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의 삶을 축복 으로

광야의 삶을 축복으로
신8:1-10





사랑하는 태평양교회 성도 여러분!
요즈음 세상 살아가시기가 무척 힘드시지요?
이 세상은 광야와 같다고 성경은 비유하고 있습니다.
폭풍, 비바람, 전쟁, 싸움, 투쟁이 있고 서로 속이고 속는 험악한 삶의 터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광야같은 세상에 기가 막힌 축복의 비밀들을 숨겨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은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율법이라는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 율법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완전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으로 드러난 인간들이 성막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소풍가서 보물찾기를 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광야에 보물을 숨겨놓았습니다.
광야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저주스럽지만 보물을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흥분이고 축복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하나님이 광야라는 곳에 숨겨놓은 보물들로 인해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광야의 삶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먼저 신명기 8장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모든 사람들이 저주나 고통이라고 말하는 광야가 어떻게 축복이 될 수 있습니까?
2절을 보면 그 이유를 알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분입니다.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하시고 우리에게 축복과 사랑을 한없이 쏟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심판이나 멸망이 아니고 인간을 사랑하셔서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깊고 깊은 사랑과 은혜를 잘 몰랐습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원망과 불평과 시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그들의 삶의 전체는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만 생겨도, 배만 고파도 원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0년동안이나 끊임없이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지도하는 모세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이 내리는 열가지 기적을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피, 개구리, 이, 파리...마지막에는 장자가 죽는 것까지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죽음이 통과한 것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홍해바다 한 복판을 맨발로 걸어 건넜을때
말을 타고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들은 바로 그 물에 빠져 죽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만 나면 원망과 불평에 빠져 살아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태평양교회 성도 여러분!
원망, 불평, 시비는 아무리 타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빨리 던져 버려야 합니다.
그것에 오래 붙들릴수록 성령님과 멀어지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것을 끝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 대신 우상을 만들어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뺀 노예 세대는 다 죽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은 사람들은 2세대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태평양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광야라는 학교에 집어넣고
우리가 고통스럽고 힘들어 한다는 것을 다 아시면서도 강하게 훈련시키십니다.
세상적인 생각, 습관, 철학, 문화를 광야의 고통을 통해 깨끗이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의 백성이 되도록 만드시는 것입니다.
예화)젖을 떼고 어느 정도 자란 중소를 길들여 보셨습니까?
멍에를 짊어지게 할때부터 길들이는 사람은 고생길에 접어 듭니다.
소 한 마리를 온전히 길 들이는데 몇 달이 걸리도록 사람은 산전수전을 다 겪습니다.
제멋대로 힘을 쓰는 소를 길들이다가 갈빗대를 차여서 돌아가신 분도 보았습니다.

이처럼 여러분을 훈련시키실 때 여러분만 힘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힘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시시하게 보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여러분이 소중한지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격려하고 자극하고 도전하고 훈련해서 아버지가 매를 들듯이
하나님이 원하는 성품과 인격과 삶을 만들때까지 여러분을 양육하실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40년간 운영하시던 광야학교입니다.
여러분이 광야같은 인생 길을 걷게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광야가 축복이라는 것을 인정하실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왜 광야의 길이 축복이고 광야의 삶이 아름답습니까?
두번째로 하나님의 위대한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2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 두시며 두 가지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는 겸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했기 때문에 40년간 훈련시키셨습니다.
왜냐하면 천국백성은 겸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대명사는 교만입니다.
틈만나면 하나님을 향하여 주먹을 내미는 것이 특기입니다.
예화)제 고향에 새카만 개한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개는 동네 개들을 다 물어뜯고 다니고 닭은 가만두지 않는 개였습니다. 심지어 아이들도 쫓아가서 엉덩이를 물고, 일하는 소도 쫓아가서 물어버리는 난폭한 개였습니다. 결국 그 개를 동네 어른들이 어떻게 했겠습니까?
겸손한자는 땅을 차지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하나의 광야학교의 설립 목적은 \'시험하사\'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지 안하는지 시험해 보겠다는 말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했다고 모두에게 졸업장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논문이나 졸업 시험에 통과가 되어야 졸업장을 줍니다.
하나님은 광야라는 학교에 넣고 성경말씀대로 사는지를 시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곳이 바로 여러분이 살아가는 광야라는 곳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겸손해 질 수 있습니까?
교만한 사람에게는 그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주면 겸손해 집니다.
배고프게 하고 몸 아프게 하면 풀이 죽고 힘이 빠져 겸손해 집니다.

편안하게 해주고 잘해주면 하나님 찾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것을 본다고 참 믿음이 생기겠습니까?
참 믿음은 그런 이적을 본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그레서 믿음이 생겨났다면 예수님 생전에 그토록 많이 모였던 군중들이 왜 폭도가 됩니까?

참 믿음은 오직 진리되신 예수님을 바로 믿어야 생깁니다.
기적을 본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로 바라 만나고 바로 보아야 믿음이 생깁니다.
출애굽하던 이스라엘이 10가지 기적을 보았지만 그들이 믿음이 있었던가요?
오병이어로 5000명 먹이고 죽은 사람 살리는 기적을 보았던 군중들에게 믿음이 있었나요?
그레서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세번째, 광야에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게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것도 없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있고 밤에는 혹한 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만이 넘는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만 바라볼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부족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병든 것이 좋은 것입니다. 고난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왜요?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3절을 보시겠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떡으로만 산다는 것은 자기 방법으로,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간단합니다.
세상 음식을 먹는 사람은 세상 사람! 하나님의 음식을 먹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세상 방법대로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요,
하나님의 방법대로 지혜롭게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네번째로 요한계시록 12장 6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광야는 양육하기 위하여 예비된 곳입니다.
그래서 광야는 고통이요 부족함이요 제한받는 것이요 기다리는 것이요 안타까움입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성도를 훈련시켜 변화시키고 천국백성으로 성장시키는 곳입니다.

성도 여러분!
돈 많은 사람이 좋은 집에서 음식을 잔뜩 먹은 표정을 떠올리실 수 있겠습니까?
그 표정하고 고통과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서
기뻐하고 기적을 보고 죽음에서 살아나서 흥분하는 모습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겠습니까?
어떤 얼굴이 진짜 축복받은 얼굴입니까?
여러분이 모두 다 그런 얼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기막히게 놀라운 소리입니다.
40년 동안 광야길을 걸었는데 의복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릍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겠습니까?
고난이 오면 내 몸에 있는 시시한 것들은 다 떨어져 나가고 중요한 것만 남습니다.

왜 우리 인생이 복잡하고 바쁜줄 아십니까?
불필요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보고 성경공부 하자고 그랬더니 바쁘다고 거절을 합니다.
정말 바쁘십니까? 무엇때문에 바쁜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 때문에 바쁜 것이 아니라 안해도 될 것 때문에 바쁘게 삽니다.
불필요한 것을 다 내려놓고 중요한 것을 꼭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천국까지, 영원까지 가져 갈 수 있는 것을 붙들고 사십시오. 그래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관심은 고난이 아니고 고난을 뚫고 나간 이후입니다.
인생을 하나님과 더불어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