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과 축복 신30:15-30 우리 인간의 삶을 하나의 선택의 과정이고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친구를 선택하고 대학을 선택하고 직장과 사업을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또 신앙인은 어디를 가든지 교회를 선택해야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학과 배우자와 직장과 같은 선택의 폭이 넓지만 나이가 많아지면서 선택의 폭은 점차 적어지는 것 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젊어서 좋고 훌륭한 선택을 하면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많지만 반대로 좋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경우에는 어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축복에 관한 선택에 관하여 몇 가지로 같이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인간을 자유와 양심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삶에는 두 종류의 삶이 있는데, 우리가 선택하는데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아갈 수도 있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지을 줄 다 아셨을 텐데, 왜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따 먹게 하시고 죄를 짓게 해서 인간으로 저주를 받고 살게 하셨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지금 죄를 짓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많은 사람들의 이와 같은 질문을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 시원하게 대답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성을 가진 우리는 몇 가지로 대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우리 인간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 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신다고 해도 우리의 제한된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우리의 적은 두뇌로 어떻게 하나님의 오묘하신 경륜과 섭리를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꼭 한가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무조건 믿는 믿음이 아니라, 눈감고 믿는 맹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 입니다. 신명기 29장 29절에,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우리도 이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감추어진 신비적인 비밀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신비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직접 사용하고 있는 것들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나 휴대폰, 그리고, 우주선이 달나라를 왕복하는 것과 같은 것을 보통 일반인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설명을 한다고 해도 잘 모르는 것 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 인간이 다 알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의 로버트나 기계로 만들지 않고 자유와 양심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 입니다. 창세기 2장 16절과 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시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와 양심을 주셨다는 것 입니다. 인간의 존재 가치는 자유와 양심이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과학자가 노력 끝에 로버트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사람과 똑 같이 눈을 떳나 감았다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합니다. 사람과 똑 같은 동작을 하는데 얼굴도 잘 만들어서 키가 180센티 미터 되는 미남 진짜 사람같이 보였습니다. 이 과학자는 친구들과 유명한 과학자, 정치가와 각계 각층 사람을 모두 초청하여 이 로버트 사람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버튼을 누르니 이 인공 인간이 걸어 나오더니 과학자의 부인의 머리를 내려 칩니다. 단번에 쓰러져 죽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과학자를 죽이려고 달려 듭니다. 모든 과학자들의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도망해 버렸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처럼 과학자는 사람을 만들었는데 한가지 실패한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유와 양심과 인격이였습니다. 이 과학자는 그 로버트에 양심과 인격을 넣어 줄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스운 이야기 이지만 현대 물질 문명의 풍자적인 이야기 입니다. 인간은 하나의 유물론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가장 고귀하게 창조된 자유와 양심과 인격을 가진 만물의 영장인 것 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자유와 양심을 주신 하나님은 참된 행복과 생명을 우리 앞에 두시고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5절과 16절에,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을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고 있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존재와 역사를 아는 사려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기한 대 자연 속에 있어도, 예배당 안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에 대한 관심보다 이 세상의 어떤 것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마치 유명한 그림 박물관 안에 서 있는 장님처럼 하나님에 대한 어떤 능력과 신성을 체험할 수 없는 것 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이 있습니다. 플라톤은 일찍이 무신론은 영적 질병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주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주론적 논증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인과의 법칙에 의한 논증입니다. 자연과학도 이 법칙 위에 성립이 되는 것 입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결과는 원인이 있습니다. 우주는 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원인이 있습니다. 이 제일 원인은 하나님일수 밖에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엄숙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주 하나님,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생명과 축복의 길을 택하여 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살고 있는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끝난다고 하면 우리의 삶의 모든 활동은 무의미해지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죄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것 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 지난주 미국의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지난 8일 우리 교포가 상점에 들어가서 상점주인과 부인 그리고, 그들의 23살된 딸을 총기로 난사해 일가족을 살해하였고, 이 사람은 자기 아내까지 죽여서 냉장고안에 버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돈이던 치정이던 원한관계가 있다고 하지만 먼저 죄없는 딸에게 총을 쏘고 달아나는 남편과 아내에게 난사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아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살해하고 냉장고안에 버릴 수 있습니까? 사람의 생명이 이정도 가치밖에 없을까요? 그리고, 경마와 카드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한 뒤에 고등학교 동창 후배를 유인하여 현금 100만원과 신용카드, 승용차등 1,850만월 상당을 빼앗고 비닐 테이프로 손발을 묶어 생매장 살해한 사건 21만에 밝혀졌습니다.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사람을, 그것도 잘 아는 후배를 생매장해서 살해 할 수 있습니까?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것 입니다. 육신의 생명의 존귀함을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마는 성경은 이보다 더 귀한 영혼의 생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생명은 육신의 생명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 그리고 영원한 축복을 의미하는 것 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은 영혼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한 사망과 저주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모두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주님의 영원한 나라 백성이 되는 것 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반드시 생명과 축복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 길 또는 두가지 삶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합니다. 생명의 길이든지, 사망의 길이든지,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합니다. 제 3의 길, 또는 제 3의 삶은 없습니다. 오늘 현대 교인들은 제 3의 길이 있는 것 처럼 신앙생활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세상도 사랑합니다. 하나님도 버릴 수 없고 세상도 버리지 못합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신앙을 음란한 신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분은 기독교는 너무 독점적인 신앙을 강요한다고 비판합니다. 하나님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강요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신앙관계는 마치 서로 사랑하는 관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 남편은 한 아내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 남편이 두 아내를 둘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한 아내가 두 남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도 사랑하지만 다른 남자도 똑 같이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여자를 아내로 생각하고 함께 살기 원하는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기 원하며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사랑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제 3의 삶의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입니까? 세상입니까? 생명입니까? 사망입니까? 축복입니까? 저주입니까? 양자택일의 기회가 우리 앞에 있는 것 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절과 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생명의 길이요 넓은 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제 3의 중간 문은 없습니다. 오늘날 자신을 위해 제 3의 중간 문을 만들고 안일하게 신앙 생활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많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절에, “내게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 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네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지근하게 믿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화끈하게 재미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믿었다고 하면서 신앙의 재미도 보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생명과 축복을 받습니까? 오늘 본문 16절과 17절에 보면, “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을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는 마음과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하는 삶인 것 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사망과 저주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과 18절에,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반드시 망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가 망할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타락된 정욕과 욕망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미국의 역사가운데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두 사람이 가까운 친구가 되어 한 형제처럼 함께 먹고, 자고 아주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안 믿었기 때문에 갈데 안갈데 다니면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저녁에 춤을 추고 노름을 하려고 가는데 마침 예배당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날 설교 제목이 게시판에 붙어 있는데, “The Wage of Sin is Death” 즉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제목이였습니다. 지금 죄를 지으러 가는 길인데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제목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아 둘이서 가자 가지 말자 하다가 이제 서로 다시는 만나지 말고 영원히 헤어지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친구는 그대로 술집으로 놀러 가고 한 친구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불안하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한번 들어보자고 혼자 예배당에 들어갔습니다. 이 청년은 예배당 맨 뒤에 앉아서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통해 복음을 처음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후 열심히 공부해서 청치 방면으로 나가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취임식이 있는 날 모든 신문은 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가득 실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미국의 유명한 교도소에 어떤 늙은 죄수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대통령이 취임했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홀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30년 전에는 내 친구였는데 그 어는 때에 갈라지고는 전혀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제 이 친구는 대통령이 되었고, 나는 일생을 감옥에서 살다가 죽게 되었으니 이런 분한 일이 어디 있느냐?” 이 대통령이 미국의 22대 24대 스티브 클리브랜드 대통령입니다. 인생의 갈림길이 많다고 하지만 간단히 두 가지 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은 좁은 길입니다. 또 하나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따라 살아가는 넓은 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 가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이기는 절제의 좁은 문을 통과 해야 합니다. 세상의 정욕과 향락을 보리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고난의 좁을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마지막 영원한 생명과 축복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이 좁은 길 밖에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과 복을 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