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의 축복
드림의 축복 - 십일조
말3:7-12
물질의 복을 많이 받은 구두쇠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몇일 동안 여러 가지 검사를 했습니다. 드디어 검사결과를 가지고 주치의가 왔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차트를 살펴보던 주치의가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장의사 좀 빨리 불러와!” 이 소리를 들은 성도님은 혼비백산했습니다. “아니 내가 이렇게 죽는 것입니까? 제발 좀 살려주세요.” 의사가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통곡을 했습니다. 한참이 지난 후에 구두쇠 성도님이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이 문병을 왔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목사님이 기도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도하던 성도님이 예배를 마친 후에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제게 넘치는 복을 주셨는데 너무 인색했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제가 1억원을 헌금하겠습니다.” 목사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렇게 많은 돈을--” “제가 너무 미련했습니다. 제가 받은 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필요한 곳에 써주십시오.” 잠시 후에 레지던트인 장의사가 왔습니다. “
어디가 제일 불편하십니까?” 알고 보니 주치의가 장의사를 찾은 것은 차트를 확인하기 위해 레지던트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안 구두쇠 성도님이 갑자기 안색이 확 변했습니다. 그리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목사님께 말했습니다. “목사님, 아까 제가 말한 금액에서 0 하나만 빼면 안될까요?”
구두쇠 성도님의 모습이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생활은 3가지 관계가 중요합니다. 대신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대인관계입니다. 나와 이웃, 성도간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 사랑을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물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축복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가 좋아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물질을 바르게 관리하지 못하면 진정한 복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의 인격이 어떠한가 알아보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에 중요한 한가지는 돈을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관심요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재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즉 내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인 재물을 어떻게 쓰느냐가 그 사람의 신앙이요 인격입니다.
죤 웨슬레 목사님이 설교를 했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돈을 잘 벌어야 합니다.\\\" 부인을 따라 교회에 왔던 남편이 \\\"야, 목사님 설교 잘 한다.”고 했습니다. 웨슬레 목사님은 또 \\\"예수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돈을 잘 모아야 합니다. 부자로 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분이 아내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오늘 목사님 설교 끝내 준다.”라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이 이어서 \\\"그리고 그것을 여러분들을 위하여 쓰지 말고 이웃을 위하여,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풍성히 나누고 드리면서 살아야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남편이 아내의 손을 꼭 잡더니 하는 말이 \\\"목사님 오늘 설교 죽썼다.”고 하더랍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할 수만 있으면 돈을 많이 버십시오. 그리고 부자가 되십시오. 여기까지만 하면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는 바로 돈을 어디다 무엇을 위해 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이 하나님 중심의 온전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대물관계가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이 흔들리면 신앙전체가 삐그덕 거리게 됩니다. 어떤 분은 “우리의 지갑이 회개하지 않으면 신앙인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침례교인들이 강가에서 세례를 받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한 교인을 붙들고 물 속에 집어넣으려고 하니까 \\\"목사님 잠깐만요. 제 호주머니에서 돈지갑 좀 꺼내 놓고요.”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지갑을 그대로 주머니에 넣어 두시지요. 당신과 함께 돈지갑도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강철왕 카네기는 말합니다. \\\"얼마를 벌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돈을 남기고 죽는 것은 수치다. 모두 하나님과 이웃을 위하여 쓰고 죽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는 평생 모은 돈으로 카네기 재단, 연구소 등을 세웠습니다. 그가 평생에 선하게 쓴 돈이 약 3천억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땅에서 부자로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이미 내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서인 말라기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70년의 바벨론 포로 후에 이스라엘로 돌아온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훼파된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만 건축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데 게을렀습니다. 감사가 없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말라기서는 1장에 보면 감사를 잃어버리고 헛된 재물을 드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책망합니다. 그들은 온전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습니다. 눈먼 것, 병든 것, 찌든 것을 예물로 드립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그것을 본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헛된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성전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그런 예물과 예배는 결코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2장에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과 지도자들이 타락을 지적합니다.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의 얼굴에 똥칠을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수치스럽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장에서는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애절한 하나님의 외침과 부르짖음이 들립니다. “내게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영적인 침체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영적인 지도력을 상실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향하여, 경제파탄에 빠져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돌아오라! 돌아오라!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의 패역한 삶에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유턴(U-turn)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묻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습니까? 돌아오라는 말씀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라. 무릎이 닳도록 엎드려서 기도해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열심히 전도해라 그럴 것 같은데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참으로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십일조와 예물을 떼어먹었다고 지적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기에 너희와 나라가 저주를 받았다고 선포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갑자기 돈 얘기를 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에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 인격,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재물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많이 내고 적게 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치관의 문제요 영적 우선순위(priority) 문제입니다.
리처드 포스터의 책 가운데 『돈·권력·섹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요지는 돈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돈의 배후에 무서운 영적인 세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돈은 인간이 가진 우상 가운데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우상이 될 수도 있고, 돈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일을 가장 의미 있게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도구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사의 소원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영적으로도 건강해 지고, 육적으로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2004년도 한해 동안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보고를 열어 놓으시고 여러분에게 복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때때로 형통한 삶을 살지 못하고 곤고함 속에서 방황합니까?
그 본질적인 이유중의 하나를 오늘 성경은 지적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않았다는 지적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혹시 여러분 가운데 오해하실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사가 헌금 많이 내라고 강요한다고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 안에는 십일조를 선포하고, 헌금설교를 하는 목사는 기복주의적인 자로 비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 가운데 나는 헌금설교는 절대 안한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성지교회에 부임한 후에 헌금에 대한 설교를 공식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성경공부 시간에는 본문에 맞추어서 말씀드린 경우는 있습니다. 오늘 용기를 내서 이렇게 십일조에 관한 말씀을 선포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성경적 축복의 원리를 바르게 선포하여, 바른 복을 받도록 해야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의 원리가 있는데 그것을 목사가 가르치지 않음으로 성도들이 복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직무유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시대를 보면 말라기서에 있는 상황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우리를 향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절규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머무는 재물관을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 누구의 것입니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역상 29:11-12)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내게 주신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라는 분명한 청지기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내가 열심히 일하고 땀흘려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벌었다고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우리에게 잠시 맡겨주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누가 돈이 아깝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산술적으로 십일조를 저축하면 얼마나 유용하게 쓸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십일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산술적인 1/10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내게 맡겨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입니다 라고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내 생명도, 내 가정도, 일터도, 사업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십일조는 내가 부지런히 땀흘리고 일해서 열 개를 벌었는데 그중에 하나를 하나님 앞에 갖다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열 개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열 개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열 개 중에 하나를 받으시고 나머지 아홉을 선물로 은혜로 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드리는 자는 이런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 이런 고백과 정성으로 구별하여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십일조의 예물이 됩니다.
그러면 1/10을 드리고 나면 나머지 9/10는 내 것입니까? 내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써도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10을 구별해서 드렸으면 나머지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게 쓰는 것이 올바른 십일조의 자세입니다.
십일조는 농부에게 있어서 종자(seed)와 같습니다. 농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종자를 가지고 밥을 해먹지 않습니다. 그것을 봄에 뿌리면 더 많은 것을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일조는 축복의 종자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일조를 구별하지 않는 것은 농부가 배고프다고 종자를 먹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지 가족 여러분! 십일조는 축복의 종자, 씨앗입니다. 내게 주신 것을 구별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보십시오. 거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 있습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어떻게 드려야 합니까?
먼저 1/10을 구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내 필요에 따라 먼저 쓰다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는 주일날 정성껏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분은 가지고 있다가 시험에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려고 따로 떼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옆집에 사는 김집사가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토요일날 받기로 하고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김집사가 돈을 갚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한주가 지나갔습니다. 다음주에 꼭 갚겠다던 집사님이 차일 피일 미루더니 어느날 이사를 갔습니다. 그래서 한달을 건너 뛰고 말았습니다.
십일조를 어디나 드려야 하는가? 오늘 10절에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교회에다 드려야 합니다. 내가 꼴을 먹는 그 자리에 바쳐야 합니다. 내 영혼을 위탁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몸된 집,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분들은 십일조를 고아원에도 갖다주고, 선교헌금 내기도 하고, 이웃을 위해 구제를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십일조의 주인이, 물질의 주인이 자기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하면 자기 의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통해 전해지도록 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신앙적으로 환경적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남편이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내 믿음이 아직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기 어려운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이렇게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꼭 1/10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내 믿음의 십일조를 정하고 그것을 드리십시오. 어떤 분들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면 십일조 대신에 감사헌금으로 드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감사는 진정한 예물이 아닙니다. 따라서 온전하지 못해도 십일조를 먼저 드리시기 바랍니다. 내 믿음의 분량이 자라서, 내 가족이 빨리 예수님을 믿어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십일조를 먼저 드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마음과 정성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축복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망령된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십일조에 대해서만은 하나님을 테스트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시는지 안 주시는지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이자 약속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는 하늘문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자들에게는 언제나 하늘문이 열립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고백할 때 예수님은 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하늘 보화의 창고를 여는 마스터 키와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하늘문이 열리는 축복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황충을 금하여 토지 소산을 지켜 주십니다. 아무리 농부가 수고를 해도 황충이 갉아 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몸부림치고 밤잠을 설치고, 쉬지 않고 일해도 하나님이 황충을 금해주지 않으면 헛수고 입니다. 어떠분은 사업을 열심히 했는데 회사에 황충이 생겨 망합니다. 어떤 분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황충이 생겨 밀려납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공부했는데 황충이 생겨 일자리를 얻지 못합니다. 어떤 가정은 행복한 결혼을 시작했는데 애정생활에 황충이 생겨서 가정이 파탄에 이릅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살았는데 건강에 황충이 생겨 질병으로 고생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우리 삶의 모든 황충을 막아주는 하나님의 보호벽인줄로 믿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합니다. 우리의 산업이 아름다워지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받았다, 성공했다 인정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것은 만군의 여호와의 약속이요 축복입니다.
참존 화장품의 김광석 회장의 얘기입니다. 성대약대를 졸업하고 종로에서 피부약국을 경영하며 자신이 만들어 판 피부약이 유명해졌습니다. 소식을 듣고 지방 약국에서도 주문이 쇄도해 60여 군데 지방약국으로 시제 약을 만들어 보급한 것이 화근이 되어 보건범죄단속법에 걸려 잘 나가던 약사가 하루아침에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이리 저리 피해 다니던 그는 양산 통도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절 한귀퉁이 적은 방에 숨어 잇던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고 싶었습니다. 방구석에 묵은 신문을 펼쳐보니 6개월 된 자신의 범죄 기사가 커다랗게 실려 있었습니다. 그는 신문을 구겨 웅켜 쥐고 엎드려 울었습니다. 그는 울면서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이란 소리가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그는 절간 뒷방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자수를 하여 새 삶을 시작했습니다. 교회 다니며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생활을 하던 중 얻은 아이디어로 기초 전문 화장품 회사인 참존 화장품 회사를 세워 15년 만에 화장품업계에 신화를 만든 것입니다. 그는 신문기자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내가 사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십일조의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사업하는 이가 정신없이 무슨 십일조냐 하지만 제가 온전한 십일조를 시작한 이래 회사는 비교될 수 없도록 성장하였습니다.” 그래서 김회장은 지금도 십일조 강의를 해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달려간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어떤 젊은 청년 하나가 십일조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도 십일조를 내자 결심을 했습니다. 사람이 그 당시에 한 달 월급이 10불이었습니다. 1불 내는 것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한참 내다보니 드디어 이 사람의 한 달 월급이 100불이 되었습니다. 10불을 내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냈습니다. 조금 더 있다가 이 사람의 한 달 월급이 드디어 1000불이 되었습니다. 얼마 내야 됩니까? 100불. 좀 떨렸습니다. 이를 악물고 100 불을 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자 드디어 이 사람이 한 달에 10000 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얼마 내야 됩니까? 1000불. 여러분, 1000 불 내는 것 쉽지 않습니다. 1000불 내려니까 떨리기 시작합니다. 도저히 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순진한 청년이라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사님 제가 십일조를 서약하고 결심한 이래로 지금까지 실천해 왔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한 달 월급이 10000불이 되고 나니까 1000불 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혹시 십일조 서약을 cancel하면 안 될까요?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cancel은 안되구요 형제가 십일조를 쉽게 낼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릴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요? 그러면 형제가 옛날처럼 한 달에 10불만 벌도록 제가 기도해 드리죠.
여러분, 십일조가 늘어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까? 여러분의 십일조가 늘어나는 것이 신앙생활의 큰 기쁨이요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십일조를 많이 내는 것이 배아프신 분들은 제게 오십시오. 적게 내시도록 기도해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지가족 여러분, 하나님을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축복의 응답으로 십일조가 늘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더욱더 결단하고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면 더하여 넘치게 하시는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인정받는 믿음의 일군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