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축복 합시다

자식을 축복합시다
신6:4-9





오늘은 어린이주일. 우리가 어떤 날을 기념일로 정할 때 그 배경은 둘 중에 하나.

먼저는 그 기념하는 대상이 너무나 소중한 것이고, 익히 알려져서 모든 사람이 추앙하는 것을 기념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그것이 소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고 너무나도 잊혀져 있기 때문에 정하는 경우. 예를 들어서 어버이날이나 어린이날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은 사람을 밭으로 비유를 하고 있다. 예수님은 이것을 씨뿌리는 자의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어린 아이는 밭과 같다. 이 어린 아이와 밭은 너무나 유사한 점이 많이 있다. 그래서 성경은 \"자식을 하나님이 주신 기업\"(시127:3)이라고 하셨다. 여기에서 기업은 농사짓는 밭을 의미. 밭은 그 밭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 열심히 농사를 짓는 부지런한 농부의 밭은 아름답고, 많은 열매를 맺읍니다. 풍성함이 있다. 농부의 이마에 흐른 땀을 기쁨과 보람과 감격으로 바꿔줍니다. 그러나 게으른 농부의 밭은 삭막하고, 잡초만 무성합니다. 한숨과 절망만 가져다 줍니다. 괴로움만 가져다 줍니다.

자식도 이 밭과 똑 같다. 자식도 그 자식에 대한 부모의 노력을 반영합니다. 자식 농사를 잘 진 부모는 그 자식이 상급이 됩니다. 그 부모를 복되게 합니다. 그래서 (잠15:20)은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자식은 부모가 원수와 말할 때도 수치를 당치 않게 해 줍니다.

그러나 자식 농사를 잘 못 지면 그 자식이 걱정 거리가 됩니다. 부모의 근심이 됩니다. 부모를 망신스럽게 합니다. 부모에게 큰 해를 입힙니다. 그러므로 자식의 농사를 잘 지어야 함. 자식은 들에 자라는 잡초가 아닙니다. 잡초는 저절로 자라납니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납니다. 그러나 잡초와 같은 인생은 의미가 없다. 가치가 없다. 쓸모가 없다. 자기 마음대로 자란 나무, 자기 마음대로 자란 들풀은 다 쓸모가 없다. 농부가 정성을 드려 가꾼 곡식, 정성을 드려 가꾼 나무들이 좋은 재목으로 쓰임받고, 풍성한 열매를 맺읍니다.

어린 아이들이 자라는 것이 그와 같다. 부모가 정성을 들여서 좋은 틀을 만들어 주면, 어린이들을 그 틀에 따라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과 나라와 민족에 쓰임받는 일군들이 됩니다. 그러나 틀을 부모가 만들어 주지 않으면, 아무 쓸모 없는 인물이 되고 맙니다. 남에게 폐만 끼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잘 만들어져 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잘 가꾸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부모들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하셨다.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라는 뜻. 얼마나 부지런히 만들어 가야하는지,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녀들을 만들어 가란 뜻.

우리도 자녀들을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가 나의 자녀를 만들지 못하면 나의 자녀는 버림받고, 쓸모 없는 자녀들이 되고 맙니다. 농부가 농사를 잘 지으려면 4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듯이, 부모도 자식 농사 잘 지려면 4가지를 잘 해야 합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아 예수님도 어린이를 축복했듯이, 우리 모두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식을 훌륭하게 양육하는 축복자가 되자.



1. 좋은 씨앗을 직접 많이 뿌려야 합니다.



훌륭한 농부는 밭에 좋은 씨앗을 뿌립니다. 좋은 씨앗을 뿌려야 좋은 열매를 거둘 수가 있다. 농부들은 씨앗 만큼은 제일 좋은 것으로 합니다. 그래야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가 있다. 자녀들도 훌륭한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영향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마음 밭에 좋은 영향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그 영향이 그 자녀들의 마음 밭에 심겨지는 씨앗.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그 자녀들도 그렇게 되고 맙니다.

어린이의 장래는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어머니에게 달려 있다. 어린이의 선한 행동이나 악한 행동, 어린이의 행복이나 불행은 상당한 정도까지 어머니의 교육과 행동에 달려 있다. 어머니는 어린이가 갖게 될 선악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어린 시절의 사건들과 경험, 그리고 교훈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으며, 일생 동안 그 영향이 미치게될 것이다. 나폴레옹이 어떤 부인에게 젊은이들이 받고 있는 경망스럽고 어리석은 교육에 대해서 불평하면서 비난받아야 할 자가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 부인은 \"어머니들\"이라고 대답했다. 그 부인의 대답은 옳았다.(은혜)



할수만 있으면 부모들이 그 자녀들에게 좋은 영향을 받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내 자식이 되기를 원하는 그러한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들이 그러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녀들이 지금 무슨 영향을 받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자녀들에게 영향력 있는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내 자식의 밭에도 좋은 씨앗이 뿌려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밭에 농부가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잡초만 무성하게 됩니다. 가끔 시골을 지나가게 되면, 농부가 씨앗을 뿌리지 않아서 그 밭에 쓸모 있은 곡식은 하나도 없고, 잡초만 무성한 것을 가끔 봅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마찬가지. 부모가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내 자식의 밭에 아무 쓸모 없는 잡초만 무성하게 됩니다. 여러분 저 들에 씨를 뿌리지 않아서 잡초만 무성한 저 밭이 내 자식의 삶이라고 생각해 보라. 좋은 씨앗을, 자식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주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밭의 주인은 밭에 씨앗 만큼은 꼭 자기가 뿌린다는 것이다. 남에게 자기 밭에 씨앗 뿌리는 것을 맡기지 않는다. 자기가 좋은 씨앗을 골라서 그 씨앗을 뿌립니다. 정성을 다하여 뿌립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자식들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가 하라고 명령하셨다. 선생님 보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고 하시지 않고, 그 부모에게 자식들에게 하나님을 말씀을 가르치라고 하셨다. 자식의 밭에 다른 사람들이 좋은 영향을 줄 때를 기다리지 말라. 바로 내가 자식에게 좋은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마 13:24-25 예수님이 가라지의 비유를 말씀. 농부가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그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나 외에는 내 밭에 좋은 씨앗을 뿌려 줄 자가 없다. 모두 다 나쁜 것만 뿌릴 뿐입니다. 부모 외에는 내 자식에게 좋은 영향을 줄 자가 없다. 그러므로 내 자식에게는 내가 좋은 영향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해야 할 사명. 하나님이 부모에게 이 일을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이 일은 부모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꼭 해야 할 하나님의 명령. 오늘부터라도 자식들에게 좋은 영향의 씨앗들을 많이 뿌리시기 기원합니다.



2.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내 밭에는 나만 씨앗을 뿌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원수들도 내 밭에 와서 씨앗을 뿌린다. 이 원수가 뿌리는 씨앗은 가라지. 그런데 이 가라지는 아무 쓸모 없고 해가 됩니다. 그 밭에서 자라는 곡식의 영양분을 빼앗어 먹어서, 그 곡식이 잘 자라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 우리 부모만 우리 자녀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녀들은 완전히 우리들의 원수들에게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을 잘 때, 즉 우리가 자식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돌보지 않을 때 이 원수들이 와서 해로운 잡초의 씨앗을 뿌리고 갑니다.

우리 자녀들의 영혼을 노리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읍니까 ? 1970년대까지 고등학교의 걱정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말 많은 것, 껌씹는 것, 복도에서 뛰는 것, 복장이 단정치 않은 것, 교실 바닥에 종이를 버리는 것 등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학교의 걱정거리는 옛날과는 양상이 완전히 다르다. 그 내용을 보면 강간, 도벽, 방화, 자살, 살인, 결석, 기물파괴, 술, 환각제와 마약, 임신, 패싸움, 낙태, 성병 왕따등이다. 모세 이래 사람들이 수천년 동안 열심히 법을 만들었지만 인간의 품성은 날로 악화될 뿐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남자의 범죄율이 7.7 % 상승한 데 비하여 여자의 범죄율은 13 % 상승했다. 옛날에는 중학생이나 여자는 적어도 범죄 면에서는 별로 심각한 대상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세상이 온통 달라졌다. 우리 자녀들은 그들을 노리고 있는 원수들의 시야에 그대로 노출 되어 있다.

우리 부모님들 중에는 이렇게 잠들어 있는 부모님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원수들이 자유스럽게 찾아와서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악한 씨앗을 마음껏 뿌리고 가고 있다. 이런 게으른 자의 밭을 보고 솔로몬 왕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잠 24:30-32 \"내가 일찌기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없는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 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그것을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우리 부모들이 자식들에 대한 관심이 잠들어 있어서 우리 자녀들의 밭에는 가시덤불이 퍼졌있다. 거친 풀이 덮여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잡초들이 진정 우리들의 자녀들의 밭에서 자라나야 할 귀한 것들의 영양분을 다 빼앗어 버리고 있다. 그러므로 정작 자라야 할 귀한 것들은 다 그 틈에서 죽어가고 있다. 영양실조에 걸려서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돈 좀 더 벌려고, 다 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다. 여러분 만원을 벌려고 하다가 천만원을 손해를 본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사람 보고 잘 못된 사람이라고 말할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다 그러고 있다. 돈 얼마 더 벌자고, 천하보다 더 귀한 내 자식의 밭을 다 망쳐놓고 있다. 우리는 이 자녀들의 밭에서 자라는 잡초들을 다 뽑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내 자식들의 밭에서 자라는 어린 곡식들이 그 잡초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 그러므로 그럴때까지는 그 잡초를 우리 부모들이 성실하게 뽑아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 주신 내 자녀의 밭을 한번 돌아보자. 그들에게서 가시덤불과 거친 풀은 자라고있지 않는가 살펴 봅시다. 그러고 그러한 것이 발견되면, 즉시 즉시 뽑아 줍시다. 힘들어도 뽑아주고, 어린 내 자식의 새싹에게 해가 돌아 가는 것 같아도 과감하게 뽑아 줍시다. 그래서 내 자식의 밭에는 아름답고 복된 축복의 씨앗들이 무럭 무럭 자라게 합시다.

여러분! 오늘부터 잡초를 발견하고 뽑아주는 자식을 축복하는 부모가 되자.



3. 좋은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농사를 잘 지는 농부는 이듬해에 쓸 퇴비를 미리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그 퇴비를 잘 썩여서 밭에 넉넉하게 줍니다. 퇴비가 충분한 곡식에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더 잘 자라고, 더 튼튼하고, 더 좋은 열매를 맺고, 더 많은 열매를 맺고, 병충해에도 더 강합니다.

그러나 식물만 심어 놓고 거름을 주지 않는 농부의 밭의 식물은 잘 자라지 못하고, 허약하여 쉽게 죽고, 쉽게 쓰러집니다. 열매도 잘 맺지 못합니다. 열매를 맺어도 부실한 열매를 맺읍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무슨 일을 해도 끝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고 맙니다. 자식이 자랄때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해 주지 못해서 그렇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이 자랄 때 충분한 거름을 주지 못하면, 후에 그 자식이 그런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쉽게 자식들이 유혹에 빠지고 잘못된 길로 가는 것도, 부모가 그 자식에게 충분한 거름을 주지 못했기 때문. 내 자식이 자꾸 잘못된 길로 가는 것만 나무라지 말고, 정말로 내가 내 자식이 자랄때 충분한 영양분을 주었는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양육할 때 농부와 같이 풍족한 거름을 주면 그 자녀는 더 잘 자라고, 튼튼합니다. 더 많은 인생의 열매를 맺고, 세상의 유혹에도 더 강합니다. 들에 곡식만 심어 놓고 풍성한 열매를 바라는 농부가 어리석은 것과 같이 ,자식만 낳아 놓고, 훌륭한 자식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도 어리석은 부모입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의 인생에 좋은 거름을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인생에 가장 좋은 거름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에 가장 귀한 밑거름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보다 더 좋은 인생의 거름은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고 말씀하셨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거름을 주라는 뜻. 솔로몬 왕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22:6)고 말씀하셨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거름을 주어야 합니다. 어린 새싹들에게 주는 거름 중에 또 중요한 것은 칭찬. 진심어린 갈채와 칭찬은 사람을 살찌게 합니다. 인생에 훌륭한 밑거름이 됩니다. 왜냐하면 칭찬에는 사랑과 동정과 그리고 놀라운 능력의 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필요로 하고 인정한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시켜 주는 칭찬의 한마디는 놀라운 위력과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사람에게는 두가지 요구가 있다. 일차적인 욕구는 호흡, 갈증, 배고픔, 성(sex), 휴식, 보호, 방어 등과 같은 본능적 욕구. 그런데 이 욕구는 오늘날 우리 자녀들에게는 거의 다 충족되고 있다. 이제 빵이 없어서 고통당하는 자들은 없다. 그런데 이차적인 욕구가 있다. 이차적인 욕구는 소속의 욕구, 승인의 욕구, 우정의 욕구, 사랑의 욕구, 칭찬의 욕구, 성취의 욕구, 자존심의 욕구 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1차적인 욕구는 다 해결 되었지만, 반대로 2차적인 욕구는 거의 하나도 충족 되지 않고 있읍니다. 1차적인 욕구가 성취되지 않으면 우리들의 육신이 건강해 질 수 없듯이, 2차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우리 인생이 건강할 수가 없다. 현대 자녀들은 다 칭찬에 굶주려 있다. 캐빗 로버츠는 \"지구상의 30억 인구가 매일 밤 배고픈 채로 잠이 들며, 그보다 10억이 더 많은 40억의 인구가 격려와 인정의 한마디를 갈망하면서, 즉 칭찬에 굶주린 채로 매일 밤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배고푼 자녀를 보고 먹을 것을 주지 않는 부모는 없다. 밥을 먹지 않고 배고픈 상태에서 잠자리에 드는 자식을 보고 먹을 것을 주지 않는 부모들이 없다. 그렇다면 매일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과 인정과 칭찬의 말에 굶주려 잠자리에 드는 자식들을 보고도 그들에게 그것들을 공급해 주시 않는 다면 그것은 참다운 부모라고 할 수가 없다. 자녀들에게 사랑과 칭찬과 위로의 거름으로 자녀들을 튼튼하게 키우는 축복자가 되자.



4.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농사는 농부가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충분한 비를 내려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려 주시지 않으면 인간의 모든 노력이 다 헛수고 입니다. 그래서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자식을 양육하는 것도 마찬가지. 아무리 부모가 그 자식을 잘 길러도 하나님이 그 자식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그 자식을 위하여 부모가 할 것을 다 한 후에는 그 자식을 하나님의 품에 맡겨야 합니다.

모세가 태어 났을 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고 있던 애굽 왕 바로가 히브리인들은 아들을 낳으면 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그 자식을 그냥 죽이지 않고 그 자식을 숨겼다. 자기의 생명을 내 놓고 그 아들을 숨겨서 길렀다. 그러나 인간의 노력은 한계가 있다. 3개월이 지나자 그 아들의 울음이 더욱더 커져서 더 이상 숨겨서 키울 수가 없다. 이렇게 아들을 위하여 할 것을 다 한 후에,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게 되자 마지막으로 그 아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 갈 상자를 만들어, 그 속에 물이 들어 오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바르고, 그 아이를 그 갈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바로의 딸이 목욕하러 오는 시간을 알아 내서, 그 시간에 그곳으로 떠내려 보냈다. 그리고 자기 딸 미리암에게 그 아기를 지켜 보게 했다. 모세의 어머니는 아들 모세를 위하여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 후에는 하나님께 그 아들을 맡겼다.

아들을 나일강에 던지는 것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기가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부모가 책임질 수 없는 것까지 부모가 책임을 지려고 하기 때문에 그 자녀들을 죽입니다. 모세의 어머니가 더 이상 그 아들을 책임 질 수 없는데도, 그 아들을 붙잡고 있었으며, 그 아들 모세는 들켜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 중에 이와 같이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해야할 것은 안하고 거꾸로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을 부모가 하려고 하고 있다. 그래서 자녀들이 다 죽어가고 있다. 자식을 위하여 부모가 해야할 일을 다 한 후에 부모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시기 기원합니다.



여러분! 자식을 축복하는 부모가 되라. 그러기 위해 자식이란 밭에 직접 씨를 뿌리라. 잡초를 뽐아주라, 거름을 주라, 하나님께 맡기라. 그래서 21세기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는 자식, 부모의 면류관이 될 자식으로 양육하는 축복자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