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이스라엘

축복받은 이스라엘
출1:1-7





창세기가 온 우주만물의 기원과 이스라엘의 족장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면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특별히 출애굽기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 집단 전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해서 한 개인이 신앙고백하는 것이라면,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본문은 인류를 향한 축복의 명령과 애굽에 들어간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들의 축복된 삶의 결과를 야곱의 열두 아들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와 출애굽을 연결하는 7절의 하나님의 축복의 다양한 모습도 볼 수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를 살펴 보고자합니다.





하나는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성취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미 번성하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우리중에는 혹시 사람이 자녀를 낳는 것이 아담이 범죄한 후에 에덴 동산에서 추방될 때, 잉태하는 고통을 준 것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창3장 본문에 나타나는 죽음도 아담의 범죄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3장에서 인간이 저주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본문의 말하는 것이 애를 낳는다거나 죽는 다는 것이 저주의 결과라고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단지 잉태하고 탄생할 때, 고통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오는 고통을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피조물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쇠하여지는 것이 피조물입니다. 인간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에덴동산에서 추방되고 죽음이라는 것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신비와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경주 길을 가다보면 금척이라는 동네가 나옵니다. 길가에 큰 무덤이 여럿 있는데, 이 마을에 전해지는 전설은 이렇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이 금으로 만든자 곧 금척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게 되고, 사람은 차고 넘치고, 병들어도 늙어도 죽지 않게 되니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금자를 무덤속에 아무도 모르게 감춘후 사람들이 죽기 시작했다고 그래요 에덴 동산이 얼마나 클까요. 이미 하나님은 에덴 동산 있기전에 사람들을 향해서 땅에 번성하라는 축복을 주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저주받은 후에 잉태하는 축복을 준 것이 아닙니다. 만약 에덴에서 추방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인간으로 가득 찼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적으로 인구 조절이 되야 할 것이고, 우리가 태어났으리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태어난 것도 죽음이 이땅에 있어야만 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음이 결코 나쁜 것만 아니라 정말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가 그곳에 있음을 봅니다.



둘째로,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한시적으로 전인류에서 셈족으로 축소되어 가는 것을 봅니다.





인간은 축복 명령을 받았지만, 그러나 세상은 죄악이 관영함으로 다시 한번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인간은 땅에서 번성했지만 그러나 땅에 죄악이 관영함으로 노아때에 홍수를 통해서 노아의 가족외에는 모두 멸망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향한 축복의 명령은 계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한번 말씀하십니다.

창조때 창 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그러나 이 약속은 노아의 모든 자녀에게 주어진 축복은 아니였습니다. 함이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조롱한 결과 그의 아들 가나안에게는 저주의 고통이 있게 되고, 야벳과 셈에게 하나님의축복은 이어집니다.



창 9: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셈의 후손입니다.

이 셈에 대한 축복의 약속이 또한 누구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나느냐 하면 아브라함입니다.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은 셈의 후손입니다. 셈족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은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엇을 때, 애굽을 다스리던왕족은 셈족의 후예였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나 셈족의 왕조에서 애굽의 다른 왕조가 나타납니다. 이 왕조가 바뀐후에 아피루인 이스라엘은 고난과 핍박을 당하게 되는 동기입니다. 이전 왕조인 셈족의 정권과 이스라엘의 연합될 경우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것 때문에, 그리고 타민족이라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에 대한 압박은 매우 컸습니다. 이것이 노예로써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하는 큰 동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고난속에서 하나님의축복은 더 컸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고난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체질적으로 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론 자신의 백성을 고난속에 집어넣으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게 합니다. 이는 우리가 잘 되었을 때도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기위함입니다. 우리의 축복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깨닫게 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민족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축복은 그져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속에서 이집트로 들어가는 야곱의 자녀들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은 고난을 싫어하는 이기적인 욕망을 가지고 이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행위는 인간의지혜로 감당하지 못할 위험의 때에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야곱은 고난의 때에 자녀들을 데리고 이집트로 들어갑니다. 출 애굽이 있다면 입애굽도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한번 찾아봅시다.

창 46:27 애굽에서 요셉에게 낳은 아들이 두 명이니 야곱의 집 사람으로 애굽에 이른 자의 도합이 칠십 명이었더라 여기서 출애굽이 아니라 들어갔으니까 입 애굽입니다. 애굽에들어갔는데 행 7:14 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 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스테반 집사 70인역 70에 에브라임의 두아들과손자, 그리고 므나쎄의 한 아들과 손자 합쳐서 75인으로 계산되었습니다.

고난의 때에 애굽으로 들어갔지만 거기서 망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와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430년이라는 기간동안 장정 60만명으로 급성장하게 됩니다. 충만하게 됩니다. 본문 7절 말씀대로 출 1: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중다 번식, 창성 강대 한마디로 하면 축복 받았다는 말입니다.





셋째로, 이 축복은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입니다.





출 1:5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

야곱의 혈족이라 할 때에, 혈 이라는 말은 원어로 예레크입니다. 허리라는 말로도 쓰입니다.

예렉 야곱이라고 하면 야곱의 허리라는 말인데, 이 허리라는 말은 야곱의 환도뼈, 넓적다리, 엉덩이, 한도뼈 힘줄이 있는자리, 생산의 자리, 맹세할 때 손을 집어 넣는 자리입니다.

야뽁 나루터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신의 일격을 받고 깨어진 그 허리를 가리킵니다.

창 32: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하나님은 야곱이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못하겠다고 한 그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하게 하였는데, 그 환도뼈의 자리가 허리라는 우회적 표현입니다. 곧 많은 축복을 바라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오히려 자녀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 가셨습니다. 그러고서는 야곱의 후손이 더욱 번성하고 창성하고 중다하고 강대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은 이 축복이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참 역설적입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야곱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창 35:11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약속하였습니다.

이 약속은 언제 나온 것입니까? 생산할 능력을 상실한 후에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생각하기엔 평생 애낳을 수 잇는 건강과 많은 부인을 주어서 많은 자녀를 낳으라고 말했다면 이해가지만 하나님은 야곱의 생산능력을 없이한 후에 많은 자녀를 약속하였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 못하지만 하나님의 방식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했고, 사실 본 출애굽기에 나타나는 사실을 보면 그것이 이루어졌고, 사실 많은 야곱의 후손중에 왕과 메시야까지 오게 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설령 어려워 야곱처럼 다 잃은 것같아 보여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믿음으로 살면, 축복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우리를 축복하시는 방법이 매우 놀랍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요셉과 같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갔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더욱 사랑하셔서 축복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의 번성은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자녀들을 인하여 , 걱정하십니까. 어떻게 될까 고민하십니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듯이 우리를 지키시고 복 주실 것입니다.

고전 1:25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은 야곱의 생산능력을 다 없이 한 후에 무섭게 늘어나는 증가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역설적인 말씀 곧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음을 없는 것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처럼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기만 하면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환도뼈 위골 후에 오히려 나타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과 관계없이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축복은 시작됩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축복은 마구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대로, 원칙대로 축복하십니다.





야곱은 레아보다 레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창35:19절에 보면 라헬은 베들레힘길에서장사되었습니다. 나그네의 무덤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레아는 야곱과 더불어서 조상의 무덤인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 죽어서라도 야곱곁에 있는 레아가 우리 보기엔 안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본문의 자녀들의 순서를 보십시오.

.

본문에는 레아의 자녀 6명, 라헬의 아들 베냐민, 그리고 빌하의 아들 단과 납달리, 실바의 아들 갓과 아셀 그리고 요셉의 순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셉이 마지막에 쓴 이유는 이미 애굽에 있었기때문이라고 본문은 해설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정확한 번역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요셉은 애굽에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질서의 하나님을 본문에서 볼 수 잇습니다.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은 다르고 그 생각도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사랑받은 자녀순서대로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은 아닙니다. 라헬의후손인 요셉이 총리가 되고, 요셉의 후손인 에브라임과므낫세가 두지파를 차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왕과 메시야는 레아의 후손에게서 나왔습니다. 첫왕 사울이 베냐민 지파이긴하지만 말입니다. 사실은 레아와 라헬의 경쟁에서는 레아 후손의 승리입니다. 레아 후손이 하나님의 축복을 더 많이 받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레아를 축복하였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잘 들어야 복 받습니다. 말1:2-3에 하나님이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왜 사랑했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에서는 하나님이 미워할 만한 행동을 했고, 야곱은 비록 이기적이고 술수와 속임수와 욕망의 사람이였지만 믿음과 신령한 열망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사랑받겠끔 행동한 것입니다. 사랑과 미움이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으로만 설명할 수도 있지만 에서는 행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욕먹고 미움받을 만큼 행동했고, 야곱은 사랑받겠끔 행동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심는데로 거둔다는 이 원칙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질서의 하나님께서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게 사느냐, 믿음으로 사느냐를 보고 계십니다. 물론 과거가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오늘 십자가아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통회 자복하며, 회개하는 자에게는 신령한 축복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땅속에 밀알을 심지 않고 많은 것을 거둘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고, 주님뜻대로 살기를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심으로 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뜻을 하나씩 이뤄 나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축복하시는 뜻은 무엇입니까? 이 축복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전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셈족의 후손인 아브람에게 창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그 구체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축복하시고 사명을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라 했습니다.

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이 온 인류를 향한 축복이 명령이라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고 창대하고 강대한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오늘도 복 받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복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의 중요한 믿음의 조상은 다 죽었으나 하나님은 오히려 더욱 이스라엘 후손들을 축복해주시고, 지켜주시고,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창1:28에 인간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께서 인류를 향한 축복의 명령은 아직도 유효하고 계속되어집니다. 믿는 자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처럼 창대할 줄 믿씁니다. 어렵고 힘든 가운데서도, 고난의 삶속에서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께서 세상끝날까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까지 축복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