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세 성도의 의무와 축복 수22:1-9 오랫동안의 카나안 전투가 끝나고 그 땅을 제비뽑아 기업을 분할하는 일도 이제 무두 끝났다. 르우벤 지파와 갓지파와 므낫세 반지파는 카나안 전투에 있어서 전위대로 참전하는 조건 아래서 요단 동편 땅을 그들의 요구대로 허락할 것을 모세가 살아 있을 때에 그들과 언약한 바 있었다(민32:20-27). 여호수아는 이 언약을 시행하기 위하여 이들 두 지파를 불러서 그 동안의 전적의 공을 치하하면서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려 보내는 마당에 있어서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면서 당부한 말씀이 본문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명예로운 제대식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우리는 인생의 한 종국적 면을 연상케 한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각각 피나는 싸움을 다하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듯 우리는 영생의 기업을 위해 힘써 싸운 십자가의 군병으로서 이 세상의 삶이 종말을 고할 때 천국으로 귀향하는 명예로운 제대병과도 같다. 또한 우리는 이 두 지파의 귀향식을 통해서 배우는 교훈은 자기들의 잘못된 삶의 선택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워 쟁취한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땅에 거하지 못하고 그리운 형제들과도 이별을 하고 요단 동편으로 다시 돌아가듯 영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으로 마치는 자의 한 삶의 종국적인 모형을 찾아보게 한다. 이들은 요단 동편에 왔을 때 하나님의 약속의땅 요단 저편보다는 동편의 평야가 더 기름지고 방목하기에 더 좋은 양 편리하게 생각되어, 그곳에 머물기를 모세에게 요청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된 생의 의지와 선택의 결과는 더 좋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상실하고 자신들이 잘못 선택한 불행의 책임을 자신이 지고,종국에는 그 불행의 처소로 스스로 돌아가야 하는 운명의 주인공이 자기 자신임을 교훈한다. 우리는 삶의 한 과정에 있어서 요단 동편이냐? 저편이냐?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결정하는 권리가 있지만, 그 잘못된 의 = 287 = 지의 선택의 책임은 바로 자신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생의 축복과 저주의 시작은 에덴동산 안의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에서부터 비롯하여(창 2:16-17), 아브라함과 롯의 사건(창 13장)을 거쳐 마지막 종말까지 계속되어 진다. 어쨌든 여호수아는 이들을 돌려 보낼 때에 축복하여 보냈다. 내 곁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저주하는 행위는 악의 자손들이 하는 소생이다. 우리는 그들을 축복해서 보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미이다. Ⅰ.축복받을 여건이란 Ⅰ.지도자의 명령에 오직 순종하라.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주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켰고, 내가 너희에게 내 음성으로 명한 모든 일에도 복종하였으며,’(2)라고 했다. 여호수아가 르우벤 지파와 갓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첫 번째 한 말이다. 곧 그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가 명한 명령과 여호수아가 명한 모든 명령을 다 지키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지도자들의 명을 잘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청종의 뜻이요, 그와 반대로 하나님이 보내신 지도자들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거역이다. 전자의 경우는 축복을 받지만 후자의 경우는 도리어 저주가 된다.(신30:15-20).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지도자의 명령을 잘 순종해야 복을 받는다(신 28: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를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의 죄와 같다(삼상 15:22-23).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떠나는 행위다(삼상 15:24). 이들이 지도자에게 잘 청종한 것은 최초에 그들 자신의 서약에 의한 것이었다. “우리가 모든 일에 모세를 경청했던 대로 우리가 당신을 경청하겠으며, 오직 주 당신의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같이, 당신과 함께하시기를 원하나이다”(수1:17). 백성들이 지도자의 명예 잘 순종하는 동기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는데 있다. 백성들은 지도자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것을 볼 때에 그 권위 아래 자연히 청종하게 된다. = 288 = Ⅱ.축복받을 여건은 충성을 했을 때입니다. ‘오늘까지 그 많은 날 동안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의무를 다하였도다’(3) 이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하신 그 명을 청종하기 위하여 날이 오래토록 충성하였다는 뜻이다. 칼비시우스(Calvisius)나 혹은 다른 몇 분들의 연대기 학자들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카나안을 정복하고 그 땅을 분배하는 데는 적어도 6-7년은 걸렸을 것이라고 한다. 6-7년 동안을 그리운 가족을 떠나서 하루같이 하나님의 명을 따라서 지도자에게 잘 추종하면서 충성하는 일은 참으로 귀한 일이요, 복받을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명에 순종할 때에 자기들의 이익을 따라서 행하기가 쉽다. 자기에게 유익되는 것은 순종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순종도 없고, 관심도 없다. 그 일이 하나님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거절합니다. 불순종합니다. 이스라엘의 두 지파 반의 병력은 언제나 약 4만명을 유지하였고, 카나안 저편 땅은 자기들이 거처할 곳이 아니기 때문에 충성하는데도 이해관계를 따지고 보면 중도에서 해이해질 수 있는 약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충성하였다. 성실한 자와 충성된 자에게 많은 복이 있다(잠 28:10,20). 그리스도를 볌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게 된다.(엡 6:24). Ⅲ. 성도의 의무와 책임은 자신들의 책임을 완수하였다.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의무를 다하였도다’(3하).고 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한 그 충성에 대해서 그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대한 의무도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한 것인데 이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의무를 다하였도다’하는 이 말은 너희가 어려움 중에도 잘 지켰다는 칭찬의 말씀입니다. 주 너희 하나님의 계명을 성실하게 잘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군인들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탁월한 일이었으며, 마땅히 칭찬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메튜헨리 주석p.334). 여러분 책임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책임이란 어떤 환경이나 상황이 잘되거나 잘못되거나 그것은 모두 누구 때문이라기 보다는 바로 자신이다. = 289 =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용감한 태도가 바로 책임입니다. 비겁한 자들은 책임을 회피한다.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복을 받을 수 없다.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을 세가지 단계로 설명했다. 첫째는 하나의 생물로서 동물적인 존재요, 둘째는 사색하고 가치를 추구하는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성, 셋째는 이성적이면서 동시에 책임을 능히 짊어질 수 있는 인격성의 존재이다. 인간은 인격이기 때문에 책임 능력을 가지고 이 책임 능력 때문에 인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서 만일 이 책임 능력을 다하지 못한다고 하면 인격적 존재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도산 선생은 ‘민족사회에 대한 영원한 책임심’을 강조하면서 ‘책임감’이 있는 자라야 참 애국자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민족 사회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감이 없는 이는 객이다. 내가 알고자 하고 구하고자 하는 주인은 우리 민족사회에 대하여 영원한 책임감을 진실로 품은 주인이다.’ 또 말하기를 ‘우리나라를 망하게 망하게 하는 것은 일본도 아니요, 이 완용도 아니다.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자는 바로 그것은 나 자신이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여러 가지 책임의 체계를 갖는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책임 혹은 가족에 대한 책임 직장에 대한 책임, 그 밖에 자기에게 속한 범주안에서각각 책임이 다르다. 이 책임을 다하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책임을 다 완수하지 못한 자에게 축복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Ⅱ.말세 성도의 의무와 축복은 받은 자의 의무이다. Ⅰ.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주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계명과 율법을 매우 주의를 기울여 행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5)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두 지파 반을 이제 요단 동편으로 돌려 보내면서 “크게 삼가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한 명령과 율법을 행하라”고하였다. 지금까지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넉넉히 구비하여 큰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축복을 받은 후에도 크게 삼가하여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면 지금 받은 축복도 상실할 수 = 290 = 밖에 된다. 사람들은 과거의 성공적인 경험에서 오는 나태와 교만 때문에 받은 축복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축복을 받지 못하게 하는 과오를쉽게 범하는 약점이 있다. Ⅱ.축복받은 자의 의무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5절 중) 사랑은 인생의 처음이요, 나중이다. 누구든지 사랑을 받기를 원하고, 사랑을 주기를 원한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자는 행복하다. 그러나 사랑할 대상이 없고 누가 자기를 사랑해 주는 자가 없는 자는 참으로 불행한 자요, 비참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주고 누구에게서 사랑 받으면서 살아 간다. 그런데 그 사랑의 대상에 따라 행복의 가치가 결정된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거나 사랑해선 안될 대상을 사랑하면 그는 역시 불행하게 된다. 하나님은 사랑의 실존이시다. 이 최고의 사랑의 실존자를 사랑할 때, 최고의 행복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자는 참으로 불행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행복해 지고 사랑의 최고의 가치를 소유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마22:37-38) 인생에게 있어서 이 첫째가는 최고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주심이 임할 리가 없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요단강 동편에 가서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고, 그 계명을 지키라고 한 것이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요(요14:21), 또한 그 계명은 사랑하니(요일3:23) 그 길로 행하라고 한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만이 우상과 세속을 멀리하게 된다. Ⅲ.말세의 성도의 의무는 하나님과 친근해야 한다. ‘그에게 밀착하며’(5하). ‘그에게 밀착하며’ 이 말은 단단히 붙어 있을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 중에 최선이요, 최고이다. 또한 최상의 친구도 되신다. = 291 = 그러므로 그 분을 사귀고 그분과 친근히 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복이다(시 73:28). 사람은 누구와 사귐에 따라서 그 영향을 받게 되니 하나님과 친근히 하는 자는 그의 친구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는다(갈 2:23). 하나님께 든든히 붙어 있는 사람만이 우상을 멀리하게 되고 하나님과 일체가 되게 한다. Ⅳ.말세 성도의 의무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너희 마음과 너희 혼을 다하여 그분을 섬길지니라’(5절하). 하나님을 사랑하고 친근히 함을 정서면이라고 하면 율법을 행하고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인간의 의지면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나 그를 사랑하는데 있어서 이 양면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서적 요소는 의지적 요소와 동반해야 완전하고, 또한 의지적 요소는 정서적 요소와 병행해야 의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나 섬기는데 있어서 ‘다’하지 못하는 결점이 있다. 100% 믿지 못하고 100% 섬기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부족한 현상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데도 동일하다. 우리는 요단 저편에 있을 때나 요단동편에 있을 때나 한결같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 인생의 크고 첫째가는 본분이요, 의무이다. Ⅲ.말세 성도의 의무와 그 축복의 내용? 1. 많은 재물(금 은 동 철) (8) 2. 심히 많은 가축 (8) 3. 심히 많은 의복 (8). 여호수아는 두 지파 반을 위하여 며예로운 제대식을 거행하면서 요단 동편에 가서 삼가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서 단단히 훈시를 한 후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자기들의 장막으로 돌려 보내었다. 근 7년 동안의 전투에서 우정과 가지가지의 눈물 겹던 사연들이 주마등 같이 머리를 스쳐갈 = 292 = 때, 이들은 모두 눈물겨운 감격속에서 손수건을 흔들면서 아쉬운 추억의 장을 넘기고, 이제 언제 다시 만나는 기약도 없이 모두 흩어지게 되었다.이때 여호수아는 손을 높이 들고 그들에게 축복을 빌었다. 이것은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손을 높이 들고 축복하시던 모습을 연상케 한다(눅 24:50). 또한 이때 여호수아의 훈시는 예수님의 최후 훈시를 방불케 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고 하시었다. 여호수아는 요단 동편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 그들에게 축복을 비는 동시에 많은 재물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 금, 동, 철과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가도록 하였다(8). 이것은 여호수아의 후한 우호적인 예물인 동시에 그들 자신들이 전쟁에서 싸워 얻은 전리품이였던 것이다. 이 가운데는 아마 사랑하는 아내에게 줄 선물과 어린 아이들 그리고 친구와 형제들과 부모와 일가 친척에게 모두 나누어 줄 선물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약 4만명이 넘는 병사들이 가지고 가는 선물들을 상상해 보면 참으로 얼마나 많은 분량의 것인가를 감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 금, 동, 철과 심히 많은 의복 등.....,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받는 자의 모습인 동시에 예수님의 승천하신 후 오순절 성령 강림하심으로 각 성도들에게 분급되어진 풍성한 성령의 은사를 연상케 한다. 종말의 모든 축복은 이기는 자들의 것이라고 했다.(계 2:7, 11, 17, 26, 5, 12, 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