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말3:7-12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빨간색입니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글자는 ”福”자입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연초가 되면 집집마다 문에 빨간 바탕에 ”福”을 큼직하게 써서 붙여 놓습니다. 어떤 집은 ”福”자를 거꾸로 붙여 놓은 집도 있습니다. 아마도 들어온 복이 새 나가지 말라는 의미로 그렇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나라도 비슷한 풍습이 하나 있지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복조리를 걸어두는 겁니다. 중국인들이나 우리 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복을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축복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축복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성도님들 머리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그토록 염원하는 축복을 받는 길이 무엇일까요? 왜 많은 사람들이 축복 받기를 원하지만 축복을 받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봉독해 올린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차고 넘치는 복을 받기를 소원하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3:6절은 네 번째 설교의 결말인 동시에 말라기 선지자의 다섯 번째 설교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 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6절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백성들은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저주를 자초하는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동일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씀합니까?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를 소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히 6: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1.축복 받지 못하는 이유? 말 3: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하고 저주를 받은 중요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는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라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타락은 그 뿌리가 아주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 생활하던 그 열조들로부터 시작하여 여호수아 때는 여호수아가 백성의 장로들을 모아 놓고 결단을 촉구하는 것을 봅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그후 사사시대와 왕정시대 내내 그들은 반역의 길로 걸어갔습니다. 그래서 참다 못하여 하나님은 앗수르와 바벨론을 일으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를 차례로 멸망시켰습니다. 유다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70년의 고통을 당한 후에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전을 재건하고 믿음으로 사는 줄 알았는데 말라기 시대에 접어들어서 더욱 타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을 봅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은 형식화되었습니다. 저질의 제물로 하나님을 무시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번폐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뿐입니까? 제사장들마저도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종들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거침돌이 되었습니다. 가정은 파괴되고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여호와의 단을 가리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들이 하나님의 창고를 비게 하였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제대로 사명을 감당하였겠습니까? 느 13: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의 받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그 전리로 도망하였기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으로 임합니다. 그런데 주의 종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각기 먹고 살 길을 찾아 도망하였는데 어떻게 그들이 말씀을 통한 축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제직 세미나를 통해서 배운 대로 주의 종들의 입술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으로 우리는 ”약속의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은 반드시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변함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약속의 축복”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약속이 어디를 통해서 선포됩니까? 구약시대에는 성전을 통해서 선포되었고, 오늘날에는 교회를 통해서 선포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창고가 비어 있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먹고 살길을 찾아 전리로 도망하였는데 어떻게 축복이 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진정한 축복을 받기를 소원하십니까?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축복 받는 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2.축복 받는 길은? 하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내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은 마치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것처럼 자기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아오라”는 말은 ”turn back, return”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단순히 돌아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롬12;1-2). 렘 34:15 그러나 너희는 이제 돌이켜 내 목전에 정당히 행하여 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하되... 욥 6:29 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것이 없게 하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돌이키라 내 일이 의로우니라 호 3:5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함으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구약시대 선지자들은 ”회개”라는 말 대신에 ”돌아오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질문을 하였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이 말은 ’어떤 면으로’(where in), ’무엇으로’(where with)등의 뜻으로 특별한 방법을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신령한 눈이 어두워져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인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첫 걸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물론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는 물음에 하나님은 어떤 대답을 하십니까?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라는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물음에 물음으로 대답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도적질한 하나님의 것이 무엇입니까? 십일조와 헌물이었습니다. 도적질이라는 말은 간교한 방법으로 하나님을 속이며 하나님을 멸시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말 3: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저주가 임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을 하나님께서는 설명하셨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였기 때문에 저주가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어떤 저주가 임하였습니까? 세 가지 저주가 임하였습니다. ①그들이 농사를 지을 때 황충이가 먹어버렸습니다. ②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③땅이 척박해져 농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주에서 축복을 회복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역사는 오래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살렘왕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이 최초로 나타나는 십일조의 역사입니다. 야곱도 벧엘에서 십일조를 드릴 것을 소원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와서는 ’여호와의 것’이라고 했고, ’여호와께 성물’이라고 했습니다. 레 27:30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그러나 십일조는 실제적으로 레위인들에게 주기 위한 기업이었습니다. 민 18: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레위인들은 자신들이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에서 또 다시 십일조를 떼어 제사장에게 드렸습니다. 이러한 십일조와 헌물에 대해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구약성경 민수기, 레위기, 신명기에 나타난 십일조에 대한 주석이 미쉬나 제 1론 6-8부까지에 나타나 있습니다. 미쉬나에 따르면 구약시대와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 앞에 네 가지 예물을 바쳤습니다. ①큰 예물 ②첫째 십일조 ③둘째 십일조 ④가난한 사람을 위한 십일조 유대인들은 첫 열매 가운데서 일부를 먼저 하나님의 것으로 내 놓고 그 나머지에서 네 가지 십일조를 차례로 드렸습니다. ①큰 예물-처음 익은 곡식, 포도주, 기름, 처음 깍은 양털 가운데서 일부를 제사장에게 주었습니다(신 18:4-5). 미쉬나에서는 이것을 큰 예물이라고 부릅니다. 미쉬나에서는 1/40 에서 1/60까지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②첫째 십일조-큰 예물을 내놓은 다음 그 나머지에서 다시 십일조를 떼어서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민 18:21-24). 미쉬나는 이것을 첫째 십일조라 부릅니다. ③둘째 십일조-첫째 십일조를 뗀 나머지에서 또 다시 십일조를 떼어서 하나님 앞에서 제물로 불사릅니다(레 27:30-31;신 14:22-23). 미쉬나에서는 둘째 십일조라 부릅니다. ④가난한 사람을 위한 십일조-둘째 십일조를 기점으로 해서 제 3년과 제 6년에는 하나님 앞에 불사르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미쉬나에서는 이것을 가난한 사람을 위한 십일조라 부릅니다. 오늘 우리들이 바치는 십일조는 구약시대나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바치던 네 가지 십일조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는 십일조입니다. 수입에서 차례로 네 가지 십일조를 떼어놓은 것이 아니라, 단 한번 열의 하나를 떼어놓은 십일조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우리보다 십의 3조를 더 바친 셈이 됩니다. 구약시대나 신약시대 모두 똑 같이 십일조와 헌물이 쓰여지는 원리는 같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성전을 유지하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생활을 책임지며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오늘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축복의 통로요 수단으로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라고 말씀합니다. 신 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회개의 증표로 어떻게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까?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한 이라는 말은 한 부분이 아닌 전부(all)를 말합니다. ”들여”라는 말은 강한 자발적인 또는 계속적인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좋은 예물이라고 할지라도 억지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느헤미야 시대에도 한때 레위인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전리로 도망친일이 있었습니다. 그로나 느헤미야의 개혁으로 그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십일조를 창고에 모아 레위인들에게 지급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말라기 선지자 시대에 이르러서는 다시금 위기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양식이 없어 주의 종들이 흩어지고 하나님의 집이 황폐하여질 징조가 다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를 통해서 십일조를 강조한 것입니다. 세계 역사상 기독교인으로 최고의 부요를 누리면서 선한 사업으로 일생을 마친 위대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나서 그 어려운 가난 속에서 어머니의 유언을 받은 것이 그의 생을 그토록 위대하게 만들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록펠러입니다. 록펠러는 시카고 100만평의 대지 위에 12개의 종합대학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유명한 시카고 대학입니다. 시카고 대학은 5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대학인데 현재 29명의 대학 교수가 노벨 수상자로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명문대학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록펠러 재단을 세워서 전 세계 문화, 사회를 위해서 공헌했기 때문에 그는 가히 신화적인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신화적인 존재가 된 것에 대하여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그의 과거가 회상되었던 것입니다. 록펠러가 86세가 되던 해에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그의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서 시카고 대학 내에 기념교회를 세우고 헌당예배를 드렸는데 그날 기자가 조용히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의 생애를 위대하게 만들어 간 비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때 록펠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먹고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네가 스스로 교회를 가거라 내가 지금까지는 너를 데리고 교회에 다녔지만 이제는 네 발로 걸어가거라’ 그러면서 처음으로 20센트의 돈을 나의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돈을 네 마음으로 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너무 기뻐서 얼른 받아서 냉큼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머니께서 ’아이야 돈을 내라 이 돈은 너에게 주지만 네가 써서는 안될 돈이 이 안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십일조다. 여기에서 십일조를 지금 떼라 하시고는 2센트를 따로 봉투에 담으시고 나머지는 네가 쓰되 이 돈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한다. 그러면 너는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축복을 받아서 네가 어린 시절에 당했던 그 서러움을 극복하고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로부터 위대한 유산을 받아서 이렇게 부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기자가 묻습니다. ”당신 어머니가 무슨 유산을 그렇게 주었습니까?” ”나의 어머니는 신앙의 유산을 주었는데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바치라고 한 유언이 나에게 큰 유산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4828개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 세계에 모든 선한 일을 하면서 하나도 자기 이름으로 거기에 새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으로 한 일이니 내가 한 일이 없다고 명언을 했던 것입니다. 위대한 그의 생애를 이끌어 간 비밀이 바로 어머니의 유언에 있는데 그 첫 번째 유언이 십일조를 꼭 하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 유언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릴 때는 언제나 앞자리에 앉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앞자리에 앉든, 중간에 앉든, 뒷자리에 앉든 그것은 자유지만 목사님의 영적 파장이 앞에는 소낙비처럼 오고 뒤에는 이슬비처럼 내리니 앞에 앉아서 그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 그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달래면서 남은 생애를 살겠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 어머니의 유언대로 앞자리에 앉아서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의 세 번째 유언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너는 교회에 가면 절대로 목사님 말씀에 순종해라 목사님은 하나님의 대리자요 종이니 그 말씀을 순종하면 네가 마음이 평안할 것이고 그리고 너는 하늘의 지혜를 얻어서 네 하는 일이 잘 될 것이고 그리고 너는 복을 받을 것이다.” 그는 평생에 그 어머니의 유언대로 십일조의 신앙, 그리고 앞자리에서 예배하는 신앙,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이 세 가지를 유산으로 받아서 세계 역사상 위대한 그리스도인, 위대한 부자, 선한 일을 많이 한 기념할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록펠러도 열심히 십일조생활을 하다가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사기를 당해 원금을 모두 날렸습니다.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 밀린 임금을 요구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록펠러는 너무 괴로워 `자살’을 떠올렸습니다.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철저한 십일조생활을 해온 록펠러는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음을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왔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보여주십시오.” 록펠러는 통곡했습니다. 그때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위로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리라.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믿고 폐광을 더 깊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록펠러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수군거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황금 대신 `검은 물’이 분수처럼 공중으로 솟구쳤습니다. 그것은 바로 석유였습니다. 자살 직전의 록펠러는 유전을 발견해 일약 거부가 되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록펠러가 대부호가 된 것은 철저한 ’십일조’생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미국 뉴욕 맨하탄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와 함께 자기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해서 ’River side church’라는 교회를 지었는데 22층의 종탑이 높이 서 있고 허드슨 강을 내려다보는 경치 좋은 곳에 교회를 세워 유명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3.어떤 축복을 받습니까? 십일조는 세 가지 시험입니다. 1)믿음에 대한 시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는 율법에 있는 구약의 말씀으로 신약시대에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 5:1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 예수님께서도 십일조 율법을 지키셨습니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까지도 바치는 정성이라면 그 보다도 더 중한 율법의 의와 인,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행하고(십일조) 의와 인과 믿음을 버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는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확증입니다. 구원받는 믿음도 온전한 십일조의 믿음에 이르지 아니하면 허상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겠다고 하신 말씀을 내가 확증시키는 것이 십일조입니다. 2)십일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원하십니다. 헌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고백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물질로 고백을 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험입니다. 사랑의 확증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고백입니다.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2)라고 했습니다. 미리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3)십일조는 소망의 시험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10절) 이 말씀은 축복해 주시는 것을 시험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 가운데 십일조는 무슨 축복이냐? 십일조 신앙은 나 자신의 개인적 축복일 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의 소망을 가진 자가 받는 축복입니다. 어머니가 십일조 신앙으로 살아가면 그 자녀들이 복을 받습니다. 십일조는 자손대의 축복이며 국가의 축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있습니다. 1)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을 받습니다. 아합왕 시대에 엘리야 선지자는 기도로써 하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였습니다. 하늘 문이 닫혀지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아니하였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하늘 문은 이른 비와 늦은 비의 축복과 연관되는 말씀입니다. (신 11:17)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 신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비같이 내려 하늘 양식을 주셨습니다. (시 78:23) 그러나 저가 오히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시 78:24)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시 78:25) 사람이 권세 있는 자의 떡을 먹음이여 하나님이 식물을 충족히 주셨도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 하늘 문이 열립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도 하늘 문을 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 7:11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 24:18 두려운 소리를 인하여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빠지겠고 함정 속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위에 있는 문이 열리고 땅의 기초가 진동함이라 2)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십니다. 여기 ’붓는다’는 말은 장수가 활이나 창을 빼는 것에 해당되는 말인데, 이 말을 칠십인역에는 ”내가 쏟아 부으리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 뜻은 하늘에서 비와 이슬이 내려 땅을 적시고 거기서 풍성한 곡식의 수확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쏟아 부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칼빈은 마치 젖을 보유한 어머니가 아기에게 젖을 빨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십니다.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준다고 하였으니 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또는 만족하고 남을 만큼 주시는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철저한 십일조를 드려서 1달에 100만원이상 십일조 하는 성도가 많이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3)재앙에서 보호받은 복입니다. 말라기3:11에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재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황충을 금하여 소출을 많게 하시는 복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과실를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므로 극상품의 열매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없으진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 재난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질병이나 죽음의 위협에서 보호해 주시고 하는 일마다 형통케 하시겠다는 그야말로 전천후 축복입니다. 십일조 생활을 잘 하시면 환난과 재앙에서 벗어나 건강의 축복, 사업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축복을 받되 어려움 없이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4)땅이 아름다워지는 복을 받습니다. 말라기3:12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농장의 주인이 복을 받으면 땅도 복을 받습니다. 식물도 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웃나라가 부러워하게 됩니다. 미국은 200년전 영국 청교도들에 의해서 새워진 나라이지만 역사가 짧은 나라이지만 오늘날 세계의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 나라 사람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고 이웃나라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저들의 선배인 청교도들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진정 축복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나간 잘못들을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정한 회개가 어떤 것입니까? 여러분의 주머니까지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저주가 떠나가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시험까지 해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증명하여 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들이 축복 받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주가 떠나고 축복을 회복하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