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을 위한 축복

갓을 위한 축복
신33:20-21





지난 주일에 운명의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설교를 끝을 내었습니다. 오늘도 역시 운명의 변화와 관계가 있는 것에서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먼저 갓의 출생부터 생각해 봅시다. 레아가 연달아서 아들 넷을 낳는 것을 보자 라헬은 자기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대신 자기의 시녀 빌하는 남편에서 주어서 아들 둘을 낳게 되었습니다. 라헬에게 아들 둘이 생긴 셈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레아가 자기의 시녀 실바를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하여 태어난 아들이 갓입니다. 야곱의 7째 아들인 셈입니다.

이 아들이 태어나자 레아는 복되도다고 하면서 이름을 갓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갓은 복되도다라는 의미를 지닌 셈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레아의 욕망의 표현일 뿐입니다. 인간들은 이와 같은 욕망을 성취하는 것을 복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이런 것을 복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런 인간의 욕망을 죄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욕망이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두고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믿지 않는 불신자라는 말입니다. 이런 불신에서 인간의 욕망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복이라고 하는 것들은 사실은 죄악이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다고 하는 사람도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거짓 신앙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복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세상의 욕망을 하나님이 내려 오셔서 죽여버린 것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자연인 인간은 하나님께 맞아 죽어버린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경상도 식으로 좀 무자비하게 말하자면 사람 때려 죽인 하나님을 믿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맞아 죽은 사람입니까? 옛날 사람들과 비교하여 생각해 보십시오. 옛날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세상 것 가진 사람이 별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은 세상 것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보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며 잘 먹고 잘 살고 많이 배웠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하며 그것을 숨기고 보이지 않으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때려 죽이러 오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런 하나님께 맞아 죽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도 세상에 욕망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 사람과 다른 것은 하나님이 있는 사람은 마음에 평안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서 맞아 죽고 그 안에서 새로이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박사 교회에 이근호 목사님이 요즈음 너무 피곤하여 하던 성경공부들을 중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한 번 해보라고 하려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죽으려고 하면서 살아 온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는 평안히 있을 것인데라는 생각을 하고 보니 전화해 보는 것도 쓸없는 짓이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두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갓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갓은 하나님이 내려 오셔서 때려 죽이고 새롭게 살리는 사람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까? 20절에 보니 ‘찬송하리로다 갓을 광대케 하는 자에게....’라고 했습니다. ‘갓을 광대케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갓이 태어날 때는 레아가 자기의 욕심이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아이구 복덩어리야’라고 했지만 이제는 갓을 축복하는 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육신의 복이 아닌 하늘의 복으로 갓을 광대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갓’ 즉 ‘복됨’은 하나님에 의해 하늘 복으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하늘 복으로 광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12 지파도 모두가 이런 사람임들입니다. 육신의 사람으로서 이미 죽은 유다와 요셉은 야곱에 의해서도 복을 받았지만 나머지 지파들은 그 후에 하나님에 의해서 죽었다는 표를 가졌을 때에 모세는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우리는 지금까지 생각해 왔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늘 복이 광대하게 되기를 바라십니까? ‘하늘 복이 광대해지면 땅의 복은 손해 볼 것이니, 에라 하늘 복은 대강 좋아 하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흔히 예수를 대강 믿어야지 너무 빠져서 믿다가 보면 이상하게 되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은 죽음을 경험한 사람입까? 하나님 두려우심을 알고 있습니까? 저는 요즈음 우리 성도들이 과연 하나님 무섭더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까를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연 자기의 죄악 위에 내린 하나님의 진노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일까를 많이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무서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려움이 있고 문제가 있으면 주님을 의지하는 뜻으로 기도할 것이고 자유하라면 그 자유 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할 것인데 오히려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자신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땅의 일들 때문에 왜 그렇게 절망합니까?



이제 갓을 광대하게 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생각해 봅시다. 21절에 ‘그가 자기를 위하여 처음 기업을 구하였으니 왜냐하면 거기에 율법 주신 분의 분깃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고 하고 있습니다. 현재 개역 한글과는 번역이 상당이 다르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방금 제가 읽은 것과 같이 읽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정복하는 일에 갓을 장자 즉 우두머리로 삼는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민수기 32장에 보면 갓 자손이 주축이 되어 르우벤 자손과 더불어 모세와 백성들에게 나아와서 요단 동편을 요구합니다. 이 때에 모세와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복하는 싸움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것인 줄로 생각하고 놀랐습니다만 갓과 르우벤은 이미 가나안 정복에 앞장 서서 갈 것을 결심하고 모세와 백성들에게 나아 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 땅 거민 때문에 유아들을 견고한 성에 거하게 한 후에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 행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얻기까이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편 곧 동편에서 산업을 얻었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 편에서는 기업을 얻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들이 가나안 정복에 앞장을 서겠다는 것입니다. 동편 땅을 요구한 것은 요단 동편을 우리가 얻는 것과 같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남은 가나안 땅을 얻도록 싸우겠다는 뜻입니다. 가나안 정복에 앞장 서서 헌신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얻은 동편 땅은 나머지 정복을 보여주는 맏물 땅이요 그들은 이 정복의 장자라는 뜻입니다. 21절에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라는 말씀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즉 장자의 기업이라는 뜻이지요. 갓은 이것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을 구한 것을 모세는 ‘잘했다, 너희가 계시를 옳게 깨달았다’고 하면서 축복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율법수여자의 분깃이 숨겨져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거기’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처음 땅에 하나님의 분깃 즉 몫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분깃이 무엇입니까? 바로 장자되는 것이지요. 그 땅을 택하여 가지는 자는 나머지 땅도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자요 따라서 정복에 있어서 장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 땅에 숨겨진 비밀입니다. 서모의 아들로서 태어나 이스라엘의 장자가 되는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로 숨겨진 비밀입니다. 이 비밀을 첫 땅을 차지하는 자 갓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좋은 것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를 알고 성령의 나라에 속한 것을 알게 된 자만이 천국의 아들 된 것이 소중한 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천국의 아들 된 것이 소중하고 귀함을 알고 있습니까? 빈부의 차이나 계급의 높낮이가 없는 평등한 나라요 낮은 자 죽은 자만이 사는 나라가 천국입니다. 이 나라가 소중한 줄 알고 있습니까?

이 나라를 얻는 데는 전쟁의 연속입니다. ‘갓이 암사자같이 엎드렸으며 팔과 정수리 가죽을 찢었도다’고 합니다. 사자가 엎드렸다가 달려들어 팔과 다리를 찢고 머리 가죽을 찢는 모습입니다. 창세기 3장 이후부터 선택된 사람은 싸워야 했습니다. 전쟁 없는 가나안 없고 싸움 없는 천국이 없습니다. 가나안에 들어 간 것부터가 또 다른 싸움의 시작인 것 같이 천국 백성 된 때부터가 싸움의 시작입니다. 천국은 끊임 없이 싸워야 하는 곳입니다. 예수믿어 편안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교회에 나오는 것부터 싸움입니다. 덕이 아니라 손해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쉬고 싶은데 쉬지 못하니 몸에 안좋지요 돈 벌고 싶은데 일못하니 손해입니다. 이런 것부터가 싸움입니다. 그러니 바깥 세상에야 싸움이 더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예수께서 이미 싸워서 승리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바라보면 우리도 이기게 됩니다. 믿음은 이기게 하고 예수의 편에 서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예수 바라 볼 생각은 하지 않고 보이는 현실을 봅니다. 보이는 싸움의 어려움만 생각하고 먼저 겁을 먹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를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신앙은 사건에 부딪힐 때 자신을 드러냅니다. 죽음이 이르렀을 때 죽음을 두려워 하는 것은 죽음을 이긴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말이요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기도하고 회개하면서 주님의 이끄심을 찾지 않는 것은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입술로는 주님이지만 실제로는 신앙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주로서 다스리고 계시는 주님을 실제로 믿으십시오.

신자에게는 세상에서의 싸움이 신앙을 확인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싸움은 오히려 주 안에 있음을 확인하고 감사하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고로 신자에게는 싸움이 두려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이 있다면 무엇에든지 담대하게 될 것입니다.

갓은 어떻게 했습니까? 21절 끝에 ‘그가 백성의 두령들에게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했습니다.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라고 번역되어 있는 것은 ‘백성의 두령들에게’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갓 자손이 모세와 백성에게 와서 전쟁의 장자 되기를 요구했던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였다’고 합니다. 민수기 32장에서 본 것처럼 이미 결심하고 약속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 그 일을 앞으로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을 ‘공의와 법도’라고 했습니다. 공의라는 말이 단수로 사용될 때는 여러 작은 개념들을 포괄하면서 하나님의 뜻 전체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법도란 말은 복수로 사용되어 부속의 여러 가르침들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우선 갓이 앞서 가서 가나안 전쟁을 이끄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정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인 공의를 행하는 것이요 또 부속의 여러 가르침들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자로서 변화된 갓이 얼마나 싸움에 적극적인가를 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전쟁에 장자로서 자원하면서 그것을 위하여 얼마나 큰 열성과 힘을 내는 지 유의하십시오. 우리 예수님이 그렇게 열성과 힘을 내셨습니다. 다니엘서는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용사처럼 힘을 발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하나님을 향하여 힘을 내는 사람입니까? 싸움에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까? 주저앉으며 움추러 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싸우기를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이미 마귀의 팔과 정수리를 찢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하여 전투에 용맹을 발하십시오. 죽으면 죽으십시오. 이런 마음으로 신앙에 서십시오. 자기의 난제와 어려움을 가지고 진지하게 주님 앞에 마주 앉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향한 마음에 흔들리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