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면과 축복의 말씀들/히13:1-25 2001-09-19 16:17:18 read : 244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에서 믿음의 위대한 모범을 보여 주었고, 12장에서 믿음을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13장에서 믿음생활에 증거가 있어야 됨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1절로6절에서는 성도들이 어떠한 환경에 처한다고 해도 꼭 가져야 할 덕목들을 사랑이라는 가장 포괄적이고 기본적인 가치 아래서 권고하고 있습니다.
① 신앙인의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했습니다(1절). ② 손님 대접 하기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2절). ③ 어려운 가운데 처해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3절). ④ 정결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했습니다(4절). 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만족하라고 했습니다(5절). ⑥ 하나님을 신뢰하고 신앙 고백적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6절).
그리고 7절로 19절에서는 소단락을 구별해 주는 동사를 사용하여 권면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7절에『본 받으라』, 9절에『끌리지 말라』, 13절에『나아가자』, 15절에『드리자』, 16절에『잊지 말라』, 17절에『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기도를 요청한 후에(19절), 축복 기도와 인사로 히브리서의 기록을 끝맺고 있습니다(20-25절).
영적 지도자들의 믿음을 본받아 순종하고 복종하여 문안하라.
본문 7절에『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고 했고, 17절에『너희를 인도 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4절에『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 나타난 영적 지도자가 누구 입니까?
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입니다(7).
② 우리를 인도하는 자입니다(7, 17, 24).
③ 성도들을 위하여 밤잠을 자지 않고 깨어 살피고 깨어 기도하는 자입니다(17).
④ 자신의 어떤 셈을 하는 것 같이 알뜰하고 정확하게 성도를 보살피는 자입니다(17절).
이러한 영적 지도자에게 성도들은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① 생각해야 합니다(7절). 곧 지도자의 믿음 생활을 마음에 새겨 기억하야 합니다.
②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7절).
③ 순종하고 복종해야 합니다(17절). 곧 인도자의 가르침에 설득 당하여 철저히 순종햐여 합니다.
④ 즐거움으로 그 직무를 수행하도록 해야 합니다(17절). 지도자는 어찌 했든지 사명을 다하여 성도를 위하여 경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영적 지도자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지 근심하게 하면 안됩니다.
⑤ 문안해야 합니다 (24절).
왜 그렇습니까?
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기 때문입니다(8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총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로 구원을 보장 받은 성도들이 주님에 대한 신앙적 자세가 환경 따라 기분따라 변할 수 없듯이 영적 지도자에 대해서도 그리해야 합니다.
② 다른 교훈에 미혹받지 않기 위해서입니다(9절). 여러분, 이단에 미혹당하여 넘어진 사람들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한결 같이 교회와 교역자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불평 불만하는 자들입니다. 물론 지상교회와 교역자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는 교회의 여러 가지 연약의 문제와 교역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그 신앙은 미혹을 받아 다른 신앙에 끌리게 되는 것입니다.
③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17절). 신앙생활에도 원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판단에 아무리 옳게 생각이 되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자신은 동의 할 수가 없고 동참할 수가 없어도 해야 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교회와 성도들에게 덕을 끼치고, 자신에게 복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영적 지도자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갖지 못하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들의 믿음을 본받아 순종하고 복종하여 문안하고, 주의 일을 근심으로 하게 말고 즐거움으로 하게 합시다. 목회자의 기쁨이요 면류관이 됩시다.
십자가를 지고 영문 밖으로 나아가라.
본문 13절에『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고 했습니다.
광야에서의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은 언제나 성막 중심이었습니다. 성막을 떠나는 것은 큰 능욕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큰 능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마 16:24).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일이야 말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안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에 십자가를 지고 예루살렘 성을 벗어나서 해골이라는 이름을 가진 골고다의 언덕까지 형극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요 19:17-20). 유대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성을 벗어나 새로운 성전의 제단이 될 갈보리 언덕에 서신 예수! 비록『영문 밖』은 시체들이 던져지고 범죄자들이 처형 당하던 수치와 굴욕의 장소이지만, 예수를 통하여 그곳은 천추에 빛나는 영원한 생명의 제단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원한 제단이 된 것입니다. 단번에 흘리신 보배로운 피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죄가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사하여진 곳이 십자가라는 제단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제단은 무효화되었고 그 대신 보이지 아니하는 영원한 제단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담대히 이 은혜의 보좌(속죄속, 시은좌, 히 4:16) 앞에 나아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오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사하여 주신다는 약속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까지도 선물로 주어진다는 약속을 신실하게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11:6). 이처럼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후에 면류관의 있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을 통하여 바라보며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자는 십자가의 길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마 10:38,16:24).
그리스도가 당하신 모욕과 수치를 이 세상의 보화보다도 더 값진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히 11:26). 특별히 초대 교회 당시의 환경을 생각해 보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주님을 따르는 일은 곧 사회에서의 추방과 소외, 심지어 죽음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를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본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방식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영원한 성을 바라보라.
본문 14절에『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영문 밖에 나간 자에게는 영문 안에 거할 처소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영원한 성을 바라보고 사는 나그네요, 외국인인 것입니다. 더 나은 본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때문에 죽음은 그리스도인들의『마지막 단어』일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종착역이 아닙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생에만 있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고전 15:19)라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의 말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공감을 일으킬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자기들이 이 땅 위에서 손님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11:13)사람들입니다. 하늘에 준비되어 있는 도성, 더 좋은 하늘의 나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그렇게도 갈망하고 동경하고 바라보고 살았던 곳,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하나님의 손으로 지은 영원한 도시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다보며 사는 사람이 현세의 십자가를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십자가 너머에는 생명의 도시, 평강의 새 예루살렘이 있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은 바라다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영원한 성을 바라 보는 성도는 어떻게 삽니까?
첫째, 하나님을 찬양하며 삽시다.
본문 15절에『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고 했습니다.
찬양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고백이며 선언이며 증거입니다. 구속 받은 공동체가 땅과 하늘 나라에서 동시에 하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찬양입니다(계 4-5장).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며, 입술의 열매입니다.
둘째, 이웃은 사랑하며 삽시다.
본문 16절에『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셋째, 신앙의 지도자들에게 복종하며 삽시다(17절).
은혜와 평강이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찌어다.
이제 편지 형식의 설교를 마치는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의 독자들을 위하여 축복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20-21절). 이 기도문은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려진 영원한 희생 제사를 통하여 죄와 죽음을 물리치시고 그의 피조물인 인간들을 더 이상 종의 신분이 아닌 만유의 상속자로서의『아들들』이 되게 하시었음을 이 기도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 언약 안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행동은 진정한 평강을 온 세계에 가져 왔으며 이러한 위대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가리켜『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단지 복만을 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모든 좋은 것을 공급하여 달라는 기도입니다.
지금까지 히브리서 강해를 통하여 어떤 역정적 삶의 환경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평강이 항상 함께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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