 그 때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를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학개서에서는 유다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건축 중단에 대하여 힐책의 말씀(1:1-15)을, 성전건축이 시작될 때에는 격려의 말씀(2:2-9)을, 성전건축이 진행될 당시에는 축복의 말씀(2:10-19)과 미래에 대한 약속의 말씀(2:20-23)을 주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에 학개는 하나님으로부터 세 번째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처음에 여호와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한 때로부터 학개의 선포를 듣고 성전 건축을 시작한 지 삼 개월이 지난 때였습니다(1:15). 하나님께서는 학개를 통해서 율법에 대해 제사장들에게 물어보도록 명하셨으며, 그 질문을 통해서 축복을 받지 못했던 과거 유다 백성들의 영적 정체에 대해 밝히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보다 자신의 집을 더 화려하게 꾸몄으며, 하나님보다 자신의 안위와 평안을 더 추구하였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죄악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그 결과 아무리 수고하여도 열매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전 건축을 진행하면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청종하는 진지함과 겸허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향한 뜻이 무엇인가를 잘 헤아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왜곡된 신앙을 지적함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통해서 제사장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 질문은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의 문제였습니다. (학 2:12)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첫째 질문의 의미는,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싸면 그 옷은 거룩하여 지지만(레 6:27), 그 옷으로 다시 떡과 국 그리고 포도주와 같은 음식을 쌀지라도 그 음식이 거룩하여 지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말씀으로서 의식적으로 거룩한 것이 다른 것을 거룩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사람은 종교적인 의식만으로는 거룩해 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주안에서 성도들은 의식적인 예배만 가지고는 거룩해 질 수 없습니다(딤전 4:5). 날마다 삶 속에서 예배에서 얻은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 나가야 거룩할 수 있습니다(약 1:27). (학 2:13)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 둘째 질문은, 시체를 만져 부정해진 자가 기름이나 다른 식물을 만졌을 경우 기름이나 다른 식물들은 부정하게 된다(레 22:4-6; 민 19;11-16)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물(聖物)은 거룩한 것을 다른 것에 전달할 수 없으나 부정한 것은 부정을 다른 것에 전달하게 됩니다. 이 말의 뜻은 사람이 더렵혀진 이상 아무리 희생 제물에 많은 비용을 들이고 하나님께 헌신적으로 예배드릴지라도 그들의 노력은 헛될 뿐만 아니라 바치는 제물도 가증하고 혐오스러운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멀어진 죄지은 사람이 자기의 노력으로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다 부정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교훈이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진 이유는, 당시의 유다백성들의 마음이 악했고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형식적으로만 드렸기 때문에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악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형식에만 치우쳐 그것만 행했다고 해서 또는 하나님에게 대한 모든 의무를 다했다고 해서 영적으로 충족되었다고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참된 신앙은 형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순결한 마음과 사랑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학 2:14)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유다 백성들은 자기들이 제단에 드린 희생이 자신을 거룩하게 해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명하신 성전건축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거룩한 고기를 싼 옷자락이 떡, 국, 포도주를 거룩하게 할 수 없음 같이 당면한 문제인 성전 건축을 멸시한 불경건은 다른 어떤 희생의 제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의식적으로 거룩한 것이 다른 것을 거룩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기 스스로 혹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완벽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제로 하나님이 명하신 성전 건축을 등한히 여기는 자들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순종 없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도둑의 선행, 악한 남편이 타인에게 베푸는 선, 말씀을 거역하는 성도가 드리는 예배, 십일조 없는 구제, 일반헌금 없는 선교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성전 건축의 축복 (학 2:15)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 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 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바로 성전을 재건하지 않고 나태한 상태에 있었던 과거와 지금 이후의 생활은 엄청난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추억하라’는 단어는 ‘세심하게 살펴보아 생각하라’는 의미입니다. ‘첩(疊) 놓이지 않았던 때’는 성전 재건을 시작하다가 중단되었을 때를 말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과거에 왜 자신들이 수고한 것에 대한 열매를 얻지 못했는가에 대해 살펴보고 상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보다 자신의 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평안과 안녕을 추구했던 바로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학 2:16) 그 때에는 이십 석 곡식 더미에 이른즉 십 석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뿐이었었느니라 그들은 열심히 노력하였으나 그 결과는 항상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십 석’과 ‘십 석’, ‘오십 그릇’ 과 ‘이십 그릇’은 유다 백성들이 자신의 평안과 즐거움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으나 그에 걸맞는 열매를 얻지 못했음을 나타내는 예증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는 자신의 안일만을 위해 일을 한다면 우리의 소산이 메말라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학 2:1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백성들은 열심히 땅을 일구었으나 그들이 수고한 만큼 열매를 얻지 못했는데, 이는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수단 중에서 ‘폭풍’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으로 곡식이나 나무를 마르게 하는 것이었으며, ‘곰팡’은 농작물이 누렇게 변하여 죽게 하는 백분병을 가리킵니다. ‘폭풍’과 ‘곰팡’ 그리고 ‘우박’은 농작물에게 절대적인 해를 주는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유다 백성들을 징계하셨습니다. 한편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연 재해를 통해서 그들을 징계하신 목적을 나타냅니다.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는 멸망시키거나 고난과 곤고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서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학 2:18,19)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이 말은 성전 건축을 소홀히 하고 중단했을 때의 상태를 보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와 성전 건축에 온 힘을 합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여기서 ‘종자’는 곡식을 뜻하며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는 나무의 열매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포도나무는 당시 음료인 포도주를 생산하며, 감람나무는 연료, 화장품, 의약품 등에 사용되는 기름을 생산합니다. 곡식과 포도주 그리고 감람나무의 기름은 당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재료들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않았던 그때에는 이러한 기본 생필품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학개를 통한 여호와의 말씀에 청종하였으며 성전 재건을 시작하였으며 하나님께로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구미지역에 있는 웅장하고 도심의 핵심을 이루는 교회는 그 백성들의 삶이자 신앙의 표현입니다. 성전 중심의 서구문화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그들의 신앙심을 확고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은 선진국의 대열에서 풍요와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기독교인들은 고학력과 부유층을 상징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교회의 성전 건축은 말씀 그대로 축복의 상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 2:19)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결 론 유다 백성들은 앞서 지적된 바와 같이 성전보다 자신의 집을 꾸미기를 즐겨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성전이 하나의 건물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오직 그들의 제사드리는 일에만 열중하였습니다. 그들은 제물을 드리는 것에 의식적(儀式的)으로는 완벽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하나님의 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예배처소로만 생각하여 성전건축이나 발전을 저해하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과 하나님의 성전의 모습을 갖추는 것을 조화있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자신들이 가치를 더 두고 있는 의식적인 희생 제사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현실적 순종이 더 요구됩니다. 순종이 동반되지 않은 희생 제사는 제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듭니다. 거기에는 축복도 은총도 없고 다만 징계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의 결과는 모든 삶을 윤택하게 살찌우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