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 하며 축복 받는 해

성전건축하며 축복받는 해
슥4:6-9





역사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던 시기를 보면 가난하고 힘든 가운데에도 모든 것이 흘러넘친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처음 출 애급 이후 성막을 건축할 당시도 보면 사람들이 헌금과 물자를 너무 많이 가지고 와서 모세가 이제 그만 가지고 오라고 그 역사를 중단을 시켰습니다.
[출36:3-7]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 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오는 고로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정지하고 와서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그들은 특별히 430여 년 동안 줄곧 노예생활만 한 가난한 처지였는데 이 대단한 역사는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솔로몬 성전건축 당시에도 이러한 모습은 계속 이어집니다. [대상29:9] 『백성이 자기의 즐거이 드림으로 기뻐하였으니 곧 저희가 성심으로 여호와께 즐거이 드림이며 다윗 왕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니라』
성전건축은 이미 솔로몬은 물론 그 아비 다윗 왕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충분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대상 29:3)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그리고 이것은 두 번째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도 마찬가지 입니다. (라 3:12-13)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족장들 중에 여러 노인은 첫 성전을 보았던 고로 이제 이 전 지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며 여러 사람은 기뻐하여 즐거이 부르니 백성의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변치 못하였느니라.』 그들은 다시 성전이 건축되어지자 큰 감동으로 인하여 기뻐하며 또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감동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를 알 수 있고 또한 그들이 이 역사를 위하여 어떻게 하였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받은 축복은 무엇입니까? 오늘 날 세계적으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았으며 위에 있을지언정 아래에 있지 않았고, 남을 치리할지언정 치리 받지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들의 경제적인 능력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탁월합니다. 그래서 세계 중 가장 큰 강대국인 미국의 경제는 물론 세계의 경제를 좌우하는 강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강원도나 경기도만한 땅에서 살고 있지만 세계 속에 흩어진 유대인들의 위상과 그 영향력은 참으로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 중심(율법), 성전 중심, 회당 중심의 삶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축복의 삶에 독보적인 위치를 만들어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야말로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빼 놓고는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도 없는 백성임을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는 모든 것을 다 순식간에 잃어버렸지만, 다시 철저히 하나님 중심, 예배 중심, 성전 중심으로 돌아 올 때에는 어김없이 본래보다 더 나은 축복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번번이 체험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제자교회의 성전 건축의 의미는 너무나 분명해 집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들이 축복받는 해, 혹은 축복을 받는 시작의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도 보면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7] 그랬습니다.

성전건축을 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가 그의 앞에서 모든 것이 평지가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성전건축에 대한 소원만 가졌는데도 그의 앞에 시온의 대로가 열렸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스라엘의 앞을 막지 못했습니다. 홍해도 그들의 앞을 막지 못했습니다. 요단강도 막지 못했습니다. 여리고 성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모두 그들의 앞에서 갈라지고, 부서저서 평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하나님은 성전을 건축하시기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시 바사제국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성전을 건축하도록 격려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 건축을 위하여 지난 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빼앗아 왔던 예루살렘 성전의 기명들을 모두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나라들이 이 일에 협조할 것에 대한 명령도 해 주었습니다.
☛물론 사마리아 사람들의 집요한 반대와 훼방으로 성전건축이 잠시 중단된 적도 있었지만 그 방해를 무릅쓰고 결국은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축복은 또한 예루살렘 성곽건축의 완성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성전건축을 위하여 사명이 부여 된 스룹바벨 앞에서 어떤 큰 산도, 어떤 장애물도 반드시 평지가 될 것이라고 축복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성전건축뿐 아니라 그의 일생의 어떤 장애물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축복이기도 합니다.

출 애급 당시에도 성막을 건설한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임재를 알리는 하나님의 군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나안에 진입할 때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전쟁인 성전(聖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성전(聖殿,성막)이 있는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정복합니다. 그들 앞에 가나안은 평지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성막에서 성전이 된 처음 솔로몬의 성전건축은 그를 전에도 후에도 없을 만큼 위대한 지혜의 왕이 되게 하였고, 당시에 백향목을 들의 뽕나무처럼, 금과 은을 돌처럼 흔하게 쓰는 가장 번영하는 역사의 장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제자교회의 성전건축은 이러한 의미가 가장 큰 것입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둘째는 하나님의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는 것입니다.
은총이란 은혜, 호의, 매력, 혹은 총애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께 총애를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총애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솔로몬, 다니엘, 에스더, 스룹바벨, 느헤미야, 그리고 요셉과 마리아 등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외에도 더 많지만 이 분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대표적인 복된 인물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총이 그에게 있다는 것은 마치 축복받은 사람들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가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는 마리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눅 1:28)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눅 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그러므로 은총이란 특별한 일에, 매우 영광스러운 일을 위하여 선택을 받고 쓰임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은총이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끝으로, 성전건축의 축복은 우리 모두를 기도의 사람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본문 외의 의미로서 매우 사실적이고 또한 현실적인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기도생활을 했지만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진지하고, 절박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아픔도 겪었지만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서 기도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기도는 습관이요, 형식에 불과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전건축을 앞둔 기도는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정말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도망갈 수 없는 사실입니다. 꿈이 아닙니다. 단순한 소망이 아닙니다. 다윗의 앞에 골리앗이 있었듯이 정말 이것은 꿈이 아니고 현실입니다.

저는 웬만한 시험 앞에서 이렇게 떨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병들어 죽게 되었어도 저는 이렇게 떨지 않았습니다. 죽어도 할 수 없지 뭐! 그래서 기도하다가 힘들면 금방 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제가 열 번 죽는 것 보다 귀하고, 중요한 현실이 눈앞에 있습니다. 도망 갈 수도 피할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 다른데서 죽으면 오히려 그 죽음이 수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죽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지 영광스럽고, 살아도 여기서 살아야지 영광스럽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여러분에 대하여 지난 날 모세가 이스라엘을 홍해 길로 인도한 것처럼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또 홍해가 갈라질 것인가? 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저 배목사야 말로 인생최대의 역사적 파노라마 앞에 서 있습니다. 이것이 저로 하여금 기도하게 합니다. 보통기도가 아닙니다.
그야말로 이 복음성가 가사가 떠오릅니다. “이 생명도 달라시면 십자가에 놓겠으니 허울뿐인 육신 속에 참 빛을 심게 하시고 가식뿐인 세상 속에 밀알로 썩게 하소서!”

저는 성전건축의 가장 큰 축복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 기도의 차원이 다릅니다. 야곱의 기도와 같이, 한나의 기도와 같이, 에스더의 기도와 같이 절박한 기도입니다.

저는 어느 날 기도하다가 다음 잠언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잠 29:18)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사람이 꿈이 없으면 그 삶을 마구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꿈이 있으면 방자히 행할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그 꿈이 크다보니 정말 그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정말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고, 그 기도가 결코 소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이렇게 늦게야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니 성전건축이라는 큰 꿈이 저를 방자하게 살지 못하게 한다면 이만큼 큰 축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왕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전건축이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기도생활을 하게해 준다면 저는 이 성전건축이야말로 우리에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절박한 기도 속에 감추어진 축복과 보화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아침에는 기도하다가 또 다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절박한 순간에 예수님께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행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처음 포도주보다 나중에 나온 포도주가 더 낫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 제자교회는 참으로 포도주가 떨어진 어느 잔치 집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님의 이 기적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물밖에 없습니다. 자칫하면 포도주를 찾는 사람들이 실망할 수밖에 없는 위기입니다.
우리는 지금 나중 나온 포도주가 더 낫다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기적을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성전건축의 축복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이토록 절실하게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저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곁눈질했습니까?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느긋하게 믿음생활을 했습니까? 그러나 성전건축을 앞에 둔 우리가 그 인생을 방자히(삼가하지 않고 제멋대로 사는 것) 살 수 없습니다. 특히 저 배 목사는 특히 더 그렇습니다. 저는 이렇게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정말 장난이나 연습이 아닌 실제의 거대한 상황에 직면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모험이 아닙니다. 자랑스러운 분명한 현실 앞에 나의 몸과 마음과 영을 모두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며, 축복입니다.

▶정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여호와의 불이 임하게 했던 극적인 상황에 있었던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섰던 상황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성전건축을 통하여 하나님과 구체적으로 대면하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축복입니다.

금년의 성전건축 대역사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 모습과 존재를 우리에게 나타내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하나님의 강림과 임재를 경험하게 하는 우리들의 기도가 가장 큰 소득이요, 축복이라고 결론을 짓고 싶은 것입니다.

[8]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이미 성전건축을 위하여 든 기도하는 손을 통하여 성전의 지대,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또한 그 손이 그것을 마치리라고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 성전에서 파이프 오르간을 연주하기 위하여 그 연주법을 미리 준비하고 그 공부를 시작하는 분의 믿음에 하나님은 결코 실망을 주시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새 성전이 세워지면 그 제단에 놓일 대형 화분들을 자기가 찜하겠다고 하는 어느 성도님의 소망을 하나님께서 깨트리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성전 건축의 전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신 말씀과 같이 이 해에 여러분이 새롭게 시작한 여러분의 하시는 그 일도 성공적으로 잘 마치게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