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발산 제단의 축복
에발산 제단의 축복/여호수아강해(22)
수8:30-35
여호수아는 아이 성의 대 승리를 거둔 후에, 에발 산에 올라가서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감사 제사를 하나님께 봉헌하였다. 에발 산은 높이가 8,200m인데, 그리심 산의 맞은 편에 있다. 아이 성의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의 제단을 쌓는 것은 지당한 일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받은 은혜를 쉽게 망각하고 배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한 사람은 앞으로 오는 더 큰 축복을 받을 수가 없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같이 받은 은혜를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1. 感謝의 祭壇
그들이 주께 번제와 화목제를 그 위에 드리니라.(31)
1.感謝의 순수성.
에발 산의 통돌로 만든 제단은 철 연장으로 손대지 아니한 통돌로 만든 단이었다(31). 이것은 모세의 율법책에 명한대로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시기를 “네가 만일 내게 돌로 제단을 세우려거든 다듬은 돌로 세우지 말라. 이는 네가 도구를 그 위에 대면, 그것을 부정하게 하는 것임이니라.”고 하시었다.
이것은 신앙의 순수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아무리 훌륭한 기술과 과학적 정밀도에 의하여 만든 걸작품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연의 솜씨를 따를 수가 없다. 하나님의 자연 미는 인간의 어떤 공작품보다 우수하다. 우리는 공연히 돌을 다듬기 위해서 징으로 돌을 쪼는 시끄러운 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 인위적인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 우리의 감사는 아무 시끄러움이 없는 순수한 심령으로 드려야 한다. 돈 소리나 불평의 소리나 원망의 징 소리가 일체 들여서는 안된다. 그것은 공연히 아름다운 자연석을 징으로 쪼는 인위적인 헛수고를 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행위를 초래 하는 것 뿐이다.우리는 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한 돌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 195 =
2.感謝의 규범
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통돌로 세운 제단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된것이니, 이것은 감사의 규범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되 하나님이 명하신 규범을 벗어나는 인간의 행위는 벗어나는 인간의 행위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행위보다 인간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은 더 중요한 인간적인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하신 의무적인 것을 무시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감사행위는 있을 수 없고 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은 감사 행위 보다 우선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사슬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삼상15:23).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삼상15:22).고 했다.
3.感謝의 내용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통돌로 만든 제단 위에 하나님께 燔祭와 화목제를 드리니라,고 했다. 번제는 하나님과 이상적인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 이는 일반화 된 것이다. 그리고 화목제는 평안제, 수은제(酬恩祭)라고도 하는데 하나님과 화목한 자는 평안함을 얻고 평안함을 얻은 자가 수은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여기에는 세가지 내용이 있었다.
①지나간 축복을 감사해서 드리는 감사제, ② 장차 받을 은복의 조건으로 드리는 서원제, ③ 기도의 보조물로 드리는 자원제 등이었다. 여호수아는 지금 드리는 화목제의 뜻은 위의 세가지 뜻이 모두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먼저는 아이성의 승리가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이루어졌으니 과거의 은혜에 대한 감사요, 또한 앞으로 계속되는 전쟁에서 하나님의 은복을 기원하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구속의 은총을 깨달을 때에 참으로 감사하게 되고, 장차 받게 될 은혜를 기원하게 될 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기에 참으로 감사는 현재라는 삶의 현실 앞에서 과거와 미래를 연결짓는 사다리와 같이 우리의 삶을 풍성한 축복으로 인도하는 천국의 교량이라고 하겠다.
= 196 =
Ⅱ. 말씀의 제단
‘여호수아가 거기에서 모세의 율법의 사본을 그 돌 위에 기록하였는데, 그가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들 면전에서 기록하더라’(32)고 했다.
1.명하신 말씀
‘이것은 주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명령했던 것과 같이, 모세의 율법책에 기독된 대로’(31)
여호수아가 에발 산에 쌓은 제단은 승리를 기념하는 감사의 제단인 동시에 그것은 말씀의 제단이었다.말씀의 내용은 첫 번째가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이었다.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통돌로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대로 했다. 제단은 하나님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기 위한 장소이다. 그러므로 제단의 설계 내용은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그것은 인위적인 행위가 되기 때문에 안된다. 하나님께서 최초에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카인의 제사는 거절하셨다. 왜 카인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요 4:24)고 하셨습니다.그리고 주님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의 중심인 성막에는 하나님이 명하신 엄격한 규범이 있었다. 이 규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은 것을 알아야 한다.
2.기록된 말씀
○여호수아가 거기에서 모세의 율법의 사본을 그 돌 위에 기록하였는데, 그가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들 면전에서 기록하더라.(32)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사본을 그 돌 위에 기록했다는 것이다.그 말씀은 바로 기록된 말씀이요, 사본입니다. 명하신 말씀이나 구전으로 전달되는 말씀은 와전되거나 잊어버리기 쉬운 약점이 있지만, 돌에 기록된 말씀은 와전되거나 잊어버릴 염려는 전혀 없다.
= 197 =
구약에는 돌비에 썼으나 지금은 우리의 육의 심비에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다. 마음판에 새겨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혜를 귀중히 받게 되리라고 했다. 성경 구절을 찾아보면 고후 3:3에 /또 너희는 우리가 섬긴 그리스도의 편지임이 분명히 드러났으니, 이는 잉크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육신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잠 3:3에‘자비와 진리가 너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그것들을 네 목에 걸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잠 3:4에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의 목전에서 은총과 인정을 받으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3.宣布(선포)된 말씀
그 후에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대로 율법의 모든 말씀, 축복들과 저주들을 낭독하더라.(34)고 했다.
여호수아는 그 말씀을 온 회중 앞에서 낭독하였기에 곧 선포된 말씀이다. 이스라엘 장로들과 본토인 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온 회중과 여자와 아이와 그들 중에 동거하는 객들에게까지 낭독하지 아니한 말씀이 하나도 없었다.(35)
그러므로 선포된 말씀은 전 우주적 성격을 띠고 있다.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고 롬10:12에서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있는데 곧 우리의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롬10:9)고 했다.
헬라어 원어에는 ‘말씀’을 ‘로고스’(요1:1)와 ‘레마’(롬10:8)로 구별되어 있다. 로고스는 예수님의 인격화 된 말씀으로 객관적인 말씀이요, ‘레마’는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 곧 주관적인 말씀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된다(롬10:17)고 했다. 이 말씀은 바로 ‘레마’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하신 말씀은 ‘로고스’의 말씀,이다.
= 198 =
그러나 이 로고스의 말씀을 내가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되었을 때에는 나에게 와서는 그 말씀이 ‘레마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Ⅲ.祝福(축복)의 祭壇(제단)
‘이는 전에 주의 종 모세가 명한 대로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려 함이더라.(33)고 했다.
에발 산의 통돌로 만든 제단은 축복의 제단이다.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통돌로 만든 후,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돌 위에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한 후, 온 회중의 절반은 그리심 산을 향하여, 그들 중 반은 에발 산을 향해 섰으니,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이것은 기왕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본래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 였는데(신6:24, 7:13).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만이 국한되어 있었다(신 28:1- 14). 만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 경우에는 무서운 저주가 내렸다(신 28:15).
지금 이스라엘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절반은 그리심 산이 있음 같이 우리 앞에는 항상 순종과 불순종에 따라 생명과 복, 사망과 저주가 결정된다(신30:15- 20). 그런데 본래는 하나님께서 모세에 명하기는 그리심 산이 축복이요, 에발 산이 저주였다(신11:29).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도 에발 산이 그리심 산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속량하셨기 때문이다(갈3:13). 에발 산의 통돌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님을 가리킨다(벧전2:4).
지금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거기 모인 모든 군중들의 절반이 그리심 산(축복)에 섰다고 하더라도 앞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 한다고 하면 그 산은 에발 산(저주)에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 에발 산(저주)에 서 있다 하더라도 앞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잘 순종만 하면 그 산은 그리심 산(축복)으로 바꾸어 질 수가 있는 것이다.
= 199 =
그러므로 축복과 저주는 갈보리 산에서 우리의 모든 저주를 다 속량했기 떼문에 에발산(저주)이 축복의 산으로 바꾸어진 것이다.여호수아가 그리심 산(축복)이 아닌 에발 산(저주)에 돌로 취하여 단을 만들어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것을 신약의 복음 안에서 음미하여 볼 때에 참으로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할렐루야!
[연남교회 안내_광고] 광고 등록일 2002.12.25
섬기는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연남교회 정기남목사
들소리신문/ 대전 충청지사 대표 (본사 특집부 차장)
경찰신문(복음뉴스) 본사 취재부장(대전 충청지사 대표)
(목회정보협의회(목정협) 와 도농선교회 충청지부)
국제부흥사협의회 상임회장
한국오순절교회협의회(대표회장 최성규목사)특수선교위원장
예수사랑나누기운동본부 사무총장
기독교 한마음 목자회 증경 대표회장
생명줄 부흥사협의회 대표회장
생명줄 나눔선교회 회장
현. 부흥회 23년 동안 인도하고 있음. (어려운 교회집회는 우선순위로 받습니다)
서울지방법원 의정부 지원 지청 출입기자였으며 연예인출신으로서 찬양과 간증 및 사경회 를 인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